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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좋은교회/20230129 주일오전예배/정광수목사님 | |
분류 | 주일오전예배 |
제목 | 너는 용서하라 |
성경 | 누가복음 17:1-4 |
정리 | 참좋은교회 청년부 |
성경말씀(누가복음 17:1-4)
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2.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4.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녹취자료 |
사랑하는 우리 성도들이 오늘도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과 은혜받길 원하는 마음으로 찾아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모하는 영혼에게 합당한 은혜와 또 여러분들에게 미션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이 예배를 통해서 가장 큰 은혜 받는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지난 주 메시지 제목이 ’죽은 자의 소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복음 증거를 위해 어떤 자세로 복음을 전해야 될 것인가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단순히 전도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전도에 대한 강한 동기가 내게 일어나야 하는 겁니다.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는 장난치고 놀고 까불고 그랬어요. 그러다가 4학년 말에 생각해보니까 내가 이렇게 매일 까불고 놀면 앞으로 내가 좋은 중학교라도 가겠나? 싶더라고요. 정신이 바짝 들었어요. 그래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정신 차리고 공부를 했어요. 공부를 하니까 성적이 올라가더라고요. 저희 반 60명 중에 제가 50등 정도 했거든요. 점점 등수가 올라가면서 공부가 재미있어지더라고요. 그때는 시골에는 전기가 아예 없었고 제가 사는 동네는 그래도 사정이 나아서 낮에는 전기를 쓰다가 밤 10시 되면 전기가 꺼졌어요. 이제 촛불 켜놓고 공부를 하려는데 놀다가 공부를 하니까 졸리겠죠. 억지로 촛불 켜놓고 공부하다가 책상도 태워먹기도 했지만 공부를 재미있게 하게 되었어요.
자, 정말로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는 자체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게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기 때문이에요. 오늘 우리가 말씀을 들으면서도 내가 무엇을 해야 될 것인가가 우리 마음속에 부딪혀야 되어야 하는 겁니다. 바로 깨달아진 바로 그것이 여러분들의 참된 시작이 되는 겁니다. 말씀을 듣고 내가 무엇을 깨닫고 내가 무엇을 갱신하고 무엇을 결단할 것인가 바로 인식의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사람들마다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인생올인을 해요. 그것을 보고 ’24’라고 표현합니다. 암 환자는 암이라는 질병을 두고 24합니다. 직장에서는 사원하고 사장하고 달라요. 사원은 직장에 있을 때면 열심히 하고 집에 하면 잊어버리고 TV도 보고 편히 놀아요. 그러나 사장, 오너들은 그게 안돼요. 먹고, 마시고, 잠자고, 사람 만나는 건 모두 다 그 사업을 위해서 올인하면서 생각하게 되잖아요. 운동 선수들도 24하는 사람들이 운동선수로 성공해요. 대충해서 되는게 아니에요. 일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말도 있죠. 하는 만큼 성공을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하는 24의 밑바닥 속에 뭐가 들어있죠? 창세기 3, 6, 11장 때문에~! 무엇을 위해? 나를 위해, 내 식구들을 위해, 내 자녀를 위해서 하는 24입니다. 그것이 필요 없는 것이고 그렇게 해야 되잖아요. 국가를 위해 헌신한 분들도 있습니다. 그것도 내 나라를 위해서 하는 겁니다. 나의 기준이거든요. 그 동기가 우리나라를 이와 같이 잘 살게 만들었잖아요. 박정희 대통령이 새마을운동을 일으키면서 불렀던 노래가 ‘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 였어요.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는 동기 부여였어요. 그래서 열심히 열심히 일했죠. 수출도 하고요. 그래서 지금 우리나라가 국가 경쟁력순위로 6위가 되었어요. 일본도 제쳤더라고요. 수출도 6위했어요.
