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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譬喩를 十七種門으로 合明함
佛子야 如無熱大池가 於四口中에 流出四河하야 入於大海인달하야 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從四辯才로 流出諸行하야 究竟入於一切智海니라 如恒伽大河가 從銀色象口로 流出銀沙인달하야 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以義辯才로 說一切如來所說一切義門하야 出生一切淸淨白法하야 究竟入於無礙智海니라 如私陀大河가 從金剛色獅子口로 流出金剛沙인달하야 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以法辯才로 爲一切衆生하야 說佛金剛句하고 引出金剛智하야 究竟入於無礙智海니라 如信度大河가 從金色牛口로 流出金沙인달하야 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以訓詞辯說로 隨順世間緣起方便하야 開悟衆生하야 令皆歡喜調伏成熟하야 究竟入於緣起方便海라 如縛芻大河가 於瑠璃色馬口에 流出瑠璃沙인달하야 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以無盡辯으로 雨百千億那由他不可說法하야 令其聞者로 皆得潤洽하야 究竟入於諸佛法海니라 如四大河가 隨順圍遶無熱池已에 四方入海인달하야 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成就隨順身業과 隨順語業과 隨順意業하며 成就智爲前導身業과 智爲前導語業과 智爲前導意業하야 四方流注하야 究竟入於一切智海니라 佛子야 何者가 名爲菩薩四方고 佛子야 所謂見一切佛하고 而得開悟하며 聞一切法하고 受持不忘하며 圓滿一切波羅蜜行하며 大悲說法하야 滿足衆生이니라 如四大河가 圍遶大池어든 於其中間에 優鉢羅華와 波頭摩華와 拘物頭華와 芬陀利華가 皆悉徧滿인달하야 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於菩提心中間에 不捨衆生하고 說法調伏하야 悉令圓滿無量三昧하야 見佛國土莊嚴淸淨이니라 如無熱大池에 寶樹圍遶인달하야 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現佛國土莊嚴圍遶하야 令諸衆生으로 趣向菩提니라 如無熱大池가 其中縱廣이 五十由旬이요 淸淨無濁인달하야 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菩提之心이 其量無邊하야 善根充滿하야 淸淨無濁이니라 如無熱大池가 以無量寶로 莊嚴其岸하고 散栴檀香하야 徧滿其中인달하야 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以百千億十種智寶로 莊嚴菩提心大願之岸하야 普散一切衆善妙香이니라 如無熱大池가 底布金沙하고 種種摩尼로 間錯莊嚴인달하야 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微妙智慧로 周徧觀察하며 不可思議菩薩解脫種種法寶로 間錯莊嚴하며 得一切法無礙光明하며 住於一切諸佛所住하며 入於一切甚深方便이니라 如阿那婆達多龍王이 永離龍中의 所有熱惱인달하야 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永離一切世間憂惱하야 雖現受生이나 而無染着이니라 如四大河가 潤澤一切閻浮提地하고 旣潤澤已에 入於大海인달하야 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以四智河로 潤澤天人沙門婆羅門하야 令其普入阿耨多羅三藐三菩提智慧大海하야 以四種力으로 而爲莊嚴하나니 何者가 爲四오 一者는 願智河니 救護調伏一切衆生하야 常不休息이요 二者는 波羅密智河니 修菩提行하야 饒益衆生하야 去來今世에 相續無盡하야 究竟入於諸佛智海요 三者는 菩薩三昧智河니 無數三昧로 以爲莊嚴하야 見一切佛하고 入諸佛海요 四者는 大悲智河니 大慈自在하야 普救衆生호대 方便攝取하야 無有休息하며 修行秘密功德之門하야 究竟入於十力大海니라 如四大河가 從無熱池로 旣流出已에 究竟無盡하야 入於大海인달하야 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以大願力으로 修菩薩行하야 自在知見이 無有窮盡하야 究竟入於一切智海니라 如四大河가 入於大海에 無能爲礙하야 令不入者인달하야 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常勤修習普賢行願하야 成就一切智慧光明하며 住於一切佛菩提法하야 入如來智호대 無有障礙니라 如四大河가 奔流入海에 經於累劫호대 亦無疲厭인달하야 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以普賢行願으로 盡未來劫토록 修菩薩行하야 入如來海호대 不生疲厭이니라 佛子야 如日光出時에 無熱池中金沙銀沙金剛沙瑠璃沙와 及餘一切種種寶物에 皆有日影이 於中顯現하며 其金沙等一切寶物도 亦各展轉而現其影하야 互相鑒徹하야 無所妨礙인달하야 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住此三昧에 於自身一一毛孔中에 悉見不可說不可說佛刹微塵數諸佛如來하며 亦見彼佛所有國土道場衆會하야 一一佛所에 聽法受持하고 信解供養하야 各經不可說不可說億那由他劫호대 而不想念時節長短하며 其諸衆會도 亦無迫隘하나니 何以故오 以微妙心으로 入無邊法界故며 入無等差別業果故며 入不可思議三昧境界故며 入不思議思惟境界故며 入一切佛自在境界故며 得一切佛所護念故며 得一切佛大神變故며 得諸如來難得難知十種力故며 入普賢菩薩行圓滿境界故며 得一切佛無勞倦神通力故니라
“불자여, 무열 큰 연못에서 네 어귀로부터 네 강이 흘러서 큰 바다에 들어가듯이 보살마하살도 또한 그와 같아서 네 가지 변재로부터 모든 행을 흘려 내어 구경에는 일체 지혜의 바다에 들어가느니라.
마치 항하 큰 강이 은빛인 코끼리 어귀에서 은모래가 흘러내리듯이, 보살마하살도 또한 그와 같아서 뜻을 잘 아는 변재[義辯才]로 일체 여래가 말씀하신 온갖 뜻을 설하여 일체 청정한 흰 법을 내어서 구경에는 걸림이 없는 지혜 바다에 들어가느니라.
마치 사타 큰 강이 금강빛인 사자 어귀에서 금강모래가 흘러내리듯이, 보살마하살도 또한 그와 같아서 법을 잘 아는 변재[法辯才]로 일체 중생을 위하여 부처님의 금강 같은 글귀를 말하여 금강 같은 지혜를 끌어내고 구경에는 걸림이 없는 지혜 바다에 들어가느니라.
마치 신도 큰 강이 황금빛인 소 어귀에서 금모래가 흘러내리듯이, 보살마하살도 또한 그와 같아서 훈고(訓誥)에 능한 변재로 세간의 인연으로 일어나는 방편을 따라 중생을 깨닫게 하고 환희케 하며, 조복시키고 성숙케하여 구경에는 인연으로 일어나는 방편 바다에 들어가게 하느니라.
마치 박추 큰 강이 유리빛인 말 어귀에서 유리모래가 흘러내리듯이, 보살마하살도 또한 그와 같아서 다함이 없는 변재로 백천억 나유타 말할 수 없는 법을 비 내려 듣는 이로 하여금 윤택하게 하며, 구경에는 모든 부처님 법의 바다에 들어가게 하느니라.
마치 네 개의 큰 강이 무열연못을 따라 둘러 흐르고는 사방으로 바다에 들어가듯이, 보살마하살도 또한 그와 같아서 남을 따라 주는 몸의 업[隨順身業]과 남을 따라 주는 말의 업(業)과 남을 따라 주는 뜻의 업을 성취하고, 지혜가 앞에서 인도하는 몸의 업과 지혜가 앞에서 인도하는 말의 업과 지혜가 앞에서 인도하는 뜻의 업을 성취하여 사방으로 흐르다가 구경에는 일체 지혜 바다에 들어가느니라.
