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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기갈을 피하려면
아모스 8:11~14
아모스 선지자는 북 이스라엘 왕국의 예후 왕조에 속한 왕들 중에서 가장 번성했던 시대를 이끌었던 왕 여로보암 2세 때에 활동했던 드고아 출신의 선지자입니다. 아모스는 본래 유다 지파의 땅 베들레헴 아래에 있는 드고아 땅에서 뽕나무를 기르는 농삿꾼이며 양을 치던 목자였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불러내어 북 이스라엘 사마리아와 벧엘에 가서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 북 이스라엘 왕국이 물질적으로 풍요로웠고 나라의 영토가 확장될 정도로 나라가 평안했으나 영적으로는 우상 숭배와 잡신 숭배와 많은 불법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 아모스는 그렇게 흥청거리는 북 이스라엘 땅에서 사역하면서 그들의 죄악들을 지적하면서 회개하기를 요청했습니다. 아모스가 선포한 메시지를 한 가지 예로 들자면, 아모스 2:8 이하의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가난한 자를 팔며 힘 없는 자의 머리를 티끌 먼지 속에 발로 밟고 연약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 아버지와 아들이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 모든 제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우며 그들의 신전에서 벌금으로 얻는 포도주를 마심이니라”(아모스 2:6~8)
이렇게 종교적, 사회적 타락과 부패가 극심하였기 때문에 선지자 아모스는 그 땅에 멸망을 당할 것이라면서 각종 재앙이 연거푸 닥치게 될 것이라고 예고하였습니다. 지진과 기근과 화재 등 재앙이 닥칠 것이고 전란이 일어나 사람들이 칼에 죽게 될 것이라고 예고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보다 더 큰 재앙을 예고하는 말씀이 우리가 읽은 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이는 가장 큰 재앙인 영적인 재앙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지지 않는 재앙인 것입니다. 말씀의 기갈의 재앙이 임한 시대는 아모스 시대 이전에도 한번 소개된 바 있습니다. 그것은 선지자 엘리 시대였던 사사 시대 말기 때입니다. 사무엘상 3:1 말씀에 이르기를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당시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는 실로의 법궤 앞에서 제사장이었던 엘리 제사장이었는데, 그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악한 불량배처럼 타락하여 하나님의 성전 제사가 불결하였습니다. 백성들 역시 잡신 숭배와 우상 숭배로 더러워졌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을 주시지 않았고 나중에 어린 사무엘이 성전에서 엘리 제사장의 시종으로 일하므로 그 어린 사무엘에게 말씀을 다시금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타락하고 부패하여 불결한 가운데 있을진대 하나님께서 말씀을 베풀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훗날 바벨론에서 돌아온 귀환자들에게도 오랫동안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왔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가 일어나 활동하였고 그들을 이어서 말라기 선지자가 일어나 그들 가운데 타락과 부패를 지적하면서 장차 선지자 엘리야의 영성을 가진 선지자가 일어날 것이요 그 후에 그들의 주 곧 그리스도가 임할 것이라는 예언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약 4백년 동안을 하나님께서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주어지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사백 년만에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졌으니 그것이 바로 세례 요한의 예언 사역입니다. 누가복음 3:1~3 말씀에 보면,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 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 왕으로,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하니라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라고 하였습니다. 그 동안 놋문처럼 닫혀 있던 하늘 문이 열리고 하늘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 백성들에게 선지자 세례 요한을 통하여 주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 일이 말라기 선지자 후에 약 400년만에 주어진 축복인 것입니다.
