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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도 모르고
아동소설
조은영
 
“유빈아! 이번 주 토요일에 열리는 백일장 대회에 참가할래?” 
학교 알림장 앱을 들여다보던 엄마가 말했다.
“싫어요!”
나는 1초도 생각하지 않고 대답했다. 다 귀찮으니까!
“그래? 글 잘 써서 입상하면 문화상품권을 준다는데.”
문화상품권? 그 단어를 듣는 순간, 며칠 전 학교 앞 문구점에서 친구들이 문화상품권으로 물건 사는 것을 본 게 생각났다. 
“엄마! 진짜요? 저 참가할래요.”
“오, 그래? 우리 빈이 빈이 멋지다.”
빈이 빈이. 에구, 엄마가 나한테 애정이 듬뿍 솟을 때만 나오는 애칭이 나왔다. 학교에서 참가하라는 글짓기 대회는 무조건 참석하길 바라는 엄마가 이해가 잘 안됐다. 그래도 문화상품권을 받아서 단짝 친구 예지랑 우정 반지를 살 생각에 은근히 기분이 들떴다. 학교 앞 문구점에 점 찍어 둔 우정 반지가 눈에 아른거렸다. 
‘예지한테 카톡부터 해야지.’
아, 그런데 핸드폰이 또 안 된다. 전화만 되고, 카톡이나 문자가 편한데 잘 안 된다. 이런 중고 고물 핸드폰! 4학년이 되어서 아빠가 처음 준 핸드폰이다. 최신형도 아니고 새것도 아닌, 아빠가 쓰던 핸드폰을 물려 준 거다. 예지가 쓰는 핸드폰처럼 반으로 접히는 예쁜 핸드폰을 갖고 싶었는데 말이다. 아빠가 이렇게 말했다.
“처음 핸드폰을 쓰면 고장 내기 쉬우니까, 새 핸드폰은 5학년이 되면 사줄게.”
그런데 나는 지금 5학년이 되고도 벌써 2학기를 보내고 있다. 5학년이 되자마자 새 핸드폰을 사달라고 그렇게 졸랐는데도 아빠는 지금까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어른이 약속도 안 지키고, 시치미 뚝 떼고 있는 거다. 아빠는 내 마음도 모르고, 미워!
 
기다리던 토요일, 엄마와 함께 백일장 대회가 열리는 축제장으로 향했다. 물론 엄마 껌딱지 동생 유정이도 찰싹 달라붙었다. 저 캥거루 같은 녀석! 
내가 사는 동네, 보령은 높은 산과 시원한 바다가 아름답게 어우러진 지역인데 해마다 ‘산과 바다’라는 축제가 열린다. 벌써 30년째 이어져 내려온 중요한 축제라고 했다. 
축제장에 도착하니 무대옆에는 벌써 동요대회에 참가할 아이들로 떠들썩했다. 섬과 관련된 동요를 부른다고 했다. 또 마당 한쪽에서는 하얀 전통 옷을 입은 어른들이 북, 장구, 꽹과리를 손에 들고는 사물놀이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축제가 낯설었다. 사람들 많은 거 싫은데! 괜히 엄마에게 짜증 부리듯 말했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해요?”
“그러게. 백일장 대회가 열리는 곳이 어디지?”
축제장 안쪽 건물에 들어서니 ‘산과 바다 축제 백일장 대회’라고 쓰인 현수막이 보였다.
“백일장은 여기인가 보다”
“어서 오세요! 백일장 대회에 참가하러 오셨어요?”
인자한 얼굴에 안경 쓴 어떤 선생님이 활짝 웃으며 반겨주었다.
“이쪽으로 오세요. 신청한 아이 이름이 뭐예요?”
“노유빈이에요.”
“아, 여기 있네요.”
신청자 명단을 살펴보던 선생님이 빙그레 웃으며 동생 유정이를 바라봤다. 설마! 유정이에게! 유정이는 은근 상복이 많은데! 뭔가 느낌이 싸늘했다. 에구, 선생님이 내 마음도 모르고 이렇게 말했다.
“어린 친구도 글짓기하고 갈래?”
유정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엄마를 쳐다봤다. 엄마가 되물었다.