불자여, 무엇을 보살의 사방이라 하는가. 불자여, 이른바 일체 부처님을 보고 깨침을 얻으며, 일체 법을 듣고 받아 지니어 잊지 아니하며, 모든 바라밀다행을 원만히 하며,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법을 설하여 중생을 만족케 함이니라.
마치 네 개의 큰 강이 큰 못을 둘러 흐르는데, 그 중간에 청련화와 홍련화와 황련화와 백련화가 두루 가득히 차 있듯이, 보살마하살도 또한 그와 같아서 보리심의 중간에서 중생을 버리지 않고 법을 설하여 조복시켜 한량없는 삼매를 모두 원만케 하여 부처님 국토의 장엄이 청정함을 보게 하느니라.
마치 무열 큰 연못에 보배나무가 둘러섰듯이,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부처님 국토에 장엄이 둘러 있는 것을 나타내어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보리(菩提)에 나아가게 하느니라.
마치 무열 큰 연못이 길이와 너비가 오십 유순이요, 청정하여 혼탁함이 없듯이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보리심의 크기가 끝이 없으며 착한 뿌리가 가득하여 청정하고 흐리지 않으니라.
마치 무열 큰 연못이 한량없는 보배로 그 언덕을 장엄하고 전단향을 흩어 그 가운데에 가득하듯이,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백천억이 되는 열 가지 지혜 보배로 보리심의 큰 서원의 언덕을 장엄하고, 온갖 여러 가지 선량하고 아름다운 향(香)을 널리 흩날리느니라.
마치 무열 큰 연못이 바닥에는 금모래가 깔렸고 가지가지 마니로 사이사이를 장엄하였듯이,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미묘한 지혜로 두루 관찰하여, 헤아릴 수 없는 보살의 해탈인 가지가지 법의 보석으로 사이사이를 장엄하고, 온갖 법에 걸림 없는 광명을 얻으며, 일체 모든 부처님의 머무시는 데 머무르고, 일체 깊고 깊은 방편에 들어가느니라.
마치 무열 큰 연못의 아나바달다용왕은 다른 용에게 있는 뜨거운 번뇌를 아주 여의었듯이,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모든 세간의 번뇌와 근심을 여의었으므로 비록 태어남을 나타내지만 물들고 집착하지 않느니라.
마치 네 개의 큰 강물이 일체 염부제의 땅을 적시고는 큰 바다에 들어가듯이,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네 가지 지혜의 강물로 천신과 사람과 사문과 바라문을 적시고는 그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지혜의 큰 바다에 두루 들게 하며, 네 가지 힘으로 장엄하느니라.
무엇이 넷인가. 하나는 서원 지혜 강이니 일체 중생을 구호하고 조복하여 항상 쉬지 아니함이요, 둘은 바라밀다 지혜 강이니 보리의 행을 닦으며 중생을 이익되게 하여 지난 세상과 오는 세상과 지금 세상에 계속하여 다하지 않다가 구경에는 모든 부처님 지혜의 바다에 들어감이요, 셋은 보살 삼매의 지혜 강이니 무수한 삼매로 장엄하여 일체 부처님을 친견하고 모든 부처님 바다에 들어감이요, 넷은 큰 자비의 지혜 강이니 큰 자비로 자유자재하게 중생을 널리 구원하여 방편으로 거두어서 쉬지 아니하며, 비밀한 공덕의 문을 수행하다가 구경에는 열 가지 힘인 큰 바다로 들어감이니라.
마치 네 개의 큰 강이 무열연못으로부터 흘러나와서 구경에는 다함이 없이 큰 바다에 들어가듯이,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큰 서원의 힘으로 보살행을 닦으며, 자재하게 알고 보는 것이 다함이 없어 구경에는 일체 지혜의 바다에 들어가느니라.
마치 네 개의 큰 강이 큰 바다에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여 들어가지 못하게 할 이가 없듯이,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보현의 행과 원을 항상 부지런히 닦아서 일체 지혜의 광명을 이루고 모든 부처님의 보리법에 머물러서 여래의 지혜에 들어가는 것을 장애할 이가 없느니라.
마치 네 개의 큰 강이 흘러서 바다에 들어가는데 여러 겁을 지나도 고달픔을 모르듯이,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보현의 행과 원으로 오는 세월이 끝나도록 보살의 행을 닦아서 여래의 바다에 들어가되 고달픈 생각을 내지 않느니라.
불자여, 마치 해가 뜰 때에 무열연못에 있는 금모래와 은모래와 금강모래와 유리모래와 그리고 다른 여러 가지 보물들마다 다 해의 영상이 나타나고, 금모래 등의 모든 보물들도 제각기 차츰차츰 영상이 나타나서 서로서로 사무쳐 비치어도 방해가 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이 삼매에 머무르면 제몸의 낱낱 모공마다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세계의 작은 먼지 수와 같이 많은 부처님을 보게 되느니라.
또한 그 부처님의 국토와 도량에 모인 대중들을 보며, 낱낱 부처님 계신 데서 법을 듣고, 받아 지니고, 믿고 이해하고 공양하기를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억나유타 겁을 지내더라도 시간이 길고 짧은 것을 생각하지 않고 모인 대중들도 또한 비좁지 아니하니라.
무슨 까닭인가. 미묘한 마음으로 그지없는 법계에 들어가는 연고며, 같을 이 없는 차별한 업과 과보에 들어가는 연고며, 불가사의한 삼매 경계에 들어가는 연고며, 불가사의한 생각하는 경계에 들어가는 연고며, 모든 부처님의 자유자재한 경계에 들어가는 연고이니라.
모든 부처님의 호념하심을 얻는 연고며, 모든 부처님의 큰 신통변화를 얻는 연고며, 모든 여래의 얻기 어렵고 알기 어려운 열 가지 힘을 얻는 연고며, 보현보살의 행이 원만한 경계에 들어가는 연고며, 모든 부처님의 피곤함이 없는 신통의 힘을 얻는 연고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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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譬喩)를 십칠종문(十七種門)으로 합명(合明)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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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와 법을 합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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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여무열대지(如無熱大池)가 : 무열대지가, 아뇩달지와 무열대지가 같은 뜻이다.
