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브온 사람들의 행복
수 9:16~27
성경에 보면, 변장을 하고 복을 받은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사울 왕이 변장하고 무당을 찾아가 좋은 결과를 기대했으나 결국 전쟁에서 패하고 자신과 자식 셋이 다 죽고 말았습니다. 아합 왕이 변장하고 전쟁에 나갔으나 하나님의 공의의 화살을 맞고 결국 죽었습니다. 여로보암 왕의 아내가 변장하고 선지자 아히야를 찾아갔으나 기대를 걸었던 좋은 소식 듣지 못하고 그 아들은 선지자 말대로 죽고 말았고 심판의 메시지만 받고 돌아왔습니다. 요시야 왕도 변장하고 전쟁에 나갔다가 화살을 맞고 죽었습니다.
그런데 예외적으로 변장했는데 은혜를 입은 족속들이 나옵니다. 그 족속들은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기브온 장로들과 그 이웃 세 성읍의 장로들입니다. 그들은 작정하고 변장하여 여호수아 장군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에게 찾아와 먼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속여서 평화 협정을 맺었던 것입니다. 사실 그들은 길갈에서 사흘 길밖에 안되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성읍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속인 까닭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크신 역사를 전혀 듣고 그들은 결코 이스라엘 민족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 군사들로 하여금 가나안에 거하는 족속들을 다 멸하라고 하신 명령을 전해들어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들의 목숨을 잃지 않을 방법을 찾다가, 곰팡이 난 빵을 준비하고, 낡고 찢어진 포도주 가죽 부대에 포도주를 담고 낡고 해어진 옷을 입고 낡은 신발을 신고 찾아와서 아주 먼 나라에서 온 것처럼 속이려 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 장군과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이 찾아온 이들의 행색과 말에 속아서 그들과 조약을 맺고 살려주겠다는 맹세를 여호와의 이름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기브온 성에 가까이 갔다가 뒤늦게 그들을 맞으러 나온 그 성읍 장로들을 보고서야 속은 줄을 알았습니다.
그 때는 이미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를 했기 때문에 그들을 죽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 장군과 장로들은 그들이 속인 까닭에 그들에게 대를 이어서 이스라엘의 종이 되어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가 되도록 명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그 기브온 사람들이 머리를 잘 써서 잘 속여 먹어서 이스라엘이 넘어갔는가 하는 점입니다. 9장 1절과 2절에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쳐들어오자 가나안 땅의 다른 모든 사람들은 일심으로 모여서 이스라엘과 맞서 싸우려고 총 궐기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오직 기브온 주민들만 정 반대로 싸우지 않고 잠시 변장해서라도 항복하려고 움직인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그러한 마음 자체가 이미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애굽의 왕 바로는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를 열 번이나 보고도 그 때마다 마음이 완악해져서 모세와 이스라엘을 대항하다가 나일 강물에 수장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크신 권능을 목격하여도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지 않으면 그 마음이 완악해집니다. 그러나 기브온 족속들은 그 마음이 겸비해졌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려고 그렇게 꾀를 쓴 것입니다. 그렇게 마음을 움직이게 하신 이는 하나님입니다.
또 협상 과정에서도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얼마든지 그들을 심문하여 거짓을 밝혀낼 수 있는데 속아 넘어가게 하셨고, 기도하여 그 정체를 하나님께 얻을 수 있을 것이나 기도로 묻는 것도 잊어버리도록 허락하신 것도 하나님입니다. 굳이 맹세로 하는 정식 조약을 맺을 필요가 없는데도, 그들과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까지 하게 된 것도 다 섭리입니다. 그들을 살리시고 은혜를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섭리적으로 허락하신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생명을 얻었고 더욱이 하나님의 성전에서 물두멍에 물을 갖다 붓는 일을 하고, 번제단 아래 늘 나무를 패서 단에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는 일을 했습니다. 마치 제사장을 돕도록 레위인이 부르심을 받은 것처럼, 기브온 사람들은 레위인들을 돕도록 부르심을 받아 성전을 섬기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기브온 족속들에게 여호수아가 내린 저주는 오히려 그들에게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 섬기는 축복이 된 것입니다.