그렇지만 우리가 아무리 잘 먹고 잘 살아도 내 인생에 찾아오는 영적 문제, 정신, 육신 문제는 해결이 안 되잖아요. 풍요로워 졌는데 더더욱 정신문제에 시달려요. 자살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고 공황장애와 우울증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당하면서 살아요. 이렇게 잘 사는데도 ‘헬조선‘이라고 표현하면서 한국이 지옥 같다고 해요. 왜 이런 현상이 오고 있는 것인가? 지난주 메시지에서 무엇을 말씀드렸나요? 참 행복 없이 살다가 어디로 간다고요? 영원한 지옥에 떨어지게 되요. 물 한방울의 자비도 없는 그곳으로 가요. 왜 갈까요? 예수 믿는 것을 거절했거든요. 복음 하나 없는 것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무슨 자세를 가져야 되겠는가? 내가 가질 진짜 24는 바로 뭔가 영적 24입니다. 복음 24가 내 안에 세워지지 않는다면 결국 내 인생은 열심히 수고하고 난 후에 무너지는 겁니다. 그 시작이 복음 이해입니다. 복음 안에 모든 것이 들어있다는 사실이 실제로 믿어져야 합니다. 매 시간마다 복음을 선포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나의 것이 되어야 해요. 나의 것이 되기 위해 예배 시간에 말씀 듣는 것, 묵상하며 기도하는 것, 또 여러분들이 여섯 가지의 복음을 누리는 기도하고 있어요. 여러분들이 정말 아침마다 읽으면서 정말 내인생이 복음 누림 속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셔야 되는 겁니다.
제가 지금 복음운동을 하면서 뭐가 느껴지는 것인가? 사단에게 우리 모든 성도들이 또 사기당하고 있구나. 복음 아는 것하고 복음 가진 것하고는 달라요 복음을 아무리 알아도 그건 내 것이 아니에요. 어느 선교사가 선교 현지에서 일어났던 일을 간증을 하면서 매일 스콜로 비가 내려 비가 자꾸 새니까 지붕을 양철지붕으로 바꿨어요. 그러니 밤만 되면 쥐가 올라와서 우당탕탕 하면서 잠을 못 자겠는거죠. 그래서 안 되겠다 싶어서 고양이는 한 마리를 사다 갖다 놨더니 쥐가 안 뛰어다니는 거예요. 조용해졌어요. 다른 성도도 고양이 좀 빌려달라고 그래가지고 그날 밤 빌려갔는데 또 우당당당 하는 거요. 그래서 꾀를 내까지고 내가 고양이 소리를 내서 야옹~ 하고 소리 질렀는데 여전히 쥐새끼는 그냥 뛰어다니는 거 있죠. 쥐새끼는 뭘 알죠? 고양이가 소리 내는 건지 사람이 소리 내는 것인지 알아요. 안 속는다고요.
내가 복음을 아는 것하고 정말 믿는 것하고 이런 차이가 나는 거예요. 수없이 복음 듣습니다. 그런데 이 복음이 내 것이 안되면 미안하지만 내 인생에 흑암이 안무너져요. 내가 정말 안 믿으면 재앙이 멈추질 않아요. 정말 중요한 것은 복음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누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오늘 우리는 예배 중에 이 귀한 말씀을 듣고서 그래, 그동안 내가 복음을 알았지 내 것으로 누르지 못했구나. 이걸로 하나님 앞에 정말 기도하면서 예수가 그리스도되심을 내가 뭐해야하는 거죠? 체험하라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이게 체험이 오게 되면 처음에는 우연히 온 건가 보다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체험이 연속되면 아, 예수가 그리스도가 정말 맞구나 내 속에 이 믿음이 오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여러분들의 각인 뿌리 체질을 바꿔 나가기를 시작하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들의 마음에 결론이 나게 됩니다. 정말 복음이 전부 다로구나. 이때 비로소 복음 24 속으로 들어가는 거죠. 이 사람이 전도 24가 되는거죠. 그 사람에게 뭐가 임할까요. 하나님의 나라 25시 역사가 여러분 가정에 임하게, 여러분 직장과 산업 현장속에 임하게 되는거죠. 그래서 마지막 결론이 어떻게 나오는 것인가 하면 아, 이제 내가 할 것은 딱 하나밖에 남은 것이 없구나. 전도24 해야되겠구나. 이게 와야 해요. 전도하라고 아무리 강조해도 전도 안해요. 왜요? 내 마음에 동기부여가 안되는거죠.
1.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옛날에 초창기 초대교회 복음 전할 때는 예수 천당 불신 지옥으로 예수 믿으면 천당가고 아니면 지옥간다고, 맞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궁극적인 목적자체는 천당가는 겁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아무리 잘 살아도 지옥가면 무슨 소용이 있나요. 천당 가야 되겠죠. 그러나 방법은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예수 믿어야 천국 가는 겁니다. 예수 믿어야. 오늘 메시지는 지난주 메시지의 연속입니다. 나로 인해 그들이 복음 받도록 만들어야하기 때문에. 그냥 나 한사람의 말과 행동으로 인해 상대방으로 하여금 예수를 못 믿게 만드는 것이 된다면, 그 죄는 어떤 죄보다 크다고 말씀합니다.
