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질
전기웅
오토바이가 빗길에 미끄러지자
뒤집힌 풍뎅이처럼
단절된 줄 알았던 인간관계가 깨어난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몰려와
휴대폰을 꺼내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넘어진 오토바이를 일으켜
도로 가장자리에 갖다 놓는다
구급대가 달려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침묵하며 다시 제 갈 길로 가는 사람들
그들의 도도한 눈빛에서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하는 어머니의
부드러운 손길이 보았던 것이다
입술을 떠난 말들은
더불어 사는 이웃의 위로였다
눈마주 치지 않으려 했던 고립된 엘레베이터 안에서
적막의 커튼을 치고 숨어있던
어색함의 봉인을
아무는 상처의 딱지인 듯
나 뜯어낸다.
시작노트
붓질 한 번에
봄의 벚꽃, 손끝에서 흩어진 사랑을
여름의 해바라기, 지평선 너머 그리움을
가을의 국화, 쓸쓸한 기억을
겨울 동백,얼어붙은 침묵을
담아내고 싶었다
내가 그리는 꽃들은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닌 가시처럼 돋아난 상처와
그 사이로 스며든 햇살과
시간에 깎여나간 마음이거나, 흔적들이다
그 꽃들 속에
내 인생을 담아 그린 한 폭의 그림
내 마음의 꽃으로 남기고 싶었다.
2024년 말복 무렵 전기웅
첫댓글 선생님 단절된 관계 속에서도 타인과의 따뜻한 연결이 깨어나는 순간을 자연스럽게 담아낸 시 감사합니다
단절되지도
도도한 눈빛도 아니었어
그저 무심하고 서먹했을 뿐인데
연결고리를 찾지 않고
과장법이 심했어
시의 묘미를 살리려고
찬사를 보내는 독자를
찾아 기웃거리는 시
정시인은 바른글을 쓰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