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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혼제, 개인적 일탈이었는가?
정현경 박사, 초혼제 (1991)
초혼제는 무당 푸닥거리 한마당이다. 한국인 정현경 박사(당시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는 1991년 2월, 오스트레일리아 캔버라에서 개최된 세계교회협의회(이하 WCC) 제7차 총회 개회식에서 초혼제를 지냈다. 정현경이 무녀처럼 WCC 개막 무대 위에 등장하여 행한 초혼제와 기조강연은 20세기의 교회사적 사건이다. 30년의 시간이 흐른 시점에도 기독교계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에큐메니칼 신학자들은 이 초혼제를 한국인 신학자 정현경의 '개인적 일탈'이었다고 한다. WCC와 무관하다고 한다. 예장 통합 에큐메니칼 위원회 위원 금주섭 박사(장로회신학대학교)와 이춘복 목사(경기중앙교회)는 정현경 개인적 일탈이었다고 하는 동영상을 유튜브에 게시했디, 반면에 같은 위원회 위원이며 WCC 연구가인 정병준 박사는 초혼제가 새로운 성령론을 모색하려는 WCC의 하나의 시도였던 면이 있다고 말한다. 팔자와 함께 2016년 브니엘신학교 강당에서 가진 찬반토론에서 한 말이다. 필자는 이 초혼제가 WCC의 종교혼합주의(Syncretism)를 드러낸 기획된 퍼포먼스로 본다. 어느 견해가 사실 또는 진실에 가까운가?
아래의 글은 필자가 <월간고신>(1991.06), 54-63쪽에 기고한 글을 옮겨 온 것이다. WCC 바로 알기 시리즈 강의는 이 초혼제가 WCC의 종교혼합주의의 한국의 민속신앙 형태로 표한 '개인적 일탈'이었는지, 이 단체의 종교혼합주의의 꽃이었는지 확인한다. 성경은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희 가운데에 용납하지 말라"(신 18:11)라고 한다. 초혼제가 정현경의 '개인적 일탈'이었다면 다행이다. 그렇지 않고 이것이 WCC가 지향하는 종교다원주의의 퍼포먼스였다면 사안이 심각해 진다. 초혼제는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의 특성과 WCC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이다.
1. 20세기의 오순절 사건
세계교회협의회(WCC)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한국의 몇몇 대 교단들도 회원교회로 가입되어 있는 동 협의회는 지난 (1991) 2월 호주 캔버라에서 제7차 총회를 개최하였다.
기독론 혹은 사회적인 주제를 내걸었던 예전 총회와는 달리 ‘성령’과 ‘기도’를 테마로 하는 ‘오소서 성령이여, 만물을 새롭게 하소서’라는 주제 하에 모였다. 북한 조선기독교연맹 대표들을 포함한 약 4천 명의 세계교회 지도자들이 모여 예배, 발표, 토론 등의 행사를 가졌다.
이 모임에 참석했던 한국의 H 신학대학 교수는 이 총회를 “20세기의 오순절 사건”이라고 불렀다. 자신은 오순절 체험 비슷한 것을 했으며. 그저 신나기만 했고. 온 회중은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면서 새 힘을 얻곤 하였다고 극찬하였다(<기독교사상>, 1991.4, pp.84, 88).
2. 기독교의 유일성을 거부
복음전파의 공동사역을 위한 선교협의체로 1948년 암스테르담에서 시작된 이 단체는 상이한 교회적 전통과 예전 등의 벽을 넘어 함께 모여 일한다는 목표로 출범하였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점차 정치적, 사회적 이념구현에 관심을 쏟아왔고, 타 종교와의 대화를 부르짖은 나이로비 총회(1975) 때부터는 종교혼합주의적인 경향을 드러냈다.
이번 총회 역시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등의 종교 대표자들을 초청하여 그들과 함께 “대화”하며 함께 “기도”하였다.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을 팽개치고 종교혼합주의적 본색을 완연히 드러냈다는 점에서 교회사적인 한 획을 그은 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의 유일성을 거부하고, 성령을 물활론적으로 이해하며, 죽은 영들을 불러내 그들에게 기도했다.
