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산성(부여) 답사 계획(14-28차 : 연번 219회차)
금년도 제28차(연번 219회차) 산성 답사는 부여 청마산성 입구 백마강 가까이 위치한 주장산성(主葬山城)을 찾아간다.
위치 : 부여읍 정동리
산성 이름이 주장(主葬)이다. 주장산이라는 이름이 의문스럽다.
"정동리의 진산인 표고 123m의 주장산을 테뫼식으로 구축한 토축산성이다.
이 산성은 부여의 동북방 금강 대안에 위치한 외성으로 사비 도성수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남에는 청마산성, 서쪽에는 울성산성과 마주 보고 있다. 성둘레는 약 250m 가량 된다. 성벽은 대부분 유실되어 그 형적이 희미하다 "라고 부여군지 성지 편(718쪽:1987년 간행)에 적혀있다.
1) 출발 일시 : 2014년 9월 23일(화) 09:30
2) 출발 장소 : 대전지하철 반석역 5번 출구 밖
3) 이용 차량 : 큰산지기 승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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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하게 떠난 답사길, 누군가는 차라리 아무것도 모른 채 떠나는 것이 어떤 의미에선 더한 감동을 줄 수 있다던데, 이번 답사 길이 그런 셈이 되었다. 빈약한 자료에 의지해서 간 곳, 그곳에 토성터는 찾기가 힘들고, 다만 흔적으로 지명으로 주변 정황으로 이해할 뿐이다. 예기치 않았던 발굴 현장도 보고, 청산성도 덤으로 둘러보게 된다.
예정된 시각보다 조금 일찍 출발한 일행은 세종시의 금강변을 따라 내려간다. 청벽을 지나고 공주 공산성을 지난다. 제60회 백제문화제가 9월26일부터 (10월 5일 까지) 시작된다고 강에는 모형 선박들이 즐비하고, 울긋불긋 사방에 현수막이며 축제를 알리는 포스터가 요란하다.
공산성을 왼쪽으로 바라보며 금강을 건너 정지산 아래 터널 밑으로 돌아드니 고마나루요, 바로 아래로는 금강보가 있고, 다시 강변따라 난장이 코스모스 가득 핀 백제 큰길을 따라 부여 방면으로 향한다. 금강이 백마강으로 바뀌는 곳에 왕진교와 왕진나루가 있고, 가로수 길은 소나무로 도열해 있다. 정동리에 있는 백제보에 들려 주변을 둘러본다. 잘 만들어진 백제보 전망대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고, 강건너 청양군장평면 들판과 멀리 칠갑산이며, 백마강 건너에 있는 천정대며, 그 뒤 서쪽의 증산성까지 눈 여겨 본다. 동쪽으로는 우리가 가려는 주장산이 백제보를 내려다 보고 있고, 동북쪽으로는 계룡산이 뚜렷하다. 남쪽으로는 청산성과 사비도성이 백제교와 함께 보인다. 청마산성은 주장산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가늠을 해 볼 수 있다.
찬반 양론으로 시끌시끌했던 4대강 사업의 실제 모습을 뒤로 하고 본격적으로 주장산성을 찾아간다.
가는 길도 서툴러서, 물어보고,산성에 대한 희미한 기억 조차도 없는 마을 사람들과 헛수고스런 문답을 뒤로 한채 정동리 샘골 동네 용고개 너머 서쪽 꿩바위 마을을 거쳐 올라간다. 123m 여에 불과한 낮은 산이지만 낯선길을 물어서 올라가는 길은 힘들기만하다. 쨍쨍 내려쬐는 가을 햇볕은 더욱 더 힘들게 한다. 올라가면서 찾아보아도 이렇다할 토성 자취가 보이지 않는다.
송림사 둘레길이라는 안내 표지는 있어도 산성에 관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정상에 올라보니 민묘 표석에 쓰여있는 산이름이 주장산 (走樟山) 으로 부여군지의 주장산(主葬山)과는 한자가 다르다.
성안에 송림사가 있다는 데 내려가보니, 절 답지 않은 굿당 수준의 암자인데, 주지스님은 보이지 않고 개짖는 소리만 요란하다.
내려다 보이는 백제보를 중심으로 독정이나루와 호암나루(범바위나루)를 중심으로 청산성, 청마산성 등 주변 산성과의 관계를 가늠해본다.
