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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대는 소돔과 고모라 시대보다 더 악해졌습니다
눅17:22-37-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하나님은 인간들을 통해 영광 받으시기를 원했지만 인간들은 에덴동산에서부터 하나님께 불순종한 이후에는 하나님없이 살기를 원하는 모든 것이 죄라는 것인데 이런 죄악생활은 우리를 곤고케 만들고 결국은 사망에 이르게 한다고 성경은 알려주고 있다. 성경의 주제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없이 살고자 하는 우리들 모습을 보시면서 어떻게 하면 저들이 하나님 사랑을 보여주시고자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사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므로써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구원을 받게 하셨다는 성경 진리를 온전히 믿고 살아간다면 그런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인간의 참 소망은 죽었다가 부활하여 영생을 얻는 것인데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에 의해 예수님은 십가위에서 정녕 죽었으나 사흘후에 다시 부활하셨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을 때 죽은 자들도 살려주셨는데 확실한 것은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셨는데 정말 그분은 죽으셨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이 진리중의 진리이시다. 아직 그분의 예언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신다는 재림이시다. 역사의 마지막이란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것이며 그 때가 다가올수록 세상은 종말의 징조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통해 지난 노아의 홍수때 있었던 심판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도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지난 역사중에서 하나님의 심판은 노아시대 때 홍수의 심판이었으며 국지적으로는 소돔과 고모라시대에 불심판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역사의 마지막 때도 마치 이 세상은 불로써 심판을 하신다는 말씀을 주셨다.
(눅17:26) 노아의 날들에 이루어진 것 같이 사람의 아들의 날들에도 그러하리라.
(벧후3:10) 그날에는 하늘들이 큰 소리와 함께 사라지고 원소들이 뜨거운 열에 녹으며 땅과 그 안에 있는 일들도 불태워지리라.
1.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예수님께서는 역사의 마지막 날에도 노아의 홍수가 일어났을 때처럼 세상은 불로써 심판하실 것을 경고하셨다. 노아의 홍수는 창세기 6장에서 그 배경을 볼 수 있는데 사람들이 지면에서 번성하여지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사악함이 땅에서 크고 또 그의 마음에서 생각하는 것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면서 하나님께서는 사람만드신 것을 슬퍼하셨으며 이로 인해 심판 하실 것을 의인 노아를 통해 말씀하셨다.
(창6:13)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육체의 끝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이는 땅이 그들로 인해 폭력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라. 보라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심판의 원인은 땅에 폭력이 가득하였다는 것이다(창6:11).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비가 밤낮으로 사십일 동안 쏟아졌다(창7:12). 그러니 물들이 차고 넘쳐흐르며 홍수가 그 길을 따라 모든 것을 집어 삼켰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던 사람들에게는 경고없이 닥쳤지만 노아와 그의 가족은 방주안에서 피할 수 있었습니다. 심판이 내려진다면 이 심판에서 구원받는 다는 것은 심판을 준비한 사람이외는 다 멸망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소돔과 고모라시대에도 사람들은 악을 포용했을뿐만 아니라 그 악행에 대해 자랑스러워했다. 한 때 번영하고 번성했던 이 도시들은 물질적 부요함으로 그들이 마음속에는 타락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창19;5) 롯을 부르고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사람들은 자신들의 풍요로움속에서 아무것도 위협할 수 없다고 믿었다. 하지만 롯은 여전히 의로움 감각을 유지하고 있었고 그를 둘러싼 부도덕함에 깊이 괴로워했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는 말은 동성애를 의미한다는 말이니 그 지역사회는 다양한 타락으로 가득차 있었고 성적부도덕을 통한 자긍심으로 꽉 차있었다. 그러니 생명의 신성함에 대한 명백한 무시는 일상적인 일이었다. 이 때도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자 천사들에 의해 오직 롯과 그의 딸들만이 안전한 곳으로 인도되면서 구원받았다는 말이다. 이런 이야기는 단지 비극적인 이야기만이 아니라 죄가 절정에 다다를 때 하나님의 심판이 정확한 순간에 도래할 수 있음을 경고하는 메시지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 사람들은 그 어느때 보다 죄에 대해 더 무감각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그의 재림에 대해 말씀하셨을 때 그 재림하실 때의 순간을 노아와 롯의 시대에 비유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결혼하고 건축하고 심고 수확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다시말해 일상적인 일들은 계속될 것이지만 세상은 깊이 죄에 빠져 있을 것이라는 것이며 과거 시대에 영적어두움이 반복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역사의 마지막 때에도 신성한 것에 대한 무시 신의 가치를 멸시하는 모습 그리고 믿음을 조롱하는 모습이 될 것입니다. 그 후 하늘을 가로지르는 갑작스러운 번개처럼 인자가 능력과 영광으로 나타나 분순종을 지속한 자들에게 심판을 내리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은 우리가 지금 바로 그 상태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과학은 발전하고 일상적인 업무로 분주한 삶을 살고 있지만 도덕적 영역은 하나님에 대한 어떤 경외감도 없이 비어있는지 돌아보도록 우리에게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 세대는 소돔과 고모라 보다 더 악해졌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경고했습니다. 