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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와 학림사
추사 김정희가 나이 30 세인 1815년에 수락산 학림사에서 당시 학승으로 명성을 날리던
학림사 주지 백파(白坡亘璇, 백파긍선)대사와 선에 관한 논쟁을 벌인다.
그 두 사람의 논쟁을 다성(茶聖)으로 일컫는 초의(草衣意恂, 초의의순) 스님이
주시하는데 유생으로서 백파와의 논쟁에서 밀리지 않는 추사에게 감격한다.
초의 선사 역시 추사와 동갑으로 이 사건을 계기로 의기투합된 두 사람은
이후 절친한 친구로 생을 이어간다.
아래의 시는 추사가 학림사(수락산사)에서 지은 시다.
수락산 절에서
水落山寺
나는 해와 달을 함께 바라보는데
광경이 늘 새로움을 깨닫네
만 가지 상이 각각 스스로 존재하는데
헤일 수조차 없는 이 나라 이 땅
누가 알겠는가 어둑어둑 텅빈 곳에
이 눈이 이 사람과 함께인 것을
빈 퉁소소리 비가 되어 섞이는데
허공에 핀 꽃 봄을 이루지 못하네
수중에 백억의 보물은
이웃에서 빌리는 게 아니네
我見日與月(아견일여월)
光景覺常新(광경각상신)
萬象各自在(만상각자재)
刹刹及塵塵(찰찰급진진)
誰知玄廓處(수지현곽처)
此雪同此人(차설동차인)
虛籟錯爲雨(허뢰착위우)
幻華不成春(환화불성춘)
手中百億寶(수중백억보)
曾非乞之隣(증비걸지린)
刹刹塵塵(찰찰진진) : 불가 용어로 무수한 국토를 의미함.
수락산 절에서
水落山寺
바람의 신이 세상 돌려 사람들 미혹하게 하고
장차 도표 없애 동과 서 착각하도록 하네
여러 산은 말 잊은 지 오래되어 고요한데
누가 기회와 인연 보내 새 한 마리 우네
열화 같은 관아와 고요한 세상은 동일하고
황벽나무는 마을의 시내와 함께 가고 오네
흙과 산, 물과 불은 염해와 같으니
이 일에는 수가 낮아 그대에게 양보하네
轉世風輪導衆迷(전세풍륜도중미)
却將表所眩東西(각장표소현동서)
久忘言說千山寂(구망언설천유적)
誰遣機緣一鳥啼(수견기연일조제)
平等熱關仍淨界(평등열관잉정계)
朅來黃蘗與曹溪(걸래황벽여조계)
土山水火如拈解(토산수화여염해)
且讓輸君此着低(차양수군차착저)
拈解(염해) : 불교 교리에 깨달음의 경지에 오름을 의미
또한 김정희의 문집인 완당전집 제 9권에 ‘운석, 지원과 동반하여
수락산 절에서 함께 놀고 석현에 당도하여 운을 뽑다
(同雲石芝園 偕遊水落山寺 到石峴拈韻)’란 시가 실려 있다.
운석은 조인영(趙寅永, 1782∼1850)의 호이고
지원은 조수삼(趙秀三, 1762∼1849)의 호로 이를 살피면
조선의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학림사를 방문하였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