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신사작가님께서 주신글]
해변의 길손아!
Stranger on the Shore
나는 한 곳에 가만히 있지 못하는 무드셀라 증후군이 생겼는지,
역마살(役馬煞)이 끼었는지, 천하를 주유(周遊)해야 직성이 풀린다.
마음은 풍경이고 보행은 바람이다. 느리게 걸으면 풍경이 남고 빠르게 걸으면 풍경이 사라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제자들을 가르쳤다.
그의 공부비결은 느리게 걷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소요학파(逍遙學派)라고 불렀다.
우리 일행은 소요학파처럼 산천경계를 구경하면서 만만디하게 여행하기로 했다.
발길이 경주에 닿았다. 석굴암이다.
세계적인 보물에 석굴암 불상이 들어갈까?
지구가 멸망을 하면 외계로 피신해야할 보물로, 어떤 고미술 사학자는 다음 세 가지를 들었다.
실론의 불치사리(佛齒捨離)
석굴암 본존불상
미케란젤로의 다비드상(David)
석굴암 불상이 포함된 것에는, 우리가 모르는 비밀이 있을 터. 그래서 그 사가(史家)에게 문의를 했더니
석굴암 불상은 1:2:3:4의 비율이다.
얼굴 너비가 2.2자(1자는 약 30㎝), 가슴 폭은 4.4자, 어깨 폭은 6.6자, 양 무릎의 너비는 8.8자
정사각형과 대각선, 정삼각형과 수평선, 원에 내접하는 정 6각형의 사용 등 수학적 기법으로 만들어진 구조다.
경주 힐튼호텔에서 1박을 했다. 거기서 얻은 것은 ‘가족의 정’이었다.
전원화가가 꿈이었던 김우중 회장 아들 선재는, 미국 유학 중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그때 나이 24세
사랑하던 아들을 위해 경주호텔에 선재 아트센터와 선재미술관을 지었다.
경주에서 고개를 넘으면 바로 감포 바다다.
감은사(感恩寺)는 문무왕이 세운 절이다. 그런데 절터만 외롭게 남아있다
감은사지 3층 석탑 앞에서
아무리 높이 솟아도 홀로 선 돌을 탑이라 하지 않는다. 인생의 연륜처럼 셋에서 다섯이 받쳐 높아질 때 탑이다.
이정란의 시 ‘돌탑,’에서
해변에서 그리 멀지않은 바다 암초에 해중왕릉(海中王陵)이 있다.
신라 문무왕은, 자신의 시신을 바다에 수장해서라도. 왜구의 침략을 막으려고 했다.
옛날에는 바닷물이 해중왕릉에서 감은사 경내까지 들어와, 문무왕의 혼백이 왕래하도록 했다고 한다.
늦게 감포에 도착했다. 저녁을 먹어야겠는데, 하나 같이 미식가들이라 뭣을 먹을까?
소동파(蘇東坡)가 말하기를, 복어 맛은 가히 목숨과 바꿀만하다. 그래서 모두가 내가 추천한 복 요리에 동의했다.
이제는 술집에 갈 차례다. 객이 떠난 바닷가에서 싸늘한 불빛이 보였다. 포장마차다.
아무거나 한 접시 내 오소! 석양 낙조와 바다 냄새가 안주 아닙니꺼?
머리에 듬성듬성 성에가 낀 주인
이맘때면 할 일이 없어 술타령에 놀음으로 시간을 보내는데, 과메기 만드는 일이 생겨서 그나마 다행이요.
늙으막에 저승길 노잣돈 마련하라는 삼신할미의 속마음인가 보오.
갈매기가 족히 과메기 한 두름은 가져갔을 거라며 껄껄 웃었다.
그러면서 맛이나 보시라고 한 바구니를 내왔다.
청어 눈알을 꿰어 말린 것이 과메기인 관목어(貫目魚)디.
사람이 그리워서인지 오랜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자기소개를 했다.
포항 수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감포에서 어촌계장을 삼 년째 하고 있는 김길수입니다.
갈매기와 어촌계장은 노래나 시로 어울리는 제목이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더러 어쩌란 말이냐
청마 유치환
바다를 거닌 시간은 인생 나이에서 빼준다고 했는데
영국 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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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9acirevMrK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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