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수 있는 행운
2024.4.11.
사람은 많은 다양한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 질병, 뱀, 불, 물, 맹수, 높은 곳, 밀폐된 장소, 어둠, 불확실한 미래, 고독, 재정적 어려움 등. 그러나, 죽음보다 거의 모든 사람이 공통으로 공포를 느끼는 것이 있을까?
모든 생명은 태어남으로써 죽음을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비록 사람의 수명이 불과 일이백 년 전보다도 두세 배나 늘어났지만, 사람에게도 죽음은 회피할 수 없는 숙명의 길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갈수록 안락사, 조력사 등을 허용하는 추세이지만 죽음이 삶의 목표가 될 수 없다. 죽기 위해서 태어나는 생명은 없다. 견딜 수 없는 고통, 치유 불가능의 질병, 또는 삶에 대한 깊은 회의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게 했을 뿐이다. 도리어 죽음이 불가피하기에 우리는 허여된 삶의 시간을 소중히 하여야 한다.
대부분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생각하기조차 싫어한다. 그래서, 유언이라는 말조차 꺼내기가 아주 힘들다. 하지만, 이 무시무시한 죽음을 행운이라고 한 이가 있다. 바로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이다. 그는 자신의 장례식에서 다음과 같은 조사(弔詞)를 읽어 주길 원한다.
“우리는 죽을 것이고 그것이 우리에게는 행운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태어나지 못했기에 죽을 수 없다. 나를 대신해 여기에 존재할 수 있었지만, 실제로 낮의 햇빛을 보지 못한 이들이 사하라의 모래알 수보다 많다. 확실히 이 태어나지 못한 이들 중에는 키이츠보다 위대한 시인, 뉴턴보다 위대한 과학자들이 포함된다. (중략) 우리는 우리 같은 생명체의 생존에 완벽한 행성에 산다.”
진화생물학자인 그는 우리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희박한 확률이 실현된 것인지 알려 준다. 그리고, 생명이 살기에 알맞은 행성이 얼마나 드문지도 언급한다. 그의 말대로 지구상에 넘쳐나는 듯 보이는 생명의 탄생은 기적이다. 극도로 희박한 가능성이 실현된 것이다. 더군다나 살아가기 좋은 이 지구에 태어났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혹자는 죽음이 마치 궁극적 목적지로 가는 통로 또는 해방구인 것처럼 설파한다. 죽음으로써 내세로, 천국으로 갈 수 있고, 영생의 길에 이른다고 하면서. 마치 현생(지금 지구에서의 삶)은 죽음의 강을 건넌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짧고 예비적인 시간인 양 말이다.
하지만, 육신이 존재함으로써 정신이, 각성이, 의식이 나타나는 것이 진리인 한 우리의 육신이 없어지는 죽음 이후의 세계는 없다. 죽으면 우리의 육신은 분해되어 자연의 일부인 물질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수백억 분의 일도 못 되는 확률에 당첨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은 한 번밖에 없는 생을 사는 것이다. 설령 그 육체가 분해되거나 잡아먹혀 다른 생명의 일부가 된다고 하여도, 그것을 어찌 재생이나 환생이라 할 수 있을까? 사자에게 먹힌 가젤이건, 가젤에게 먹힌 풀이건, 부패해 흙 속에 섞인 사자의 사체이건 죽은 것은 죽기 전의 바로 그 생명체가 아니고, 다시는 태어나지도 못한다.
이렇게 기적과 같이 태어난 되풀이 되지 않는 유한한 삶이기에 현생의 삶이 소중하다. 사람은 유별나게도 삶을 고뇌한다. 때론 죽음을 생각하고, 괴로워한다. 유전자가 부여한 살아남아 종족 보존과 증식의 의무를 벗어 던진(?), 아니면 적어도 뜻대로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은 생의 목적을, 의미를 찾고자 한다. 우리의 번민은 맹목적으로 유전자의 지시를, 목적을 받아들이지 않는, 아니 받아들일 수 없는 데서 기인한다. 지혜로운 우리가 그냥 생식의 도구로 살다 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의미를 찾아 헤맬지라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삶은 다시는 오지 않고, 주어진 시간이 한정된 만큼 매우 소중하다는 것을! 유전자가 그의 뜻대로 우리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했지만, 우리는 지상에 넘치는 물질이 이룰 수 있는 최고의 가능성인 사람이다. 그러니, 태어난다는 것은 기회요, 특권이요, 행운이다. 리처드 도킨스처럼 거꾸로 생각하자. 그러면, 투덜대지 않고, 이 ‘고해의 바다’라는 삶의 기회에 기꺼이 감사할 수 있지 않을까? 이 한 번뿐인 짧은 삶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무언가 자신이 세운 목표를 추구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