이와 같은 모임을 과연 “20세기의 오순절 사건”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도대체 이 단체는 “기독교”라는 이름하에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가? 어떤 기초 위에서 이러한 탈기독교적 신념이 싹텄는가?
세계교회협의회 제7차 총회가 성령론을 주제로 내걸기는 했지만 공식문서들을 통해 드러난 바에 따르면 예전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사회적인 문제를 최우선적 선교과제로 삼았다.
제1분과 회의는 ‘생명을 주시는 자여, 당신의 피조물을 보전하소서’라는 주제 하에서, 생태계 위기에 관한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였다. 환경보존이라는 관점 하에서 성경전체가 다시 이해되어야 하고, 기독교신학 자체도 새롭게 조명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인간은 땅에 대해 참여자이며 자연과 더불어 사는 존재임을 주장하였다. 창조질서 보전의 과제가 우선적 선교과제라고 결론지었다.
제2분과 회의는 ‘진리의 영이여 자유케 하소서’라는 주제 하에서 구조악 제거와 사회개혁이 자유의 출발임을 강조하였다. 정치, 경제, 인권, 빈곤, 인종차별, 성차별, 마약 등을 다루면서 세계 평화 유지를 위해 전쟁 산업을 제한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국민들이 납세까지도 거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였다. 정의가 지배하는 미래사회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밝혔다.
제3분과 회의는 ‘일치의 영이여, 우리를 화목케 하소서’라는 주제 하에서 전통적인 교회론과 선교론을 논의의 대상으로 삼았다. 오늘날 교회는 코이노나아 기능과 다양성 속에서의 일치 노력이 아직도 미흡하다고 지적하였다.
제4분과 회의는 ‘성령이여 우리를 변화시키고 거룩하게 하옵소서’라는 주제 하에 모여 변화, 갱신, 성화를 기원하면서 가난한 자들과 그들의 영성 곧 유심성(唯心性)에 억눌리고 고통당하는 자들의 삶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 단체가 탈기독교적이며 종교혼합주의적 경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은 총회 기간 동안 행해진 여러 가지 행사들과 강의, 발표 내용들에서, 특히 ‘성령’과 ‘기도’에 관련된 강의와 행사들을 통해 드러났다.
우선 기독교의 유일성을 반대하는 동 총회의 탈기독교적 신념은 ‘타종교와의 대화분과’ 위원장인 웨슬리 아리아라자 박사의 ‘기도’에 관한 논문발표를 통해 단면적으로 드러났다.
아리아라자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그 사랑은 넓고 크기 때문에 하나님은 기독교인만 구원하시거나 저들의 기도만 들으시는 것이 아니라 불교인, 힌두교인, 모슬렘 등 모든 기도하는 자들의 기도를 들으신다고 강조하였다.
이것은 그리스도만이 보편적으로 유일한 구속자인 것이 아니라 다른 종교들도 저들 스스로의 구속과 구언의 길을 갖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모두다 “구원”에 이른다는 종교다원주의 혹은 범신론적 신념을 반영하고 있다.
동방정교회 대주교 파르테니오스 씨는 “성령”이란 주제 하에 동방정교회의 성령론을 강의하였다. 그러나 그 외 강연자들의 성령론은 탈기독교적이었다.
하버드대학교의 신약신학자 크리스 스텐달 교수는 성령을 에너지로 해석하면서 물활론적 성령론을 제시하였다. 물활론은 범신론의 한 형태로 모든 자연물에 생명력이 있다는 사상이다.
제3세계 여성대표인 한국인 정현경 교수는 성령을 무속신앙이 말하는 죽은 자의 영(한국에서는 흔히들 귀신이라고 부름), 그리고 동양사상의 기(氣)와 동일시하였다.
정현경은 강의에 앞서 영들의 내림을 기원하는 초혼제(招魂祭)를 지냈다. 상복을 연상케 하는 흰 치마저고리를 입고. 창호지를 쓴 초혼문을 읽으며 한 맺힌 영들과 피조물들의 영들의 내림을 기원하는 초혼제를 지냈다.