어사구중(於四口中)에 : 네 어귀 가운데서
유출사하(流出四河)하야 : 사하가 유출해서
입어대해(入於大海)인달하야 :대해에 들어가듯이, 상상이 될 것이다. 전부 대해로, 바다로 들어간다.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도 : 보살마하살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 역부여시하야
종사변재(從四辯才)로 : 네 가지 변재로써
유출제행(流出諸行)하야 : 모든 행을 유출해서
구경입어일체지해(究竟入於一切智海)니라 : 구경에는 일체지의 바다에 들어간다. 결국 종착지는 일체지다. 일체지 또는 일체지지는 화엄경에 여러 수 백 번 나온 낱말이다. 결국은 일체지혜의 바다에 들어간다. 그것이 하나고, 두번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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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항가대하(如恒伽大河)가 : 항가 대하가
종은색상구(從銀色象口)로 : 은색으로 된 코끼리 어귀로부터
유출은사(流出銀沙)인달하야 : 은모래를 유출하듯이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도 : 보살마하살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 역부여시하야
이의변재(以義辯才)로 : 이의 변재로 사변재가 있다. 의(義)의 변재로써
설일체여래소설일체의문(說一切如來所說一切義門)하야 : 일체여래 소설 일체의문을 설해서 여래가 설한 바 일체 진리의 문, 일체 이치의 문을 설해서
출생일체청정백법(出生一切淸淨白法)하야 : 일체청정백법을 출생해서
구경입어무의지해(究竟入於無礙智海)니라 : 걸림이 없는 지혜의 바다에 구경에는 들어간다. 그렇게 비유와 법을 합했다. 그다음 세번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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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사타대하(如私陀大河)가 : 사타대하가, 사타라고 하는 강이 있었다. 그것은
종금강색사자구(從金剛色獅子口)로 : 금강색 사자구로써
유출금강사(流出金剛沙)인달하야 : 금강 모래를 유출하듯이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도 : 보살마하살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 역부여시하야
이법변재(以法辯才)로: 법의 변재로써, 앞에서는 의변재 여기는 법(法)변재 그랬다. 법의 변재로써
위일체중생(爲一切衆生)하야 : 일체 중생을 위해서
설불금강구(說佛金剛句)하고 : 부처님의 금강구, 금강과 같은 법구를 설하고
인출금강지(引出金剛智)하야 : 금강지혜를 인출한다. 돈만 인출하는 것이 아니라 금강 지혜를 인출해서
구경입어무애지해(究竟入於無礙智海)니라 : 구경에는 걸림없는 지혜의 바다에 들어가느니라. 그다음 네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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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도대하(如信度大河)가 : 신도대하, 이것은 인더스 강이다. 신도대하가
종금색우구(從金色牛口)로 : 금색 우구로 쫓아
유출금사(流出金沙)인달하야 : 금모래를 유출하듯이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도 : 보살마하살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 역부여시하야
이훈사변설(以訓詞辯說)로 : 훈사변설로써, 네 가지 변재 사변재중에 하나다. 훈사변설로써
수순세간연기방편(隨順世間緣起方便)하야 : 연기 방편을 수순해서
개오중생(開悟衆生)하야 : 중생을 개오한다.
이것은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한다. 화엄경에 별별 고준한 이치가 많지만 현상을 우리가 이해하고 해석하고, 그것을 우리가 따르고, 그래서 인생사 세상사를 모두 그것으로써 푸는 열쇠가 있다. 무엇인가? 연기방편이다, 연기의 이치다 하는 사실이다. 여기 뭐라고 했는가? ‘세간연기방편을 수순해서’라고 하였다. 이런 낱말속에 긴 설명은 없다. 긴 설명은 없지만 우리가 그것을 읽어야 한다. 행간에 그것이 감춰져 있는 것을 읽어야 한다.
세상을 해석하는 데는 연기밖에 없다. 연기(緣起) 인과(因果) 그것이다. 그런 내용이 여기도 암암리에 많이 담겨 있지 않는가. 그래서 중생을 개오해서
영개환희조복성숙(令皆歡喜調伏成熟)하야 : 다 하여금 환희조복하고 성숙케 한다.
‘아 그렇구나 연기구나, 인연이구나 인과구나’ ‘내 팔자야, 누구팔자야, 세상 팔자 대통령 잘못 국가행정 잘못’ 그럴 것이 아니라 연기의 이치를 우리가 깨달아서 개오중생하는 것이다. 우리 자신이 깨달아서 거기에서 ‘아 그렇구나’ 하고 기쁨을 느끼고 내 마음을 항복받고 조복받는 것이다. 차츰차츰 내 인격이 성숙해 가는 것이다.
여기 다 나와 있지 않은가. 개령환희조복성숙 그렇게 해서 뭐라고 했는가?
구경입어연기방편해(究竟入於緣起方便海)라 : 구경에는 입어연기방편해라. 연기방편의 바다에 구경에는 들어간다는 말이다. 여기 십정품이 단계로 봐서는 상당히 높은 단계이지만 이렇게 우리가 불교를 가지고 일상생활을 해석하고 우리 인생과 세상사를 다 풀어내는 가르침이 이 속에 다 있다. 이 높은 십정품 안에 다 있다. 이런 데서 우리가 건져내야 되는 것이다. 연기 방편의 바다에 구경에는 들어간다. 다섯 번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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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박추대하(如縛芻大河)가 : 박추대하가
어유리색마구(於瑠璃色馬口)에 : 유리색 마구에서
유출유리사(流出瑠璃沙)인달하야 : 유리의 모래를 유출하듯이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도 : 보살마하살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 역부여시하야
이무진변(以無盡辯)으로 : 다함이 없는 변재로써
우백천억나유타불가설법(雨百千億那由他不可說法)하야 : 백천억 나유타 불가설법을 비내려서, 백천억 나유타 불가설법을 무진변재라. 사람을 감동시킨다. 들어도 들어도 싫증이 안나는 좋은 음성과 이치에 딱딱 맞는 말씀으로써 화엄경을 근거로 해서 온 세상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능력이 좀 있어야 되는데 하는 생각이다. 백천억 나유타 불가설 법을 비내려서
영기문자(令其聞者)로 : 그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개득윤흡(皆得潤洽)하야 : 푹 젖어들게 한다. 몸에 푹 배게 한다. 윤흡, 다 윤흡함을 얻어서
구경입어제불법해(究竟入於諸佛法海)니라 : 모든 부처님 법의 바다에 구경에는 들어가게 하느니라. 또 여섯 번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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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사대하(如四大河)가 : 사대하가
수순위요무열지이(隨順圍遶無熱池已)에 : 무열지 그 근본 못, 큰 못 그것을 수순해서 일곱바퀴를 돈다고 하지 않았는가, 일곱 바퀴를 돌고 남에
사방입해(四方入海)인달하야 : 사방으로 바다에 들어가듯이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도 : 보살마하살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성취수순신업(成就隨順身業)과 : 수순신업과
수순어업(隨順語業)과 : 수순어업과, 어업을 수순하고 신업을 수순하고
수순의업(隨順意業)하며 : 의업을 수순하는 것을 성취하며
성취지위전도신업(成就智爲前導身業)과 : 지위전도하에 지혜가 앞에 이끌어 가는 사람이 되는 신업과
지위전도어업(智爲前導語業)과 : 지혜가 전도되는 어업과
지위전도의업(智爲前導意業)하야 : 지혜가 전도가 되는 의업을 성취한다. 전부 지혜다. 지혜가 앞장서서 나가야지 지혜가 앞장서서 나가지 아니하면 판판이 다른 길로 헤매게 되고, 가다가 자빠지고 엎어지고 부딪치고 상처투성이 인생사가 된다. 전부 그렇다. 인생사 전부 지혜가 앞에서 끌어주지 아니하고 그저 자기 욕심이 앞장서고 자기 의욕이 앞장서 버리고 자기 목표가 앞장서 버리고 자기 한생각 딱 꽂혀 버리면 그것이 앞장서 나가버리니까 될 턱이 있는가. 그저 엎어지고 자빠지고 온갖 인생사라는 것이 평생 실수투성이고 상처투성이로 사는 것이다.