날이 갈수록 인류는 마치 절벽을 향해 눈을 감고 달려가는 듯 하며 성경에서 울려퍼지는 경고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과거의 예들은 먼 옛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현실을 직접적으로 말해주며 동일한 부패와 오만 어리석음이 더욱 광범위하고 강렬한 형태로 반복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노아와 롯 시대에도 세상은 평범한 일상을 이어가는 듯 보였습니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며 시장을 오가고 미래를 계획하고 축제를 즐기며 가족을 돌보았습니다. 일상적인 일들과 모든 것이 통제되고 있다는 착각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분위기는 부패와 하나님에 대한 반역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노아시대에는 폭력이 세상을 가득채워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것을 슬퍼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시대에는 악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를 내려서 하나님을 분노하게 말들었습니다. 당시 분위기는 사람들로 하여금 악한 일에 빠지도록 재촉했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물질적으로 번영했지만 정의에 대해 무감각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도덕성을 조롱하고 혼돈을 찬양하는 문화를 만들어내며 빠른 속도로 질주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너무나 완고해져 회개의 긴박함을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는 그 분의 재림전에도 이와 유사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인류는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며 종말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깨닫기를 거부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기술이 발전할수록 오히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퇴보하는 듯 보여집니다. 인간은 자급자족할 수 있다고 느끼지만 전쟁위기와 자연재해 그리고 더욱 노골적인 도덕적 타락의 소식이 넘쳐나는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마치 현재가 영원할 것처럼 그리고 어떤 결과도 없을 것처럼 살아갑니다. 정치적 부패가 확산되고 도시의 폭력은 일상이 되며 가정은 해체되는 소용돌이 속에서 무너져갑니다. 한 때 숨겨졌던 타락한 행위들이 이제는 대낮에 공개적으로 찬양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소돔과 고모라 보다 더 심각한 타락의 수준에 도달한 것은 아닌지 정직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성경의 기록을 고려해볼 때 그 답이 놀랍도록 그렇다에 가까워 보인다. 노아시대에 세상은 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하시면서 사람들의 생각이 끊임없이 악할 뿐이어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것을 후회하시고 그 세대를 끝내기로 결정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폭력이 너무도 심하게 번져서 평화를 위한 자리도 옳은 일을 위한 공간도 없었으나 노아는 여호와의 눈에 은혜를 입었기에 그는 신의 명령에 따라 방주를 지었을 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에게 다가올 심판에 대해 경고하였다. 방주가 만들어지면서 울려퍼지는 망치소리는 다가올 재앙을 알리는 경고와 같았지만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노아의 설교를 들었던 사람들은 이를 터무니 없다고 여겼거나 어쩌면 그들은 비웃을지도 모르고 노아를 광신자라고 불렀을지도 모른다. 한번 생각해 보시라. 평범한 날처럼 삶이 지속되었지만 바로 비가 오기 시작한 그 평범한 날은 갑자기 비가 쉬지 않고 쏟아지기 시작하더니 물은 곧 모이면서 흐르기 시작하였고 얼마후 홍수는 모든 것을 집어 삼켰다. 노아의 경고를 우습게 보던 저들은 피할 수도 없었지만 노아와 그의 가족은 방주안에서 안전하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롯의 시대에 소돔과 고모라는 불의를 저지르는데 그치지 않고 악을 조금의 부끄러움도 없이 즐기기 까지 했다. 그 도시는 풍요롭고 번영했지만 그 지역의 문화는 이미 다양한 타락속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었는데 여기에는 성적 일탈행위 교만 자만심 타인의 생명을 철저히 무시하는 태도가 포함되었다. 심지어 천사들이 찾아와서 이 도시를 떠나라고 하였는데도 그들은 전혀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아직도 정의감이 어느 정도 남아 있던 롯은 자신이 본 광경 때문에 괴로워했다. 심판의 불이 하늘에서 내렸을 때 그 파괴는 완전했다. 오직 롯과 그의 딸들만이 천사들에 의해 서둘러 구출되어 살아남았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비극적인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죄가 절정에 이르고 사람들이 그 어느 때 보다도 무감각해질 때 신의 심판이 정확히 도래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예수님께서 재림에 대해 말씀하실 때 미래의 순간을 노아와 롯의 시대와 비교하셨다. 사람들은 여전히 시집가고 장가가며 집을 짓고 농작물을 심고 거두는 등 일상적인 생활을 계속할 것이라고 하셨다. 다시 말해 평범한 일상은 지속되겠지만 세상은 과거의 영적 무감각을 반복하며 죄 속에 깊이 잠길 것이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성스러운 것에 대한 무관심 신성한 가치를 향한 경멸, 신앙에 대한 조롱으로 가득할 것이다. 과학은 발전하고 일상은 분주히 흘러가지만 도덕의 영역에서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은 완전히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때 번개가 하늘을 가로지르듯이 갑자기 예수님이 권능과 영광가운데 나타나 불순종을 계속해온 이들에게 심판을 내릴 것이다. 이 성경적 묘사는 우리로 하여금 주위를 둘러보며 우리가 정확히 그런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지 묻게 만든다.