이어서 “한 맺힌 신들이여 오소서 우리를 새롭게 하소서”라는 내용의 강의를 통해 무속신앙과 기독교신앙을 혼합시켜 보려고 시도했다. 청중은 열렬한 기립 박수를 보냈으며 북한교회 대표 고기준 목사는 그녀를 “WCC의 꽃”이라고 극찬했다고 한다.
정현경은 초혼제에 앞서 호주 원주민 두 사람과 호주교회 청년들로 구성된 댄서들을 동원하여 토속적인 춤을 추게 하였다. 이어서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성령(the Spirit)의 나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만물을 새롭게 하는 사역을 위해 우리는 성령의 능력을 받기 위해 모였습니다. 우리 자신을 비움으로써 성령의 길을 준비합시다”라는 말로 초혼제를 시작했다.
정현경이 말하는 성령은 지신(地神) 혹은 기(氣)를 뜻한다. 정 교수는 시종일관 성령과 기를 동일시했는데 기란 생명의 에너지이며, 생명의 바람이며, 숨이다. 기는 이분법적 습관(Dualism)을 반대하며, 하늘과 땅과 사람간의 조화로운 내적 교통을 이룰 때 왕성해진다. 어떤 분열이나 분리가 있을 때에는 에너지, 기가 흐르지 않는다. 즉 성령이 역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한국의 안병무 교수가 기와 르아흐(성령) 사이에 본성적 유사성이 있다고 주장한 바를 그대로 반영한다.
정현경은 참석자 전원이 호주 본토인들의 무속 관례에 따라 “성령”과의 만남을 위한 겸손의 표시로 발에서 신을 벗을 것을 요구했다. 모세도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을 만날 때 신을 벗었음을 상기시키고 초혼제를 지내는 동안 모두가 신을 벗어 성령과의 만남에 동참하라고 말했다. 이제 “겸손한 몸과 마음으로 피조물의 울부짖음을, 그들 영의 울부짖음을 들읍시다”고 외친 후. 한 맺힌 죽은 자들의 영, 생물들, 피조물들의 영을 차례로 불러나갔다.
“오소서, 신앙의 조상 아브라함과 사라의 검둥이 여종, 버림받아 쫓겨난 이집트인 하갈의 영이여”로 시작된 초혼문은 다윗의 탐욕 때문에 전쟁터에서 죽어간 충성된 용사 우리아의 영, 전쟁의 승리에 대한 아버지의 약속 때문에 하나님의 제물로 불타죽은 입다의 딸의 영, 예수 탄생 시에 헤롯의 군사들에 의해 살해당한 남자 아이들의 영, 잔 다르크의 영, 중세기에 사악한 재판으로 불태워진 수많은 여인들의 영, 십자군 전쟁 때 죽은 인민들의 영, 식민주의 시대와 이방세계를 향한 기독교 대 선교 기간에 희생당한 원주민들의 영 등을 차례로 불러나갔다. “오소서 나치대학살기간 독 가스실에서 죽어간 유대인들의 영이여, 오소서 수소폭탄에 의해 죽은 히로시마 인들의 영이여, 오소서 제2차 세계 대전 중 정신대에 끌려가 이용당하고 매 맞아 죽은 한국 여인들의 영이여……”
정현경은 이어서 전쟁터에서 죽었거나 피난선에서 떨어져 죽은 베트남 인들의 영, 인도의 간디의 영, 미국의 마르틴 루터 킹의 영, 남아공화국에서 인종차별주의에 반대하다 고문당해 죽은 흑인투사의 영, 칠레의 민주화를 위해 노래운동을 하다 손 잘리고 혀 잘려 죽은 가수의 영, 인민의 해방과 자유를 찾다가 죽어간 이름 없는 여인들의 영, 태평양 핵 실험지대에서 죽어간 물렁뼈 아이들의 영, 광주, 리투아니아 등에서 탱크 밑에 깔려 죽은 자들의 영, 아마존 숲에서 오늘도 끊임없이 살해당하고 있는 자들의 영을 부르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오소서, 땅과 공기와 물의 영이여, 강제추행 당하고, 고문당하고, 돈을 위한 탐욕 때문에 추방당한 자들의 영이여, 오소서 걸프 만에서 피 흘리며 죽어가고 있는 군인, 시민 그리고 바다 생물들의 영이여”라고 외쳤다.
