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0년전에 잡지에 기고한 글로 회원님과 교유하기 위해 실어봅니다.) - 수필 - 다리유감(橋脚有感) 정 진 만
다리! 말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하고 아주 친숙한 이름이다. 서양에선 차가 다니고 사람이 건너 다니는 교통수단으로만 생각할지 모른다. 동양에서 그것도 우리나라에선 교통수단뿐만 아니라 만나고 헤어지는 이정표(里程標)의 의미를 더 부각시킨다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인류가 물길을 잇는 수로와 길목을 연결하는 다리를 만들어낸 것은 당연하였고 오늘에 와선 다리는 국가 기간산업인 도로의 연장선상이 되고 있다.
40-50대는 잘 알만한 ‘콰이강의 다리’‘레마겐의 철교’등은 다리를 주제로 한 전쟁영화로 지금도 다리를 사이에 두고 사투를 벌이는 스팩타클한 장면이 살아 움직이듯 눈에 선하다. 특히 나치독일이 등장하는 영화에 제3국으로 탈출하다 다리 위 검문소에서 발각되어 가족의 일부가 채 다리를 건너지 못하고 절규속에 죽어갔다. 영화가 끝나도 우리가족이 당한 일처럼 비애에 젖어 슬픔의 잔영(殘影)이 새록새록 피어나 괴롭혔다. 이렇듯 다리를 두고 삶과 죽음이 교차(交叉)하고, 만남과 이별이 반복되는 인간사의 드라마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녹아 스며 있는 것이다.
우리 역사에 제일 먼저 등장하는 다리에 관한 사건이 하나 있었다. 일러“만부교사건”(萬夫橋事件)이다. 개경(지금의 개성) 보정문(保定門)안에 있는 다리인데 서기942년 거란이 화친을 맺자고 하여 고려 조정에30명의 사신과 진상물로 낙타를 50필 보내 왔었다. 그런데 고려는 사신을 섬으로 유배 보내고 낙타는 다리난간에 매달아 굶어 죽게 만들었다. 이 일로 거란은 수차례나 고려를 침공해 왔다. 거란을 배척한 이유는 형제국인 발해를 멸망시킨 나라이며 금수(禽獸)의 나라로 인식한 것이라고 한다. 훈요십조에 기록이 있는데 이 사건으로 낙타교로 불려졌다고 전해진다.
회상해 보니 유년시절에 엄마의 말을 잘 듣지 않을때 곧 잘 등장하는 이야기. ‘너는 다리밑에서 주워왔다. 정말 끔직한 이야기였다. 그 당시 다리밑엔 거지들이 움막을 쳐 놓고 살았고, 사람 잡아먹는(?) 문둥이도 살고 있다는둥 무서운 이야기가 있었다. 이렇게 엄마의 놀리는 이야기를 듣고 황당함이나 지극히 잠깐동안의 공황을 장년층들은 거의 한 두 번 체험했으리라. 결국 ‘내 엄마,아버지는 거지,문둥이’(?)로 생각하고는 무서움과 놀램으로 울음보를 떠트리곤 하였다. 억울해서일까? 전에 어머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아들한테 앙갚음을 해 본적이 있기도 하다. 실로 다리에 얽힌 사연은 많고도 많다. 영화나 TV에선 아침 일찍 나무 한짐을 장에 팔러간 효자아들을 동구밖에 설치 된 외나무다리 어귀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노부부가 있었다. 돈 벌어오마!하고 괴나리봇짐을 메고 한양길을 떠나는 서방님은 새색시가 울면서 배웅하는 징검다리를 건너가기도 하였다.
징검다리에 얽힌 전설에 의하면 옛날 과부어머니가 자식을 여럿 두고 어렵게 살아왔는데 ,됫박보리쌀이라도 구하기 위해 하천을 건너 옆마을의 홀애비 박서방을 만나러 갔었다. 아들들이 매일 밤 젖어오는 어머니를 보고 밤에 미행하여 그 하천에 징검다리를 놓아 어머니를 위한 효도(?)를 했다는 징검다리다리는 연결시켜 주는 것으로 거의 고정되어 있지만 부산의 그 유명한 들었다, 놓았다를 복하는 영도다리. 명물중의 명물로 일부러 이 광경을 보기 위해 먼곳에서 새벽밥을 지어 먹고 구경까지 올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다리가 들어질때면 사이렌이 울렸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 진기한 구경거리에 모여 들었다고 한다..
기성세대는 잘 알만한 남,북간에 전쟁일보 직전까지 갔던 판문점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에서 미류나무벌목사건’으로 야기된 미군병사의 피살과 북한병사와의 충돌은 분단된 조국의 아픔이었고 현실이었다. 그렇다! 늦은 밤에 다리위에서 선남선녀의 로맨스가 이루어 지기도 했다. 다리난간에 목을 매어 죽는 일도 있었고 다리에서 투신하여 익사하는 사고가 한강다리에서 지금도 간혹 일어나고 있다.사람마다 다리와 관련된 추억도 더러 있겠지만 다리에 얽힌 나의 각인된 상념은 좋은 것이 아니었다. 국민학교 2-3학년 시절로 기억된다.
