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적인 백반장자 하워드 휴즈의 일대기를 다룬 <에비에이터>는 종래의 스콜세지 영화와 다르다. 화려한 삶을 살았던 휴즈에게 인생은 끊임없는 도전이었지만 또한 공포였다. 스콜세지는 이 거물의 삶에서 거대한 쾌락과 공허를 동시에 본다.
마틴 스콜세지는 지금까지 전기 영화를 적지 않게 찍었다. 대표작 <분노의 주먹>은 세계 라이트급 챔피언 제이크 라모타의 일대기를 다룬 것이며 달라이 라마의 생애에 존경을 바친 <쿤둔>도 연출했다. 좀 특수한 경우이긴 하지만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필생의 역작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도 넓게 보면 이 범주에 속한다. 전기 영화라고 하지만 이것들은 모두 스콜세지의 일관된 작품 경향을 반영했다. 곧 죄와 수난, 구원과 부활의 이야기였다. 링 위에서 맹수처럼 군림했으나 타인을 다스리지 않으면 안 되는 강박증으로 삶을 망가뜨리고 자신이 운영하는 삼류 나이트클럽에서 썰렁한 스탠딩 개그로 말년을 보내는 <분노의 주먹>의 제이크 라모타는 미성년자 고용 혐의로 감옥에 갇힌 채로 벽을 치며 "나는 챔피언"이라고 외친다.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에서 주 예수는 타락한 땅에서 겪은 수난을 뒤로하고 부활한다. <쿤둔>에서 중국 국경을 넘어 탈출하던 달라이 라마는 환생한 부처가 아니냐고 묻는 국경 수비대 병사의 질문에 "나는 당신들의 선한 그림자"라고 말한다.
스콜세지의 신작 <에비에이터>의 주인공 하워드 휴즈는 스콜세지 영화의 종래 주인공들과 다르다. 휴즈는 초기 대표작 <비열한 거리>나 <좋은 친구들> <갱스 오브 뉴욕>에서처럼 천한 도시의 뒷골목에서 폭력과 강박에 시달리는 건달이 아니다. <카지노>의 주인공처럼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는 제왕이긴 하나 음지보다는 합법적인 양지에서 대중의 주목을 받는 백만장자다. 청년 시절에 이미 막대한 부를 상속받아 평생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만 했던 모험가이기도 하다. 휴즈는 누구도 시도하지 않는 일에만 매달린다. 천문학적인 제작비를 써가며 공중 비행 전투 장면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고, 거대한 빌딩 규모의 비행기를 제작하며, 가장 오래 날 수 있는 항공 노선을 기획한다. 그는 모험가다. 끊임없이 앞으로 내달리지 않으면 안 됐던 어떤 충동에 사로잡혀 범인의 상상 규모를 저만치 앞질러 간다.
규칙을 파괴했던 개척자의 삶
<에비에이터>는 1920년대에서 1940년대까지 휴즈의 삶에 집중돼 있다. 청년 휴즈는 유산 상속으로 받은 돈을 무기로 영화 산업에 뛰어든다. 새뮤얼 골드윈이나 루이스 메이어 등의 거물이 좌지우지하던 고전기 할리우드에 뛰어든 휴즈는 바보 취급을 받는다. MGM의 사주 메이어에게 24대의 카메라를 빌려줄 수 없겠느냐고 파티장에서 청했다가 망신을 당한 휴즈는 순전히 자기 돈으로 영화를 찍겠다고 작정한다. 공중 전투 장면을 소재로 한 <지옥의 천사들>을 연출하며 휴즈는 실제 하늘을 날 비행기들을 제작하고, 근사한 배경을 장식할 구름을 기다리느라 수개월을 소비하고, 유성영화 시대가 열리자 무성영화 필름을 버리고 아예 처음부터 모든 걸 다시 찍는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제작비 때문에 관심과 비웃음을 샀던 <지옥의 천사들>은 대재앙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던 주위 시선과는 달리 개봉하자마자 제작비의 수십 배를 벌어들인다.
