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시모노세키(下關) 해안을 거닐며 '간몬해협'의 시원한 바람과 푸른 물결을 보면서, 필자의 오랜 친구이자 인생의 선배인 오츠보(大坪, 67세) 씨와 함께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가는 곳마다 복(鰒)의 조각품이 있는가 하면, 복(鰒) 집마다 파란 깃발이 바람에 나부꼈다. 필자는 잠시 바닷가 어느 동상 앞에 앉았다. 전쟁터에 나가서 숨진 군인들의 동상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 동상은 복(鰒)을 경매하는 모습을 재현하는 것이었다. 경매자가 주머니 속으로 손을 넣어서 복의 크기와 무게를 결정하는 원시적인 경매 방법이지만, 목청높이며 열을 올리는 것 보다는 인간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Pufferfish'
복(鰒)이 놀라거나 적의 습격을 당했을 때 입으로 물이나 공기를 들이마셔 배를 풍선 모양으로 부풀리는데, 이것은 팽창 낭에 의한 것이다. 복이 이처럼 복부를 팽창시키는 모습으로 부터 영어로는 'Puffer(훅 부는 것)' 물고기라고 명명하게 되었다. 이 때 복(鰒)이 마시는 물의 양이 자기 몸무게의 4배에 이르는 것도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은 팽창의 습성은 발육 초기, 예를 들어 자주복의 경우에는 부화 후 2주일이면 나타난다.
복(鰒)은 대체로 등지느러미와 뒷지느러미를 물결 모양으로 움직여서 유영하는데, 몸이 둥글어 유영 속도가 느리다. 어릴 때에는 동물성 플랑크톤을 먹고 자라나 성어가 되면 새우·게·갯지렁이·조개·물고기·해파리 등을 먹는다. 부화 후 20일 정도면 이빨과 턱의 근육이 단단해지고 물체를 이빨로 물어뜯는 습성이 생긴다.
독성이 강한 복 일수록 맛이 좋다?
일본에는 <독이 있는 복(鰒)을 먹는 것은 무분별한 일이지만, 독(毒)이 있다고 해서 그토록 맛이 좋은 복(鰒)을 먹지 않는 것도 무분별한 것이다>는 속담이 있다. 그만큼 복요리의 맛이 좋다는 이야기이며, 동시에 독성이 강한 복(鰒) 일수록 맛이 좋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독성이 지나치게 강한 것은 식용으로 적절치 않다.
복(鰒)의 알과 간에는 테트로도톡신(Tetrodotoxin)이라는 독이 있다. 복요리를 할 때는 필히 이 독을 제거해야 한다. 전문가에 의하면 테트로도톡신(Tetrodotoxin)은 신경계통에 작용하는 독의 일종으로, 신경의 나트륨 채널의 작용을 방해함으로써 독을 생성한다는 것이다. 테트로도톡신이라는 이름은 독성 물질을 가지고 있는 주요 생물인 복어 류의 학명에서 따 온 것이다. 복어 류 외에도, 푸른 점 문어와 같은 다른 생물도 이 물질을 가지고 있다. 테트로도톡신을 가지고 있는 어류는 그 자신이 독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체내의 세균이 합성되어 독이 만들어 진다고 한다. 어찌했던, 복(鰒)이 지니고 있는 독(毒)의 해독제는 아직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복어를 한자로 하돈(河豚), 또는 복(鰒)으로 쓰는데, 하(河)는 고대 중국으로부터 황하(黃河) 등 하천에서 생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돈(豚)이라고 쓰는 것은 복의 체형을 일컫는 것이 아니고, 복이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돼지(豚)와 같은 울음소리를 낸다고 해서 이와 같은 한자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하돈(河豚)이나 복(鰒)의 발음은 모두 '후구(ふぐ)'라고 한다(Wikipedia).
