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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일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반년동안을 지내면서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를 고백하는 절기입니다. 코로나19로 그 어느 때보다도 혹독한 반년을 보냈기에 우리의 현실은 감사보다도 불평이 더 많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전의 양면이 다르듯이 감사를 뒤집어 생각하면 모든 것이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보에 감사가 없으면 뒤집기를 읽어 보셨습니까?..... 자녀가 부모인 당신에게 대들고 심술을 부린다면, 그건 아이가 거리에서 방황하지 않고 집에 있다는 뜻이기에 감사하고.....내야 할 세금이 있다면, 그건 내가 살 만하다는 뜻이기에 감사하고........옷이 몸에 조금 낀다면, 그건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뜻이기에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무슨 일이든 뒤집어 생각하면 감사할 일들이 많습니다.
며칠 전 병원에서 있었던 일인데 차를 지하에 주차하고 올라오는데 한 어머님과 초등학생 아들이 지하 승강기를 타고 올라오는데 저도 같이 타고 올라오면서 짧은 시간이지만 모자간에 이런 대화를 나눈 것을 봤습니다....... 아들아! 병원 들어가면 손 세척제 바르고 마스크도 꼭 써야 한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교육시키는데 아들이 딱! 뿔어지게 손 깨끗이 씻어야 돼! 마스크 꼭 써야 돼!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어머니 잔소리 그만해 하면서 어머니와 아들이 손 잡고 병원으로 향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코로나로 혹독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지만 손 씻는 것이 생활화되는 환경을 코로나가 바꿔 놓았구나 감사하며 병원에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뒤집어 생각하면 다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성경구절 살전 5:18....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내 앞에 일들을 뒤집어 하나님의 깊은 뜻으로 헤아려보면 마른 땅에 감사의 물 줄기는 솟아나게 합니다.
오늘 함께 봉독한 시편100편 표제 제목을 보면 감사의 시라고 했습니다. 감사의 시를 묵상하면서 성령님께서 가정 먼저 터치해 주는 말씀에 먼저 감사했습니다.
1절 시작을 보니까 온 땅이여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 말씀을 묵상해 보니까 감사는 온 땅에 모든 피조물이 해야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여러분!! 감사는 누가 하는 것입니까?...... 교회 다니는 성도만 합니까?...... 감사는 은혜를 입은 사람만 감사하는 것입니까?......감사는 사람만 감사하는 것입니까?....... 감사해야할 대상은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로 창조된 모든 피조물이 다 감사해야 합니다........ 어느 누구하나 예외가 없습니다. 온 땅이여 말씀하듯 모든 피조물 온 땅이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감사해야합니까? 성경 1-2절 찬송과 섬김을 통해 보여 줍니다.
1-2절......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1절에서 즐거이 찬송을 부르지어다 라고 했습니다. 2절에서는 섬기며 노래하면서 라고 했습니다. 찬송과 섬김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예배자의 모습입니다.
올해도 우리교회는 반년동안 무엇보다도 빠짐없이 감사예배가 이루어졌습니다. 우리 앞에 나타난 현실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가장 먼저 한국교회가 방해를 받는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예배였습니다.
그러나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를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영상예배를 드리든...가정예배를 드리든 예배를 방해하는 사람들과 마찰이 있었지만 예배는 중단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호흡이 살아 숨 쉬는 그날까지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것이 순교자의 각오처럼 나아가야합니다.
모퉁이 선교회 이삭목사님이 계십니다. 이분은 평생을 북한선교에 생명 받쳐 헌신한 목사님입니다. 이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80년대 말경 구 소련의 어느 도시 한 비밀 예배 처를 탐방할 기회를 얻었다고 합니다. 예배 처소에 가보니 예배를 드리기 전부터 성경 통독을 하면서 울던 성도들은 예배가 시작되어서도 울음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낡은 풍금으로 반주를 하는 단 몇 명뿐인 성가대의 송영도 울음 때문에 제대로 나오지 않고 회중의 찬송 소리에도 울음이 섞였습니다. 설교를 들을 때나 성찬을 나눌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 울면서 예배를 드린 이유가 뭐냐고 물었더니 " 이 세상에서 드리는 마지막 예배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라고 한 사람이 대답을 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어느 날 갑자기 KGB에 잡혀가서 20년 혹은 30년이 넘도록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했기 때문입니다.