오늘 2절 말씀을 보면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니라. 나 한사람 때문에 상대방이 실족해서 예수님 못믿게 만들었다면 그 죄는 차라리 뭐한다고요? 머리에 연자맷돌을 매고 바다에 빠져 죽어라. 주님은 그 핏값을 우리에게 찾으시겠다고 말씀합니다. 악한 마음으로 상대가 예수 못믿도록 방해한 것은 아니지만 도움이 안되게 내 실수나 순간적인 내 욕심 때문에 내가 복음의 방해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메시지는 내 말과 내 행동이 복음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말씀합니다. 어떤 악한자라도 내 마음에 증오의 대상이 된다고 할지라도, 저 놈이 지옥 갔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그 자도 무슨 대상이 된다고요? 예수 믿어야해요. 그들이 예수 믿도록 우리가 도와야 합니다.
사도행전 7장 60절을 보면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으면서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돌 맞아 죽게 한 그들에게 이 죄를 돌리지 말라고.. 누가 그렇게 말씀하셨죠?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누가복음 23장 34절에서 ‘주께서 이르시되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우리 복음 송에도 나옵니다. ‘주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왜요? 모르고 지금 하고 있잖아요. 디모데전서 2장 4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이게 예수님의 마음이에요. 모든 사람이 뭐 하길 원하신다고요? 예수님의 구원 받기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죄 중에 가장 큰 죄가 무슨 죄인 것인가? 복음 막는 죄입니다. 저는 전도 현장에서 과거에 교회 다녔다가 안다니시는 분들, 아예 교회 안 오신 분들을 만나서 당신이 예수 왜 안믿냐, 왜 안다니느냐 했을 때에 거의 90%가 뭐하는 것인가? 교회에서 상처입고 교회 안다닌대요. 우리 회사 사장이 장로인데 어휴.. 그 장로 그러면서 고개를 흔들어요. 내가 복음을 전했더니 어느 시어머니가 우리 며느리가 믿는 예수 안 믿겠대. 왜? 장로 딸인데 얼마나 패악질을 하는지.. 또 어느 노인네한테 복음을 전했더니 우리 어머니, 말도 마세요. 교회 권사인데요 얼마나 시어머니 노릇을 하는지 더러워서 내가 교회 안간다고.. 여러분, 정신 차려야 합니다. 복음 가진 우리가 나의 말과 행동들 때문에 내가 복음 막고 있다는 사실을 이걸 우리가 깨달아야 한다고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본의 아니게 피해를 줄 수는 있겠지만 우리는 정말 그들에게 우리가 용서도 구하고.. 왜? 복음 때문입니다. 복음 때문에.. 상대방에게 상처를 줘서 예수 못 믿게 만든다.. 그것 뿐 아니라 여러분들은 왜 직장에서 최선을 다해서 성실하게 직장생활을 해야 하는 것인가.. 이야.. 저 사람 참 멋있는 사람이야.. 보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에요. 이게 되어야 하는 겁니다 이게. 여러분들 회사에서 300% 열심히 해야 합니다. 왜요? 예수 믿기 때문에.. 내 착한 행실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도록 하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잖아요. 왜요? 나 때문에 뭐가 안 되도록? 복음이 안 막히도록.. 아이고, 저거 또 예수.. 아무아무개 교회 다닌다고..
예수님이 가장 미워하고 욕했던 대상이 바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입니다. 왜 미워 했을까요? 이들이 갖고 있는 율법주의가 복음을 철저히 막았기 때문에.. 마태복음 23장 13절에서 15절 말씀 보면 화 있을진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너희는 의인 한 사람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제일 무서운 죄가 뭘까요? 복음을 막는 죄 입니다. 외적으로 봤을 때 서기관이나 그 바리새인이 정말 경건한 사람들입니다. 근데 예수님께서는 독을 품으면서 욕을 했어요. 뭐했기 때문에? 복음을 막았기 때문에.. 감람산에서 뭐가 선포될까요? 복음 선포되어야 돼요. 복음 말고 딴 이야기 하는 것? 그것이 복음 막는 거에요. 기복신앙 강조하는 거? 그런 의미에서 아주 나쁜 목사에요. 교회에서는 뭐만 선포되어야 될까요? 오직 복음만 선포되어야 되는 겁니다.
