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전라도닷컴>
암꽃
<김진수의 약초산책 71>
“안심·안신 / 지혈·지해” - 측백나무(柏子仁/側柏葉)
신경정신적인 병에 대한 전통의 생약과 방제들을 보면 모두 심장과 뇌의 병소로 연결된다. 심은 정신이 머무는 곳(心藏神)이기 때문이다. 정신이 밝게 피어 나와야 할 신명의 자리에 온갖 삶의 고뇌와 갈등, 분노, 흥분, 초조, 피로, 우수, 비애로 채워지면 심장의 자율순환에 이상이 오고 대뇌피질의 정보전달 지시계통에 교란이 발생하여 환각·환청·망상·기란(氣亂, 정신분열)을 일으킨다. 감정과 기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칠정(七情)이 기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정신활동이 오래 흥분하거나 억압되면 기기(氣機)가 문란해져서 화병·울병이 나타나고 이것이 오래가면 심장을 상하게(心虛) 한다. 기가 조화로우면 신(神)이 안정되고 신이 안정되면 심이 조화로워진다.
만일 불의 장기인 심이 혈액을 돌리는 힘이 부족해지면 물이 불을 깔보는 형세가 된다. 그래서 수기가 넘치면(水氣凌心) 기분이 가라앉고 몸이 무거우며 숨이 편치 않다. 이때 심장은 박동 수를 늘려 대처하는데 그로 인해 가슴이 두근거리고 면색이 창백해지면서 담화(痰火)를 발생시킨다. 담화는 심포락(心包絡, 심장의 겉을 둘러싸고 있는 막과 그에 얽힌 낙맥)을 막아 심과 신(神)을 방해함으로써 정서장애 및 기억력 감퇴·범불안장애·신경과민·신경쇠약·실면·자한·우울 같은 여러 신경증을 불러들인다. 또한 담화가 간을 침범하면 울노(鬱怒)하게 되는데, 소화관 전반에 영향을 주어 음식물의 부숙·운화·배설에 장애를 유발하고 이것이 역상하여 현훈·심계·정충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정신증 내지 신경증은 병적 원인과 경로가 매우 복잡하다. 그런 만큼 양의학 일반의 진정제, 수면제, 각성제, 항우울제 같은 대증적이고 중독성 있는 합성약물의 장기복용은 주의가 필요하다. 한의학은 정신작용을 실질 장부에 연결 지어 생각하는 인체관을 가지고 있다. 맥진을 통해 전신의 한열허실(寒熱虛實), 장부의 개인차, 기능성, 병적 징후, 순환과 대사, 체질성, 맥관의 탄성 리듬 조화, 혈액의 청탁 허실 등을 종합하고, 관련 약재의 오미(五味), 사기(溫熱寒凉), 귀경(歸經), 승강부침(昇降浮沈)의 속성을 결합하여 용량, 배오, 비율을 조정한다. 본초학의 양심안신약(養心安神藥)들은 심과 간을 자양하고 심과 비를 조화하며 심과 신을 교통하여 안심하고 안신할 수 있게 한다. 병이 깊어지기 전에 미묘한 정서의 인과성을 푸는 한의학적 상담과 함께 중장기적인 천연약물치료가 필요하다.
신경정신증의 치방으로《천왕보심단(天王補心丹)》의 변방 <황기 백출 백자인 복신 단삼 당귀 각 3, 산조인 원지 야교등 지실 지황 지골피 여정자 목단피 석창포 각 2, 인삼 오미자 대조 감초 각 1>의 조성을 간추리면, 심장과 비장의 허를 보하고, 정신을 안정시키며, 담을 다스려 울체를 푸는 한편 화혈(和血)하여 혈과 진액의 순행을 돕고, 청심하여 허열을 닦아내는 목표에 닿아있다. 만일 음이 허하여 조열(潮熱, 밀물처럼 주기적으로 이는 신열)하면 자반증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때 지혈효능의 측백엽 1을 추가한다.
측백엽(側柏葉)은 측백나무과의 상록교목인 측백나무의 어린 가지와 잎을 말린 것이다. 모든 나무가 동쪽(木, 청색)을 향하는데 측백나무만은 서쪽(金, 백색)으로 기울어(側) 오행상 ‘금’의 정기를 품수하였으므로 백(柏)자를 붙였다 하였다. 측백나무의 잎은 맛이 쓰고 떫으며 성질은 조금 차다. 폐·간·대장경으로 들어가 찬 성질로 혈을 식히고 떫은맛으로 수렴하여 혈분에 열이 성하여 일어나는 토혈, 변혈, 해혈, 뇨혈, 적백대하, 붕루 등을 다스린다(지혈효능은 불에 덖었을 때 작용이 더 강해진다). 또한 류머티스관절염은 한의학에서 역절풍(歷節風)인데 역은 ‘지나다’는 뜻이고 절은 ‘관절’을 뜻한다. 《방약합편》에서 사기가 관절을 통과하여 마디마디가 모두 아픈 증상에 측백엽을 사용한다고 하였다. 측백엽은 지해거담효과도 있어 가래로 숨이 차고 기침하는 증을 진정시킨다. 한편 우리 몸에서 비장은 혈이 맥 밖으로 넘쳐흐르지 않도록 통섭하는 기능(脾統血)을 가지고 있는데 측백엽의 성질은 건조하여, 마른 것을 좋아하고 습한 것을 싫어하는 비장을 크게 보익한다.
측백나무의 성숙한 씨를 백자인(柏子仁)이라 한다. 가을에 열매를 채취하여 씨 껍질을 제거하고 그늘에 말려 쓴다. 다량의 지방유, 정유를 함유하고 있어 미황색을 띨 때까지 가벼운 불로 덖어 쓰면 비위가 약한 사람에게 설사를 일으키는 부작용을 막을 수 있으며 안심 안신 익음 지한작용이 증가한다. 이 약에는 뇌신경을 영양하고 진정시키는 성분이 들어있으며 솔향이 난다. 향기는 뭉친 기운을 풀어준다. 백자인의 성미는 달고 평하며, 심·간·신·대장경으로 들어가 심혈을 자양하고, 정신을 편안하게 하며, 장을 습하고 부드럽게 하여 변을 잘 통하게 한다. 땀이 절로 새는 자한이나 도한을 막고 정신을 안정시키는 효능이 있어 양기가 부족하고 신경이 날카로워져 실면하는 증상에 두루 쓰인다. 더하여 백자인은 손상된 장·단기 기억소실을 개선하는 뚜렷한 효과가 있고, 머리 아픈 것이 오랫동안 치유되지 않은 채 수시로 발작하는 두풍(頭風)을 치료할 수 있다. 일상에서 이용할 간편 처방 <백자인 산조인 황기 당귀 오미자 대추 감초>을 각 등분하여 하루 2~3회 복용하는 것으로 상당한 치료효과를 거둘 수 있다.*
수꽃
열매
열매껍질
측백나무
씨(백자인, 약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