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경 : 요삼 1:2-4절
제 목 :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복
일 시 : 2022. 11. 9.
요한삼서 1:2-4/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3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4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요삼1:1절을 보시면 장로인 나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고 했습니다. 요삼서는 요한의 세 번째 편지인데 매우 개인적인 것으로 수신자 가이오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이 글 전반에서 발견됩니다. 이 편지는 사도 바울이 빌레몬에게 보냈던 것과 성격상 유사합니다. 요한은 본절에서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장로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장로는 사제나 감독처럼, 일정지역에서 영향력을 끼쳤던 직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편지의 수신자인 가이오는 당시에 흔한 이름이었으며 그 뜻은 기쁨, 환희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가이오 라는 이름은 세 사람에게서 발견됩니다. 1) 바울이 세례를 주고, 후에 데살로니가의 첫 감독이 되었다고 전해지는 고린도의 가이오(롬16:23; 고전1:14)이고, 2) 바울의 동역자로 데살로니가와 아리스다고 그리고 에베소에서 고난을 같이 한 마게도냐의 가이오(행19:29)이고, 3) 바울의 마지막 선교여행에서 그리스로부터 마게도냐를 지나 드로아까지 동행한 더베의 가이오(행20:4) 이렇게 세 사람이 나오는데 아마도 4세기경의 사도적 전승에 의하면 이 세 번째 가이오가 나중에 요한 사도에 의해서 버가모의 첫 감독으로 임명되어진 것으로 보아 이 가이오가 본서의 수신자인 것 같습니다.
곧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라고 했습니다. 나의 에고라고 하는데 1인칭 대명사로 흔히 생략되기 쉬우나 본절에서는 강조되어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는 가이오에 대한 요한의 개인적인 사랑이 돈독함을 시사합니다. 그리고 참으로란 엔 알레데이아 라고 하는데 문자적으로 진리 안에서라는 의미로 가이오에 대한 요한의 사랑이 진리 안에서 혹은 진리(진실)로 행하는 사랑임을 의미합니다. 이제 본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
1. 사랑하는 자여...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요한이 그 당시에 편지를 기록하는 관습에 따라 기원하는 양식을 통해서 다시 한번 가이오를 향한 그의 개인적이고도 따뜻한 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1) 잘 되고란 유오두스다이라고 하는데 유(잘)와 호도스(길)이라는 두 단어가 합성된 유오도오(여행을 잘하게 하다, 번영하다)에서 유래된 것으로, 문자적으로는 좋은 길로 인도됨, 좋은 여행을 함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은유적으로는 번영하다, 성공하다 라는 뜻을 가집니다. 따라서 사도 요한은 편지를 받는 가이오의 모든 일들이 번영하기를 간절히 기원하고 있습니다.
2) 한편 강건하기를이란 휘기아이네인이라고 하는데 누가복음을 기록한 누가는 이 단어를 튼튼하고 정상적인 사람을 묘사할 때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눅5:31/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라고 했으며, 눅7:10/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종이 이미 나아있었더라/고 했으며, 눅15:27/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 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누가는 강건하기를 라는 단어를 건강한 사람, 병이 나은 사람, 건강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경우에는 이 단어를 건전한 가르침에 사용했습니다. 딤전1:10-11/음행하는 자와 남색하는 자와 인신 매매를 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와 거짓 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자를 위함이니 11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 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름이니라/고 했으며, 딤전6:3/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강건하기를 이라는 단어를 바른 교훈과 가르침이라는 뜻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누가와 사도 바울과 요한 세 사람이 사용한 단어를 종합해 보면 강건하다는 단어는 바른 교훈과 가르침을 받고 육체적으로도 질병이 없는 건강한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3)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라고 했는데 영혼으로 번역된 헬라어 헤 프쉬케 는 그리스도 안에서 얻게 된 영적인 생명을 가리킵니다. 요10:10/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으며, 요3: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영혼이란 예수님을 믿음으로 거듭난 영혼 즉 영원한 생명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요한이 가이오의 영적인 상태와 육신적인 상태를 비교하여 육신의 형통함과 강건함을 기원하는 것으로 보아 가이오의 영적상태는 염려할 상태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즉 가이오의 영혼의 상태가 양호한 것처럼 그의 범사도 형통하고 육체도 강건하게 되기를 기원한다는 뜻입니다. 이로 보건데 성도들의 영적인 상태와 육신의 형통함이나 강건함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균형을 이루어야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초대교회들 사이에는 2세기까지 교회와 교회간의 친교와 교제가 활발하였고 그리스도인들의 왕래가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회환경의 변화나 여러 모양의 압력과 핍박으로 인한 불가피한 왕래 뿐만 아니라 서로의 격려를 통해 신앙을 굳게 세우게 하기 위해서 멀리 떨어진 교회와 성도들끼리 서로 왕래하며 안부를 묻고 또 서로 도왔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도 의성군 안에 있는 여러 개의 면이 있었는데 서로 다른 면에 있는 교회에서 부흥회가 있으면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 교회까지 짐을 싸 들고 가서 그 교회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함께 은혜를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도 초대교회도 그러했던 것 같습니다.