마지막에는 “오소서 해방자, 고문당하고 십자가 위에서 죽은 우리의 형제 예수의 영이여”라고 외쳤다. 창호지에 쓴 초혼문을 다 읽은 그녀는 그것을 촛불에 태워 그 재를 하늘로 날려 보냈다.
초혼제를 마친 그녀는 “나는 한 맺힌 영(귀신)들로 가득 찬 땅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며 준비된 영문 원고를 읽어 내려갔다. 한 맺힌 귀신들은 죽어서도 구천으로 떠돌아다닌다고 믿는 한국의 민속신앙을 상기시키고 앞서 불러낸 영들 혹은 귀신들은 성령의 가시적인 아이콘(상)들 이라고 주장했다.
“이 거룩한 영들, 덕분에 우리는 우리 중에 확고하게 역사적으로 임재하시는 성령을 느끼고, 보고, 만질 수 있다. 그들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삶의 한 복판에서 성령의 구체적이고도 육체적이며 역사적인 임재를 느끼고 만지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책임은 이 한 맺힌 영들의 울부짖음을 듣고 그릇된 것을 바로잡으려는 이 영들의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맺힌 영들로 가득 찬 나라 한국으로부터 온 그녀 자신은 백인들에게 땅을 빼앗긴 호주 원주민들의 한 맺힌 영들과의 결합을 위해 찾아 왔다고 말했다. “오 성령(귀신)이여 오셔서 모든 피조물을 새롭게 하소서”, 오셔서 중동전쟁도 그치게 하시고, 배금사상도 사라지게 하시고, 인간중심주의에서 삶 중심주의로, 죽음의 문화에서 삶의 문화로 바뀌게 하시고, 타인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자들로 만들어 달라는 등의 내용으로 강의를 진행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성령의 이미지는 동양종교의 관음의 이미지와 신비롭게 연결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관음은 동아시아 종교에서 사랑과 지혜의 여신으로 숭배되는 깨달은 존재(bodhisattva)로서 스스로 원하는 시기에 언제든지 열반(나르바나)에 들어갈 수 있는 존재라고 말했다.
3. 종교혼합주의적 대세
한(恨)을 주제로 한 정현경의 초혼제는 이처럼 한국의 무속신앙(샤마니즘)과 기독교를 접목시키려는 시도였으며 그것은 ‘성령’이라는 이름하에 사령들을 불러들인 ‘내림굿’ 혹은 ‘한풀이’ 한마당이었다.
기독교와 재래문화의 접촉 시도는 본래 토착화신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져왔다. 그들은 기독교의 복음을 재래문화권에 이식시키기 위해서는 토착화를 통한 선교적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지신(地神)을 성령이라고 부르고, 한 맺힌 사령들을 불러들이고 그것들이 성령의 아이콘이며, 그것들에게 기구하는 일은 토착화 노력을 넘어서서 한 종교의 요소를 다른 종교의 요소와 혼합 혹은 결합시켜 기존 종교의 본질을 변화시키려는 종교혼합주의(Syncretism) 신앙이다.
정현경의 초혼제와 주제 강연은 공청회로 이어졌고, 찬반의 의견이 있었으나 절찬, 동의, 긍정의 견해가 지배적이었다고 한다.
비록 정현경의 성령론이 동 총회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론은 아니라 할지라도 이 총회의 지배적인 무드였다는 것은 분명하다. 총회는 어떤 결론을 끌어내는데 역점이 있지 않고 방향성을 토출해내는 데 의의를 가진다.
이러한 강의들과 행사로써 세계교회협의회는 돌이킬 수 없는 종교혼합주의적 대세를 확인한 셈이다. 이로써 동 협의회는 종교혼합주의적인 본색을 완연히 드러냈고, 더 이상 전통적인 개념이 기독교가 아님을 천명한 셈이다. 이들이 ‘성령’을 논하고 ‘기도’를 운운하지만 그것은 이것들을 이용하여 동 협의회의 범종교적 연합의 한계성을 넘어보려는 시도에 불과했다.
