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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의 명칭과 개념, 문학화의 기나긴 여정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넓다고 좋은 강은 아니다. 좁아도 많은 물고기들이 살고 있다면, 좋은 강이리라. 깊다고 좋은 바다가 아니다. 낮아도 바닥이 보일 만큼 깨끗하다면 충분히 좋은 바다이리라.
- 문학평론가 권대근
I. 로그인
21세기 중심문학으로서의 한국수필의 문제를 찾아 그 해결방법을 찾아나서는 길목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수필의 정의와 그 문학화 과정의 변화를 살펴보는 일일 것이다. 수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그 개념을 정리하는 것에서 답을 찾아나가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수필의 개념은 수필의 특성을 가장 간단하고 분명하게 말로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필의 개념을 규정하는 것은 수필의 정의를 내리는 것이다. 정의의 방법 중에서 가장 엄격한 것은 분류적 정의다. 분류적 정의는 정의되는 말, 정의되는 말의 상위 개념, 정의되는 말의 동위 개념과 특성을 포함한다. 수필의 개념을 분류적 정의에 따라 정의하면, '수필은, 내용을 독자에게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제재와 주제 중심의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지금까지 내려진 어떤 수필의 정의보다 정의로서의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수필의 개념이 성립되는 동서양의 과정과 수필의 개념을 바르게 정립하는 데 있어서 걸림돌이 되고 있는 수필에 대한 기존 개념을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수필의 본질을 제대로 정리함으로써 우리 수필의 위상을 바로 세울 수 있으리라 믿는다.
II. 클릭
수필의 장르와 형식의 문학화 과정
수필의 기원에 대해서는 이설이 많다. 그러나 프랑스 몽테뉴의 『수상록』을 수필의 원조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수필의 원조는 그보다 17년 늦은 프란시스 베이컨의 『수상록』을 꼽는데, 사실상 수필은 진화해왔다고 할 수 있다. 몽테뉴의 수필은 일반산문으로 출발해서 몽테뉴 이후 베이컨에서 문학적 산문으로, 다시 베이컨 이후 태어난 찰스 램에서 현대적 의미의 완전한 문학장르로서의 수필로 진화 변형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몽테뉴에서 베이컨까지만 하더라도 수필은 하나의 완전한 장르를 형성하기까지 문학과 비문학의 모호한 자리, 경계선에 놓여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영국수필은 C.램 이후, W.해즐릿, L.헌트, T.드 퀸시 등의 유명한 수필가가 배출되었다고 하겠다. 특히 램의 『엘리아 에세이집』(1823)은 생활인의 여유와 철학이 깃들어 있으며 신변적, 개성적 표현이면서도 인생의 참된 모습이 묘사되어 있고, 영국적 유머와 애상이 잘 드러나 있다.
영어의 ‘에세이’는 사실개념으로서, 우리말의 ‘수필’보다 훨씬 더 넓은 의미를 갖고 있다. 수필뿐만 아니라 소논문, 비평가의 평론, 신문이나 잡지의 사설과 칼럼에서 인문서적의 제목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에세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프랑스의 몽테뉴로, 1580년에 『수상록』이라는 이름으로 수필집을 출간하였다. 사실 몽테뉴식 수필은 오늘날 가치개념으로 보면 비문학적 산문에 가깝다. 영국에서는 1597년에 베이컨이 주로 명예, 진리, 부 등의 주제를 다룬 금언적인 짧은 글들로 이루어진 『수필집』(The Essays)을 내면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수필이 문학양식으로 변모한 것은 사실상 베이컨식 수필로 변모하면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하겠다. 이 베이컨식 수필 또한 현대적 수필시학의 관점에서 완전한 문학장르로 보기에는 미흡한 점이 없지 않다.