“동생은 신청하지 않았는데도 괜찮아요?”
엄마가 조금 놀란 것 같았지만, 기쁜 표정을 숨기지 않고 물었다. 당연히 기쁘겠지!
“그럼요. 그리고 어머님도 같이하고 가세요.”
에구, 이건 또 무슨 소리? 엄마는 책벌레인데! 당연히 글도 잘 쓰겠지. 엄마가 빙그레 웃으며 되물었다.
“네? 어른도 참가할 수 있나요?”
“물론이죠. 이왕 같이 오신 거, 아이들 글짓기 할 동안 같이 쓰시면 좋지요.”
나를 대회장에 넣어두고 동요대회 구경하려던 엄마가 1초도 고민하지 않았다. 
“네. 알았어요. 감사합니다.”
엄마 껌딱지 유정이가 엄마 팔을 잡아끌었다. 그럼 그렇지.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지 않는다고, 엄마가 그냥 갈 일이 없지!
 
‘시제 : 보령의 산과 바다’ 
종이에 그렇게 쓰여있었다. 큰 책상에 엄마랑 유정이랑 셋이서 마주 보고 앉아 종이를 들여다보았다. 유정이가 물었다.
“엄마, 시제가 뭐야?”
“글감을 말하는 거야. 어떤 것에 관해서 써야 하는지, 미리 말해주는 거지.”
“시제면 시만 써야 해?”
“아니야. 시를 써도 되고, 그냥 일기처럼 써도 되고, 유정이 마음대로 해도 돼.”
엄마는 유정이가 꼽사리로 낀 거라서 대충 써도 되니까 저렇게 말하는 거겠지! 게다가 엄마는 유정이 사랑꾼이라서 유정이가 무엇을 어떻게 하든지 예뻐만 하니까. 나는 맏이라서 그런지 시험을 잘 보거나 좋은 상을 받아야만 웃어준다. 
“우리 유빈이는 알아서 잘할 수 있지?”
알아서 하기는 내가 무슨 도사인가? 도대체 맏이가 뭔지? 이럴 때마다 엄마에게 서운했다. 흑흑. 
“엄마는 상 같은 거 기대하지 않고 편하게 쓸 거야. 너희들도 편하게 써.”
이렇게 말한 엄마가 연필을 들고 잠시 생각하더니 글을 쓰기 시작했다. 보령에서 제일 높은 산인 오서산을 소재로 하여 하얀 종이를 채워나갔다. 뭐지? 갑자기 저렇게 쓴다고? 유정이도 그런 엄마를 신기한 듯 바라보다가 물었다.
“엄마, 저는 뭐 써요?”
“음, 보령의 산과 바다니까, 유정이는 바다를 쓸까? 여름에 바다에 가서 보트 타고 물놀이했던 거 써보는 거 어때? 바다는 내 친구 하면서 말이야.”
“아! 좋아요.”
유정이는 바다를 좋아한다. 그래서 여름 방학엔 시간만 나면 바다에 가자고 졸라댄다. 지난 여름 방학에도 모래놀이 도구와 물놀이 튜브가 항상 현관에 놓여있었다. 
유정이도 연필을 들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마도 얼마 전에 공부방에서 시화 수업했을 때 ‘내 친구 여름’이라는 시를 썼던 것을 생각해 낸 것 같았다. 유정이가 또박또박 글을 써나가기 시작했다. 
엄마랑 유정이가 글을 써 내려가는 순간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더니 조바심이 났다. 어쩌지? 문화상품권만 생각했지, 아무 준비 없이 온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동생처럼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는 싫었다. 그러면 진짜 내가 더 작아지고 작아져서 개미처럼 느껴질 것만 같았다. 이건 또 뭐지? 내가 마음속으로 고민하는 동안 엄마가 다 썼다며 연필을 내려놓았다. 잠시 후, 큼지막한 글씨로 써 내려가던 유정이도 종이를 다 채웠다. 저 꼬맹이가 벌써? 엄마와 유정이의 눈동자가 아직 아무것도 쓰지 않은 내 종이로 옮겨왔다.
“언니는 뭐 쓸 거야?”
