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존의 명성 확인이냐…새로운 황제 등극이냐 '별들의 잔치'가 벌어진다. 27일 개막하는 대구세계육상선수권은 초일류 선수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우사인 볼트는 과연 100미터와 200미터에서 '지존'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까? 2년 전 세계대회에서 금메달을 빼앗긴 여자장대높이뛰기의 옐레나 이신바예바는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을까? 이 밖에 새로 탄생할 황제들은 누가 있을까? 달구벌 명승부를 주도할 세계적인 선수들을 살펴본다.
남자 100미터 우사인 볼트(자메이카)와 남자 창던지기 안드레아스 토르킬드센(노르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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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개' 우사인 볼트(25·자메이카) |
남자 100미터 결승 8.28 오후 8:45 '번개' 우사인 볼트(25·자메이카)는 왕별로 꼽힌다. 그는 2008베이징올림픽에서 3관왕(100미터·200미터·400미터계주)에 오르며 세계 육상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볼트는 2009베를린세계선수권에서도 세계기록 행진을 벌이며 금 3개를 따냈다. 특히 100미터 결선에서 9초58로 골인, 2008베이징올림픽 때 본인이 세웠던 종전 세계기록(9초69)을 0.11초 앞당겼다.
볼트의 운동능력은 괴물급이다. 그가 달리면서 스텝을 한 번 밟을 때의 최대 압력은 1천 파운드(약 4백53킬로그램) 정도다. 이 힘을 손실 없이 추진력으로 바꾸려면 발가락 부분을 중심으로 트랙에 터치다운(touch down)하고 나서 빠르게 다리를 끌어올려 다음 터치다운으로 치고 나가야 한다.
일반적으로 스프린터가 볼트(1미터96)처럼 키가 크면 보폭이 넓어 다리를 번갈아 옮기는 데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이 걸린다. 하지만 볼트는 단거리에 적합하게 발달시킨 특유의 근육 덕분에 터치다운이 강한 데다 발과 지면이 접촉하는 시간도 줄여 효율적인 레이스를 할 수 있다. 볼트의 한계가 인간 한계일지도 모른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을 정도다.
그는 실력 못지않게 스타성도 갖추고 있다. 모두가 숨을 죽인 출발선에서 중계 카메라에 대고 장난을 치는 엉뚱함과 우승을 한 뒤 한바탕 춤판을 벌이는 유쾌함이 그의 인기비결이다. 지난해 역대 육상선수 최고액인 약 3천억원에 스포츠용품업체 푸마와 3년 재계약을 맺는 등 주가를 드높이고 있다.
볼트의 팀 동료 아사파 파월(29)은 호시탐탐 볼트의 자리를 넘본다. 파월은 '서브텐(100미터를 10초 미만에 뛰는 것)'을 역대 최다인 71회 기록한 또 하나의 전설이다. 하지만 그는 세계적 명성에 걸맞지 않게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 등 메이저 무대에서는 100미터 금메달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남자 창던지기 결승 9.3 오후 7:10 안드레아스 토르킬드센(29)은 '노르웨이의 데이비드 베컴'이다. 자국에선 잉글랜드 출신의 축구영웅 베컴(LA 갤럭시) 부럽지 않은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토르킬드센은 남자 창던지기 선수로는 처음이자 유일하게 올림픽·세계선수권·유럽선수권 타이틀을 모두 가지고 있다.
남자 창던지기 선수라면 으레 우락부락한 체격에 무서운 표정을 떠올린다. 하지만 토르킬드센은 한때 모델을 했을 정도로 외모가 수려해 파파라치들의 표적이 된다.
토르킬드센은 11세 때 창던지기에 입문했다. 아버지 역시 창던지기 선수 출신이고, 어머니는 1970년대 여자 100미터 허들 노르웨이 챔피언이었다. 토르킬드센은 도움닫기에 필요한 스피드, 순발력과 상체 근력 모두 부모의 피를 이어받았다. 1993년부터 1999년까지는 아버지 톰에게 창던지기를 배웠고, 이후 지금까지 아스문드 마르틴센 코치의 지도를 받고 있다.