진돗개반종인 하얀 강아지를 약1년이상 키웠을까? 찌는 듯한 여름날 오후. 어떤 영감이 다리난간에다 매달아 놓고 몽둥이로 사정없이 패대며 잡는 개는 내가 키운 개였다.목불인견(目不忍見)이었다. 그 일 때문에 한동안 뭇매를 맞아 비명에 죽어간 불쌍한 그놈을 생각하며 그 다리가 정말 원망스러웠고, 흘러가는 하천물도 미웠었다. 아! 어릴때의 잊지못할 잔인한 기억이 아직도 뇌리에 챗바퀴 돌 듯 역류하는 녹이 쓴 구멍이 쑹쑹하고 빠꼼한 철판다리. 그 다리에 수많은 개들이 난간에 매달려 맞아 죽어갔다고 훗날 어른들에게 들었다.양정 안동네에서 거제리로 연결되는 유일한 가설 다리.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전 까지 건설현장에서 고층작업시 디딤용으로 많이 사용했던 미군비행기 활주로용 철판을 엮어서 만든 다리였다. 그때 그곳은 유난히 개구리가 많이 울어 ‘개굴산’이란 지명으로 불리어 졌고 도적과 강도가 출몰한다 하여 밤에는 출행을 금하기로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기야 그땐 주변이 야산이었고 자정이 되면 간혹 여우가 울기도 하였다. 자고나면 옆집 강아지가 물려갔다는둥 살벌한 때라 밤이 깊어가면 어른들은 아이단속을 했던 것 같다. 지금은 부산시청이 들어서고 하천은 전부 복개되어 그 자취를 찾을 길이 없다.
신문보도에 의하면 작년에 태풍 ‘매미’로 상판이 일부 떨어져 나간, 일제가 건설한 구포다리를 철거한다, 보존한다로 논란이 일고 있다. 칼 마르크스‘가 설파한 대로“파괴는 건설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근시안적이고 행정편의적인 발상으로 무조건적인 철거를 서두른다면 크나 큰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전시행정이다. 유태인들은 ‘아우슈비츠개스실’에서 비참하게 죽어간 수백만의 동포와 유린당한 역사의 아픔을 잊지 말자며 “통곡의 벽” 을 만들어 길이 후세에 전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국민들은 건망증이 심한 민족일까? 일제식민의 역사를 관용으로 치부하는 아량이 큰 민족일까? 관용도 좋고 선린우호도 좋다. 허나 역사의 교훈을 잊게 되면 또다시 식민 지배를 받는다는 것은 세계사가 가르쳐 주고 있다.기실 정치,경제,문화에 이르기 까지 해방이 된지 반세기가 넘도록 친일청산이 안되다 보니 식민역사에 대한 교훈이 부족한 큰 이유가 되었다. 대동아전쟁의 군수물자를 실어 날랐으며 강제징용으로 ,전쟁터로 앳된 나이에 피눈물을 뿌리며 떠났던 다리. 우리 할머니들이 남방전선인 라오스,버마,사이판등지에 정신대로 끌려가 대부분 돌아오지 못한 한 많은 구포다리! 공출이란 미명하에 숟가락,놋그릇까지 바쳐야 했던 식민수탈의 역사.그 울분과 엉어리진 비애의 상징으로 대표되는 다리. 식민지배 규탄을 수천번 되뇌는 것 보다 상판이 떨어져 나간 옛 구포다리 보존이 훨씬 역설적이고 산 교육이 되지 않을까? 교훈은 말로 하는 것 보다 산교육장이 더욱 효과적이다. 앙상한 교각만 남은 왜관철교 보존이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훌륭한 메시지가 되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할게다. 총체적인 부실공사로 무너져 내린 서울성수대교. 다시는 이 땅에 날림과 부실로 인한 다리붕괴가 없도록 보존으로 국민들에게 타산지석으로 삼았어야 했었다.
어차피 새 다리를 만들려고 한다면 옆에 세우면 되는 것이다. 상판이 떨어져 나간 다리는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흉물로 비쳐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런저런 단편적인 이유로 철거하게 된다면 문화유산의 파괴라는 비난을 받아 마땅할게다. 뉴스를 들어보니 철거비용보다 보존비용이 많이 들어간다고 한다. 구태여 철거대상으로 지목된 다리를 보존이란 명목으로 보강공사를 하고 페인트칠을 하여 차가 다니도록 하자는 발상인가? 굳이 보존비용도 예산낭비이고,철거도 예산낭비가 아닌가? 지금 현 상태로 그대로 두는 보존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그대로 두어도 되는 다리를 왜 철거에 집착하는지 그 사람들의 속마음을 알 수 없다.구포다리가 상판이 모두 무너져 내리고 교각만 남아 있다 하더라도 교훈과 문화적 가치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식민역사의 오욕과 비애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역사의 다리. 바로 오늘의 풍요를 있게 한 우리네 노인세대와 같은 ,퇴출해선 안될 소중한 증인이기 때문이다.
필자도 어느덧 나이 60을 바라보면서 새로 시공해야 할 ,금이 간 불안전한 다리로 판정받듯 ,조만간 철거(?)된다고 생각하니 시한부 삶이 정녕 서럽기만 하다. 아! 회한(悔恨)의 안타까운 세월이여! 만신창이의 몸으로 가쁜 숨 몰아쉬며 횅한 눈빛으로 목발 짚고 서 있는 구포다리. 어느새 동병상련(同病相憐)이 엿물처럼 찰싹 붙어와 소근대며 뺨을 어루만지고 목을 껴안는다. 북받쳐 터진 참을 수 없는 만상(滿想)의 연민이, 벌그스레한 낙조(落照)에 빨려 들어가 해묵은 원혼(冤魂)들의 무서리 한(恨)으로 천갈래,만갈래로 찢겨져, 낙동강물에 흩날리며 너울거리고 있다. 2004년 4월 |
첫댓글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인사가 늦엇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잘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