종교혼합주의는 국내에서도 다수의 신학자, 목사들에 의해 주창된 바 있다. 기독교의 유일성을 부인하고 범신론적인 종교다원주의를 부르짖는 이들은 하나님은 기독교인의 기도만 들으시는 것이 아니며, 예수만이 보편적으로 유일한 구속자이신 것이 아니라 각 종교가 다 구원의 길을 알고 있다는 등의 말을 공공연히 해 왔다.
이 신학 사상은 오래 전 미국 유니온신학교의 교수였던 폴 틸리히가 주도하는 종교사학파에 의해 주창되어 왔다. 틸리히 교수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그가 일본종교계를 둘러보면서 어느 신도(神道) 사제와 대화를 나누었다. “내가 만약 일본에 태어났더라면 틀림없이 신도사제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서구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기독교신자가 된 것이고 당신은 일본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신도사제가 되었을 뿐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이것은 기독교나 신도가 외형적인 차이가 있을 뿐 종교로서는 동일하다는 신념을 단면적으로 드러낸 말이다.
종교혼합주의를 포함한 극단적인 진보주의 신학은 전통적인 기독교회가 가진 신학양식과는 다른 새로운 신학양식(Theological Paradigm)에 기초를 두고 있다. 신학양식은 몇 가지 신학적 혹은 철학적 전제를 가지고 사물을 이해하는 사고의 틀이다.
진보주의자들이 갖는 으뜸 되는 두 가지 전제를 손꼽는다면 그 첫 번째는 상대주의적 진리관이다. 절대적인 진리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철학자 칸트의 인식론에 큰 영향을 받은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이 무엇을 안다는 것은 객관적인 실체가 어떤 지식을 인간에게 전달해 주기 때문이 아니다. 인간 속에 생리적으로 주어진 인식기능이 무형의 인지덩어리를 구실로 삼아 지식의 내용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장미꽃을 보고 그 빛깔이 빨갛다는 지식을 갖게 되는 것은 그 장미가 빨갛다고 알려주기 때문이 아니다. 인간의 마음이 그것은 빨갛다고 규명하기 때문이다. 지식은 마음이 인지의 자료들을 질서 있게 정리하는 과정의 결과로 이루어진다. 지식에 있어서 인간은 수동적이 아니고 능동적이다. 따라서 모든 합리적 지식은 상대적이며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검증 불가한 전통적인 교리에 집착하는 일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실존적 삶에 관련된 현실적 주제들 즉 사회악과 구조 악을 제거하며 환경을 개선하고 질병을 퇴치하는 등의 일이 곧 구원사역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지식이 상대적이며 주관적이기 때문에 지식을 가질 수 엇다는 것이다. 인간의 인식능력이 제한되어있기 때문에 인간은 인간으로서 경험할 수 있는 이상의 어떤 것을 파악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은 경험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인 진리에 관한 합리적인 지식을 가 질 수 없다. 신의 존재, 영생, 성육신, 부활, 동정녀 탄생 등 전통적인 기독교 교리는 믿을 만한 합리적 지식 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성경이 그것을 가르치나 그것은 신화일 뿐이며 선의의 거짓말 일 수 있다. 따라서 어떤 특정 종교를 유일무이한 절대적인 종교라고 주장하거나 유일성을 주장하는 것은 독단이요 허구라는 것이다. 종교의 본질은 윤리, 선, 인간다움 등 을 추구하는 일이며, 이것들을 추구하는 종교는 모두 다 동일한 가치와 고귀성을 지닌다고 생각한다.
동 협의회가 전통적 교리에 대한 관심과 인간의 영혼구원, 교회의 설립 등의 선교적 관심을 탈피해 정치적 사회적 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 온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검증 불가한 전통적인 교리에 집착하는 일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실존적 삶에 관련된 현실적 주제들 즉 사회악과 구조악을 제거하며 환경을 개선하고 질병을 퇴치하는 등의 일이 곧 구원사역이라고 생각한다.