몽테뉴의 수필은 ‘사실적 소재’에 대한 ‘사실적 토의’에 그침으로써 비문학적 수필을 지향하고, 베이컨식 수필은 ‘사실적 소재’에 따른 ‘문학적 사실의 소재 형식’으로 변용을 지향한다는 측면에서 약간 성격이 다르지만, 어쨌든 별다른 구분 없이 시작한 두 가지 다른 양식으로서의 수필은 17세기 영국에서 큰 호응을 얻었으며, 이성의 시대라 할 수 있는 18세기에는 신문, 잡지 등 정기간행물의 급성장으로 새로운 수필 형식이 확립되었다. 특히, 애디슨과 스틸은 1711년에 일간지 『스펙테이터』를 공동으로 발간하여 많은 수필을 발표하였다. 이 당시의 수필 소재는 대부분 당시의 사회적 관심사였으나 작가의 개성을 반영하는 주관적 특성은 간직하고 있었다. 낭만주의 시대는 보편성보다 개성을, 합리성보다는 환상적인 것을 강조하여, 개인적인 문학양식인 수필이 인기 있는 장르였다. 영문학의 진수를 수필에서 찾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신라시대 설총이 쓴 한문수필 「화왕계」를 효시로 하는 수필은 지금껏 그 개념이 명확하지 않았다. 1930년대 발표된 수필 이론에 의거해서, 모호하게 정의되어져온 수필에 대한 개념으로 인해서 수필은 문학이면서 문학의 대접을 받지 못했다. 그것은 한마디로 제대로 된 이론체계가 서 있지 않은 탓이었다. 수필을 일컫는 개념부터 잘못되어 있었으니, 이론이 제대로 정립될 수 없었고, 따라서 수필을 문학으로 인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흔히 인용되는 '수필은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는 정의와 '수필은 형식이 자유로운 글'이라는 정의는, 수필의 특성을 바르게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주지 못하며, 수필을 다른 종류의 문학과 구별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떤 이는 수필이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란 비유적인 표현이기 때문에 글자 그대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이런 정의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수필을 잘못 쓰고, 잘못 쓰면서도 누구나 쉽게 쓰겠다고 나서고 있기 때문에 이런 정의를 내린 사람은 그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2. 교과서 수필론 비판과 수필론 바로 세우기
지금까지 금과 옥조처럼 여겨온 '수필은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는 정의의 잘못된 점을 지적해 보면. 수필의 정체성을 새롭게 세울 수 있을 것이다. '붓 가는 대로 쓴 글'이란 한문의 '수'와 '필'을 번역한 것으로 뜻이 불분명한 정의다. 정의되는 말은 모든 사람에게 같은 의미로 이해되도록 진술되어야 한다. 따라서 올바른 정의는 비유로 표현되지 않아야 한다.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는 정의는 의미가 불분명한 비유적 정의다. 이러한 정의는 수필에 속하는 작품과 수필에 속하지 않는 작품을 구별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수필을 써본 사람이면, 이런 안이한 수필관에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문학 작품이란 소재와 주제가 겸비되어야 하고 또 매끈하게 다듬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형식과 내용이 조화되고 통일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필도 하나의 작품이라면, 이것을 붓 가는 대로 써 버릴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흔히 한국 문학자들은 위와 같은 정의를 내리면서, '수필'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 중국 남송 시대 홍매의 말을 인용한다. 그러나 홍매가 사용한 수필의 뜻은 문학의 한 종류를 뜻하는 수필의 뜻과 같지 않다. 홍매는 수필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하였으나, 이 말을 문학의 한 종류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다음으로 '수필은 형식이 자유로운 글'이라는 정의를 살펴야 하는데, 이러한 정의를 내리는 사람들은 '형식'이 무엇을 뜻하며, '자유롭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밝히지 않는다. 그러므로 '형식'이라는 말이 무엇을 가리키며, 형식이 자유롭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따질 필요가 있다. 