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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기 교수 항소심 최후진술
존경하는 김동오 재판장님, 김동완 주심판사님, 그리고 안종화 배석판사님, 저의 부덕의 탓으로 지난 서울 교육감 선거의 후보단일화와 관련하여 서울교육과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고 누를 끼친 데 대해 다시 한 번 진심어린 사죄를 드립니다. 다만 저의 교육감 후보 사퇴는, 미래 우리 사회의 동량이 될 학생들이 지나친 성적 경쟁 위주 교육 정책의 한계와 폐해에서 벗어나 개성, 창의성, 배려, 책임감, 민주 시민으로서의 소양 등을 갖춘 심신이 건강한 인간으로 성장하도록 하기 위해 민주적이고 개혁적인 성향의 교육감의 탄생이 절실히 요청된다는 개인적 판단과 결단에 따른 것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고자 합니다. 유감스럽게도 1심 재판부는 저의 이러한 진의를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고, ‘저 박명기가 후보단일화 협상을 주도하여 후보직을 팔았고 선거 이후에는 곽노현 교육감을 협박하여 돈을 뜯었다’는 어처구니없는 판결을 하였습니다.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며, 법적 공정성과 논리의 엄정성을 잃은 편파적이고 부당한 결론입니다. 당시 후보 단일화에 목을 맸던 쪽은 제가 아니라 곽노현 후보 쪽이었습니다.
이는 곽후보가 저에게 ‘차기 교육감’과 ‘서울교대 총장’자리를 지원하겠다고 제안한 사실이나 김성오, 최갑수 등 곽후보 측근들의 증거 기록 및 법정 진술을 살펴보더라도 명백한 사실입니다. 단일화 타결 전날인 2010.5.18 사당동 모임에서 7억원의 선거비용 지원을 먼저 제안한 것도 곽후보의 단일화 협상 대리인 김성오였으며, 당시 금전지원보다 유세차량 계약처리 문제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제가 그 제안을 거절하고 협상결렬을 선언했던 것입니다. 이는 자신의 법적 처벌을 회피하기 위해 모든 책임을 저에게 떠넘기는 진술로 일관한 양재원의 녹취록 발언에서도 확인된 명백한 사실입니다. 보류했던 프랭카드 대금 5000만원을 송금하는 등 선거 완주를 마음먹었던 저는 잠못이루는 고뇌 끝에 다음 날(5.19) 아침 후보 양보를 결심하고 양재원에게 전날 김성오가 제안한 내용을 바탕으로 단일화 협상을 재개하도록 위임하였습니다. 저는 양재원이 어떤 협상 결과를 가져오더라도 대승적 견지에서 수용할 생각으로 협상권을 위임한 것이기 때문에, 그 때까지 사용한 선거비용과 유세차량, 선거홍보물 인쇄 위약금 등을 합쳐 약 10억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되었음에도 양재원이 보고한 그보다 훨씬 적은 7억원 상당의 지원 합의, 나아가 양재원이 나중에 일방적으로 전달한 ‘낙선시 5억원’이라는 조건도 두 말 않고 수용했던 것입니다. 만약 1심 재판부의 판단처럼 금전적 이득만을 목적으로 후보 사퇴를 한 것이라면, 오랜 교육감 선거 준비를 통해 선거자금, 선거조직, 득표율 등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제가 캠프 참모들 대부분의 의견처럼 선거를 완주하여 당선을 노리거나 차기를 도모하기 위해 이름을 알리고 선거비용도 전액을 보전 받는 선거 완주의 길을 택하지 지출 비용보다 훨씬 적은 선거비용 지원을 조건으로 후보직을 사퇴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1심 재판부는 주요 사실 관계를 충분히 심리하지 않거나 재판 과정에서 밝혀진 사실조차 오인하고 왜곡하여 제가 ‘지속적으로 곽교육감을 압박하고 협박하며 돈을 뜯었다.’라는 억지 결론을 도출하고 저에게 징역 3년의 중형을 선고한 바, 매우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곽교육감에게 단일화 합의 문제를 제기한 것은 2010.8.19일 교육감실을 방문했을 때와 최갑수 교수의 주선으로 11월 9일경에 인사동에서 만났을 때의 단 두 번뿐입니다. 그 또한 단일화 합의 관련자들인 양재원, 김성오, 이보훈, 최갑수 등이 저를 기만하고 무책임하게 도망가 버린 이후의 일입니다. 당시 만남에서의 주된 논의도, 금전지급 약속의 압박보다 교육감 당선 후 후보단일화의 공식 전제조건이었던 정책연대 약속을 저버리고 토사구팽식 태도를 보인 곽교육감에게 단일화 약속의 존재를 확인하고 정책협의를 요구하는 성격이 강했습니다. 이 또한 재판 과정에서 밝혀진 객관적인 사실입니다.