내가 머뭇거리자, 엄마가 말했다.
“엄마는 오서산 했으니까, 유빈이는 저기 보이는 성주산 할까?”
“싫어요!”
괜히 오기가 생겨서 싫다는 대답이 불쑥 튀어나왔다.
“왜? 아빠랑 성주산 산책하면서 기다란 뱀도 보고 신기했잖아.”
“싫어요!”
대답은 싫다고 했지만, 이미 머릿속은 아빠와 함께했던 어느 휴일의 성주산으로 가득해졌다. 왠지 나만 바라보는 엄마랑 유정이가 불편하게 느껴졌다.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엄마는 유정이랑 다른 데 갔다가 와요. 아까 동요대회 구경하고 싶다고 했잖아요.”
“알았어. 유빈아! 너도 다 쓰면 동요대회 하는 곳으로 와.”
 
엄마와 유정이가 가고 나서 다시 집중했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내 머릿속처럼 하얀 종이가 엄청나게 크게 느껴졌다. 시간은 가는데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마음만 답답했다. 울고 싶었다. 엄마가 책 한 권 더 읽자고 했을 때, 더 읽었더라면. 글쓰기 하자고 했을 때, 열심히 쓸걸, 하지만 지금 후회해 봤자 아무 소용 없었다. 한숨만 푹푹 새어 나왔다. 째깍째깍.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자존심이 상하지만 엄마 말대로 했다. 지난 휴일에 아빠와 함께 성주산에서 산책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글을 써나갔다. 뱀, 다람쥐, 아직 초가을이라서 푸른 나뭇잎들, 그 사이에서 서둘러 가을 색으로 물든 나뭇잎 몇 장. 떠오르는 생각과 단어들을 최대한 예쁘게 꾸미며 글을 쓰려고 했지만, 뭔가 억지스러웠다. 그래도 되는대로 썼다. 집중해서인지, 긴장해서인지 이마에 땀이 삐질삐질 흘렀다. 그래도 집 근처에 성주산이 있어 감사했다. 아빠랑 언제든 산책하러 갈 수 있는 고마운 성주산에게 감사하며 글을 마무리했다. 
그런데 쭉 읽어보니 내가 쓰기는 했지만, 내용도 별로인 것 같고 재미도 없게 느껴졌다. 이런 글로는 문화상품권을 받을 수 없을 게 틀림없었다. 그래도 다시 쓸 수는 없었다. 둘레를 둘러보니 남은 게 나밖에 없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앞에 있는 선생님에게 가서 내가 쓴 글을 내밀었다. 선생님이 내가 내민 글을 보더니 알쏭달쏭한 미소를 지었다. 왠지 속상했다. 미리 글감은 알 수 없었지만, 어제저녁에 뭐든 써 볼걸. 사실 엄마가 어제저녁에 이렇게 말했었다.
“유빈아! 보령에 대해서 뭐든 써 보는 게 어떨까?”
“싫어요. 그냥 내일 가서 쓸게요.”
“그래, 그럼.”
엄마 말을 들어야 했다. 선생님이 내 글을 훑어보다가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우리 유빈이 친구. 엄청 진지하게 글을 쓰던데, 힘들었나 보지?”
“네, 너무 긴장했나 봐요.”
“그래, 수고했어. 선생님이 잘 읽어볼게. 이따가 한 시까지 여기로 엄마랑 동생이랑 다시 와.”
“네, 선생님.”
동요대회가 열리는 곳으로 갔다. 엄마가 보이지 않아 핸드폰을 꺼냈지만, 메시지가 또 먹통이었다. 시끄러워서 전화벨 소리가 안 들릴 텐데, 이리저리 헤매다 보니 저만치 앞에 엄마의 뒷모습이 보였다. 엄마는 속상한 내 마음은 모르고 유정이와 신나게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저 둘은 뭐가 그렇게 즐거울까? 엄마는 내 고민은 안중에도 없겠지? 괜히 엄마에게 짜증을 부렸다.
“엄마! 한참 찾았잖아요.”
“응, 유빈이 왔구나. 같이 구경하자.”