예측 불허의 반전으로 가득 찼던 휴즈의 삶을 통해 스콜세지는 그를 괴짜 모험가로 그린다. 이는 스콜세지의 영화 족보에선 없는 인물이었다. 어른이 되면 세상에서 가장 빠른 비행기를 타고 제일 재미난 영화를 만들고 가장 큰 부자가 되겠다던 소년 휴즈의 야망은 청년 시절에 이미 다 이뤄진다. 그는 금기를 깨뜨리는 영화 제작자였으며 가장 멀리 나는 비행기와 가장 큰 비행기를 제작하는 항공 운항사의 경영주이자 그 자신이 손수 비행을 즐기는 조종사였다. 휴즈는 한시도 멈춰 있지 않는다. 늘 앞으로 나아가고 자기가 속한 사회 시스템의 규칙을 깨뜨린다. 사람들은 만지면 황금으로 변하는 미다스의 손을 지닌 그에게 반해 꼬여들고 여자들도 모여든다. 그는 할리우드의 스타들이 모이는 클럽 코코넛 그로브에서 저명인사들과 함께 웃고 떠들고 마신다. 환상적인 삶에 그는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지독한 행운과 지독한 괴짜 모험가 기질이 결합돼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을 이루는 것이다.
이 모든 휴즈의 성공 스토리를 다루는 스콜세지의 시선에는 고전기 할리우드에 대한 매혹이 자리 잡고 있다. <에비에이터>는 <분노의 주먹>보다는 <뉴욕, 뉴욕> <앨리스는 더 이상 여기에 살지 않는다> 등과 더불어 클래식 할리우드에 대한 매혹과 인물들의 분열증을 포개놓은 스콜세지의 또 다른 관심사를 표하는 영화에 묶일 수 있을 것이다. 재즈 시대에 대한 동경과 영화처럼 행복하게 살 수 없는 재즈 예술가의 개인적인 삶을 다룬 <뉴욕, 뉴욕>에서 꿈결처럼 스쳐 지나가는 30, 40년대의 향수 어린 낭만적 세계의 풍경이 <에비에이터>에서 아스라하게 묘사된다. 캐서린 헵번, 에바 가드너 등 당대 스타들과의 연애를 비롯한 숱한 로맨스가 휴즈의 영화 스튜디오와 단골 클럽과 비행기에서 펼쳐진다. <앨리스는 더 이상 여기에 살지 않는다>의 여주인공 앨리스가 그토록 꿈꿨던 <오즈의 마법사>의 세계가 실제처럼 눈앞에 있는 것이다.
상영 시간이 2시간 40여 분에 이르는 <에비에이터>가 긴 것은 그 때문이다. 스콜세지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영화를 만드는 휴즈의 열정을 묘사하는 초반 대목을 과다하게 길게 늘려 묘사한다. 그는 절대 군주들이 장악했던 할리우드를 자신의 힘만으로 정복했다. 휴즈의 영화는 양질의 영화는 아니었지만 할리우드의 규칙을 깨뜨리는 영화였다. 제인 러셀의 젖가슴을 시종일관 전시하는 음탕한 영화 <무법자들>이 미국 검열위원회의 제지를 받자 휴즈는 큰 젖가슴을 지닌 여러 여배우들의 대형 브로마이드를 전시해 놓고 그녀들의 유방 계곡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노출돼 왔는지를 실증적으로 증명한답시고 대학 교수를 동원해 검열위원들에게 일장연설을 펼치게 한다. 휴즈는 다른 사람들이 마음속에 품고 꺼내지 않는 것을 실연하는 거의 무제한적 충동의 소유자였다. 그에겐 그런 힘이 있었다. 그 힘이 고전기 할리우드에 발휘됐다는 것이 스콜세지에겐 기적처럼 보였을 것이다.
제왕과 어린애의 이중 이미지
이제, 영화 제작자로 성공한 휴즈의 삶이 또 다른 단계로 넘어가면서 비행기의 속도와 크기와 신기술에 집착한 휴즈의 항공사 경영주로서의 모험이 시작된다. 이 단계에서 스콜세지는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자의 강박을 다룬다. 어린 시절 자신을 목욕시켜 주던 어머니로부터 바깥 세상에서 감염되는 세균의 공포를 전해 들었던 휴즈는 평생 바깥 세상과 단절하고 살았다. 그의 회사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그에게 서류를 전해줄 때도 항상 손에 장갑을 끼고 있어야 했다. 휴즈는 30분마다 손을 물로 씻었으며 이 증상은 그가 건설한 왕국에 누군가가 침입하려 든다고 느낄 때 더 심해진다. 영화 속의 한 장면에서 유럽과 미주 직항 노선을 기획하던 휴즈는 경쟁사인 팬암항공사의 사장 후안 트립을 사교장에서 만나 은근한 협박을 들은 후에 화장실에 가 손을 박박 닦는다. 그야말로 손에 피가 나도록 박박 닦는다. 손을 다 씻은 그는 화장실 문 앞에서 망설인다. 화장실 손잡이를 잡으면 그는 다시 손을 씻어야 한다. 이제 어떻게 화장실을 나갈 것인가.