지위전도라는 이 말 한마디만 해도 여러 가지로 풀어서 우리 인생사 세상사를 설명할 수가 있다.
신업과 어업과 의업이 전부 지혜가 전도되어야 한다. 지혜가 앞장서야 된다.
사방유주(四方流注)하야 : 사방에 유주하야
구경입어일체지해(究竟入於一切智海)니라 : 구경에 일체 지혜의 바다에 들어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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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하자(何者)가 : 무엇이
명위보살사방(名爲菩薩四方)고 : 이름이 보살사방인가
불자(佛子)야 : 불자야
소위견일체불(所謂見一切佛)하고 : 소위 일체불을 친견하고
이득개오(而得開悟)하며 : 깨달음을 얻으며
문일체법(聞一切法)하고 : 일체법을 듣고
수지불망(受持不忘)하며 : 수지불망하며 일체법을 듣고 받아가져서 잊어버리지 아니하며
원만일체바라밀행(圓滿一切波羅蜜行)하며 :일체바라밀행을 원만히 하며
대비설법(大悲說法)하야 : 대비로써 설법하야
만족중생(滿足衆生)이니라: 중생을 만족케 하느니라. 일곱 번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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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사대하(如四大河)가 : 사대하가
위요대지(圍遶大池)어든 : 대지를 일곱바퀴 돈다고 하지 않았는가. 큰 못을 에워싸거든
어기중간(於其中間)에 : 그 중간에
우발라화(優鉢羅華)와 : 우발라화와
파두마화(波頭摩華)와 : 파두마화와
구물두화(拘物頭華)와 : 구물두화와
분타리화(芬陀利華)가 : 분타리화가
개실변만(皆悉徧滿)인달하야 : 개실변만하듯이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도 : 보살마하살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 역부여시하야
어보리심중간(於菩提心中間)에 : 보리심 중간에
불사중생(不捨衆生)하고 : 중생을 버리지 않고
설법조복(說法調伏)하야 : 설법하고 조복해서
실령원만무량삼매(悉令圓滿無量三昧)하야 : 다 하여금 무량삼매를 원만하게 해서
견불국토장엄청정(見佛國土莊嚴淸淨)이니라 : 불국토 장엄 청정을 보게 하느니라.
화엄경을 뭐라고 말할 수가 없다. 너무너무 그 표현들이 잘 되었다. 또 여덟 번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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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무열대지(如無熱大池)에 : 무열대지에
보수위요(寶樹圍遶)인달하야 : 보수위요하듯이 보배 나무가 에워싸고 있듯이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도 : 보살마하살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 역부여시하야
현불국토장엄위요(現佛國土莊嚴圍遶)하야 :불국토 장엄이 위요함을 나타내어서
영제중생(令諸衆生)으로 :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취향보리(趣向菩提)니라 : 보리에, 깨달음에 취향하게 하느니라. 아홉 번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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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무열대지(如無熱大池)가 : 무열대지가
기중종광(其中縱廣)이 : 기중종광이
오십유순(五十由旬)이요 : 오십유순이요
청정무탁(淸淨無濁)인달하야 : 청정무탁하듯이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도 : 보살마하살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 역부여시하야
보리지심(菩提之心)이 : 보리의 마음이
기량무변(其量無邊)하야 :그 양이 무변해서
선근충만(善根充滿)하야 : 선근 충만해서
청정무탁(淸淨無濁)이니라 : 청정무탁이니라. 열 번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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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무열대지(如無熱大池)가 : 무열대지가
이무량보(以無量寶)로 : 무량한 보배로써
장엄기안(莊嚴其岸)하고 : 그 언덕을 장엄하고
산전단향(散栴檀香)하야 : 전단향을 뿌리고
변만기중(徧滿其中)인달하야 : 그 가운데 가득히 하듯이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도 : 보살마하살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 역부여시하야
이백천억십종지보(以百千億十種智寶)로 : 백천억 십종 지혜의 보배로써
장엄보리심대원지안(莊嚴菩提心大願之岸)하야 : 보리심 대원의 언덕을 장엄해서
보산일체중선묘향(普散一切衆善妙香)이니라 : 일체중선묘향을 널리 흩느니라. 일체 여러 가지 선묘향을 널리 흩느니라. 열한 번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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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무열대지(如無熱大池)가 : 무열대지가
저포금사(底布金沙)하고 : 바닥에 금모래를 펴고
종종마니(種種摩尼)로 : 가지가지 마니로써
간착장엄(間錯莊嚴)인달하야 : 사이사이에 장엄했듯이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도 : 보살마하살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 역부여시하야
미묘지혜(微妙智慧)로 : 미묘지혜로써
주변관찰(周徧觀察)하며 : 주변관찰하며
불가사의보살해탈종종법보(不可思議菩薩解脫種種法寶)로 : 불가사의 보살 해탈종종 법의 보배로써
간착장엄(間錯莊嚴)하며 : 사이사이 장엄하며
득일체법무애광명(得一切法無礙光明)하며 : 일체법 무애광명을 얻으며
주어일체제불소주(住於一切諸佛所住)하며 : 일체제불 소주에 머물며 부처님이 머무는 바에 머물며
입어일체심심방편(入於一切甚深方便)이니라 : 일체 심심방편에 들어가느니라. 열두 번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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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아나바달다용왕(如阿那婆達多龍王)이 : 아나바달다 용왕이
영리용중(永離龍中)의 : 영원히 용중의
소유열뇌(所有熱惱)인달하야 : 소유열뇌를 떠나듯이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도 : 보살마하살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 또한 다시 그와 같아서
영리일체세간우뇌(永離一切世間憂惱)하야 : 일체 세간 우뇌를 근심 걱정을 영원히 떠나서
수현수생(雖現受生)이나 : 비록 수생을 나타내나 사람으로서 태어나는 모습을 나타내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무염착(而無染着)이니라 : 염착이 없느니라. 윤회를 면한다, 영원히 떠난다, 열반에 들어버린다 이것은 정말 이치에도 안맞고 그럴 수도 없고,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누구든지 간에 다시 와야 되고, 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원력수생을 해야 된다. 원력으로써 다시 태어난다. 이 수생(受生)이라는 말이 자주 나왔고, 내가 아주 힘주어서 이야기 한다.
소승불교와 대승불교의 차이점이 여기 수생이라는 낱말 하나에서 다 드러나 버린다. 소승불교는 오늘 이 시간에도 우리나라에 소승불교를 배워온 사람들이 많아서 줄기차게 열반에 들어서 다시는 생을 받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계속 하고 있다.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다. 그것을 아셔야 한다.
그런 길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렇게 해서는 안되고 다시 와야한다. 다시 수생, 원력 수생을 해야 한다.
원력으로써, 큰 화엄 대사찰 39품 전각을 화엄대사찰을 짓고 싶으면 죽어서 금생에 다 못하면 다음생에라도 얼른 와서 해야한다. 우리는 그럴 수 밖에 없도록 되어 있다. 오도록밖에 되어 있지 않다.
선가에서 그런 이치를 아는 스님들은 도가 높은 스님들에게 속환사바하라고 눈감자 마자 귀에다 대고 축원한다. 빨리 오라고, 열반에 들어 있지 말고 빨리 오라고 한다. 그것이 이치에 맞는 말이다.