2.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인간은 감정의 동물입니다. 이 감정이 나로 하여금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거나 돌발행동을 하도록 만들어요. 인간관계에서 우리는 미움도 생겨나고, 다툼도 생겨나고, 증오심, 질투, 시기심도 생겨납니다. 그런데 여러분 억울한 일을 당하고, 여러분 마음에 미움의 감정이 생겨나게 되면 그 마음을 품고서 잠을 자게 되면 이것을 밤새도록 굴리게 되면 그것이요. 여러분 눈사람 만들어 봤죠? 처음에는 주먹만한데 이걸 굴리면 큰 눈사람으로 만들어 지는 것처럼 여러분 마음속에 상대방을 미워하고 증오하는 마음들이 이게 내 속에 밤새도록 생각을 굴리게 되면 처음에는 10개 정도 상대방이 미웠는데 이것이 100개, 1000개 되요. 그 사람은 칼을 들고 상대방을 찌르기도 하고요 그리고 뭐하죠? 화를 못 참아서 차를 몰고서 돌진을 하고요. 이 과정에서 그 사람의 이성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를 해도 감정을 못 이기는 것이에요. 이 감정들이 용서가 되지 않고, 이것이 복음을 막고 교회가 하나 되지 못하게 깨뜨리는 것이에요. 얄팍한 자존심이 화해의 손길을 내밀지 못하게 해요. 오늘 주제는 전도 24입니다. 이 본문을 오늘 우리에게 왜 주시는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인간관계에서 복음을 막고 깨뜨리는 가장 중요한 것이 용서 못하는 마음입니다. 주기도문을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면서 주기도문의 결론은 무엇인가? 마태복음 6장 14절에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복음의 핵심은 용서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조금 깨달았다고 생각하는 베드로가 예수님 앞에서 이야기 합니다. ‘예수님! 예수님! 상대방이 잘 못 했을 때에 7번 용서하면 됩니까?‘ 우리는 보통 몇 번 용서하죠? 3번 용서하면 ’와~용서 많이 했다‘하죠? 그런데 3번 용서는 진짜 용서가 아니에요. 집행유예죠. 3번째 잘못하면 앞에 2개까지 몰아서 야단치잖아요. 그건 정말 용서한거 아니거든요.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70번씩 7번이라도 용서하라.’ 그러면서 예를 들죠. 우리는 하나님 앞에 1만 달란트 빚진자라고요. 1만 달란트를 현재 화폐가치로 환산을 해보니까 2조 정도 되더라고요. 그러면 100 데나리온은 1천만원에서 1천 5백만원 정도 되겠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용서받은것에 비한다면 3번 잘못을 용서하는 것은 보잘 것 없는 것이에요. 억만가지 죄악가운에서 우리가 건져 구원함을 받았어요. 이것을 우리가 생각한다면 용서못할 죄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위하여서 원수도 뭐하라고요? 사랑하라고 요구를 하죠. 정말 이 복음 때문에 기꺼이 상대방을 용서 할 수 있는 것이 이것이 복음입니다.
미국에 와튼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짐 엘리엇과 친구들이 얼마나 공부를 잘했던지 그 대학에서 교수로 뽑았던 인물이에요. 이분들이 목사안수를 받고서 마음으로 품었던 지역으로 선교를 떠나는데 그 장소가 ‘에콰도르’입니다. 식인종들이 살고 있는 ‘와다니’족을 선택하고 그곳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그 지역에 헬리콥터를 이용해서 지속적으로 물자를 떨어뜨려 주면서 이들의 마음을 푸는 작업들을 합니다. 그리고서 헬리콥터에서 이들이 낙하산을 타고서 배낭을 매고서 이들이 내렸는데 이들이 거기서 4명이 전부 창에 찔려서 죽습니다. 예수 믿으라고 한마디도 전하지 못하고 죽어요. 그리고 얼마 후에 짐 엘리엇의 부인과 다른 선교사의 여동생, 부인들이 육로로 걸어서 그 부족에게 들어갑니다. 그 부족들은 식인부족인데 선교사를 다 죽이고 잡아먹은 것이에요. 그런데 이들이 들어갔어요. 짐 엘리엇의 부인이 간호사 출신이었어요. 그들에게 가서 정말 정성껏 아이들을 돌보고 위생관리를 해주고 6년 동안을 헌신적으로 섬겼어요. 7년째 안식년을 맞았을 때에 우리가 가서 좀 쉬었다가 오겠다고 했을때에 추장이 질문을 합니다. ‘도대체 당신들은 누구이기에 여기에서 이렇게 수고를 하느냐?‘ 그때에 6년전 사건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때에 바로 너희들이 죽였던 사람이 바로 내 남편이라고. 그런데 그들이 헬리콥터에서 내릴 때에 사실은 총을 가지고 있었어요. 총을 쐈으면 안 죽었겠죠? 그러나 총을 쐈으면 그것으로 끝났겠죠. 그래서 추장이 깜짝 놀랐어요. ’원수는 죽여야 하는데 어떻게 자기 남편을 죽인 우리에게 와서 이렇게 헌신을 하느냐?’ 이것을 두고서 엘리엇의 부인이 복음을 전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고 다 죽어야 하는데 원수된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그분이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 이 복음을 듣고서 추장이 완전히 감동을 했어요. ‘와 그런 신이 있다면 그 신은 내가 믿어야 겠다‘고요. 이렇게 해서 온 부족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 사건이 세상에 밝혀진 것이 1965년 세계 WCC대회에서 이제 그 사건이 이제 알려지게 되었는데 이유는 뭐였죠? 뭐 한 가지 때문에? 복음 한 가지 떄문에. 이들은 순교를 선택한 겁니다.