2011 시즌 세계랭킹 1, 2, 4위 기록을 모두 그가 가지고 있다. 개인 최고기록은 91미터59. 토르킬드센의 목표는 두 가지이다. 대구육상세계선수권에서 금메달을 따 지난달 발생한 '노르웨이 테러'로 충격에 빠진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한다. 체코의 얀 젤레즈니가 1996년 세운 이후 꿈쩍 않는 세계기록(98미터48)에도 도전한다.
여자 높이뛰기 블랑카 블라시치(크로아티아)와 남자 110미터허들 데이비드 올리버(미국).
여자 높이뛰기 결승 9.3 오후 7:00 블랑카 블라시치(28·크로아티아)는 '필드의 쇼걸(showgirl)'이다. 마음에 드는 높이뛰기를 하고 나면 매트에 서서 골을 넣은 축구선수처럼 환호하고, 필드로 내려와 몸을 흔든다. 키가 1미터93인 블라시치는 지난해부터 굽 높이 10센티미터짜리 하이힐을 즐겨 신기 시작했다.
블라시치의 이름 블랑카는 모로코의 '카사블랑카'에서 따왔다. 10종 경기 선수였던 아버지 조스코가 1983년 모로코 지중해 대회(지중해 인근 국가들의 스포츠 대회) 우승을 기념하려고 곧 태어날 딸을 위해 이런 이름을 지었다.
블라시치는 이번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여자 높이뛰기 3연속 우승을 노린다.
개인 최고기록이 2미터08이라 2센티미터만 더 뛰면 1987년 불가리아의 스테프카 코스타디노바가 세운 이후 24년간 요지부동인 세계기록(2미터09)을 경신한다. 블라시치는 작년 20개 대회에서 18회 정상에 오르며 세계체육기자연맹의 '올해의 여자선수'로도 뽑혔다.
블라시치의 아성에 도전하는 스베틀라나 스콜리나(25·러시아)는 모델 같은 패션 감각을 선보이는 선수다. 경기에 나설 때도 반지 여러 개를 끼고, 목걸이, 팔찌까지 하고 나온다. 손톱엔 하늘색 매니큐어를 즐겨 바른다. 2010세계실내선수권, 2010유럽선수권, 2011유럽실내선수권에서 연속 4위를 하며 시상대에 서지 못하는 불운을 맛봤으나 이번 시즌 들어선 세계랭킹 3위에 올라 기대를 모은다.
남자 110미터 허들 결승 8.29 오후 9:25 남자 110미터허들에선 '지상 최대의 삼파전'이 펼쳐진다. 다이론 로블레스(25·쿠바), 데이비드 올리버(29·미국), 류샹(28·중국)이 숨막히는 레이스를 예고하고 있다. 로블레스는 현 세계기록(12초87·2008년 작성) 보유자. 올리버가 작년에 세운 개인 최고기록(12초89)은 역대 3위에 해당한다.
두 선수는 2008베이징올림픽 때도 격돌했다. 당시 절정의 기량을 뽐내던 로블레스가 12초93으로 금메달을 땄고, 새롭게 떠오르던 올리버는 13초18로 3위를 했다.
류샹은 자존심 회복에 나선다. 그는 2004아테네올림픽에서 우승하면서 아시아 선수로는 사상 처음 단거리 종목 챔피언에 올랐다. 2006년엔 12초88이라는 당시 세계신기록을 수립했고, 2007오사카세계선수권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허들에서 올림픽, 세계선수권 우승과 세계기록을 모두 달성한 역대 유일의 선수다.
류샹은 농구 스타 야오밍과 함께 중국 스포츠의 영웅이었다. 연간 1백억원 이상의 소득을 올리며 유명세를 누렸다. 하지만 2008베이징올림픽 때 오른쪽 아킬레스건이 아파 기권하면서 중국을 충격에 빠뜨렸다. 미국에서 발목 수술을 받은 이후에도 한동안 침체기가 이어졌다. '전성기가 끝났다'는 소리까지 들었던 그는 작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13초09로 우승하면서 재기에 성공했다.