언어로 구성되는 작품에서 형식이라는 말은 작품 쓰기의 규칙을 가리킨다. 평시조는 네 음보가 한 행을 이루고, 세 행이 한 연을 이룬다. 평시조를 쓰는 사람은 이 규칙에 따라서 작품을 짓는다. 그래서 평시조의 형식은 네 음보가 한 행을 이루고, 세 행을 한 연으로 이루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공식적인 설명문은 서론, 본론, 결론으로 구성된다. 이것이 공식적 설명문 쓰기의 규칙으로서의 형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수필은 형식이 자유롭다'는 말은 수필에는 쓰기 규칙이 없으므로, 쓰기 규칙에 따라 쓰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현대시 중에는 일정한 쓰기 규칙에 따라 쓰지 않는 것이 많고, 현대 소설도 대부분 정해진 규칙에 따라 창작되지 않는다. 이와 같이 현대시나 현대소설 중에는 형식이 자유로운 부분이 많다. 그러므로 '형식이 자유롭다'는 정의는 수필을 현대시나 현대소설과 뚜렷하게 구별하는 데 도움을 주지 않는다. 다른 편으로 잘 쓰여진 수필은 작가가 설정한 규칙에 따라 작품의 의미가 발전하도록 구성되기도 한다. 이러한 수필을 형식이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수필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점에서 '수필은 형식이 자유로운 글'이라는 정의도 수필과 수필이 아닌 것을 구별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의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붓 가는 대로 쓴다'는 것을 아무렇게나 써도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곤란하지만, 그렇게 받아들여진다는 데 문제가 있었다. 애시당초 분명치 못한 정의 자체가 우리 수필을 오도해 온 결과로 오늘날 수필을 문학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세력들에게 좋은 빌미를 제공해 주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수필이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거나 '수필은 형식이 자유롭다'는 정의는 반드시 수정되어져야 할 것이다. 글은 붓이 쓰는 것이 아니다. 작가가 어떤 사상과 느낀 감정이 있어 그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써지는 것이다. 그 의도를 표현함에 있어 수필은 일정한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쓸 수 있으며, 그 형식은 어디까지나 작가 자신이 갖고 있는 성격과 품격에 의해 이루어짐을 말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작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인 주제가 반드시 있는 것이다. 그래서 “수필은 내용을 작품 속의 화자와 일치하는 작가가 독자에게 직접 전달하는 주제와 제재 중심의 문학”으로 정의된다. 이러한 현대적 개념의 수필은 한마디로 말하면 ‘문학수필’이다. 수필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수필에서의 주제는 작품 속에 내면화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3. 수필의 명칭과 장르에 대한 올바른 이해
동양에서는 ‘수필’이란 말이 문헌상 처음으로 쓰인 것은 중국 당대 시인 백거이가 <송령호상 공부태원시>에서다. 이후 남송시대 홍매가 <용재수필>(74권 5집)을 썼다. 우리나라의 경우, 수필문학의 효시는 7세기말 671년 설총의 <화왕계>를 시작으로 한다. 수필류 책의 원조로는 고려 이규보의 <백운소설>이다. ‘수필’이라는 말이 문헌상 처음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은 조선중기(1638년 이전) 윤흔의 <계음만필>의 ‘도재수필’이고, 이후 효종 1652년 이민구의 <동주집>에 실려 있는 ‘독사수필’과, 1688년 숙종때 조성건이 쓴 <한거수필>이다. 박지원의 <열하일기> 중 ‘일신수필’은 정조 4년 1780년이다. 이후 1895년 유길준은 근대적 의미의 수필 <서유견문>을 썼다. 수필은 처음에 ‘보통문’으로 불렸다. 1917년 <청춘>지가 ‘보통문’으로 수필을 실었고, 1919년 <매일신보>는 수필을 ‘소품문’이라 했다. 1924년 춘원이 <조선문단>에 ‘의기론’을, 청운거사가 <개벽>지에 ‘춘제한화’란 글을 발표하면서 ‘수필’로 쓰이기 시작하다가 1927년 김진섭 등의 등장과 함께 본격적으로는 1929년 <동아일보>, 1930년 <별건곤>이 보통문, 소품문 등으로 불리던 글을 ‘수필’이라 함으로써 ‘수필’이란 장르가 고착된다.