축제장은 아이들의 즐거운 노랫소리로 가득했지만 내 귀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어느덧 한 시가 되어 다시 백일장 대회 장소로 갔다. 드디어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나는 기대하지 않으면서도 가슴이 뛰었다.
먼저 일반인 장려상 이름을 불렀다. 호명된 어른 몇 명이 앞으로 나갔다. 다음은 아이들 이름을 불렀다. 장려상이라도 받아야 하는데 어쩌지! 첫 번째도 두 번째도 내가 아니었다. 문화상품권이고 뭐고 동생 앞에서 언니 체면이 구겨질 것만 같아 가슴이 콩닥콩닥했다. 그때였다.
“마지막으로 어린이 장려상이에요. ‘성주산에서 아빠와 추억 만들기’를 쓴 노유빈! 축하해요.”
다행히 끝으로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뭐지? 기뻐해야 하는데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상을 받으러 나가는데 아까 그 선생님이 내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작게 속삭였다.
“유빈이, 아까 진지하게 글을 쓰는 모습이 너무 예뻤어.”
자리로 돌아와 상장을 펼쳐보다가 깜짝 놀랐다. 장려상은 문화상품권 상품이 없고 상장만 주는 거였다. 얼굴이 빨개지고 눈물이 나왔지만, 간신히 참았다. 그래도 그나마 상장을 받았으니 언니 체면이 섰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다음은 어린이 부문 우수상 이름을 부르는데 많이 듣던 이름이었다.
“어린이 부문 우수상, ‘내 친구 보령 바다’를 쓴 노유정 축하해요.”
헉! 노유정!!! 유정이는 오늘 꼽사리로 왔는데? 글씨만 또박또박 쓸 뿐 유치하게 썼을 게 분명한데, 우수상이라니! 물론 공부방 프로그램에서 시화 수업을 제일 좋아하는 유정이지만, 집에서는 늘 어리광이나 부리는 동생이 우수상을 받다니!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언니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유정이에게 축하한다고는 했지만, 나 자신이 작아지는 것 같아 속상했다. 문화상품권을 손에 든 유정이는 내 마음도 모르고 싱글벙글 신났다.
엄마는 장려상도 우수상도 최우수상도 아니었다. 엄마는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와 동생이 연달아 상을 타자, 그것만으로도 너무 즐거워했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앞에서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전체 장원 이름을 불렀다. 헉! 이번에도 내가 아는 이름이었다. 
“마지막으로 오늘의 장원입니다. ‘내가 뛰어놀던 오서산’을 쓴 최민아님.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앗! 최민아!!! 엄마 이름이다! 엄마도 놀랐는지,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역시 우리 엄마다! 날마다 주방에 있는 작은 의자에 앉아서 책만 읽고, 내가 하는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건성으로 대답하더니, 글솜씨는 최고였나 보다. 내 엄마가 일등이라니! 자랑스러우면서도 어안이 벙벙했다. 유정이가 우수상을 받은 것과는 또 다른 감정이었다. 나보다 유정이가 더 빨리 축하했다.
“엄마~ 축하해!”
안 그래도 엄마 옆에 찰싹 붙어있던 유정이가 아예 엄마를 꼭 껴안고, 축하한다며 한껏 애교를 부렸다. 
그런데 이상했다. 좋아하는 엄마와 유정이를 보자,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분명히 엄마랑 동생이 자랑스러운데, 내 마음이 자꾸만 속상했다. 내가 왜 이러는지, 나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나빠서 그럴까? 아니면 못돼서 그럴까?
저녁 식사 시간에 아빠가 내 마음도 모르고 내일 저녁에 축하 파티를 하자고 했다. 오늘은 일찍 자고 싶었다. 일찍 잠자리에 들자, 자꾸만 눈물이 났다. 아무도 내 마음을 모른다. 왜 그럴까? 진짜 내가 못 돼서 그럴까?
 
카톡 알림 소리에 일찍 눈이 떠졌다. 
“유빈아, 축하해!”
이모다. 이모 카톡에, 어제 상 받은 우리가족 사진이 올려져 있었다. 헉! 한순간 기분이 상했다. 이모는 내 마음도 모르고 왜 이딴 걸 많은 사람이 다 보는 카톡에 올리지? 나한테 허락도 안 받고, 내 사진을 막 올리고 난리야! 우리 식구도 아니면서, 우리 식구가 상 탄 걸 왜 자랑하고 그래?