남미의 해방신학, 한국의 민중신학, 여성신학, 흑인신학 등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신학사조들이다. 이러한 삶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들로부터 인간을 해방(구원)시키는 것이 선교과업이며, 이를 위해서는 타종교와의 대화와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자연주의이다. 이것은 만사가 자연적인 법칙에 따라 움직여 나간다고 믿는 사고유형이다. 자연주의에 입각한 진보주의적 신학자들은 성경에 나타나는 초자연적 역사들을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이 아니라 하나의 신화이며, 어떤 종교적 신념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무의식적 환상 혹은 은유적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의 성육신, 동정녀 탄생, 물위로 걸으심, 바람과 바다를 잠잠케 하심, 대속적인 죽음, 부활사건 등도 마찬가지이다. 기독교의 본질은 윤리적 목적 수행 그 이상은 아니다. 예수는 탁월한 윤리선생이었는데 정치적으로 희생당한 해방운동 선구자라고 생각한다.
이번 세계교회협의회 총회가 ‘성령’을 주제로 삼고 ‘기도’를 강조했다는 점이 주목을 끄는 것은 그동안 이 단체가 자연주의에 입각한 진보주의적 신학에 의해 주도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 단체를 이끌어 가는 신학자들은 ‘성령’을 에너지, 정령, 혹은 기(氣)등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것은 여전히 초자연적인 신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그들의 기본적인 신념을 드러낸 것이다. 영적 실체를 인정하는 듯한 자들도 있으나 대체로 그것에 대한 합리적인 지식을 가줄 수 없다는 불가지론적 입장을 취한다. 또한 영적실체는 자연법칙을 거슬러 행동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신의 존재를 의식하고 기도를 드리는 것 같으나 실상은 그 신의 직접적인 혹은 초자연적인 활동에는 관심이 없으므로 기도의 유심(唯心)적 기능을 강조한다. 만사는 인간의 마음에 달렸고 인간이 마음을 비우면 스스로 신이 된다고 믿는 것이 이들의 지배적인 신념이다. 기도의 대상은 결국 인간의 마음이다. 정현경의 기도의 대상인 성령의 이미지는 관음 곧 깨달은 존재[覺者]며 언제나 스스로 열반에 들어갈 수 있으나 만물이 해방될 때까지 들어가기를 스스로 부인하는 존재이다.
이러한 관음은 불교의 부처 곧 인간을 뜻한다. 이들은 하나님을 전능한 분으로 믿으면서 수동성 안에 갇혀서 모든 형태의 삶과 연대하여 투쟁하지 아니하고 회피하는 수단으로서 사용되는 기도는, 마술적인 해결책을 기대하는 유아기적 신앙의 바람이라고 생각한다.
해방신학자들과 진보주의자들은 자주 영성(Spirituality)을 강조한다. 그것은 성령활동에 기초한 신자의 영적 각성을 뜻하지 않는다. 인간의 유심성(唯心性)을 의미한다.
이러한 몇 가지 “전제”를 “신앙”하는 진보주의자들은 일반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부인한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만 그리스도는 예수 한 분뿐이라고 믿지는 않는다. 최근에는 ‘무명의 그리스도’를 신봉하는 자들이 많다. 그리스도는 언제 어디서나 현현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스도는 중국에서 도포를 입은 도사로 나타나 인간을 구원해왔고, 한국에서는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은 무명의 촌장으로 나타나 사람들을 구원해 왔다고 믿는다. 오늘날의 그리스도는 노조 지도자로, 탱크 밑에 깔린 자들의 위로자로, 운동화 제조공장의 공장장으로 일하고 계신다고 생각한다. 그는 오늘도 서울에서, 남미에서, 아프리카에서, 남아시아에서, 산호섬에서 인간들을 구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기독교를 유대종교공동체의 경험적 산물 및 타종교와의 혼합체로 여긴다. 유대종교와 고대 근동지방의 종교 내지 신화의 혼합체로, 유대사상과 헬라사상의 혼합물로, 유대전통과 다양한 헬라, 로마 등의 다양한 이방종교와의 혼합의 산물로 본다. 그래서 이들은 기독교 신앙을 다른 종교 혹은 문화적 양태와 혼합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와 무속 신앙을 혼합 혹은 접목하므로 새로운 종교 이론을 구축해 보려는 노력은 바로 이러한 신념에서 비롯된다.