2. 세상을 사랑하지 말자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를 읽을 때 흔히 주목받지 못하는 롯의 아내가 저지른 치명적인 실수는 인간의 마음이 이 세상에 얼마나 집착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녀는 분명한 명령을 받았다. 도망칠 때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명령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남겨진 재산을 어쩌면 두고온 재물들을 사랑했거나 포기하고 싶지 않은 추억과 쾌락에 집착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 세부사항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녀가 망설이다가 뒤돌아본 바로 그 순간 소금기둥으로 변해버렸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이 여인을 기억하라고 경고하셨다(눅17:32). 하나님께서 구속을 제공하셨도 아무리 구원을 베풀어 주셔도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뒤돌아보며 주님께서 우리에게 떠나라고 명하신 삶의 방식을 여전히 놓지 않으려 한다. 이는 멸망의 환경을 떠날 수는 있지만 여전히 세속적인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의 모습이다. 이는 하나님의 주신 목적에 대해 완전하고 진실되게 자신을 맡기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롯의 아내처럼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이 자유를 향한 길에 있지만 여전히 죄악된 것들을 그리워하며 이미 심판받은 것들을 바라보며 미련을 두고 있다. 다 믿는다고 해서 모두가 구원받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이시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는 즉각적인 분리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두 사람이 들판에서 함께 일하다가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다른 한 사람은 남겨질 것이다. 두 사람이 같은 집에서 잠을 자다가 한 사람을 데려감을 당하고 다른 한 사람은 남겨질 것이다. 이런 비유는 더 이상 논쟁이나 토론이 없을 것임을 보여준다. 마음이 그리스도께 속한 이들은 그 분과 함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즉 구원을 받는 것이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의로운 심판을 마주해야 할 것이다. 이 구분은 사회적 계층 외모 단순한 종교적 소속에 따라 이뤄지지 않는다. 진정으로 복음에 충실했는지 믿음으로 인해 삶이 변화되었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누군가에게 예수님의 재림은 가장 큰 소망이요. 오랫동안 기다렸던 예수님과의 재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에게는 하나님께 대한 반역하며 살아온 삶의 결과를 마주해야 하는 두려운 순간이 될 것이다. 그 사건이 일어나는 순간 회개의 기회는 바로 종료될 것이다.
