킨스호퍼 일행의 아이거 북벽 동계 초등기
스위스의 그린델발트에 위치한
‘베르네 알프스(Bernese Alps)의 송곳니’라는 별명을 지닌 아이거(3,970m)의 이름은
독일어 방언으로 ‘사람 잡아 먹는 귀신’이란 뜻의 영어 단어 ‘오거(Ogre)’와 같다.
아이거의 북동 스퍼와 미텔레기 능선 그리고
북서릉 테두리 사이에 끼어 있는 높이 1,800m의 회색빛 벽이 바로 그 악명 높은 ‘죽음의 벽’ 아이거 북벽이다.
움푹 파여 거대한 원형극장을 방불케 하는 이 벽을 넘나드는 상승기류와 하강기류,
수천 톤씩 쏟아져 내리는 돌사태와 얼음 사태, 눈사태,
그리고 이 벽의 빙하작용과 눈 녹은 물의 증발 등의 영향으로 이 지역에만 국한되는 악천후가 빈발한다.
게다가 많은 낙석과 낙빙까지 곁들여 이 벽은 인간의 접근금지 구역으로 통한다.
아이거 북벽에서 7명의 클라이머가 희생되고 난 후인
1938년 7월 독일 청년 헤크마이어와 오스트리아청년 하러 일행 4명이
3일 만에 역사적인 초등에 성공하여 이 루트가 노멀 루트로 자리 잡았다.
1961년 2월 27일 독일 산악인 킨스호퍼(당시 27세), 히벨러(31세), 만하르트(20세)와
오스트리아 산악인 발터(27세) 4명이 아이거 북벽 동계 초등 길에 나섰다.
그들은 각자 25kg의 짐을 지고 북벽 밑에서 440m 위쪽 지점에 위치한 엑시트 갤러리(Exit Gallery)까지 오르고,
그 좌측 90m 떨어진 설벽에 설동을 파고 비박했다.
‘엑시트 갤러리’란, 융프라우 등산 철도 회사가 터널 공사를 할 때
암석 부스러기들을 산밑으로 버리기 위해 아이거 북벽에 뚫어 놓은 갱도 출구를 말한다.
이 지점까지는 두 개의 가파른 바위기둥인 퍼스트 필라와 부서진 필라(Shattered Pillar)의 등반이 까다롭다.
다음 날 아침 눈발이 날리며 악천후를 예고하자,
짐을 설동에 데포시켜 놓고 하산한 이들은 3월 6일 밤 2시 등반을 재개하여,
신설로 인해 눈사태의 위험이 있는 북벽 하부를 다시 오르지 않고,
등산 철도 터널 속을 걸어서 다시 엑시트 갤러리 옆의 설동에 도착했다.
다음 날 그들은 눈 덮인 슬랩을 오르고 좌측으로 트래버스하여 높이 40m의 힘든 크랙 밑에 도달했다.
크랙 위의 유리처럼 매끄러운 빙벽에 가느다란 노란색 대마 로프 토막이 얼어붙어 있었다.
선등을 자청하고 나선 발터가 크램폰을 착용한 채
위태로운 그 자일 토막을 핸드홀드로 이용하고 그 크랙을 돌파하는 데 2시간이 걸렸다.
그들은 30m 위쪽의 경사도 60도의 설벽에 비박지를 깎아냈다.
그날 밤 사방에서 눈보라가 휘몰아쳐,
많은 눈가루가 비박 색과 옷 속으로 파고들며 혹한의 고통을 가중시켰다.
절벽 위쪽으로 오버행의 붉은 바위 낭떠러지 로트 플루(Rote Fluh)가 솟아 있고,
그 좌측에 제1빙원이 있다.
거기에 도달하려면 반드시 힌터슈토이서 트래버스를 통과해야 한다.
힌터슈토이서 트래버스는 70도 경사의 슬랩 지대를 좌측 대각선 방향으로 자일 하강하며 통과하는 코스인데,
1936년 독일 청년 힌터슈토이서 일행 4명이 여기를 통과한 후 자일을 회수해 버리는 바람에
나중에 폭풍설을 만나 퇴각할 때 퇴로가 차단되어 절벽으로 하산을 시도하다가 힌터슈토이서는 추락사했고,
라이너와 앙게러는 낙석에 맞아 사망했고 토니는 자일에 매달려 절명했다.