이 후에 기브온 족속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한번은 끔찍한 일을 당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을 정복하여 산 지 400년이 지난 후에 사울 왕이 첫 임금이 되었을 때 갑자기 그들의 성읍에서 이유 없이 군인들이 쳐들어와서 기브온 사람들을 학대하고 죽이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이방인 출신이라는 이유로 사울 왕이 까닭없이 그들을 학대하고 죽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불의한 일이었습니다. 이미 기브온 족속들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살리기로 했었던 것이요 그들은 성전에서 나무 패고 물 긷는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울 왕 시대에 이들은 참으로 온갖 슬픔과 고통을 인내하며 견뎌야 했습니다.
하지만 다윗 왕의 시대가 왔고 그 말년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원한을 다 풀어주셨습니다. 큰 기근이 났는데, 그 이유를 하나님께 물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 이유가 기브온 사람들의 무고한 피를 사울 왕이 흘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온 땅에 기근을 내리는 벌을 주셨다는 것을 알리셨습니다. 그 결과 다윗 왕은 기브온 사람들의 원한을 풀기 위하여 사울 왕의 후손 일곱 자손을 기브온에서 목매달아 죽도록 내어주었습니다. 이로써 기브온 사람들의 원한이 풀리고 그들의 명예가 회복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브온 사람들이 비록 이방인들이었지만 그들을 위해주심을 친히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훗날 이들은 하나님 앞에서와 이스라엘 민족에게 끝까지 의리를 지켰습니다. 유다 민족이 바벨론에게 나라가 망하고 남은 백성들이 바벨론까지 포로로 끌려갔다가 70년 만에 해방되어 다시 옛 땅으로 돌아올 때에, 이들은 고향 땅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에스라 7장 43절 이하에 보면, 그 귀환자들 명단에 느디님 사람들이라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느디님’이라는 말은 ‘성전 봉사자’라는 말인데, 레위인을 돕는 가장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들 중에 대부분이 기브온 성읍 출신들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 돌아온 성전 봉사자 느디님 자손들 명단을 보면 족보가 뚜렷합니다. 그리고 그 숫자가 솔로몬의 신하의 자손과 함께 삼백구십이 명이 나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동쪽 지역 요새화된 오벨 성채에서 기거하면서 날마다 성전에서 섬기는 일을 지성으로 감당했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들은 귀환한다면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영원히 종노릇하는 신세를 면하지 못할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벨론에서 다시 돌아올 때 가장 앞장서서 돌아왔으니 참 아름다운 의리요 하나님께 지성으로 섬기려고 성전 가장 가까운 오벨 성채에서 집단 거주를 하면서 성전을 돌보았던 것입니다.
이는 그들의 마음 속에는 비록 나무 패고 물 긷는 일일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기에 그 누구보다 그 어떤 일보다 더 거룩하고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일을 하고 있다는 커다란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임이 분명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자부심을 느꼈던 비결은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아는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여호수아 시대에 자기들이 산 것이 자기들의 꾀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산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물 긷고 나무 패는 일이 저주가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을 직접 섬길 수 있는 영광스런 특권으로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시련이 와도 끝까지 하나님을 가까이 섬기고자 했고, 이 특권을 무엇과도 바꾸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깨닫는 것이 복입니다.
시편 84:10 말씀에,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고백은 은혜를 은혜로 아는 자의 행복한 고백입니다.
아무리 화려한 세상의 신분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잘나간다고 해도, 그 영광과 칭찬은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과 우리 구주를 섬기는 일은 가장 작은 일일지라도 참으로 값지고 영원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집을 섬기는 일일진대, 자기 손으로 하는 것이 영광스럽고 보람있고 행복한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과 겸손과 감사함과 충성됨으로 주님과 주님의 몸된 교회를 내 손과 내 발로써 정성스럽게 섬겨서, 영원한 상급과 칭찬과 영광과 이 땅의 축복을 다 받아 누리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주여, 우리를 만민 중에서 선별하시고 부르사 세상에서 주님을 섬길 수 있는 백성 삼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섬길 수 있는 주님의 몸된 교회를 주신 것도 감사합니다. 섬길 수 있음을 인하여 늘 감사하며 더욱 충성 다하여 섬기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