샘골의 유래에 따른 궁금증이 실물인 우물을 찾아보고는 정동리 샘골 동네를 나온다. 기와굽던 동네에서 지명이 남아 있는 기와골을 지나다가 우연찮게 유적지 발굴현장을 지나가게 된다. 그냥 돌이킬 수 없어 기웃거려본다. 현장 담당자가 산성과산성 사이에 있는 도로유적지를 발굴 중이라면서 수레바퀴 자국이 선명한 발굴 사진을 보여주기도 한다. 부여(사비)에서 공주(웅진)으로 통하는 옛길 유적이란다. 남쪽으로 보이는 청산성에서 부여라성 복원 모습이 훤히 보인다. 다시 찾아간 곳은 청산성을 끼고 있는 부여 라성을 덤으로 보게 된다. 청산성 안에서는 건물지 발굴이 한참인데, 밤에 폭우가 예고되어 있어 비에 대비하느라 분주하다.
복원이전의 원형을 기웃거려가며 돌아본 청산성, 늦은 점심을 위해서 구드래나루터까지 간다. 더위에 지친 목을 시원한 메밀 막국수로 해결하고는 백제문화제 준비에 한참인 백마강변을 돌아본다. 옛일을 아는지모르는지 갈대와 코스모스가 한들거리는 백마강 구드래 나룻터에는 관광유람선이 고란사 앞으로 돌아오고 있다. 강 건너 부산(浮山)은 저녁 어스름에 제 그림자를 강물에 드리우고, 대재각은 "일모도원 지통재심(日暮途遠 至痛在心)" 을 강심에 깊이 드리운채 지나간 시절에 대한 회한을 백마강물에 흘러내리는 듯하다.
<백제보에 들려 쉴겸 주변 지형을 살핍니다. 동쪽에 주장산이 바로 이어져 있고, 왕진나루는 독정이나루를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백마강교 바로 이웃에 청산성이 건너편 우측에 천정대 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망대도 올라가봅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백제보와 백마강 주변>
<백제보 다리 공도교 건너는 청양군 ㅊ장평들입니다. 멀리 충남의 알프스라는 칠갑산이 보입니다.>
<백마강 상류인 위쪽으로는 왕진교와 왕진나루가 있습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주장산 서쪽 사면입니다. 중턱에 송림사 건물이 보입니다.>
<물문화관에 전시된 옛 사진들 중의 하나: 금강의 모습입니다.
장항을 거쳐 강경과 부여 공주 신탄진인 부강까지 수운이 이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백마강교 아래로는 사비도성이 보이고 바로 못미쳐서는 청산성이 있습니다.>
<동북쪽으로는 계룡산줄기가 뚜렷합니다.>
<정동리 마을 유래비 속에서 주장산성의 흔적을 찾습니다. 산성내에 송림사가 있다고 하는데 글쎄요, 현지 주민 중에 아는 사람을 아직 못만나고, 다만 샘골의 유래를 말해주는 우물만 확인해봅니다. >
<샘골( -> 井洞)이 란 지명의 우물은 지금도 여전하게 맑은 물이 나오고 있습니다.>
<송림사 가는 둘레길 표지는 있는데 산성 흔적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더 노력이 필요한 곳>
<주장산 정상에는 삼각점이 있고, 바로 서편에 민묘가 있는데 잘 보니 주장산의 한자 표기가 부여군지에 나온 한자지명과는 다르게 적었습니다. 主葬山이 아닌 走樟山으로>
<전통사찰 답지 않은 송림사 뒷편에서 건너다본 서쪽의 백제보와 백마강 모습>
<내려오는 길에 만난 으름덩굴 덕분에 오랜만에 야생의 맛을 느껴봅니다.>
<오얏골이 기와굽는 마을에서 나왔다는데, 독정이나루가 바로 독(= 옹기)을 실어 나르는 나루라는 뜻으로 해석되어집니다. 왕진리로 다닌다해서 왕진나루라고 알려져 있지만 현지 주민들은 독정이나루로 부릅니다. (호암나루 대신 범바위나루로 우리말 이름으로 부릅니다.)>
<오얏골이 와얏골에서 나온 지명에는 공주시 상왕동의 왕촌에도 있는데 같은 이유로 보아집니다.>
<오얐골에서 부여로 가다가 만난 백제유적지 발굴현장 : 산성과 산성 사이로 난 교통로를 발견한 곳이다. 부여에서 공주로 통하는 주요 통로임을 확인하는 유적 발굴 현장>
<부여 라성의 일부인 청산성을 찾아갑니다.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사비라성 복원사업 중 구간>
<복원된 라성(청산성)에서 옛 원형을 찾아봅니다.>
<청산성 안에서 이뤄지고 있는 유적 발굴 현장>
<구드래나룻터에 들려 백마강의 모습을 봅니다. 백제문화제 준비가 한참이었습니다. 고란사와 낙화암 일대를 돌아보는 판옥선 형태의 유람선이 선착장에서 관광객을 기다립니다. >
< 사비성 삼신산의 하나인 부산의 모습: 대재각이 멀리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