비록 수생을 나타내나 그러나 염착하지는 않는다. 물들고 집착하지는 않는다. 또 열 세 번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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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사대하(如四大河)가 : 사대하가
윤택일체염부제지(潤澤一切閻浮提地)하고 : 일체염부제의 땅을 윤택하게 하고
기윤택이(旣潤澤已)에 :이미 윤택하게 하고 나서는
입어대해(入於大海)인달하야 : 큰 바다로 모두 들어가 땅을 다 적신다. 온 지구를 다 적신다. 적시고 나서는 결국은 물은 바다로 들어간다. 어느 물도 바다로 들어가지 않는 물이 없다. 증발을 해서 다시 올라가서 구름이 되어서 비가 내려서 또 바다로 떨어지더라도 결국은 바다로 들어가듯이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도 : 보살마하살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 역부여시하야
이사지하(以四智河)로 : 네 가지 지혜의 강으로
윤택천인사문바라문(潤澤天人沙門婆羅門)하야 :인,천,사문,바라문을 윤택하게 해서
영기보입아뇩다라삼먁삼보리지혜대해(令其普入阿耨多羅三藐三菩提智慧大海)하야 : 그로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지혜의 큰바다에 널리 들어가서
이사종력(以四種力)으로 : 사종력으로써
이위장엄(而爲莊嚴)하나니 : 장엄을 삼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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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자(何者)가 : 하자가
위사(爲四)오 : 위사오. 사지하(四智河)가 나온다.
일자(一者)는 : 일자는
원지하(願智河)니 : 원지하 중요한 말이다. 원지하 원과 지혜의 강
구호조복일체중생(救護調伏一切衆生)하야 : 일체 중생을 구호하고 조복해서
상불휴식(常不休息)이요 : 상불휴식이다. 절대 쉬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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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二者)는 : 두 번째는
바라밀지하(波羅密智河)니 : 바라밀 지혜의 강이니
수보리행(修菩提行)하야 : 보리행을 닦아서
요익중생(饒益衆生)하야 : 중생을 요익케 해서
거래금세(去來今世)에 : 과거 미래 현재세에
상속무진(相續無盡)하야 : 계속해서 다함이 없어서
구경입어제불지해(究竟入於諸佛智海)요 : 구경에 제불 지혜의 바다에 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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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자(三者)는 : 세 번째는
보살삼매지하(菩薩三昧智河)니 : 보살 삼매 지혜의 강이니
무수삼매(無數三昧)로 : 무수삼매로써
이위장엄(以爲莊嚴)하야 : 장엄을 삼아서
견일체불(見一切佛)하고 : 일체 부처님을 친견하고
입제불해(入諸佛海)요 : 모든 부처님 바다에 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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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四者)는 : 네 번째는
대비지하(大悲智河)니 : 대비지하니 대비지 대비 대지의 강이니
대자자재(大慈自在)하야 : 대자가 자재해서
보구중생(普救衆生)호대 : 중생을 보구하되
방편섭취(方便攝取)하야 : 방편으로 섭취해서
무유휴식(無有休息)하며 : 쉬지 아니하며
수행비밀공덕지문(修行秘密功德之門)하야 : 바라밀 공덕문을 수행해서
구경입어십력대해(究竟入於十力大海)니라 : 구경에는 십력대해에 들어가느니라. 십력대해 부처님의 큰 바다에 들어간다. 또 열 네 번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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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사대하(如四大河)가 : 사대하가
종무열지(從無熱池)로: 무열지로부터
기유출이(旣流出已)에 : 기출유이한다. 무열지 그 못에서부터 나와서
구경무진(究竟無盡)하야 : 구경에는 다함이 없어서
입어대해(入於大海)인달하야 : 대해에 들어가듯이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도 : 보살마하살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 또한 그러해서
이대원력(以大願力)으로 : 대원력으로써
수보살행(修菩薩行)하야 : 보살행을 닦아서
자재지견(自在知見)이 : 자재하게 지견하는 것이
무유궁진(無有窮盡)하야 : 다함이 없어서
구경입어일체지해(究竟入於一切智海)니라 : 구경에는 일체 지혜의 바다에 들어가느니라. 열 다섯 번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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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사대하(如四大河)가 : 사대하가
입어대해(入於大海)에 : 대해에 들어감에
무능위애(無能爲礙)하야 : 능히 걸림이 되어서
영불입자(令不入者)인달하야 :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자가 없듯이, 뭔가 걸리는 것이 있어서 바다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자가 없다는 말이다. 결국은 사대하가 다 들어가게 한다. 그렇듯이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도 : 보살마하살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 역부여시하야
상근수습보현행원(常勤修習普賢行願)하야 : 항상 부지런히 보현행원을 수습해서
성취일체지혜광명(成就一切智慧光明)하며 : 일체 지혜광명을 성취하며
주어일체불보리법(住於一切佛菩提法)하야 : 일체 부처님 보리법에 머물러서
입여래지(入如來智)호대 : 여래의 지혜에 들어가되
무유장애(無有障礙)니라 : 무유장애니라. 열 여섯 번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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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사대하(如四大河)가 : 사대하가
분류입해(奔流入海)에 : 빠르게 바다에 들어가서
경어누겁(經於累劫)호대 : 누겁을 지나되
역무피염(亦無疲厭)인달하야 : 강물이 바다에 들어가 있다고 해서 싫증내는 경우는 없다. 또한 피염함이 없듯이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도 : 보살마하살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 역부여시하야
이보현행원(以普賢行願)으로 : 보현행원으로써
진미래겁(盡未來劫)토록 : 미래겁이 다할 때까지
수보살행(修菩薩行)하야 : 보살행을 닦아서
입여래해(入如來海)호대 : 여래의 바다에 들어가되
불생피염(不生疲厭)이니라 : 피염을 내지 않느니라. 결국 우리는 이렇게 영원히 보살로서 계속 끊임없이 죽고 태어나고 죽고 태어나고 하면서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이 미래제가 다할때까지 보살행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것이 현실이다. 그러한 이치를 제대로 알고 제대로 밝혀 놓은 것이 결국은 화엄경이다. 그것을 아셔야 된다.
다른 경전은 이런 유사한 내용이 있어도 조금 부족한 점이 많이 있다. 그런데 화엄경을 내가 보니, 정말 화엄경 뿐이다.
내가 유튜브 방송을 하면서 보니까, 옛날에 내가 임제록 좋아할 때는 임제록을 강설을 내고, 내가 아프고 나서 바로 임제록 강설부터 썼다, 그전에도 화엄경 쓰던 것을 제쳐놓고 임제록을 썼는데 화엄경은 하도 기니까 ‘죽기 전에 임제록부터 써야되겠다’ 싶어서 임제록을 써놓고는 ‘아 이제 부처님 밥값 다했다’ 할 정도로 임제록에 빠져 있었다.
또 근래에 유튜브 방송을 하면서 사람들이 유마경이 끝나니까 임제록을 하라고 해서 임제록을 했는데 이제사 보니 임제록이 너무 단순한 것이다. 너무 단순하게 한 마음 하나뿐이다. 보살행은 한마디도 없다. 한마음 밝히는 것 그거 하나 뿐이다. 그래서 너무 힘이 들었다.