3. 예수님의 재림은 분명하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보이지 않거나 상징적인 결과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것처럼 천사들은 제자들이 구름가운데 승천하신 예수님을 본 것과 똑 같은 방식으로 그분이 돌아오실 것을 명확히 밝혔다. 요한계시록은 모든 눈이 그분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눅17:24) 번개가 하늘 아래 이쪽에서 번쩍이어 하늘 아래 저쪽까지 빛을 내는 것 같이 사람의 아들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이 말씀은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사실에 대해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재림을 무시하고 상징적으로 치부하는 이들도 그 때는 그 현실을 마주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굳게 서서 위를 바라보며 소망을 가지고 인내한 이들에게는 그날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의 날이 될 것이다. 진정한 질문은 그분이 언제 다시 오실지가 아니라 내가 과연 그분을 만나게 될 날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는가 이다. 결국 어느 누구도 자신의 생명이 얼마나 지속될지 알지 못한다.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이 여전히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상상할지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 그분과 친밀하면 죄를 이기는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 시대의 사람들은 죄를 짓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마치 그것이 정상인 양 사람들은 수치심이나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않은 채 번영속에서 살아갔다. 그들은 풍족한 자원을 누리는 번영한 사회였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도 이웃을 향한 연민도 빈곤했다. 성경에서는 번영과 자만이 결합되면 하나님을 경시하는 백성이 된다는 것을 여러번 보여 줍니다. 에스겔은 소돔의 죄가 자만 과식 그리고 가난한 자들을 돌보지 않은 것이라고 명확히 밝혔습니다. 이는 단순히 한 종류의 부도덕함에 그치지 않고 교만하고 완전히 공감이 결여된 한 사회가 이러한 단계에 이르면 심판은 임박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와같은 특성들이 하나의 지역이나 국가에 국한되지 않고 전세계적으로 영적퇴보를 증명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오실 때 구원받기 위해서는 과거의 구원받은 경우를 기억해야 한다. 노아는 혼돈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으로서 그는 의롭고 정직했습니다. 그는 다가오는 비극을 사회에 경고했에도 사람들은 그를 무시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를 믿음으로 지은 방주안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롯은 불의로 가득한 땅에 살았지만 여전히 하나님에 대한 일정한 존경심을 유지했습니다. 천사는 그가 멸망이 닥치기 직전에 그를 구해주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하나님이 세상이 타락하고 모든 것이 부패한 가운데에서도 그를 진심으로 찾는 자들을 구별하시고 보호하신다는 중요한 진리를 보여줍니다. 우리가 적대적이고 부도덕한 환경속에서 살더라도 하나님은 그를 진실하게 찾는 자들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롯을 소돔에서 구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자신의 은혜안에서 피하는 자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은 그가 돌아오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재림의 교리는 신화나 전설이 아닙니다. 그것은 기독교인들에게 확고한 소망입니다. 우리는 그 날이나 시간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예수님 자신은 그런 세부사항은 아버지께만 속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가 때를 분별하고 깨어 있도록 여러 가지 징조를 남기셨습니다.
(눅17:37)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어디든지 시체가 있는 곳이면 독수리들이 거기로 함께 모여들리라, 하시니라.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이 모여든다는 말은 세상끝날이 가까이 올수록 거짓선지자들의 증가 전쟁 기근 전염병 그리고 지구에서 사랑이 식는 현상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오늘날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현실이며 각기 역사적 절정이 다가오고 있다는 증거로 들어맞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반역을 이어가고 있지만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고 정신을 차리고 믿음을 지키며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노아와 롯 시대와 마찬가지로 현대 사회는 경고에 대해 점점 더 회의적이거나 무관심해지고 있습니다. 일부는 휴거를 조롱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의 말씀이 신실한 자들이 그리스도에 의해 데려가게 될 거대한 사건이 있을 것이라고 밝혀 주었다면 그 날이 왔을 때 모든 경고를 무시한 사람들에게는 두 번째 기회가 없을 것이므로 그것은 마치 대홍수와 같을 것입니다. 방주에 문이 닫혔듯이 또 그것은 마치 소돔같이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하나님의 보호를 벗어난 자들에게는 피할 곳이 없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 조차 인식하지 못합니다. 이제 죄는 칭찬받고 옹호되며 자유의 깃발로 변질되었습니다. 부끄러워해야 할 일들이 현대의 성취로 취급됩니다. 이제 더 이상 죄를 비밀리에 두는 문제가 아니라 죄에 대한 일반인들이 승인하며 성경에서 분명히 반대하시는 것을 모두가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가운데 많은 기독교인들은 침묵해거나 양보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낍니다. 그러나 노아와 롯처럼 우리는 비록 다수가 우리를 조롱하더라도 거룩한 것을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그것은 신성한 부름에 대한 신실함의 문제입니다. 우리들이 끝까지 세상불의와 싸워가면서 외친다면 주님께서는 그분의 자녀들이 악한 자들과 함께 멸망하지 않도록 보호하실 것입니다. 노아홍수와 소돔의 멸망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를 경외하는 자들을 구원하신 모습을 봅니다. 이는 우리가 고난이나 박해를 겪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성경은 결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자들에게는 특별한 보호를 보장합니다. 그리스도 재림의 약속은 부인할 수 없는 희망의 이정표입니다. 