일본 제1의 복(鰒) 산지로는 예로부터 시모노세키(下關)를 꼽는다. 그런데, 시모노세키(下關)에서는 복(鰒)을 '후구(ふぐ)'가 아닌 '후쿠(ふく)'라고 한다는 사실을 이곳을 방문하여 알게 되었다.'후구'는 '불우(不遇)', '불구(不具)' 등과 발음이 같아서 기피하고, '후쿠'는 '복(福)'과 발음이 같아서 '재수가 좋다'는 점에서 유래되었다는 다분히 미신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복(鰒)은 185종이 존재 한다
복(鰒)은 이 세상에 185종이 존재하는데, 식용은 자주복(참복)·황복·까치복 등 몇 종류 밖에 없다. 푸른색 복(草河豚) 등 몸 전체에 독이 들어 있는 것은 식용으로는 적절하지 않다. 복의 껍질은 식용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오래 된 것은 민예품과 공예품의 부재로도 사용되고 있다. 복의 껍질을 벗기는 작업은 전문성이 높은 숙련공의 일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껍질 벗기는 작업도 자동 기계가 등장함으로써, 작업 효율의 향상을 도모하게 되었다. 시모노세키의 명물인 복요리에 대해서 소개해 본다.
복 사시미(刺身)는 몸체로 회(膾)를 만드는 것이다. 복 사시미(刺身)의 특징은 '섬유질이 많다'는 것이다. 특히, 복 사시미(刺身)는 투명하게 보일 정도로 얇게 썰어서 생선회를 만든다. 사시미(刺身)를 만들 때는 '복어를 자르는 칼'로 불리는 특수한 칼(刀)을 사용한다.
복 사시미(刺身)는 커다란 접시 위에 넓게 펼쳐서 손님 앞에 놓여진다. 투명한 사시미(刺身) 밑으로 접시의 무늬가 보일정도로 얇은 종잇장 같은 사시미(刺身)의 감칠맛은 먹어보지 않고는 못 느낀다. 복 냄비(鍋)는 다시마 등으로 만든 국물에 복의 살 조각이나 뼈를 야채 등과 함께 뚝배기에 넣어 끓인다. 지정된 다레(垂れ: 양념간장)로 초(酢)를 넣어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요리를 먹은 후에 남는 것을 소금으로 조절하여 밥을 넣어서 먹는다. 복의 가라아게(唐揚け)는 우리말로 복 튀김이다. 복의 살을 밀가루에 묻혀서 튀긴 것이다. 식초와 소금을 찍어서 먹는다. 이러한 요리 외에 '복의 시라코(白子)'가 있다. 이것은 수컷의 고환, 즉 정자 주머니를 말한다. 복의 산란기인 1월부터 3월 경에 잡힌 것이 가장 별미이고, 또한 비싼 음식이기도하다. 시라코(白子) 구이, 시라코(白子) 튀김, 시라코(白子) 두부 등 일품요리가 많다. 요리라고는 할 수 없지만, 복의 지느러미를 태워서 사케(酒)에 넣어서 마시는 히레자케(鰭酒)도 유명하다. 필자와 오츠보(大坪) 씨는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가장 긴 집을 찾아 복 요리 정식을 시켜서 이와 같은 요리를 종류별로 맛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복의 시라코(白子) 요리'는 시간 관계상 다음 기회로 미뤘다.
'미안스럽게도 너무 맛이 있어'
2009년 제81회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굿바이(원제목: '오쿠리비토)'에 복의 정자주머니를 먹는 장면이 실감나게 나온다. 베테랑 납관사 '이쿠에이(山崎 努)'가 납관사라는 직업에 회의를 느끼고 좌절하는 젊은 직원 '다이고(內田雅弘)'에게 이렇게 말한다.
"생물은 다른 죽은 생물을 먹고 살지. 식물은 다르지만...... 죽기 싫으면 먹어야 해. 그리고, 기왕에 먹을 거면 맛있게 먹어. '복의 정자주머니'는 너무나 맛이 있지. 역시 소금구이가 제일이야. 맛있어. 미안스럽게도 너무 맛이 있어."
"생물은 다른 죽은 생물을 먹고 살지.......미안스럽게도 너무 맛이 있다"는 대목에 깊은 뜻이 들어 있다. '죽지않으려면 먹어야한다'고는 하지만, 미안스러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래도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할까.
세상을 살면서 미안스러운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라는 생각이 파도처럼 몰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