그래서 유튜브 방송으로 임제록을 열 여섯 번 법문하고는 중단을 했는데 선문이라고 하는 것은 한 분야에 한길로 명쾌하기는 한데, 대중들을 제도하고 만중생들의 삶의 길에는 이 화엄경과는 비교도 안된다. 그다음에 열 일곱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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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여일광출시(如日光出時)에 : 태양이 솟아났을 때
무열지중금사은사금강사유리사(無熱池中金沙銀沙金剛沙瑠璃沙)와 : 무열지 가운데서 금사 은사 금강사 유리사와
급여일체종종보물(及餘一切種種寶物)에 : 그리고 그 나머지 일체 종종보물에
개유일영(皆有日影)이 : 햇빛이 거기에 비친다. 개유일영이
어중현현(於中顯現)하며 : 어중에서 현현한다. 무슨 모래가 됐든지 간에 모래는 햇빛을 받아서 반짝반짝 빛을 낸다. 어중에 현현하며
기금사등일체보물(其金沙等一切寶物)도 : 그 금사 등 일체 보물도
역각전전이현기영(亦各展轉而現其影)하야 : 또한 각각 전전이 그 그림자를 나타내어서
호상감철(互相鑒徹)하야 : 호상감철하며, 거울에 사무쳐서 거울에 비치듯이 하는 것이 감철이다. 우리가 거울에 얼굴을 갖다대면 내 얼굴이 거울에 들어가 있다. 그것이 철이다. 감철 그렇게 하듯이
무소방애(無所妨礙)인달하야 : 방애하는 바가 없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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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도 : 보살마하살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 역부여시하야
주차삼매(住此三昧)에 : 이 삼매에 머무름에
어자신일일모공중(於自身一一毛孔中)에 : 자신의 일일모공 가운데서
실견불가설불가설불찰미진수제불여래(悉見不可說不可說佛刹微塵數諸佛如來)하며 :불가설 불가설 불찰 미진수 모든 부처님 여래를 다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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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견피불소유국토도량중회(亦見彼佛所有國土道場衆會)하야 : 또한 저 부처님의 소유국토 도량중회를 친견해서
일일불소(一一佛所)에 : 낱낱 부처님 처소에
청법수지(聽法受持)하고 : 법을 듣고 그것을 받아가지고
신해공양(信解供養)하야 : 신해 공양해서
각경불가설불가설억나유타겁(各經不可說不可說億那由他劫)호대 : 각각 불가설 불가설 억나유타겁을 지나되
이불상념시절장단(而不想念時節長短)하며 : 시절의 길고 짧은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기제중회(其諸衆會)도 : 그 모든 회중에도
역무박애(亦無迫隘)하나니 : 또한 비좁거나 장애됨이 없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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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고(何以故)오 : 하이고오
이미묘심(以微妙心)으로 : 미묘한 마음으로써
입무변법계고(入無邊法界故)며 : 무변법계에 들어가며
입무등차별업과고(入無等差別業果故)며 : 무등차별업과에 들어가며
입불가사의삼매경계고(入不可思議三昧境界故)며 : 불가사의 삼매의 경계에 들어가는 연고며
입부사의사유경계고(入不思議思惟境界故)며 : 부사의 사유 경계에 들어가는 연고며
입일체불자재경계고(入一切佛自在境界故)며 : 일체 부처님 자재의 경계에 들어가는 연고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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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일체불소호념고(得一切佛所護念故)며 : 일체 부처님이 호념하는 바를 얻는 연고며
득일체불대신변고(得一切佛大神變故)며 : 일체부처님 대신통변화를 얻는 연고며
득제여래난득난지십종력고(得諸如來難得難知十種力故)며 : 모든 여래의 얻기 어렵고 알기 어려운 열 가지 힘을 얻는 연고며
입보현보살행원만경계고(入普賢菩薩行圓滿境界故)며 : 보현보살행의 원만 경계에 들어가는 연고며
득일체불무로권신통력고(得一切佛無勞倦神通力故)니라 : 일체 부처님의 무노권신통력을 얻는 연고이니라.
노권이 없는, 피로하거나 게으름이 없는 신통의 힘을 얻는 연고이니라.
(6) 二行無礙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雖能於定에 一念入出이나 而亦不廢長時在定하고 亦無所着하며 雖於境界에 無所依住나 而亦不捨一切所緣하며 雖善入刹那際나 而爲利益一切衆生하야 現佛神通하야 無有厭足하며 雖等入法界나 而不得其邊하며 雖無所住無有處所나 而恒趣入一切智道하야 以變化力으로 普入無量衆生衆中하야 具足莊嚴一切世界하며 雖離世間顚倒分別하야 超過一切分別之地나 亦不捨於種種諸相하며 雖能具足方便善巧나 而究竟淸淨하며 雖不分別菩薩諸地나 而皆已善入하나니 佛子야 譬如虛空이 雖能容受一切諸物이나 而離有無인달하야 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雖普入一切世間이나 而離世間想하며 雖勤度一切衆生이니 而離衆生想하며 雖深知一切法이나 而離諸法想하며 雖樂見一切佛이나 而離諸佛想하며 雖善入種種三昧나 而知一切法自性皆如하야 無所染着하며 雖以無邊辯才로 演無盡法句나 而心恒住離文字法하며 雖樂觀察無言說法이나 而恒示現淸淨音聲하며 雖住一切離言法際나 而恒示現種種色相하며 雖敎化衆生이나 而知一切法畢竟性空하며 雖勤修大悲하야 度脫衆生이나 而知衆生界가 無盡無散하며 雖了達法界가 常住不變이나 而以三輪으로 調伏衆生하야 恒不休息하며 雖常安住如來所住나 而智慧淸淨하야 心無怖畏하고 分別演說種種諸法하야 轉於法輪하야 常不休息이니라 佛子야 是爲菩薩摩訶薩의 第九法界自在大三昧善巧智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비록 능히 선정에 잠깐 동안에 들고 나고 하면서도 또한 오랫동안 선정에 있는 일을 폐하지도 않고 또 집착하지도 않느니라.
비록 경계에 대하여 의지하지 않지마는 또한 모든 반연을 버리지도 않느니라.
비록 찰나의 경계[刹那際]에까지 잘 들어가지마는 일체 중생을 이익하게 하기 위하여 부처님의 신통을 나타내기에 싫어하거나 만족함이 없느니라.
비록 법계에 평등하게 들어가지마는, 그 끝닿은 데를 얻지 못하느니라.
비록 머무는 데도 없고 처소도 없지마는, 일체 지혜의 길에 항상 들어가며, 변화하는 힘으로 한량없는 중생들 가운데 널리 들어가서 일체 세계를 구족하게 장엄하느니라.
비록 세간의 뒤바뀐 분별을 여의어 모든 분별하는 자리에서 뛰어났지마는 또한 갖가지 모양을 버리지도 않느니라.
비록 방편의 교묘함을 구족하였지마는 구경까지 청정하니라.
비록 보살의 여러 지위를 분별하지 않지마는 모두 이미 잘 들어갔느니라.
불자여, 비유하자면 마치 허공이 비록 모든 물건을 포용하여 받아들지마는 ‘있다.’ ‘없다.’함을 여의었듯이,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비록 모든 세간에 널리 들어가지마는 세간이라는 생각을 여의었느니라.
비록 일체 중생을 부지런히 제도하지마는 중생이란 생각을 여의었느니라.
비록 모든 법을 깊이 알지마는 여러 가지 법이란 생각을 여의었느니라.