문제의 2억원은 단일화 합의와 무관하게 강경선 교수가 마련하여 선의로 지원한 것을 제가 선의로 받은 것입니다. 곽교육감과의 인사동 모임 약 1주일 후인 2010.11.17경에 강경선 교수 등이 저를 찾아와서 ‘곽교육감은 단일화 합의 내용을 몰랐다. 그러나 박교수의 대승적 결단으로 민주ㆍ진보교육감이 탄생한 것이니 진영차원에서 박교수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도와주겠다’고 제안하였고, 처음에는 제가 의구심을 나타냈지만 여러차례 만나면서 상호간에 신뢰가 형성되었고 결국 11.28일 서대문 참치집 모임에서 곽교육감과도 화해를 하였던 것입니다. 12.22경 강교수가 ‘선거부채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금액이 얼마냐?’고 물어 ‘최소 3억원 정도가 필요하다’고 대답하였고 강교수 쪽에서 ‘2억 이상 마련하기는 어렵다’고 하여, 선거부채상환에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고마운 마음으로 그 제안을 수용하였던 것입니다. 이듬해인 2011년 2월에 제가 미국으로 단기연수를 가게 되어 동생을 통해 돈을 받게 된 것인데, 당시 강교수가 그 돈의 출처가 곽교육감이라는 얘기를 하지 않았으므로 저는 후보사퇴로 어려움에 처한 저를 돕기 위해 민교협을 중심으로 교육감 추대위 사람들이 십시일반하여 지원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동생을 통해 이미 2억원을 받았을 때인 4월 경 세검정 장어구이집 모임에서 교육자문위원회 구성 문제로 제가 곽교육감에게 화를 냈던 것이고, 강교수에게는 미국에서 사온 비타민을 선물로 주며 ‘고맙다’는 인사말을 전했지만 곽교육감에게는 본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 직접 ‘고맙다’는 얘기를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1심 재판부는 심리 과정에서 밝혀진 이러한 사실을 배척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제가 ‘선거관리위원회에 고발하겠다’고 압박하고 강경선, 김윤태 교수와의 초기 모임에서도 ‘폭로하겠다’는 언행을 했다고 거짓 사실을 날조까지 하여 판결문에 적시하고 가중 처벌 요소로 삼았습니다. 부디 항소심 재판을 통해 원심의 잘못된 판결이 바로잡히기를 고대합니다.
1심 재판부는 공직선거법 제232조 제1항 제2호를 후보 사퇴자가 주도적으로 금전 제공을 요구하는 ‘후보 매도죄’ 처벌 조항으로 보고 저에게 중형을 선고한 바, 이는 일방적인 법률 규정 해석에 따른 잘못된 판결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선법 제232조 제1항 제1호와 제2호를 ‘후보 매수죄’를 규정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는 상식적인 법률 해석에 비춰봐도 자명할 뿐만 아니라 저의 변호인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법률전문가들, 심지어 곽교육감을 위해 수차례 의견서를 제출한 바 있는 독일 쾰른 대학교 법정책연구소 연구원인 남경국 박사의 유권해석이기도 합니다. 만약 1심 재판부가 본 사건의 적용법률조항을 제대로 해석하여 판결했다면, 매수자 입장에 있는 곽교육감에게 윤리적 동기 등 선의로 2억원을 제공했다고 보고 벌금형을 내렸으므로 후보 사퇴자인 저도 그와 비슷하거나 더 경미한 형을 선고받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지난 교육감 후보 사퇴 이후 이번 사건에 이르면서 재산, 직장, 명예, 사람 등 많은 소중한 것들을 잃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천성적으로 사람을 좋아하고 신뢰했던 그간의 저의 삶의 태도에 대한 회의, 다시 말해 사람의 선한 본성에 대해 회의감을 갖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저는 후보단일화를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적극 권유한 30년 지기 친구 양재원에게서 상상도 못한 배신을 당했습니다. 본 사건 또한 1심 과정에서 곽교육감측 이재정 변호사가 밝힌 바에 따르면, 보좌진 채용약속을 저버린 곽교육감에게 원한을 품은 저의 서울교대 제자 김진수의 고발에 의해 촉발되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저는 구속되어 징역형을 받고 교수직에서 해임당했습니다. 제자인 유다에게 배신당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처럼, 저 또한 연구실 키를 맡길 만큼 믿고 아꼈던 제자에게 배신을 당한 셈입니다. 눈물을 머금고 내린 저의 후보사퇴 결단에 힘입어 당선된 곽교육감과 측근들로부터는 기만과 냉대만 받다가 뒤늦게 화해를 하고 서울교육발전을 위해 손을 잡았으나, 본 사건 발생 이후 ‘선거자금도 없이 출마했다가 후보사퇴를 빌미로 돈을 요구하고 인사지분을 챙기려 한 파렴치한 협박범’으로 매도당했습니다. 일부이긴 하지만 민주ㆍ진보 진영의 사람들이 패권주의적인 방식으로 교육감 후보를 결정하고, 선거 승리 후에는 동지에 대한 최소한의 정치적, 도의적 신의를 저버린 채 이너서클(inner circle) 중심으로 교육정책을 결정하고, 자신들이 만든 교육권력을 지키기 위해 허위사실 유포, 인신공격, 위증 등 이해하기 힘든 방법으로 한 개인을 희생시키는 행태를 보고 분노와 함께 측은지심을 느꼈습니다. 