하계에는 보통 이 루트에 다른 팀들이 남겨둔 고정 자일이 걸려 있게 마련이지만,
겨울철에는 등반한 팀이 전무했다.
트래버스 구간의 처음 25m는 3cm 두께의 눈이 덮여 있었고,
그 속에는 군데군데 암벽에 닿지 않고 들떠 있어서
바위에 단단하게 부착되지 않은 약 15cm 두께의 얼음층이 들어 있었다.
거기에 아이스피톤을 설치하다가는 얼음 판 전체가 무너져 내릴지도 모르는 판국이었다.
킨스호퍼가 마치 계란 껍질 다루듯이 아주 조심스럽게 빙벽에 크램폰 앞발 네 개를 박고,
유리 같은 얼음 위를 아이스 액스로 긁어 작은 핸드홀드를 만들며,
위태로운 빙벽 트래버스를 감행했다.
그는 한 시간 후에 암벽에 도달하여 최초로 피톤을 때려 박아 세 사람이 마음놓고 뒤따라 거기에 도달했다.
킨스호퍼가 암벽의 돌출부 너머로 사라지고 나서 얼마 후에 갑자기 자일이 팽팽하게 당겨지더니,
그는 자신의 발 밑에서 무너져 내리는 얼음판과 함께 5m를 추락했다.
하지만 그는 추락지점으로 다시 기어 올라와 나머지 트래버스 구간을 별 탈 없이 건너갔다.
그들은 제1빙원 위쪽 가장자리까지 진출하고 비박했다.
하계보다 낙석과 낙빙의 위험은 적었지만,
혹한이 맹위를 떨쳤고 빙원의 면적이 크게 늘어났고,
빙벽의 얼음이 쇠처럼 강해졌다.
제1빙원 위쪽 가장자리는 풍화되어 잘 부서지는 바위 절벽과 맞닿아 있었는데,
이 절벽의 아이스 호스라는 좁고 가파른 통로로 광활한 제2빙원에 오르게 된다.
이탈리아의 유명 산악인 보나티는 단독으로 아이스호스를 등반하던 중에
굉음과 함께 쏟아져 내리는 돌사태를 만나 늑골 한 개가 골절되는 부상을 입고 퇴각한 후
다시는 아이거 북벽을 찾지 않았다.
다음 날 히벨러 일행은
아이스 호스 속의 얇고 잘 부서지는 얼음을 피해 그 좌측의 눈 덮인 암벽을 등반하여 제2빙원에 도달했다.
여기를 좌측 대각선 방향으로 통과하면 플래트아이언(Flatiron·납작한 다리미)이라는 바위 스텝(Step)이 나타난다.
1935년 독일 청년 제틀마이어와 메링거가 직등으로
아이거 북벽 전체 높이의 3분의 2 지점인 이 스텝의 상부에 도달한 후 폭풍설을 만나 동사하여,
아이거 북벽의 최초의 희생자가 되었다.
그래서 여기를 ‘죽음의 비박지’라고 부른다.
히벨러 일행은 제2빙원을 지나 플래트아이언 우측 록 밴드상에서 비박했다.
죽음의 비박지에서 90여m 위쪽의 절벽에 하단이 거미의 다리처럼 여러 갈래로 갈라진 빙원이 있는데,
이곳을 하얀 거미라고 부른다.
하얀 거미에 이르는 노멀 루트는 플래트아이언 좌측의 가파른 제3빙원을 지나 비탈길 램프로 이어진다.
램프를 150m 오르면 눈 녹은 물이 7m 높이의 폭포를 이루는 폭포 침니가 있는데, 이곳이 난코스의 하나이다.
다음 날 그들은 강풍 속에서 등반을 강행하여 램프 중간 지점에 도달하여 비박하고,
이튿날 선등자 킨스호퍼는 배낭을 벗어 놓고 난코스를 돌파한 후에 배낭을 로프로 끌어 올려야 했다.