비록 모든 부처님 뵈옵기를 좋아하지마는 부처님이 생각을 여의었느니라.
비록 여러 가지 삼매에 잘 들어가지마는 일체 법의 자성이 모두 여여(如如)하여 물들 것이 없는 줄을 아느니라.
비록 그지없는 변재로 다함없는 법문을 연설하지마는 마음은 항상 문자를 떠난 법에 머무느니라.
비록 말이 없는 법을 관찰하기를 좋아하지마는 청정한 음성을 항상 나타내 보이느니라.
비록 일체 말[言]을 떠난 법의 경계에 머물지마는 가지각색의 모양을 항상 나타내느니라.
비록 부지런히 대자비(大慈悲)를 닦아 중생을 제도하지마는 중생세계가 다하지도 않고 흩어지지도 않는 줄을 아느니라.
비록 중생을 교화하지마는 일체 법이 끝까지 그 성품이 공(空)한 줄을 아느니라.
비록 법계가 항상 머물러 변하지 않는 줄을 알지마는 세 가지 바퀴[三輪]로 중생을 조복시키기를 항상 쉬지 아니하느니라.
비록 여래의 머무신 곳에 항상 머물지마는 지혜가 청정하고 마음에 두려움이 없으며 갖가지 법을 분별하고 연설하여 법륜 굴리기를 항상 쉬지 아니하느니라.
불자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제9법계에 자재한 큰 삼매의 교묘한 지혜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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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행무애(二行無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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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행은 유, 무 상대적인 것을 이행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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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수능어정(雖能於定)에 : 비록 능히 선정에
일념입출(一念入出)이나 : 한 순간 입출하나
이역불폐장시재정(而亦不廢長時在定)하고 : 또한 장시재정을 폐하지 아니하고, 선정에 있는 것을 폐하지 않고
역무소착(亦無所着)하며 : 또한 집착하는 바가 없으며
*
수어경계(雖於境界)에 : 비록 경계에
무소의주(無所依住)나 : 의주하는 바가 없으나
이역불사일체소연(而亦不捨一切所緣)하며 : 그러나 또한 일체 모든 반연하는 바를 버리지 아니한다.
일체 경계에 의주하는 바가 없으나 그러나 일체 소연을 버리지 않는다. 이것도 묘한 말이다. 전부 중도적인 이치로써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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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입찰나제(雖善入刹那際)나 : 비록 찰나제에 잘 들어가 있지만
이위이익일체중생(而爲利益一切衆生)하야 : 그러나 일체 중생을 이익케해서
현불신통(現佛神通)하야 : 부처님의 신통을 나타내어서
무유염족(無有厭足)하며 :무유염족하며, 비록 수(雖)자가 나오면 거의 중도 이치다. 중도적인 이치를 이렇게 표현한다. 중도라는 말은 한마디도 없지만, 이것을 뒷사람들은 중도의 이치다, 그런다. 우리가 불상을 나무로 깎아서 모셔놓고 흙으로 모셔놓고, 돌을 깎아서 모셔놓고 했지만 부처님처럼 위하지 않는가? 부처님처럼 위하면서 또 그것이 흙으로 깎아서 또는 돌로 나무로 깎아서 만든 줄도 알아야 된다. 이것이 양변 어디에도 치우치지 아니한 입장이다.
비록 돌로 깎아서 모셨지만 그러나 우리는 살아있는 부처님 이상으로 위한다. 이렇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그렇다.
건립수월도량(建立水月道場), 우리가 도량을 건립한다. 수행도량을 건립한다. 포교도량을 건립한다.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도량이라고 건립하지만 수월도량이다. 축원할 때 수월도량(水月道場) 하지 않는가. 물에 비친 달 그림자와 같은 도량인 줄을 알고 건립해야 된다. 그것이 중도다. 기가 막힌 이치다.
‘그거 수월도량인데 뭐하려고 그렇게 알뜰히 포교당을 세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수월도량인 줄 알고 열심히 목숨다해서 포교당을 세우고, 절을 건립하고 수행처를 건립하고 해야 한다. 우리가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그 어디에도 우리가 치우쳐서 집착하지 말아야 된다.
수(雖)자는 전부 그런 뜻이다. 그렇게 알고 그냥 넘어가면 된다.
*
수등입법계(雖等入法界)나 : 비록 법계에 평등하게 들어가나
이부득기변(而不得其邊)하며 : 그러나 그 갓을 얻지를 아니한다. 법계에 평등하게 들어가지만 그 변두리가 없다는 말이다. 그 변두리를 얻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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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무소주무유처소(雖無所住無有處所)나 : 비록 머무는 바 없이 처소도 없으나
이항취입일체지도(而恒趣入一切智道)하야 : 그러나 항상 일체 지혜의 도에 취입해서
이변화력(以變化力)으로 : 변화력으로써
보입무량중생중중(普入無量衆生衆中)하야 : 무량중생 대중 가운데 널리 들어가서
구족장엄일체세계(具足莊嚴一切世界)하며 : 일체 세계를 구족하게 장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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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세간전도분별(雖離世間顚倒分別)하야 : 비록 세간을 떠나서 세간의 전도 분별을 떠나서
초과일체분별지지(超過一切分別之地)나 : 일체 분별의 경지를 초과했으나
역불사어종종제상(亦不捨於種種諸相)하며 : 또한 가지가지 모든 형상을 버리지 아니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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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구족방편선교(雖能具足方便善巧)나 : 비록 능히 방편선교를 구족했으나
이구경청정(而究竟淸淨)하며 : 그러나 끝까지 텅 비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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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불분별보살제지(雖不分別菩薩諸地)나 : 비록 보살제지를 분별하지 아니하나
이개이선입(而皆已善入)하나니 : 그러나 다 이미 잘 들어가나니, 보살의 52위 지위점차를 분별하지는 아니하나 그러나 다 이미 잘 들어가 있다. 그러면서 또 거기에 52위 지위점차에 치우치지 않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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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비여허공(譬如虛空)이 : 비유컨대 허공이
수능용수일체제물(雖能容受一切諸物)이나 : 비록 능히 일체 모든 사물을 수용하지만
이리유무(而離有無)인달하야 : 그러나 있다 없다 하는 것을 여의었나니라. 유무를 여의었듯이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도 : 보살마하살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 또한 다시 이와 같으며
수보입일체세간(雖普入一切世間)이나 : 비록 일체 세간에 널리 들어가나
이리세간상(而離世間想)하며 : 그러나 세간의 생각을 떠났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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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근도일체중생(雖勤度一切衆生)이니 : 비록 부지런히 일체중생을 제도하나
이리중생상(而離衆生想)하며 : 중생이라는 생각을 떠났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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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심지일체법(雖深知一切法)이나 : 비록 일체법을 깊이 알지만
이리제법상(而離諸法想)하며 : 모든 법상을 떠났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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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락견일체불(雖樂見一切佛)이나 : 비록 일체 부처님을 즐겨 친견하나
이리제불상(而離諸佛想)하며 : 그러나 모든 부처님이라고 하는 생각을 떠났다. 열심히 친견한다. 그저 천 배 만 배 백만 배를 한다. 그러면서도 부처님이라고 하는 생각을 떠났다. 떠난 상태에서 천 배 만 배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이 세속적인 논리로 보면 그런 모순이 없다. 그런데 불법의 이치는 그런 세속적인 논리로써는 설명이 안된다. 중도의 이치가 설명이 안된다.