진보주의자들과는 달리 전통적인 기독교는 객관적인 진리가 있음을 믿는다. 이러한 신앙은 앞에서 열거한 진보주의자들이 가진 것과는 다른 신학양식(Paradigm)에 기초해 있다. 이 양식 역시 두 가지 신학적 전제는 첫째,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성령의 감동 하에 “특별계시”라는 방법을 통해 진리를 인간에게 계시하셨다고 믿는 믿음이다.
하다님은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입을 의탁하여 온전한 진리를 말하게 하시고, 역사적 사건을 통해 진리를 계시하셨고, 그것을 성경에 기록되게 했다고 믿는다. 둘째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초자연적 역사에 대한 믿음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제한된 인식 능력과 시간적, 문화적인 제약성을 초월하여 신적 진리를 인간에게 초자연적으로 계시하셨다. 그래서 이 초자연적 능력의 산물인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이요 객관적이며 불편(不偏)한 진리라고 믿는다.
성경에 기록된 구속사에 나타난 기적사건, 초능력적인 사건들은 모두 이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능력의 산물들이다. 이 능력은 오늘도 하나님의 백성들 속에서 계속되고 있다. 하나님은 오늘도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분이시다. 우리가 기도할 때 기도를 응답하시기 위해 초자연적인 능력을 행하시는 분이심을 믿는다.
이 능력은 오늘도 하나님의 백성들 속에서 계속되고 있다. 하나님은 오늘도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분이시다. 우리가 기도할 때 기도를 응답하시기 위해 초자연적인 능력을 행하시는 분이심을 믿는다.
4. 교회들의 개방적인 자세요구
현대 신학계 내의 갈등은 이처럼 상이한 신학양식 간의 암투이다. 세계교회협의회 내에서도 이러한 암투는 자리 잡고 있다. 둘 다 지적 형태의 신념이지만 상반되는 전제와 사고양식을 가지고 있다. 둘 다 신앙적인 체계이지만 상반된 기초에 근거해 있다. 세계교회협의회 내에도 이러한 암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모든 회원교회가 다 극단적인 진보주의 입장을 취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교회협의회에 속한 회원교회 모두가 탈기독교적이거나 종교혼합주의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이러한 경향이 동 협의회의 주도적 경향이란 것은 명백하다. 전통적 신앙고백과 신학양식에 근거하지 않는 이 같은 이들의 가르침이 ‘다른 복음’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들은 교회들이 폐쇄적인 태도를 버리고 개방적인 자세를 취하라고 외친다. 그러나 도대체 무엇을 향한 개방이란 말인가? 성경을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표준으로 수납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초자연적 능력과 역사하심을 부인하면서도 참된 ‘기독교’ 신자가 될 수 있는가?
전통적인 신앙을 고백하고, 전통적인 신학양식을 갖고도 우리는 이러한 문제에 앞장설 수 있고, 또 마땅히 그래야 한다. 성경이 기독교인의 문화적 사명의 지엄함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전통적 신학양식을 갖고는 자연보호, 공해, 핵무기, 구조악, 빈부, 질병, 노사갈등 등의 현실문제와 교회의 일치성, 나눔, 참여 그리고 세상의 정의, 평화, 인권 등에 대해 관심을 갖고 담대하게 행동할 수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보수주의자들 또는 복음주의자들이 이러한 일들에 대해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백인우월주의, 식민지주의, 서구 제국주의적 발상에 오리엔테이션이 된 보수주의자들, 복음주의자들은 대체로 이 일에 꾸물거리고 망설이고 주저하고 두려워 해 온 것은 사실이다.
정통적인 신앙을 고백하고, 전통적인 신학양식을 갖고도 우리는 이러한 문제에 앞장설 수 있고, 또 마땅히 그래야 한다. 성경이 기독교인의 문화적 사명의 지엄함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가난하고 소외되고 한 맺힌 자들에 대한 외면은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외면이다.
최덕성 박사 (고신대 신학대학원 교수, 역사신학)/<월간고신> 1991년 6월호, 54-63쪽의 글을 옮겨 게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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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후원을 해주시는 분이 안계십니다...
먹을것을 사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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