특히 1심 재판과정에서 최갑수, 박석운 같은 민주ㆍ진보진영의 지도급 인사들까지 신성한 법정에 나와서 저를 모함하는 거짓말을 하고, 곽교육감의 변호를 맡은 민변 소속 변호사들조차 곽교육감의 구명을 위해 저의 후보사퇴의 진정성을 흠집내기 위한 유도 신문을 되풀이하고 심지어 저를 협박범으로 비유한 만화까지 그려서 변론하는 것을 보면서 ‘과연 진보의 대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회의와 심적 혼란에 직면하기도 했습니다. 진보진영 분들께 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부디 본 사건의 전말을 냉정히 평가하여, 개혁과 혁신의 미명하에 개인의 인격을 훼손하고 인권을 침해하지 않았는지, 동지에 대한 신의와 인간적 예의를 소홀히 하지 않았는지 진지하게 성찰하는 계기로 삼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이 모든 사실 이상으로 저를 절망하게 만든 것은 1심 재판의 판결이었습니다. 공판 중심이라는 새로운 재판 형식에 큰 기대를 가졌습니다만, 결국 저를 희생양으로 삼겠다는 결론을 미리 정해 놓고 증거를 끼워 맞추듯이 편파적이고 불공정한 판결을 함으로써 언론의 왜곡, 과장 보도 등으로 형성된 저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사실인양 확증하고 말았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억울한 일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서양 속담에 ‘진실은 자루 속에 숨겨둔 송곳과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진실은 그것을 덮어 숨기더라도 그 존재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눈에 뜨이지 않을 뿐 자루 속에 숨겨둔 송곳이 삐져나오듯이 언젠가는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이라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멀리는 프랑스의 드레퓌스 사건에서부터 가까이는 자유당 시절의 조봉암 간첩 조작사건, 5공 때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이르기까지 진실은 결국 모습을 드러내는 법입니다. 저는 이 사건의 진실 또한 결국 실체가 밝혀질 것이라 믿으며, 그것이 드레퓌스 사건이나 조봉암 사건처럼 가혹한 개인적 희생과 사회적 논란 끝에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이번 항소심의 공명정대한 판결을 통해 밝혀지기를 간절히 고대합니다.
이 사건에 대한 1심 판결은 진실의 일부만 인정하고 다른 부분을 왜곡했다는 점에서 명백한 오심입니다. 이 사건의 진실은, ‘제가 주도적으로 후보직을 매도하고 곽교육감을 압박하여 금전을 강탈한 것이 아니라 단일화 합의와 무관하게 저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곽교육감과 강교수가 순수하게 지원한 것을 제가 단일화 대가의 인식 없이 순수하게 받은 것’입니다. 선의로 준 것을 선의로 받은 것, 이것이 본 사건의 진실입니다. 앞서 지적한 곽교육감 측의 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만들기 시도가, 그것이 재판 전략에 의한 것이든 오해에 기인한 어처구니없는 헤프닝이든,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으며 1심 재판부의 판단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사실 역시 불편한 진실입니다. 현명한 항소심 재판관님들께서 1심 재판부의 오류를 바로잡아 법적 진실에 입각하여 공정한 판결을 해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이 자리를 빌려, 증인들과 피고인들에게 충분한 진술 기회를 배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긴 진술을 경청해 주신 재판장님과 두 분 배석판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한, 저의 항소심 변호를 위해 수많은 시간과 열정을 바친 안영률, 김용호, 김재협 변호사님께도 충심어린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제가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시간적 긴박성과 선거비용처리의 심리적 압박감에 쫓겨 충분한 고려 없이 친구 양재원이 제안한 선거비용 일부 지원 약속을 수용한 것은, 공직선거에 출마한 사람으로서 잘못된 판단이었다는 점을 깊이 반성합니다. 법적 경계를 넘은 부분이 있다면 재판장님의 현명한 결정을 달게 받겠습니다. 다만 저의 후보 사퇴의 순수성과 평생 동안 대의명분, 정직, 청렴, 봉사를 중시하며 살아온 저의 삶의 궤적을 혜량하시어 저를 기다리는 가족과 지인들, 그리고 동료교수들과 학생들 곁으로 돌아가 다시 사도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선처해 주시기를 앙망합니다. 감사합니다.
2012. 4. 3
박명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