스콜세지는 이렇게 남들에게는 심상한 일을 절체절명의 위기처럼 느꼈던 휴즈의 강박을 시청각적으로 세세하게 다룬다. 휴즈가 안전하다고 느꼈던 공간은 자신의 거실과 시사실과 비행 조종석뿐이었다. 그는 자신의 삶의 성채에서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그 성채에서 나올 때 그는 늘 아슬아슬한 위험과 직면했다. 팬암의 후안 트립으로부터 사주받은 상원의원의 점심 식사에 초청받은 휴즈가 약속 장소인 호텔에 나타나기 전에 상원의원은 휴즈의 식탁에 놓인 유리잔에 일부러 지문 자국을 남긴다. 휴즈와 가시 돋친 설전을 주고받으며 상원의원이 점심 메뉴를 주문하자 식탁에는 크고 먹음직스러운, 그러나 휴즈에겐 거대한 괴물처럼 보이는 송어 요리가 접시에 담겨 나온다. 신선한 우유와 오렌지 주스, 닭고기 등만을 먹는 휴즈에게 공포를 안겨주는 이 음식을 놓고 휴즈는 포크로 신중하게 송어 살을 헤집어 마지못해 입에 집어넣는다. 서둘러 입 속의 음식물의 느낌을 없애려 쳐든 유리잔에는 다른 사람의 지문이 선명하게 박혀 있다. 대범하게 상원의원의 협박을 물리치고 그 자리를 나온 휴즈는 참고 있었던 공포에 지쳐 바닥에 쓰러진다. 그는 자신의 왕국을 벗어났을 때 어린애처럼 연약해지는 인물이다. 그런 휴즈가 택한 대안은 자신의 왕국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거실을 세균 감염 안전 지역과 위험 지역으로 나누고 안전 지역에선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았던 휴즈는 세계 최고의 비행기를 모는 비행사의 역할에서 물러났을 때 지상에서는 한 평도 되지 않는 안전 지역에 갇힌 죄수 같은 심정으로 사는 모순된 삶을 자임했다.
결국 휴즈는 <분노의 주먹>의 제이크 라모타와 비슷한 인물이 된다. 그는 자신이 정복할 수 없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정복할 수 없었던 자의 공포를 품고 있다. 새로운 비행기를 개발하려는 열망에 불타 속사포처럼 기술자에게 머릿속에 떠오른 주문을 해대는 휴즈는 문득 자신이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태엽이 고장 난, 말하는 인형처럼 휴즈는 기술자에게 똑같은 말을 한다. 휴즈는 자신의 구상대로 삶이 진행되지 않을 때 멈춰 서거나 퇴각하거나 공포에 빠진다. 그가 택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퇴각하는 것이다. 자신의 항공사 TWA가 경쟁사 팬암의 공작으로 위기에 처하고 상원 청문회에서 부패 혐의로 조사받을 위기에 처했을 때 휴즈는 자신의 시사실에 처박혀 나오지 않는다. 집사가 갖다 주는 우유를 먹고 그 우유 병에 오줌을 누면서 휴즈는 시사실에서 버틴다. 자신만의 공간에서 휴즈가 끊임없이 보게 되는 것은 그 자신의 모습이다.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라고 씻지 않아 해괴한 몰골을 한 휴즈의 모습은 전진하지 않으면 만족할 수 없었던, 그리고 자신의 성채에서 안전하게 퇴각했던 휴즈의 정체를 드러낸다.