폭포 침니는 얼음과 눈이 꽉 들어찬 얼음 침니로 변해 있었다.
그들은 튀어나온 빙벽 돌출부와 유리처럼 매끄러운 빙사면과
‘잘 부서지는 바위 크랙’을 오르고 신들의 트래버스 초입에서 비박했다.
그날 밤 하늘에는 별 하나 보이지 않더니 곧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다른 산의 절벽에서는 클라이머의 자존심과 경쟁심 때문에 퇴각을 결정하기가 무척 어렵다.
그러나 아이거 북벽에서는 진퇴에 상관없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는 일이다.
다행히도 다음 날 아침 눈이 그쳤다.
킨스호퍼가 가파른 빙벽에 커다란 스텝을 깎으며 출발했다.
나머지 대원들은 움직일 때마다 자꾸만 신설이 엉겨 붙는 고정 자일을 따라
가장 작은 핑거 홀드마저 가루눈으로 뒤덮인 4피치 150여m 길이의
신들의 트래버스 빙벽을 갖은 확보의 수단을 동원해 가며 돌파하고 있었다.
히벨러가 하얀 거미에서 3m 떨어진 지점에 도달했을 때,
그의 크램폰 밑의 얼음이 무너지며 갑자기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래 그동안 이 세상에서 즐겁게 지내 왔어.
이것이 내 생애의 최후의 순간인가?’라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번갯불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는 6m쯤 추락했는데, 두 동료가 사력을 다해 자일로 제동을 걸어 추락이 멈췄다.
그들은 높이 150m의 하얀 거미에 도달하여 여기를 직선으로 올라,
오후 2시 스파이더의 위쪽 가장자리에 도달했다.
과거 생과 사의 갈림길이었던,
악명 높은 공포의 스노 걸리인 엑시트 크랙이 나타났다.
헤크마이어와 헤르만 불, 가스통 레뷰파, 마뇽이 악천후 속에서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였던 바로 그 현장이었다.
킨스호퍼가 눈과 얼음이 들어찬 백색 석영 크랙(엑시트 크랙) 속의 바람에 의해
단단하게 굳어진 가루눈을 걷어내며 서서히 전진할 때 나머지 대원들은 때때로 짙은 눈가루 구름에 휩싸였다.
마침내 킨스호퍼는 크랙을 가로지르는 선반 같은 장애물 밑에 도달했으나,
아직도 안전하게 피톤을 설치할 수 있는 장소에서 2m 못 미치는 지점이었다.
그는 등로를 찾아 좌측의 유리 같이 매끄러운 얼음 슬랩으로 옮겨가야 했다.
그는 마침내 난코스에 고정 자일 40m를 설치한 후
좌측의 높이 100m짜리 수직 얼음 폭포인 마지막 크랙 밑으로 트래버스하고,
얼음 침니를 어렵사리 돌파하고 등반을 계속하다가 로프로 확보하고
비좁은 장소에 앉아 비박 색을 뒤집어쓰고 여섯 번째로 비박했다.
그들의 코에서 나오는 김이 얼음 조각으로 변해 비박 색에 붙어 있다가
그들이 조금만 몸을 움직이면 등덜미로 떨어져 녹으며 그들을 끊임없이 괴롭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다.
다음 날 그들은 가파른 4피치 정상 설원을 지나 미텔레기 능선 상부로 역사적인 아이거 북벽 동계초등을 이룩했다.
이후 1966년 미국 존 하린 대가 아이거 북벽에 직등 루트를 개척한 데 이어 일본대가 제2의 직등 루트를 개척했으며,
1991년 미국 빙벽의 달인 제프 로우가 단독으로 아이거 북벽에 또 하나의 직등 루트 메타노이아를 개척했으며,
1992년 프랑스 여성 클라이머 카트리느 데스티벨이 17시간 만에 노멀 루트를 동계 단독등정했다.
국판 121쪽. 1963년 미국 리핀코트 출판사 간행.
이창기 전 강릉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