세속적인 입장에서는 이런 소리를 하면 ‘이것이 무엇인가? 말도 아니다.’ 고 한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가 다 그렇게 살고 있다. 살아있는 부처님 이상으로 법당의 부처님을 위할 때는 위한다. 그러면서도 부처님 혼자 놔두고 불 다꺼버리고 전기 내려 버리고 자물통을 다 잠그고 나와버린다. 어디 산 부처님을 놔두고 그럴 수가 있는가? 그 어디에도 치우치면 안된다. 그렇게 하도록 되어 있다. 이미 우리가 그렇게 산다. 그런데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미 그렇게 사는 것은 문제가 안된다.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이 문제가 되기 때문에 이러한 이치가 우리 경전에 있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이 말세에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 이런 경전을 두고 공부한다고 하는 것이, 우리는 너무 복 많은 사람들이다.
부처님이라고 하는 생각을 떠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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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입종종삼매(雖善入種種三昧)나 : 비록 가지가지 삼매에 잘 들어갔으나
이지일체법자성개여(而知一切法自性皆如)하야 : 그러나 일체법자성개여 본래 다 여여하다. 삼매다. 우리 자성은 본래 여여다. 본래 삼매다. 그러한 것을 안다.
그러니 따로 낱낱 삼매에 들어갈 것이 없다. 그런데 낱낱 삼매에 들어갈 때는 들어간다. 우리 자성은 본래로 삼매다. 개여(皆如)다. 여(如)라고 하는 것이 여여하다, 여여한 삼매자리다. 그래서
무소염착(無所染着)하며 : 염착하는 바가 없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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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무변변재(雖以無邊辯才)로 : 비록 무변변재로써 가없는 변재로써
연무진법구(演無盡法句)나 : 다함이 없는 법의 구절을 연설하기는 하나
이심항주이문자법(而心恒住離文字法)하며 : 그러나 마음은 항상 문자법을 떠나 있다. 항상 문자법을 떠나 있어야 된다. 화엄경 화엄경 하면서 화엄경에 묻혀서 거기에 목숨을 걸고 살아간다고 하고, 거기에 목을 매달고 사는 것 같으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것을 다 떠나 있는 상태다.
우리가 다 그렇게 잘 산다.
뭐 배울 것이 있다고 여기까지 수백리를 이렇게 왔는가?
시간 많이 걸리고 돈많이 들고 하면서 와서 이렇게 공부할 때는 하지만 그렇게 밑천 들여서 노력 많이 들여서 하지만 그러나 화엄경을 까마득히 잊고 살 때는 까마득히 잊고 살아야 된다. 그 이치다. 까마득히 잊고 산다.
심항주이문자법(心恒住離文字法)이라, 문자를 떠난 법에 항상 머물고 있다. 참 좋은 이치다. 그래서 나는 이 구절에 별을 얼마나 쳐놨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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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락관찰무언설법(雖樂觀察無言說法)이나 : 비록 말이 없는 도리에 잘 관찰하고 있다. 본래 말이 없다. 일체 말이 없다
이항시현청정음성(而恒示現淸淨音聲)하며 : 그러나 항상 청정 음성을 나타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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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주일체이언법제(雖住一切離言法際)나 : 비록 일체 말이 없는 말을 떠난 경계에 머물고 있으나
이항시현종종색상(而恒示現種種色相)하며 : 그러나 항상 가지가지 색상을 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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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교화중생(雖敎化衆生)이나 : 비록 중생을 교화하나
이지일체법필경성공(而知一切法畢竟性空)하며 : 일체법이 필경에 성품이 공한 도리, 공한 이치를 안다. 일체 법이 다 공하다고 하는 이치를 잘 안다.
‘일체법이 공한 이치라면 중생 교화할 것이 또 뭐가 있느냐?’ 전부 모순 투성이다. 모순 투성이의 언어라야 설명이 되고 표현이 되는 것이 화엄경이고 불법의 이치다. 모순되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 화엄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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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근수대비(雖勤修大悲)하야 : 비록 부지런히 대비를 닦아서
도탈중생(度脫衆生)이나 : 중생을 도탈하나
이지중생계(而知衆生界)가 :그러나 중생계가
무진무산(無盡無散)하며 : 다함도 없고 흩어짐도 없음을 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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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달법계(雖了達法界)가 : 비록 법계가
상주불변(常住不變)이나 : 상주해서 불변함을 요달한다. 법계는 상주불변이다.
이이삼륜(而以三輪)으로 : 그러나 삼륜으로
조복중생(調伏衆生)하야 : 중생을 조복하며, 삼륜 삼전법륜(三轉法輪)이라고해서 시전(示轉), 권전(勸轉), 증전(證轉)이다.
예를 들어서 관세음보살을 초보자 신도에게 설명을 한다면 세 가지 단계가 있다.
‘관세음보살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것이 보일 시(示)자 구를 전(轉)자 시전(示轉)이다.
‘관세음 한 번 불러봐요. 관세음 보살을 부르면 관음경에 보면 중생 소원 안들어 주는 것이 없답니다’ 이것이 권전(勸轉)이다. 권한 권(勸)자다.
‘아 이보라고, 내가 관음기도 해서 이런 절을 세웠지 않냐’고, ‘이 절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사찰이 거의 관세음보살 기도를 해서 이룬 절이다’ 이것이 증전(證轉)이다. 증할 증(證)자다.
법문할 때는 이 세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특히 초보자들에게는 그런 세가지 조건, 시전 보여준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은 이러이러하니까 한 번 권해본다. 살짝 권해본다. 저쪽에서 마음이 싹 나도록 해야지, 마음을 내고 있는데 너무 강력하게 권하면 또 딴 데로 가버린다. 삐뚤어진다. 고기를 낚는 방법하고 똑같다. 낚시대 던져서 고기를 낚는 방법과 똑같다. 그것도 세 단계가 있다.
불교에서는 뭘 잡는다든지 죽인다든지 거두절미 이런 표현을 쓰면 안된다. 머리 자르고 꼬리자르고 그것도 고기를 두고 하는 소리지 않는가. 그런 표현도 안써야 된다. 할 수 없이 안써야 된다고 하는 것을 가르치려고 쓰긴 쓰지만 불교에는 그런 낱말도 안써야 된다.
삼륜으로써 중생을 조복해서
항불휴식(恒不休息)하며 : 항상 휴식하지 아니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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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안주여래소주(雖常安住如來所住)나 : 비록 항상 여래가 머무는 바에 항상 안주하나 그러나
이지혜청정(而智慧淸淨)하야 : 지혜가 청정해서
심무포외(心無怖畏)하고 : 마음에 두려움이 없고
분별연설종종제법(分別演說種種諸法)하야 : 가지가지 모든 법을 분별하고 연설해서
전어법륜(轉於法輪)하야 : 법륜을 굴려서
상불휴식(常不休息)이니라 : 항상 휴식하지 아니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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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시위보살마하살(是爲菩薩摩訶薩)의 :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제구법계자재대삼매선교지(第九法界自在大三昧善巧智)니라 : 제 아홉 번째 법계자재대삼매선교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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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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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方廣佛華嚴經 大方廣佛華嚴經 大方廣佛華嚴經... _()()()_
고맙습니다 _()()()_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_()()()_ 고맙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