<시민 케인>의 그림자
여기서, 마틴 스콜세지는 결국 오손 웰스의 <시민 케인>과 만난다.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했으나 저택 로즈버드에서 쓸쓸히 숨을 거뒀던 케인처럼, 하워드 휴즈는 정복 대신 고립의 길을 택한다. 여자는 그런 휴즈에게 구원이 될 수 있었지만 휴즈는 안착하지 않는다. 영화 속 한 장면에서 떠들썩하고 수다스러운 캐서린 헵번 가족과의 만찬 자리에 참석한 휴즈는 그 자리에 적응하지 못하고 밖으로 나온다. 휴즈는 여자가 자신의 자장 안에 있어야만 만족했다. 흠모했으나 좀처럼 쉽게 마음을 얻지 못했던 에바 가드너와의 관계에서 휴즈는 가드너의 침실과 거실 곳곳에 도청기를 설치한 것이 발각돼 가드너의 힐난을 듣는다. 용서를 구하던 휴즈는 자신의 경호원에게 가드너의 집에 설치한 도청기를 제거하라고 말하면서 침실에 있는 것은 그대로 놔두라고 덧붙인다. 평생 숱한 여자들과 연애했던 휴즈에게 여인도 구원의 대상은 아니었다. 아주 잠깐 휴즈가 절대적인 삶의 위기에 빠졌을 때 헵번과 가드너는 휴즈에게 위로의 손길을 내민다.
<에비에이터>는 화려한 시대를 살았던 풍운아 휴즈에게 결정적으로 결핍된 뭔가를 찾아 끊임없이 추적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하나의 시스템을 만들려 했던 천재의 비극적인 삶의 자취를 추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결국은 <시민 케인>이 그려내고자 했던 것과 비슷한 결론에 다다르고 있다. <에비에이터>의 클라이맥스는 외부의 압력을 뚫고 자신의 항공사를 지켜내며 역사상 가장 큰 비행기를 손수 모는 휴즈의 영웅적인 모습을 담고 있지만 대담하게도 스콜세지는 거기서 영화를 끝맺지 않는다. 모든 것을 다 거머쥔 휴즈에게 삶은 여전히 공포다. 분주한 사업장에서 휴즈는 자신을 왠지 조롱하듯 보고 있는 몇몇 사내들의 시선을 느낀다. “저 자들은 누구인가? 내 회사 직원들인가?”라고 휴즈는 부하 직원에게 묻는다. 부하 직원은 답한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사장님 회사 직원들이에요.” 휴즈는 그들의 낯선 눈길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는 다시 했던 말을 또 하는 병적 증상을 드러내고 화장실로 도피한다. 그곳 화장실 거울에서 휴즈는 뭔가를 본다. 그건 휴즈가 평생 안고 있던 야망과 결핍을 동시에 드러내는 이미지였다.
<에비에이터>를 통해 어쩌면 스콜세지는 미국영화의 원형인 <시민 케인>과 비슷한 것을 보게 된 것이 아닐까. 나아가 할리우드 전체에 맞서 자신의 천재를 내세웠으나 배척당했던 오손 웰스 그 자신처럼, 평생 자신만의 영화적 세계를 추구했으나 거대한 아버지 세대의 그림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자신의 강박을 본 것은 아닐까. 여러모로 <시민 케인>을 떠올리게 하는 <에비에이터>의 그 결말에서 스콜세지는 휴즈에 대한 선망과 동경과 연민을 통해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하려고 했던 자들이 비슷하게 봉착하는 거대한 공허를 본다. <에비에이터>는 놀랍게도 가장 성공한 순간에 서서히 본격적으로 미쳐가는 휴즈의 모습으로 끝난다. 대저택에 진공 유리방을 지어 놓고 칩거했으며 티슈가 없으면 어떤 물건도 맨손으로 집지 않았던 기인 휴즈의 말년의 삶이 이 영화의 결말에서 희미하게 메아리친다. <에비에이터>는 모처럼 비열한 거리에서 나와 화려한 할리우드 선셋 대로를 활보하는 제왕의 삶을 다룬 스콜세지의 영화지만 결국 자신의 삶의 구원을 얻지 못한 한 인간의 무서운 초상을 다룬다. 스콜세지는 어쩔 수 없이 언 해피 엔딩의 삶을 진실이라고 보는 1960년대의 자식이다. 삶은 잠깐 행복하고 아주 길게 불행하지만 그래도 싸우면서 살아볼 만한 것이라는 역설적 긍정이 담겨 있는 것이다. |
첫댓글 청문회 너무 인상적임..... 저사진보니 또 생각나는군..ㅎㅎ
얼굴 일그러지는 표정... 같이 인상꾸져지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