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23주일 나해
재물이 없어도 남에게 베풀 수 있는 일곱 가지(무재칠시)
오늘의 성서 말씀은 귀먹은 반벙어리를 고쳐주시는 예수의 기적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예수의 치유 기적은 물리적 치유가 주된 목적이라기보다 그 밑에 깔려있는 영적 귀먹음, 영적 벙어리를 치유함으로써 진정한 인간 구원과 해방이 어떤 것인지 밝혀주는 데에 있습니다.
귀가 들린다고 해서 다 듣는 것이 아니요, 입으로 말한다고 해서 모두 다 말이 되지 않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 많은 소식, 정보 그리고 매체에 둘러싸여 정보의 노예가 되어 자신을 상실해 가고 있습니다. 기계 문명의 발달, 특히 최첨단의 정보 통신의 발달로 고요히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생각하는 여유와 멋을 잃어버리고 오직 능률과 실질만을 앞세운 공허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거기에다 온갖 헛소문과 유언비어 등까지 가세해서 일대 혼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재물이 없어도 남에게 베풀 수 있는 일곱 가지(무재칠시)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께서는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행하실 때, 제자들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너희가 직접 먹을 것을 주어라.’ 하시며 지금 당장 가진 것을 나누도록 말씀하셨다. 예수님과 열 두 제자가 먹기에도 부족한 음식이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나눌 수 있다고 여기신 반면 제자들은 나눌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불교에서는 “무재칠시(無財七施)”, 즉 재물이 없어도 남에게 베풀 수 있는 일곱 가지가 누구에게나 있다는 가르침이 있다.
화안시(和眼施) - 부드럽고 편안한 눈빛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
화안열색시(和顔悅色施) - 자비롭고 미소 띤 얼굴로 사람들을 대하는 것
언사시(言辭施) - 공손하고 아름다운 말로 사람을 대하는 것
신시(身施) - 내 몸을 수고롭게 하여 남을 돕는 것
심시(心施) - 착하고 어진 마음을 가지고 사람들을 대하는 것
상좌시(床座施) - 다른 사람에게 기쁜 마음으로 자리를 양보하는 것
방사시(房舍施) - 잠자리가 없는 사람에게 방을 내어주고 친절히 대하는 것
진정으로 우리가 신앙의 진리를 따라 남에게 베풀고자 하는 마음과 생각만 있다면 나눌 수 있는 게 적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신앙의 여정 중 귀한 ‘회개와 보속의 사순시기’를 보내고 있는 지금 우리는 무엇보다 얼마나 나눔을 실천하며 살아 왔는지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런 글귀가 생각난다. “사람이 일생을 마친 뒤에 남는 것은 모은 것이 아니라 뿌린 것이다.”
[출처 : 2015년 3월 29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춘천주보 사목단상]
이러한 절망의 시대에 오늘 제1독서 이사야서 35장 초반의 말씀은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달래고 있습니다.
“굳세어져라,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너희의 하느님을! 복수가 들이닥친다, 하느님의 보복이! 그분께서 오시어 너희를 구원하신다. 그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그때에 다리 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 말 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 광야에서는 물이 터져 나오고 사막에서는 냇물이 흐르리라.” (이사 35,4-6)
이 말씀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무엇을 던져줍니까? 이 말씀이 우리에게 도전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세상의 소리에 찌든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기쁨을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이들이 서로를 불신하고 상호 비방하며 절망하는 가운데서도 하느님의 말씀으로 무장한 우리들이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기쁨의 사람들이 되고 함께 어려움을 나누는 자들, 모든 이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사랑의 사도가 되어야 함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에파타" (열려라) 하시면서 귀먹은 사람을 듣게 하고 말하게 하는 기적을 보이신 것은 듣기는 하지만 제대로 듣지 못하고, 말하긴 하지만 바르고 진실한 말을 하지 못하는 우리를 깨우치고자 하심이었습니다.
에파타 예식이 세례성사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세속의 온갖 유언비어, 소문, 추문, 험담 등을 듣기보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고 입으로 신앙을 고백하며, 하느님을 찬미하고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랑의 대화를 나누어야 함을 깨닫게 해줍니다. 우리는 세속의 더럽고 상스러운 것을 들은 우리의 귀를 깨끗이 씻어버리고 오직 주님의 거룩한 음성과 그분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마음의 문이 열려서 세상 사람들에게 이 기쁜 구원의 소식을 전해 줄 수 있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어렵고 고통 속에 살아가는 소외받는 사람, 가난한 사람, 장애자들의 소리를 귀담아듣고 이들과 사랑을 나눔으로써 우리의 삶이 하느님께는 찬미와 영광이 되고 사람들에게는 참된 기쁨, 평화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느님과 세상을 향해 열린 삶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