꾀꼬리
꾀꼬리 울름소리
들 샘 정 해각
녹음이 욱어진 숲에서 나무 가지 사이로 간간이 보이는 노란 꾀꼬리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기 그지없다. 머리에 검은 띠를 들르고 황금빛 날개를 펼치고 날아가는 아름다운 자태와 그 청아한 울름소리에 매료되어 나는 어릴 적에 꾀꼬리를 찾아 숲속을 헤매며, 길러도 봤다.
초봄이 지나가고 늦봄이 돌아와 날씨가 제법 따뜻해지는 초여름이 오기 시작하면 이산 저산에서 화답하듯이 울어대는 꾀꼬리 울름소리가 들려온다. 꾀꼬리 울름소리를 잘 들어보면 그 울름 소리가 매우 고음이면서도 아름답고 청아하게 들린다. 때로는 은쟁반에 옥구슬이 굴러가듯 맑고 아름다운 긴 소리로 기교를 부리며 우는 소리를 내는가하면 고음의 날카로운 짧은 소리를 내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그 우는 소리도 다양해서 이것이 꾀꼬리 끼리 의사소통을 하는 일종의 언어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아주 먼 예전에 내가 어릴 적에 할머니께서 들려주시던 이야기에 의하면 꾀꼬리는 열두 가지 소리를 낸다고 한다. 그중에서 지금도 기억이 나는 두 가지 울름소리는 “담배 밭에 고 도령! 담배 밭에 고 도령!” 이라고 울다가 “호박씨 봤곤 ! 호박씨 봤곤 ! 하고 운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우는 뜻에 대하여는 알려고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나쳐버렸다. 그 당시는 무심코 그렇게 듣고만 넘어갔던 것이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참으로 후회막급이다.
꾀꼬리 울름소리에 대한 옛글을 보면 번식 기에 접어든 꾀꼬리는 고양이 우는 소리를 곧잘 낸다고 한다. 어찌나 고양이 울름소리와 똑 같은지 감쪽같이 속아 넘어갈 때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청아한 목소리로 '꾀로 꾀꼬로 끼-꾀꼬롱' 하고 운다고 한다. 또한 한시(漢詩) 중에 '連呼猫尾弄'(연호묘미롱)라는 글이 있어 꾀꼬리가 잇달아 '묘미롱'(猫尾弄), 묘미롱'(猫尾弄) 하며 운다는 것이다. 왜 꾀꼬리 울름소리가 고양이 울름 소리와 연관 지어 졌는지 어우당(於于堂) 유몽인(柳夢寅, 1559∼1623)시절의 국어사 자료에 따르면 고양이[猫]를 '괴'라고 하고 꾀꼬리는 '굇고리 라고 부른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이 국어사 자료로 미루어 볼 때 고양이와 꾀꼬리의 연관된 어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나는 유년기에 꾀꼬리의 아름다운 모습과 그 울름소리에 반해서 꾀꼬리를 직접 기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 당시 산에서 어미 꾀꼬리를 잡는다는 것은 어린 나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새끼 꾀꼬리를 잡아다 기르기로 마음을 먹었다. 봄이 되어 꾀꼬리가 잘 나타나는 숲에서 꾀꼬리가 집을 짓고 새끼를 기르는 곳을 찾았다. 꾀꼬리는 지능이 꽤 높은 영리한 새인가 보다. 아무나 오르기 어려운 높은 참나무 가지 끝에 대롱대롱 매달리다 시피 집을 짓고 새끼를 기르고 있었다. 그리고 꾀꼬리 집은 헝겊조각을 물어다 나무 가지에 돌 돌말아 묵어 놓아 웬만한 강풍에도 끄떡없이 버티게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나는 나무에 기어 올라가 딴 애들이 밑에서 올려준 그물망태기를 매달은 긴 대나무 장대를 받아들고 꾀꼬리 집을 그물망태기속에 놓고 나무 가지를 꺾어서 잡아 내렸다.
막상 꾀꼬리 집을 꺾어다 내려놓고 보니 잔털이 어느 정도 돋아난 어린 꾀꼬리 새끼가 다섯 마리나 있었다. 붉은 몸통에 목은 길고 머리는 큰 것이 좀 흉물스럽게 보여 좀 실망스러웠다. 막상 꾀꼬리 새끼를 잡아다 놓고 보니 어떻게 길러야 할지 걱정이 되었다. 대충 새들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곡식을 먹고 사는 새와 또 다른 하나는 곤충만 잡아먹고 사는 육식 새들로 꾀꼬리는 육식 새로 보고 곤충을 잡아 먹이로 주고 기르기로 했다. 들에 나가 곤충을 잡아서 주려고 가까이 닥아 가면 꾀꼬리 새끼들은 일제히 목을 길게 빼고 입을 크게 벌리며 어서 먹여달라고 끼억 끼억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어떤 때는 웅덩이에서 올챙이를 잡아다 토막을 내서 먹여주었다.
이렇게 몇 달이 지나서 꾀꼬리 새끼들은 제법 건강하게 자라서 노랑깃털이 나기 시작해 온몸을 감싸 갈 즈음 문제가 생겼다. 그것은 꾀꼬리 새끼들에게 꾀꼬리 울름 소리를 들여져 꾀꼬리 소리를 내도록 훈련을 식히지 않으면 커서 꾀꼬리 울름 소리를 못내는 벙어리 꾀꼬리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 시절에는 지금 같은 녹음기가 없을 때라 하는 수 없어 꾀꼬리 소리를 휘파람으로 흉내를 내서 들려주는 수밖에 없었다. 꾀꼬리 울름소리는 휘파람소리와 같아서 잘 흉내를 내서 기교를 써가며 부르면 얼핏 듣기로는 잘 구분이 가지 않는다. 나는 휘파람으로 꾀꼬리 울름소리를 열심이 익혀서 틈이 나는 되로 간간이 들려주면 어느덧 꾀꼬리 새끼들도 따라서 부르게 됐다. 나와 꾀꼬리 새끼들이 주고받는 휘파람과 울름소리는 멋진 화음을 내며 아름다운 하모니를 연출하고 있었다.
이윽고 여름도 지나가고 가을에 접어들고 있었다. 이젠 곤충도 잡기 어렵고 귀해서 꾀꼬리 먹이 감 때문에 걱정을 하게 됐다. 하는 수 없어 꾀꼬리를 놓아주기로 했다. 그러나 야생에서 자란 꾀꼬리와 달리 무사히 남쪽나라를 찾아 날아갈 수 있을까. 걱정됐으나 마음을 굳게 다져먹고 새장에서 날려 보냈다. 잘 가거라! 정들었던 꾀꼬리여!
신록이 우거지는 유월이 오면
이 산 저 산 화답하며 울러대던
꾀꼬리 소리가 생각이 난다.
꾀꼬리는 열두 가지 소리를 낸다는
할머니가 들려주신 그 얘기 중에
지금 기억나는 것은 세 가지뿐 이지만
다분히 소박한 해학적인 성에 관한 노래 뿐
꾀꼬리는 호박씨 봤곤, 호박씨 봤곤
울러대다가 담배 밭에 고도령,
꿱 ! 어서 저리 가거라 하고 운다나
삭막한 도시화 속 농촌에서
지금도 변함없이 때 마쳐
그 정겨운 꾀꼬리 울름소리
이 산 저 산에서 들려오네.
담배 밭에 고 도령
담배 밭에 고 도령
호박씨 봤곤, 호박씨 봤곤
꿱 ! 어서 저리 가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