잠언 29:18 먈씀에 이르기를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율법은 기록된 말씀이요 묵시는 선지자를 통하여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율법을 지키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따끈따끈한 묵시의 말씀, 각종 재난에 대한 경고와 구체적인 죄목을 지적하는 말씀을 베풀어주시곤 하는데, 그것까지 보내지 아니하는 것이 곧 말씀의 기갈의 심판인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말씀을 들어도 이해하지 못하고 이적과 기적을 베풀어도 영적으로 깨닫지 못하는 것 역시 말씀의 기근의 심판의 일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날마다 불기둥과 구름 기둥을 보고 모세를 통하여 각종 이적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반석에서 물을 마시고 아침마다 만나와 저녁마다 메추라기를 내려 먹이시는 하나님의 기이한 돌보심을 체험하고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였습니다. 모세를 통하여 주신 율법과 선지자들을 통하여 주신 예언의 말씀을 거역하였습니다. 그래서 40년간 광야 교회를 목회하였던 모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놓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너희의 목전에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행하신 모든 일을 너희가 보았나니 곧 그 큰 시험과 이적과 큰 기사를 네 눈으로 보았느니라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까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신명기 29:2,3)
고 말씀하셨습니다.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주지 아니하시고 둔한 마음과 보지 못하는 눈과 듣지 못하는 귀를 주시니까 그들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자기 눈으로 보고 직접 자기 귀로 들어도 전혀 믿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 후에도 약속의 땅에 들어온 후에도 이스라엘 역사를 살펴보면, 선민 이스라엘은 그들의 나라가 망하고 심판을 당할 때에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모욕하고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들에 대하여 조롱하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아합 왕 당시에 북 이스라엘 왕국의 군대 지도자들이 선지자를 향하여 “미친 자”라고 호칭하였습니다. 열왕기하 9장 11절 말씀을 보면, 예후 장군이 여러 동료 장군들과 더불어 길리앗 라못에서 아람 나라 군대와 전쟁할 때에 선지자 엘리사로부터 예후에게 기름부어 아합 왕가를 멸하라는 사명을 받아 그곳에 간 젊은 선지자를 두고서 장군들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 미친 자가 무슨 까닭으로 그대에게 왔더냐”
선지자를 미친 자라고 말하는 것은 선지자에 대한 존중심이 전혀 없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후 예레미야 선지자가 사역하던 유다 왕국의 말기에도 그들은 선지자를 함부로 붙잡아 때리고 재판도 없이 사사로이 물 웅덩이 감옥에 집어넣고 그를 죽이려 들고 그의 친구들마저 타락하여 고소할 기회를 찾곤 했습니다. 그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이렇게 탄식하며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하여 듣게 할꼬 보라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도다 보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이 자신들에게 욕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 아니하니 그러므로 여호와의 분노가 내게 가득하여 참기 어렵도다 그것을 거리에 있는 아이들과 모인 청년들에게 부으리니 남편과 아내와 나이 든 사람과 늙은이가 다 잡히리로다 내가 그 땅 주민에게 내 손을 펼 것인즉 그들의 집과 밭과 아내가 타인의 소유로 이전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예레미야 6:10~12)
예레미야 선지자 시대의 유다의 통치자 여호야김 왕은 예레미야의 예언의 말씀을 기록한 두루마리를 불태우기까지 하였습니다. 성전 앞에서 낭독하였던 예레미야의 예언 말씀을 써놓은 두루마리를 신하들이 낭독하자 왕은 낭독하는 족족 칼로 그 두루마리를 베어서 겨울 궁전 안에 피워 놓은 화로 불에 태웠습니다. 신하 중 몇 사람이 말려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호야김 왕에 대하여 하나님은 예고하기를, 그가 죽어 그 시체가 버림을 당하여 낮에는 더위, 밤에는 추위를 당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말씀을 욕설로 듣고 대적하는 것이 곧 말씀의 기근과 말씀의 기갈의 심판을 당한 상태입니다.