1) 형제들이란 아델폰이라고 하는데 그리스도인 목회자를 지칭하기도 하지마 초대교회 성도들을 가리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본절의 아델폰은 선교사역을 위해 여행하면서 교회에 문제가 있을 경우 특별히 방문하기도 하던 사역자(목회자)인 것 같습니다.
2)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라고 했습니다.
형제들이란 선교사역을 위해서 순회하는 목회자를 의미하며 그런 순회사역을 하는 목회자가 요한에게 가이오에 대하여 전하여 준 것은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을 요한이 크게 기뻐한 것은 당시 가이오가 진정한 복음인 진리를 반대하는 거짓 교사들의 온갖 위협에도 불구하고 의연하게 복음을 잘 지킬 뿐만 아니라 복음 안에서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3) 행한다란 페리파테이스라고 하는데 현재시상으로, 가이오가 항상 진리 안에서, 진리와 더불어 사랑을 표현하면서 살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3. 그리고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라고 했습니다.
1) 여기서 자녀들이란 요한이 목회의 대상으로 느끼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가리키지는 않고 오히려 요한이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관심과 사랑으로 영육간에 돌보아 왔던 영적인 자녀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와 디도를 내 아들이라고 표현했듯이 사도 요한도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듯이 그렇게 사랑하는 영적인 자녀들을 두고 한 표현입디다.
2) 한편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표현은 요한 이,삼서 외에는 신약성경에서 크게 강조되지 않았습니다. 요한 이서와 삼서에서 특별히 진리가 강조되는 것은 요한의 공동체가 당면한 위기, 즉 진리인 복음을 곡해하고 거짓된 교리를 전파하던 거짓 교사들의 횡포에 대항하기 위함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진리를 강조하면서 이 진리를 행함과 철저히 연관시키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진리의 특징은 진리를 알뿐 아니라 그 진리대로 행해야 함을 시사하기 때문입니다.
3) 더 기쁜 일이 없도다 라고 했습니다. 개역성경에는 본문이 본절의 마지막 부분에 기록되어 있지만 헬라어 원문에는 맨 앞에 기록 되어 있어서 가이오에 대한 소식을 들은 것이 요한에게 가장 큰 기쁨이었음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더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이조테란은 이중 비교급으로 요한이 가이오의 소식 즉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소식을 다른 어떤 소식보다 훨씬 더 기뻐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말씀을 요약합니다. 본문은 성도의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게 되는 비결입니다. 어떻게 하면 영혼이 잘 되는 것처럼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게 됩니까? 그것은 가이오라는 성도가 보여준 것처럼 바른 교훈으로 가르침을 받고 자신이 배운 바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혼이 잘 되는 비결이고 그 결과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목회자와 우리 주님께서 보실 때 가장 큰 기쁨이 됩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이 이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을 축복합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