그때 엄마가 아침 먹으라고 불렀다. 밥 먹고 싶지 않았다. 손에 든 핸드폰을 침대 위에 집어 던졌다. 핸드폰도 싫었다. 가방을 메고 밖으로 나갔다. 뒤에서 유정이가 불렀지만, 모른 척했다. 승강기를 딴 순간 뒤에서 이런 소리가 났다.
“엄마! 유빈 언니가 혼자서 학교에 갔어요.”
그 뒤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엄마와 유정이는 또 자기들끼리 좋아하겠지. 어제도 그랬으니까!
너무 일찍 왔는지 교실에 아무도 없었다. 엎어져 눈 감고 있는데 아이들 오는 소리가 났다. 그러다가 친구 예지가 내 이름을 부르며 이렇게 말했다.
“유빈아! 축하해.”
고개를 들고 예지를 쳐다봤더니 축하한다며 빙그레 웃었다. 예지 엄마랑 우리 이모랑 친구니까 당연히 사진을 봤겠지! 이모를 초상권 침해로 신고할까? 그때 예지가 내 마음도 모르고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너희 엄마가 장원했다며? 정말 대단해. 그리고 네 동생은 우수상 받았다며? 와~, 너희 식구 정말 대단해.”
‘그래, 난 장려상밖에 못 받았다. 어쩔래?’ 이 말이 목 밑까지 올라왔으나 간신히 참았다. 내가 그렇게 말하면, 그건 진짜 진상이니까. 다행히 잘 참았다.
“응, 고마워.”
난 그렇게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그래도 친구는 소중하니까, 잘한 거다. 그때 유정이가 나를 부르며 교실로 들어왔다.
“엄마가 이거 전해주래.”
유정이가 구운 식빵과 핸드폰을 건넸다. ‘누가 너보고 이런 거 가져오래!’ 이 말이 또 목 밑까지 올라왔음에도 이번에도 참았다. 친구들 앞에서 못난 언니로 보이면 안 되니까. 바보처럼 보이면 안 되니까.
“그래, 고마워.”
그때 예지가 또 내 마음도 모르고 이렇게 말했다.
“네 동생, 착하네.”
“응, 그래.”
간신히 참았지만, 참기를 진짜 잘했다. 괜히 동생에게 뭐라고 했으면 바보 언니가 될 뻔했다. 동생을 질투하는 바보 언니!
그런데 방과 후에 미술 학원에 갔더니, 원장님이 축하한다고 했다. 또 내 마음도 모르고 우리 식구가 대단하다고 했다. 원장님은 하필 엄마 친구다. 이번에도 고맙다고 해야 하나? 언니니까, 5학년이니까 참아야 하나? 그렇다면 언니라는 건, 크다는 건, 맏이라는 건, 너무 슬픈 거잖아!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원장님에게 말했다.
“정말 다들 왜 그러는 거야. 저는 더 말하고 싶지 않아요. 모른 척 해주세요.”
그런데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여전히 슬펐다. 그렇다면 나이를 먹는다는 건 슬픈 일인가?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데, 나는 왜 나이 먹는 게 슬프지? 도무지 이 감정을 알 수가 없었다. 혹시 어른인 엄마도 슬플까?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으니까. 하지만 엄마가 우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엄마의 마음이 궁금했다.
 
학원을 마치고 집에 들어갔더니 엄마가 일찍 들어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가 물었다.
“유빈이!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 없니? 혹시 속상하니?”
아무래도 미술 학원 원장님이 엄마에게 연락한 모양이었다. 내 속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은데, 설마! 엄마가 내 마음을 아는 건 아니겠지?
“내가 왜요? 속상하지 않아요.”
“그래, 그게 진심이야? 그렇다면 우리 유빈이가 언니는 언니네. 나 같았으면 속상했을 텐데.”
왠지 유도 신문하는 것 같았다. 내 마음을 들킬까 봐 딱 잘라 말했다.