이렇듯 모든 어떤 나라나 사회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여기고 조롱하며 무감각하고 무관심할진대, 이것은 그 사회에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이 곧 떨어지게 될 조짐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자처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존중심이 없어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자기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명령은 외면하고 거역하고 자기 생각과 판단을 하나님 말씀보다 더 앞세우고 고집을 피우게 되면 그 사람에게 지금 말씀의 기갈과 말씀의 기근의 재난이 닥치고 있음을 말해주는 표지입니다. 말씀의 기갈과 기근의 위기는 당장은 현실에서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 영혼은 가장 치명적인 심판을 받는 상태요 그와 그 가정과 후손들에게까지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이 닥쳐오고야 말 것이기에 가장 큰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영적 감각이 무디어지고 있습니까?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안 생기고 최근 들어 양심의 가책이 전혀 없고 세상의 만연한 죄악상들을 보면서도 거룩한 분노와 슬픔과 세상 사람들에 대한 긍휼과 심판에 대한 두려움의 마음이 전혀 없습니까? 혹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가 전혀 없어지고 하나님 말씀의 교훈들에 대하여 거역하는 마음이 들지는 않습니까? 혹시 하나님 말씀에 대한 목마름이 전혀 없고 공적 예배와 기도에 대한 아무런 열망이 없습니까? 혹시라도 이러한 내면의 영적 현상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이 가장 중대한 영적 질병의 모습이요 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말씀의 기근과 말씀의 기갈의 재난을 내리시는 중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을 가지고 심령을 새롭게 가져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말씀의 기갈과 말씀의 기근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진지하게 다음 몇 가지의 영적 수고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첫째로, 딱딱해진 마음의 밭을 깊게 갈아 엎어야 하겠습니다.
예레미야 4:3 말씀 이하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을 그 시대 선민 유다에게 선포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이와 같이 이르노라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에 파종하지 말라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분노가 불같이 일어나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
여기서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논과 밭, 포도원으로 비유합니다. 논과 밭과 포도원을 농부가 오랫동안 관리하지 않아서 그 땅이 딱딱하고 잡초와 가시떨기가 우거지고 거름기도 없어 그 땅이 푸석거려서 거기에 씨앗을 뿌리거나 묘목을 심는다 해도 싹이 돋거나 열매가 맺혀질 수 없음과 같이, 오랫동안 영적으로 돌보지 아니한 사람의 마음에도 거기에 말씀의 씨앗을 뿌린다 해도 결코 결실을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먼저 마음의 땅을 깊게 갈아엎고 거기에 은혜의 거름을 주어 그 땅을 기름지고 활력 있는 생산적인 토지로 바꾸어야 거기에 말씀의 씨앗을 뿌릴 때 열매를 풍성히 맺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기근과 기갈을 면하려면 먼저 땅을 깊게 갈아 엎는 영적 개혁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것은 곧 회개의 심령을 갖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자신의 내면에 있는 죄악들을 내어놓아야 합니다. 마치 논밭의 돌과 자갈과 가시떨기 뿌리들을 제거하듯이, 우리 심령 속에 있는 자아의 고집, 교만, 욕심, 우상 숭배와 잡신 숭배와 미신적 행위들, 정욕과 더러움의 생각들, 방탕한 행실들을 주님 앞에 다 내어놓고 간절히 용서를 구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할 때에야 우리의 마음의 귀가 열리고 우리의 눈이 열리고 우리 심령이 부드러워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그 말씀의 씨앗들이 우리 심령에 심겨져서 열매를 맺는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딱딱해지고 마음에 하나님 말씀에 대한 갈급한 마음이 없을 때 먼저 우리 마음의 그러한 무감각한 상태를 솔직히 하나님께 아뢰고 우리 심령을 그렇게 만든 요인들이 무엇인지, 습관화된 죄악들이 있는지를 잘 살펴서 주님 앞에 용서를 구하고 그러한 세상적인 습관들을 다 제거해달라고 간절히 매달리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을 구해야 하겠습니다.
호세아 8:8,9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브라임은 죄를 위하여 제단을 많이 만들더니 그 제단이 그에게 범죄하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내가 그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 가지로 기록하였으나 그들은 이상한 것으로 여기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의 행복을 위하여 그의 종 모세를 보내고 선지자들을 때를 따라 보내어 하나님의 율법과 규례들과 예언과 권면의 말씀들을 주셨지만, 그들은 그 말씀들을 이상한 것, 자기와 상관 없는 것, 낯선 것으로 여겨 외면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의 가장 중요한 특별한 점이 무엇입니까? 세상 사람들은 떡으로 살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의 떡으로 사는 자들로 구별하여 부르심받은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바로 하나님 말씀을 가장 귀하게 여기고 하나님 말씀을 그 무엇보다 더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고 사모하는 자였습니다. 다윗은 시편 119편에서 이러한 고백을 자주 하였습니다.