자유로운 환경에서 주일마다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우리는 고난 속에서 목숨을 걸고 감격적으로 예배드리는 성도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내가 부르는 찬송이...... 내가 읽은 성경말씀이......... 내가 듣는 설교가 지금 마지막이라면..... 내가 드리는 기도가 지금 마지막이라면...... 우리가 부르는 찬양이..... 말씀이..... 설교가 오늘 마지막이라면 어떤 심정으로 임하겠습니까? 그만큼 절실함이 예배자의 심령가운데 다가와야 합니다.
행20장을 보면 사도바울의 고별설교가 나옵니다. 전도자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이제 결박되어 로마로 압송하여 재판을 받습니다. 그러면 더 이상 바울은 성도들을 볼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예배소교회 장로들을 초청하여 고별설교를 하는데 그 말씀이 핵심이 있습니다.
행 20:24....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설교를 마친 후 더 이상 설교를 들을 수 없기에 바울도 울고 성도들도 울고 헤어지는 마지막 순간입니다.
36-38....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그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니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로 말미암아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
우리 앞에도 언젠가는 예배도 설교도 찬송도 부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심정으로 우리는 지금 감사의 예배자로 거룩한 성전에 들어와 있습니다.
4절......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그러면 감사함으로 거룩한 성전에서 예배할 때 예배의 대상인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바로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3절 시작을 보십시오 .....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아야 우리는 감사하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아야 우리가 찬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찬송 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 지 난 알 수 없도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성경 원문에 보면, ‘엘로힘’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엘’은 ‘전능자’를 의미합니다. ‘엘로힘’은 어떤 존재보다도 뛰어나신 분, 천지를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어디에나 계신 분을 가리킬 때쓰이는 말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한 어린아이에게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니? 답을 맞춘다면 귤 한 개를 주마”, 이때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도 안 계시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면 저는 귤 두 개를 드리겠어요”, 겨우 여섯 살 난 아이였지만 대단히 명쾌한 답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도 계십니다. 어디에나 계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3절 하반절.......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우리를 지으신 이요”......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다른 피조물들과는 구별되게 창조를 하셨는데, 그의 형상을 닮도록 창조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시139:14....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다른 피조물들과 비교해 볼 때 그 피조 상태가 너무 기이하고 놀라워서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신비는 우리가 다 알 수는 없지만, 우리는 그 하나님의 오묘하신 솜씨에 감사할 뿐인 것입니다.
또 한가지는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 삼아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되어 주십니다.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 되신다는 사실은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적으로 보호하시는 분이심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소유요, 그의 백성인 우리를 어떤 경우에도 보호하시고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강한 의식이 있는 성도일수록 담대하게 이 세상을 살아갈 수가 있으며, 이런 사실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출19: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시135:4....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야곱 곧 이스라엘을 자기의 특별한 소유로 택하셨음이로다”고 하였습니다.
죄의 종이었고, 마귀의 종이었던 우리를 하나님께서 그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통해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우리를 그의 소유로 삼아 주셨습니다.
롬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찬양하기를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요 우리는 그의 양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소유하실 뿐아니라 책임지고 우리를 양육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목자는 양의 처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양의 배고픔과 목마름을 알며, 운동해야 할 시간과 안식해야 할 시간도 압니다....... 또한 양의 아픈 곳을 알며, 치유책도 압니다. 뿐만 아니라, 목자는 양의 처지를 아는 대로 그 필요를 채워 줍니다.
그래서 양이 배고플 때는 좋은 목초지로 인도하며, 목이 마를 때는 맑은 시냇가로 인도합니다.
시139:1....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은 그의 모든 관심을 기울여 우리를 세세히 살펴 우리의 형편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주님이 우리를 양육해 주시기 때문에 우리를 그의 양으로 삼아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틴 루터(M. Luther)는 “마귀의 세계는 감사가 없다”라고 했습니다. 감사는 신앙과 정비례합니다.
참된 신앙을 가진 성도라면 반드시 감사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데, 신앙이 성숙할수록 많이 감사하게 되면, 많이 감사할수록 그 신앙 또한 더 깊이 성숙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향성도가 반년동안도 우리 앞에 있는 상황이 좋지 못해도 감사의 고백으로 하반기를 힘 있게 살아갈 때 우리의 입술로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5절......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