“아니에요. 유정이도 엄마도 자랑스러워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이게 진심인지 아닌지 헷갈렸다. 그런데 엄마가 이렇게 말했다.
“그래? 그런데 사실 엄마는 유빈이에게 미안하더라. 유빈이를 배신한 것 같아서. 생각해 보니까 유빈이가 받아야 할 상을 빼앗은 기분도 들고.”
아, 순간, 그제야 비로소 내가 왜 속상했는지 알 것 같았다. 눈물이 새어 나왔다.
“엄마도 갑자기 큰 상을 받아서 좋아만 했지. 유빈이 마음을 생각하지 못했어.”
더는 속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엄마가 내 마음을 알고 있었던 거다. 엉엉 울음이 터졌다. 엄마가 말없이 나를 안았다. 울먹이며 사실대로 말했다.
“사실은 속상했어요. 엄마와 유정이가 자랑스러운데도 뭔가 자꾸 눈물이 났거든요.”
“그랬구나.”
“그런데 진짜 슬픈 게 또 있어요.”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어제오늘 언니라서 참고, 고학년이라서 참고, 맏이라서 참고, 자꾸 참았거든요. 그래서 슬펐어요.”
“아, 그랬구나. 우리 유빈이가 마음고생이 심했구나. 그래도 원장님에게 그런 건 네가 잘못했어.”
“네, 알아요. 잘못했다고 말씀드릴게요.”
“그래, 그리고 엄마가 막내로 자라서 유빈이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한 것 같아.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미안하다고 하자, 또 울컥해서 눈물이 더 쏟아졌다.
“아니에요. 이젠 괜찮아요. 이렇게 울고, 사실대로 말하고 나니까 마음이 편해요.”
“그래, 맞아. 우는 게 때로는 약이 되기도 하지.”
“그래요? 아, 참! 궁금한 게 있어요. 사실 오늘 나이 먹는 게 슬프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나보다 나이 많은 엄마는 더 많이 슬플 것 같았어요. 혹시 엄마도 울어요?”
엄마가 씽긋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래, 맞아. 엄마가 되고 보니까. 더 많이 참고, 그래서 더 많이 슬퍼, 당연히 울고 말이야.”
“그래요? 하지만 엄마가 우는 걸 본 적이 없는데요?”
“이건 비밀인데 엄마도 남몰래 많이 울어. 그걸 보이지 않는 것뿐이지.”
“그래요? 미처 몰랐어요. 이젠 마음 놓고 울어요. 우는 게 약이니까요.”
“하하, 금방 배웠네.”
“히히.”
“그래, 이따금 슬퍼서 울지만, 우리 유빈이랑 유정이를 보면 행복하고 좋아.”
“맞아요. 저도 엄마와 유정이를 보면 행복하고 좋아요.”
“그래, 맞아. 식구는 그런 거야.”
“네, 엄마.”
“우리 유빈이가 다 컸네. 엄마랑 이런 대화도 하고 말이야. 맏이라고 엄마의 슬픔도 알아주고. 유정이는 막내라서 그런 언니의 마음을 모를 거야.”
“맞아요. 유정이는 모를 거예요.”
“그러니까 유빈이가 유정이 마음을 이해해 줘야 해. 아니, 아니야. 내가 또 유빈이에게 부담을 줬네. 미안해.”
“아니에요. 엄마! 내가 언니니까 당연히 동생 마음을 이해해야 해요. 괜찮아요.”
“그래, 고마워.”
엄마랑 나는 빙그레 웃었다. 
 
그때 아빠랑 유정이가 집에 들어왔다. 아빠 손에 케이크와 치킨이 들려있었다.
우리 식구는 식탁에 둘러앉았다. 아빠가 케이크에 크기가 다른 초를 세 개 꽂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제일 큰 건 장원 상을 받은 엄마 꺼, 두 번째는 우수상 유정이 꺼, 제일 작은 초는 장려상 유빈이 꺼. 하하하.”
순간, 엄마랑 눈이 마주쳤다. 엄마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소리 없이 입 모양으로 ‘그냥 받아 줘’라고 말했다. 에구 정말, 아빠 장난에 장단까지 맞춰줘야 하다니 사는 게 힘들었다. 뭐 어쩌겠어, 내가 맏이인걸. 휴~ 이 순간 연기를 해야 했다. 심호흡하고, 눈물 장착하고, 얼굴 찡그리며 이렇게 말했다.