왜 우리는 원수 사랑하고 용서해야 되는 것인가요? 복음이 너무나 귀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전도24입니다. 로마서12장 20절 말씀 보면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하므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원수 갚는 최고의 비밀은 상대방이 예수 믿게 만드는 겁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머리에 숯불을 올려놓은 것처럼 부끄럽게 만드는 것입니다. 왜 용서해야 되는 것인가요?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순 없으나... 인간의 무지나 상처나 감정에 치우쳐서 사람은 얼마든지 잘못을 범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인정하고 상대방에 뭐 하라? 용서하고 이해하고 용납하라고 말씀을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나를 힘들게 만드는 그 사람들 어떤 것이죠? 사단에 속은 자요. 사단이 무엇으로 가정과 인간관계를 무너뜨리고 성도의 관계를 하나 되지 못하고 막을까요? 바로 우리 속에 있는 용서하지 못하는 그 마음입니다. 거의 자기 감정의 지배를 받아서 스스로 불행하게 만들고 괴롭고 어지럽게 만듭니다. 우리는 영안이 열어서 보아야 합니다. 사단이 인간이 가진 그 상처와 감정을 충동질해서 여러분들의 가정과 인간관계와 교회가 하나 되지 못하도록 지금도 공격을 합니다. 이게 뭐했죠? 이게 복을 막는 것이에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용서하지 않고 여러분들이 꽁 하고 있으면 누가 제일 좋아할까요? 사단이 잘한다, 잘한다, 더 미워해라. 속지 마시길 바랍니다.
3.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오늘 제목이 뭐죠? 너는 용서하라. 용서해도 좋다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뭐 하셨죠? 명령입니다. 명령. 너는 용서하라.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주님의 명령입니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덥고 상대를 용서하게 됩니다. 진심으로 상대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은 내 힘으로는 사실 되지 않습니다. 내가 복음을 누리면 용서 이전에 상대방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겨나게 되는 겁니다. 요셉 앞에 형들이 지금 엎드렸어요. 그 형들을 보고 요셉이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형들이여 나를 팔았다고 근심하지 마소서. 형님들이 나를 판 것이 아니라 우리 가정 구원하시려고 하나님이 날 먼저 보내셨나이다. 그 이후에 야곱이 죽습니다. 형들이 이제는 아버지가 죽고 없으니까 반드시 우리를 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습니다. 창세기 50장 19절에서 요셉이 그들에게 말합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이렇게 하면서 형들을 오히려 위로하는 장면들이 나옵니다. 뭐 하면? 정말 내가 복음을 깨닫고 누리게 되면 정말 이 마음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이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사울 왕을 어떻게 하죠? 그를 애통히 여기면서 활 노래까지 짓습니다.
중요한 것은 억지로 용서하라가 아닙니다. 용서가 되어져야 하는 겁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가 아니고 원수가 불쌍히 여겨져야 되는 겁니다. 그러나 이것이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정말 내가 뭐 하면? 복음이 체험되고 누려지면 이것이 내 속에서 열매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 보면 열매가 나오죠.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라는 단어들이 9가지 나옵니다. 마지막 열매가 절제입니다. 내 감정을 제하고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절제하는 마음이 내 속에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라가 아닙니다.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내 속에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래 참으라가 아닙니다. 오래 참는 마음이 생겨나게 되는 겁니다. 상대방이 오히려 불쌍하게 여겨지는 마음이 생겨나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복음의 열매입니다.