문학수필 작법은 ‘사실의 소재’에 대한 ‘문학적 사실의 소재 형식’ 만들기에 있다고 하겠다. 수필의 작법이 ‘사실의 소재’에 대한 ‘문학적 사실의 소재 형식’ 창작에 있는 이유는 시나 소설과 달리 수필은 태생부터 ‘사실의 소재’ 자체를 작품의 제재로 삼는 양식의 문학으로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이 태생적 특징은 수필이 문학적 수필로 진화된 이후에도 변함이 없다. 다만 몽테뉴 본래의 수필은 ‘사실의 소재’에 대한 ‘사실적 토의’를 하는 데 그치지만 베이컨식 수필은 ‘사실의 소재’에 대한 창조적 구성작업, 즉 ‘문학적 사실의 소재 형식’으로 변용되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문제는 베이컨식 수필이 몽테뉴식 수필에 비해 진일보한 것이지 이 또한 협의적 관점에서 문학과 비문학의 경계에 머물렀다고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수필은 문학이다. 문학이란 ‘한 편의 의미 있는 이야기’라는 것이 본질적 대답이며 또한 문학의 존재 이유가 된다. 문예작법의 핵심은 하나의 창조적 의미를 형상화하기 위한 모든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수필도 마찬가지다. 과학적 차원에서 보면, 토끼는 토끼일 뿐이고, 사자는 사자일 뿐이다. 그러나 예술은 그 같은 과학적 사물존재가 아니다. 예술은 그 존재하는 양상 자체가 창조적이다. 그래서 도올은 ‘작가’에서 ‘작’의 의미는 ‘creative'라 하였고, 김지하는 문학을 ’어불성설‘이라 하였다. 따라서 문학수필은 동양시학의 ’언불진의, 입상진의‘, 즉, 개념적으로 파악하기보다는 형상적으로 체험하는 편이 보다 우수한 창조성을 가진 작품이 될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이것‘을 ’저것‘으로 하는 치환원리가 제대로 적용되고 있고, ’세계의 자아화‘란 서정원리가 작동되고 있는 수필시학을 하루 빨리 수필이론으로 정착해나가야 할 것이다.
III. 로그아웃
수필의 개념을 문학화 과정의 측면에서 살펴보았듯이, 수필은 주제와 제재 중심의 문학으로서, 위에서 살핀 개념을 밑거름으로 하여 피어난 꽃이라 할 수 있다. ‘산신령이 사는’ 산, ‘용이 사는 바다’ 같은 것을 생각하면 수필과 수필 아닌 수기와의 차이를 짐작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문학가는 인류의 교사여야 한다는 말이 있다. 수필이 안식의 문학이라는 것은 수필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이 삶의 정도라는 것이다. 수필가의 사명은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답게 사는 길인지 그 길을 밝혀주는 것이다. 꽃도 생태에 따라 향기를 달리하듯 수필 또한 어느 특성에 치중했느냐에 따라 성격을 달리한다. "위대한 작품은 우리를 가르치지 않고 우리를 변화시킬 뿐이다"라고 말한 괴테의 말은 드킨시가 말한 '힘의 문학'이 갖는 감동을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감동은 쾌락이며 일종의 카타르시스다. 그것은 갈등의 해소요, 욕구의 실현이다. 이와 같은 감동을 우리는 수필을 통해서 만날 수 있다. 우리가 수필을 읽는 이유는 그 속에서 고상한 쾌락을 만나기 때문이다. 수필가가 얼마나 진실하게 자신의 삶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해서 참신하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수필의 향기와 질이 달라진다. 문제는 이러한 수필의 특성을 본질적으로 재인식하면서 수필을 고급문학으로 발전시켜 가는 일이다. 수필이 문학적 미에 의한 문학적 진리에의 작업을 떠나는 순간 그것은 무용의 공염불이요, 불로의 사막으로 변하고 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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