문제는 그 약속의 진실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그것을 믿고 준비가 되어 있는지가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왜 예수님이 아직 오지 않았는지 궁금해 할 수 있지만 주님께서는 오래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않기를 원하시고 모든 사람이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 은혜의 시간은 무한하지 않습니다. 방주의 문이 닫혔던 것처럼 회개할 시간도 끝날 것입니다.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이 바로 은혜받을 시간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울려퍼지는 경고는 동일합니다. 깨어 기도하라. 너희가 그 때가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진지하게 반성하라는 초대입니다. 만약 부도덕과 폭력이 증가하고 불법이 정상화되며 가정이 찢어지고 기독교적 가치가 점점 더 공격을 받는다면 우리는 절망해서는 안되고 이러한 징조들이 이미 예언되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예언은 우리를 두렵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준비시키려는 것입니다. 깨어 있는 자들은 이 모든 일이 예고된 되로 펼쳐지고 있음을 이해하며 주님께 신실하게 남아 있으려고 애쓸 것입니다. 정해진 때에 소돔의 불이 더 이상 경고없이 내린 것처럼 기회가 더 이상 없을 때가 올 것입니다. 겉보기에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은 과거 시대의 실수를 반복할 위험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과 세상을 따르는 것 사이에는 중간지점이 없습니다. 방주에 들어가거나 밖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날 이 모든 것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가 회개의 부름에 즉시 응답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고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를 구하고 하나님의 왕국의 원칙에 맞추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이것은 긴급성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시간이 영원한 것은 아닙니다. 노아홍수와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는 기회가 지나가면 심판은 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진정한 회개는 피상적이거나 의례적인 행위가 아니라 마음과 행동의 변화로 죄에서 돌아서서 하나님의 빛으로 걷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상한 마음을 멸시하지 않으시며 예수님은 자신에게 오는 자를 결코 내쫒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초대는 언제까지 유효할까요?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 까지 혹은 우리의 생명이 끝날 때까지입니다.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이 모여들 듯이 지금 지구 곳곳에 퍼진 징조들 재앙의 증가 악의 폭증 그리고 거룩함에 대한 무관심 이 모든 것이 우리의 결정의 긴급성을 나타냅니다. 노아가 하나님께 순종하여 방주를 지을 것을 선택해야 했듯이 오늘날 우리는 진리의 목소리를 높이고 사회가 우리를 광신자로 부를 때에도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이 세대는 소돔과 고모라 보다 너 나빠졌습니까? 악이 전세계적으로 퍼져 모든 사람들이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은 여전히 동일합니다. 부패에서 떠나고 주님을 모욕하는 삶의 방식을 버리며 생명으로 이끄는 좁은 문을 통과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노아의 시대에 심판이 올 것이라고 경고했고 실제로 그것은 이루어졌습니다. 성경은 소돔의 멸망을 경고했으며 하늘에서 불이 내렸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경고했으며 그 예언이 이루어지지 않을 이유는 없습니다. 주님께서 역사의 마지막 때 오시겠다고 말씀하셨으면 그분이 오신다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우리 각자가 롯의 아내를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그녀는 거의 심판에서 구원받을 뻔 했으나 뒤를 돌아보아서 소금기둥으로 변하였던 것을 우리들에게 교훈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도 준비되기를 바랍니다. 왕이 오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 날을 알 필요는 없습니다. 오직 그분과 매일의 교제를 통해 죄를 피하고 나팔소리가 울릴 때 그리스도 안에서 흠없이 발견될 수 있도록 살아가야 합니다. 방주의 문이 정해진 시간에 닫혔듯이 우리는 끝없는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고 미루어서는 안됩니다. 노아의 이야기 롯의 이야기 예수님의 말씀과 사도들의 편지는 모든 죄는 언젠가 심판을 받는다는 하나의 목소리로 통합됩니다.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살고 지극히 높으신 분 안에서 피난처를 찾습니다. 이 세대가 소돔과 고모라 보다 더 나빠졌다면 심판의 날이 온다는 것 즉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것은 너무 확실한 일입니다. 유일한 구원의 길은 예수그리스도께 항복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셔서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십자가를 바라보고 용서를 구할 시간이 있습니다. 성경의 이야기는 단순히 분리된 이야기들이 아니라 인간의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그리고 회개하는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그린 초상입니다. 열리 마음으로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사람은 이 주기가 반복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악이 극에 달하면 심판은 불가피하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큰 차이점은 그 끝이 예수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이라는 점입니다.
이제 그분께 돌아가서 그 분이 올 때 애통하는 자들 중에 있지 않고 왕 앞에 영원히 기뻐할 자들 중에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각 사람의 미래는 오늘 자신이 내린 선택에 의해 결정됩니다. 과거의 이야기들을 되새기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한 자들이 어떻게 몰락했는지를 보고 그분께 신실했던 자들이 어떻게 피난처를 찾았는지 배웁니다. 노아홍수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할 때 롯의 탈출은 모두 우리에게 의로움과 하나님의 부르심을 외면한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줍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이 이야기들에서 무엇을 배웠습니까? 역사의 마지막 예수님의 재림의 시간은 처음보다 훨씬 빨라졌으므로 이제 그분 오심을 맞이할 준비를 하셔서 그날에 영광중에 그분을 뵙기를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