“아빠 미워요! 그런 걸로 이렇게 대놓고 놀리는 게 어딨어요!”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워서 대성통곡했다. 억지로 눈물을 짜내고 억지로 엉엉 울었다. 아빠가 따라 들어왔다. 유정이도 따라 들어와 안절부절못했다. 아빠가 계속 미안하다며 사과했지만, 아빠를 더 놀리고 싶었다. 엄마가 들어와서 토닥토닥 달래주는 척했고, 나도 계속 우는 척했다.
“유빈아, 장난이었어. 아빠가 지나쳤지. 정말 미안해.”
나는 계속 울었다. 아빠가 또 말했다.
“이거 책상 위에 올려놓고 나갈게. 기분 좀 나아지면 풀어 봐.”
항상 우리 집의 대장이라며 큰소리치던 아빠가 처음으로 쩔쩔매는 게 느껴졌다. 나는 갑자기 울음을 뚝 그치고 벌떡 일어났다.
“그게 뭔데요?”
내가 갑자기 돌변해서인지, 아빠가 당황스러워했다. 
“응, 너, 갑자기 뭐야?”
엄마가 깔깔깔 웃었다. 나도 깔깔깔 웃었다. 그순간 엄마와 나는 하나였다. 아빠랑 유정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와 엄마를 번갈아 바라봤다. 아빠가 그제야 알아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뭐야? 둘이 나를 속인 거야? 그럼, 이 선물은 없는 거야.”
“안돼요~ 이리 줘요.”
나는 재빨리 봉투를 빼앗았다. 봉투 안에 익숙한 크기의 상자가 들어있었다. 앗! 이 크기는? 서둘러 상자를 열어보니 그토록 가지고 싶어 했던 최신형 핸드폰이었다. 이번엔 진짜 눈물이 새어 나왔다. 꼭 좋아서만이 아니라 정말 고마워서였다. 그리고 상자 안에 문화상품권 세 장과 편지가 들어있었다. 편지를 읽었다.
 
우리의 빈이 빈이. 
언제나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우리 딸. 
유빈이가 백일장 나가겠다고 신청해 준 덕분에 우리 식구가 모두 큰 선물을 받았어.
정말 고마워. 그래서 이 문화상품권은 당연히 유빈이 꺼야. 엄마랑 유정이가 조금씩 양보했어.
지금은 이해가 잘 안되겠지만 장려상은 그 어떤 상보다 소중한 상이야. 장려상은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이 있다는 뜻의 상이니까. 우리 유빈이는 앞으로 더욱 큰 희망과 기회가 가득한 아이라는 걸 꼭 기억했으면 해. 
핸드폰 늦게 사줘서 미안해. 하지만 핸드폰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어서 그랬어. 책도 멀리하게 되고, 가족끼리 대화하는 것도 줄어들게 되고. 
유빈이를 생각하는 엄마 아빠의 마음 이해해 줘.
사랑해, 유빈아. 
 
아, 또다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주 행복한 눈물이었다. 그때 유정이가 닭다리를 입에 물고 들어와서 새 핸드폰 구경해도 좋으냐고 물었다. 얼마든지 구경하라고 했다. 더는 ‘내 마음도 모르고’가 아니다. 엄마 아빠는 내 마음을 너무 잘 안다. 킥킥.

첫댓글 백일장을 계기로 다져진 가족간의 사랑과 이해를
소녀다운 감성으로 잘 표현하셨네요.
아름다운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작가님~조금 오글거리지만 동화같은 가족이 되길바라며... ㅎㅎ
귀한 아이들의 귀한 동화입니다. 그러고도 엄마의 슬픔과 눈물을 생각합니다.
심호흡하고 눈물장착하고
얼굴을 찡그리며ㅡㅋ.ㅋ
사춘기 열두 살 아이의 삶도 만만치 않아요.
가슴이 따뜻해지는 동화
잘 읽었습니다.
행복한 한 주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작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