여자 해머던지기 베티 하이들러(독일)와 여자 장대높이뛰기 옐레나 이신바예바(러시아).
여자 해머던지기 결승 9.4 오후 6:15 여자 해머던지기의 베티 하이들러(28·독일)는 대구에서 세계기록을 바꿀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2007세계선수권 1위, 2009세계선수권 2위였던 하이들러는 5월 독일 할레 대회에서 여자선수로는 처음으로 79미터를 돌파하며 세계기록(79미터42)을 세웠다. 하이들러는 화보 촬영을 종종 할 만큼 곱상한 얼굴을 지녀 인기가 높다.
서구 선수로는 평범한 체격(키 1미터75, 몸무게 81킬로그램)이지만 빠른 회전 속도와 부드러운 무게중심 이동으로 최고 수준의 기량을 쌓았다. 대구에선 하이들러가 마(魔)의 80미터를 넘기느냐에 관심이 쏠린다. 2년 전 베를린대회에서 하이들러를 제치고 금메달을 따냈던 브워다르칙과의 경쟁도 볼거리다.
여자 장대높이뛰기 결승 8.30 오후 7:05 실력과 미모를 겸비한 미녀 스타들도 팬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미녀새' 옐레나 이신바예바(29·러시아)가 돋보인다. 2004·2008 올림픽과 2005·2007 세계선수권을 석권한 이신바예바는 세계기록만 27번 세운 여자 장대높이뛰기의 지존이다. 현 세계기록(5미터06)도 가지고 있다. 2009베를린세계선수권 땐 세 차례 모두 바를 넘는 데 실패하며 아무 기록 없이 대회를 끝냈다. 작년 도하세계실내육상선수권에서는 4위에 그치자 "너무 지쳤다"며 휴식을 선언하기도 했다.
다시 폴을 잡은 이신바예바는 올해 2월 우크라이나 도네츠크 대회에서 올해 세계랭킹 2위에 해당하는 4미터85(실내 기준)를 넘었다. 3월엔 옛 스승 예브게니 트로피모프 코치와 5년 만에 힘을 합쳤다. 올해 실외 대회 개인 최고기록은 4미터76. 미국의 제니퍼 슈어(4미터91)엔 15센티미터가 뒤진다.
남자 5천·1만미터 케네니사 베켈레(에티오피아)와 남자 400미터 오스카 피스토리우스(남아프리카공화국).
남자 1만미터 결승 8.28 오후 7:30 케네니사 베켈레(29)와 티루네시 디바바(26)는 '장거리 왕국' 에티오피아의 자존심이다. 5천미터와 1만미터를 주종목으로 하는 베켈레는 2003년부터 네 번의 세계선수권에서 금메달 5개를 목에 걸었다. 디바바는 세계선수권 여자 5천미터와 1만미터에서 통산 금메달 4개를 따냈다.
사상 첫 남자 장애인 선수 출전 대구세계선수권엔 사상 처음으로 남자 장애인 선수 두 명이 출전한다.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로 불리는 남아공의 오스카 피스토리우스(25)와 '블라인드 러너(Blind Runner)'인 아일랜드의 제이슨 스미스(24)가 그 주인공이다.
두 다리에 J자 모양의 얇은 탄소섬유 의족을 착용하고 달리는 피스토리우스는 지난달 세계선수권 400미터 출전 자격을 따냈다. 시각장애인 스프린터 제이슨 스미스(24)의 100미터 개인 최고기록인 10초22는 현 한국기록(10초23·김국영)보다도 빠른 기록이다.
그는 8세 때 망막 신경 이상으로 시력이 손상되는 유전성 '스타가르트(Stargardt) 병' 때문에 장애를 안았다. 시력은 보통사람의 10퍼센트 미만이다. 어려서부터 육상에 자질을 보여 입문 4년 만인 2008년 베이징 장애인올림픽 100미터·200미터에서 IPC(국제장애인올림픽위원회)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했다. [온바오 한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