문제는 문제가 아니고 그 속에서 오히려 뭘 보게 되죠? 하나님의 계획을 보는 것입니다. 누가 그랬죠? 요셉이. 누가요? 다윗이. 그 고난을 통해서 요셉이 무엇을 깨닫게 되었죠? 아 이게 하나님의 축복의 기회가 되겠구나. 여러분 이 눈이 열려져야 우리가 상대방을 용서할 수 있는 겁니다. 이 사람이 모든 것을 이해하고 양보하고 용서할 수 있는 자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요한일서를 읽어보면 사도 요한이 입만 열면 소자들아 서로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라, 하나님은 사랑이라. 사랑 타령을 해요. 요한이 그러면 처음부터 사랑이 넘친 사람인가? 그렇지 않아요. 누가복음 9장 54절 보면 예수님 일행이 사마리아를 지나가게 되는데 사마리아 사람들이 못 오도록 막아요. 그랬더니 요한이 버럭 화를 내면서 예수님한테 하늘의 불을 명해가지고 저들을 사르도록 해달라고. 원래 요한의 별명의 보아너게입니다. 우뢰의 아들. 기차 화통을 삶아먹은 사나이. 이것이 본 이름입니다. 별명입니다. 그런데 그 요한이 어떻게 바뀌었다고요? 소자들아 서로 사랑하라..
오늘 우리 자신을 점검해야 합니다. 아직도 내 속에 미움, 다춤툼, 시기, 질투, 분노가 있다면은.. 아직도 상대방을 이해하고 수용하고 용서하는 것이 안된다면은 여기에서 우리가 속히 벗어나야 합니다. 왜요? 이것이 다 뭐가 되기 때문에? 사단의 통로가 되기 때문에.. 이것이 복음을 막고 이것이 교회를 어지럽게 만들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것이 깨뜨려요. 무슨 마음이요? 용서하지 못하는 이 마음이요. 그래서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고, 복음의 방해꾼이 되지는 겁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이를 보고 뭐하는 것인가? 또 남의 탓으로 또 돌려요.
여러분들이 메시지를 들으면서 누구보고 이야기를 하고 있죠? 저는 저보고 지금 설교를 하고 있는 것이에요. 오늘 어쩌면 나의 모습을 두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생각을 우리가 가져야 합니다. 2023년 교회의 표어가 뭐죠?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약속하셨죠. 그러면 우리가 무슨 기도를 해야 될까요? 하나님, 나라는 존재는 안됩니다. 나는 속물입니다. 나는 이 마음을 갖고 싶어도 갖지 못하는 내 모습입니다. 나를 긍휼히 여기시사 나를 도와달라고.. 기도의 제목입니다.
그러면 빌립보서 4장 7절에 있는 것처럼 내 마음과 생각을 지켜서 이 마음을 주시겠다고 그분이 우리에게 약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가 진심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나의 욕심이, 나의 못난 자아가 나를 지배하지 않도록 나를 붙들어 달라고.. 나로 하여금 전도 24시가 되게 하셔서 나 자신이 바로 전도의 플랫폼으로 파수망대로 안테나가 되어져서 하나님의 절대계획인 이 복음 운동에 내 인생이 쓰임받게 만들어 주옵소서. 이것이 우리의 기도의 제목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복음 한가지가 없어서 망해가는 세상을 바라보면서 주님.. 지금까지 내가 오히려 복음의 방해꾼 노릇하고 거침돌이 되어 왔는데.. 하나님, 나를 긍휼이 불쌍히 여겨 주옵시고 이제는 나 한사람 때문에 수많은 영혼들이 이 복음 듣고 생명운동이 일어나는 곳에 내 인생이 쓰임받게 만들어 주옵소서. 우리 그 기도를 주님 앞에 진심으로 드려지는 시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하나님.
주님이 오늘 우리에게 명령을 합니다. 너는 용서하라! 너는 사랑하라! 오늘 우리에게 말씀 하셨습니다. 나 한사람의 말과 행동 때문에 그동안에 수많은 영혼들이 실족해서 예수를 못 믿게 만들었다면은, 이것이 나의 모습이었다면.. 주님 용서하여 주옵시고 이제는 정말 진심으로 나를 힘들게 만들고 고통 속에 있게 만드는 자들까지도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주께서 저희들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주님, 복음을 정말 진정으로 이해하고 체험하고 누려서 나 자신이 복음의 플랫폼이 되어져서 이 복음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주님 이 한시간에 주님 앞에 입을 크게 엽니다. 주께서 채워 주셔서 이 마음을 주시고 이제 증인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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