“내 마음을 주의 증거들에게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하지 말게 하소서”(시편 119:36)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으니이다”(시편 119:72)
“내가 주의 계명들을 사모하므로 내가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시편 119:131)
이렇듯 다윗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늘 사모하며 가까이 두고 읽고 묵상하며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기의 마음을 채우곤 했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 말씀을 송이꿀처럼 더 달게 여기며 그 말씀 속에서 위로와 기쁨과 활력을 얻곤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떻게 하면 말씀의 기근과 말씀의 기갈을 피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의 떡을 먹음으로 살아가는 존재로 부름받았음을 항상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이르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요한복음 6:26,27)
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이르기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니라”
고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이 세상에서 귀하고 복된 것들을 얻어 기뻐함도 좋지만 세상 재물과 세상 명예나 세상의 칭찬과 인기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더 사랑하고 가까이 하며 그것을 자기의 보물로 삼아 행복해하는 자가 됩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영적인 은혜와 복을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간직하며 인내하며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갈릴리 해변에서 모인 회중들에게 말씀을 베푸실 때에 그 베푸신 비유 중에 씨 뿌리는 비유가 있습니다. 그 비유 말씀은 이러합니다.
“씨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마태복음 13:3~9)
여기서 씨는 말씀을 비유합니다. 새는 마귀를 가리키고 또 길가 밭은 마음이 딱딱한 세상 사람, 돌밭은 마음에 굳은 자아와 믿음이 얕은 사람, 가시떨기 밭은 세상 근심, 욕심, 정욕에 매여서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결실이 풍성한 좋은 밭은 무엇이냐고 주님께서 누가복음 8:15 말씀에서 친히 해석하여 이르기를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슴을 듣고 결실하는 심령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서 그것을 잘 지키는 사람입니다. 말씀만 귀로 듣고 잊어버리지 말고 그것을 마음에 잘 간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는 항상 천사가 하는 말이나 어린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늘 간직하곤 하였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늘 마음에 깊이 간직하며 되새김질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그 말씀이 당장 이루어지지 아니할지라도, 그 말씀을 듣고 지켜 가는 데 있어서 여러 가지 환란과 역경이 있더라도 끝까지 붙들고 인내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당장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요셉도 꿈의 언약을 받았지만 그 꿈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약 23년 정도가 흘렀습니다. 온갖 고생살이가 있었어도 그 꿈을 붙들고 인내하였더니 마침내 형들이 자기 앞에 엎드려 절하는 꿈이 이루어지는 현실을 눈으로 목도했습니다. 다윗도 왕이 되겠다는 사무엘의 예언이 있은 지 약 20년 내지 25년이 흘러서야 이스라엘 전체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 말씀과 성령의 복스러운 예언이 주어졌으나 속히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낙심하지 맙시다. 그 말씀 붙들고 예언을 붙들고 인내하고 또 인내하는 자가 됩시다. 또한 그 계명과 규례에 순종하며 행합시다. 그리할진대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 삶에 말씀의 열매를 백배, 육십배, 삼십배로 풍성히 결실하는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오늘날은 기근과 기갈의 시대입니다.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텅 빈 시대입니다. 저 유럽과 미국과 온 세계가 이러한 공허감에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우리가 붙잡아야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도 이 세상의 정욕도 지나가되 하나님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풀은 시들고 꽃은 떨어지는 법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으며 변치 아니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영원히 서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가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할 때 그 말씀이 우리를 살리고 세우고 번성하게 할 것입니다. 오늘날 온 세상에 퍼지고 있는 기근과 전쟁과 전염병과 지진과 삶의 부조리가 심화되는 현상과 더불어 점점 더 뚜렷하게 임하는 말씀의 기근과 기갈의 심판 재앙을 피해야 하겠습니다. 그럴수록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의 충만함을 받아서 우리와 우리 가정과 민족과 나라를 살리는 우리와 우리 조국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