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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 나눔 전능하시지만 거짓말은 못하시는 하나님
장코뱅 추천 3 조회 317 26.07.25 07:39 댓글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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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6.07.25 07:47

    첫댓글 이번 묵상은 복음과 조직신학을 함께 담고 있으니 묵상과 공부의 효과가 날 것 같습니다. 초신자와 바쁜 분들은 묵상본문만 읽으셔도 충분합니다. 여력이 되는 분만 아래 추가 설명을 읽으세요

  • 26.07.25 08:55

    알겠습니다.

  • 작성자 26.07.25 08:37

    <호크마 주석: 하브리서>

    =====6:13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 신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약속을 언급할때 대부분 아브라함을 예로 들고 있으며(행3:25;7:17;롬4:13;갈3:8,14,16,18) 본서에서도 아브라함을 예로 제시하는 경우가 자주 등장한다(13-15절;2:16;7:4-5;11:8-19).13-15절의 아브라함에 관한 서술은 믿음의 모범으로서 12절의 '본받으라'는 권면에 대한 내용이다.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 본절은 창22:16의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를 저자가 논리적인 부연 설명을 덧붙여 인용한 것이다. 하나님이 하신 '맹세'에는 약속에 대한 지연(遲延)이 암시되어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즉시 약속을 이행하신다면 맹세하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West-cott). 하나님은 자신을 세워 스스로 맹세하셨다(출32:13;사45:23;렘22:5;49:13).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에 대한 확실한 이행을 보증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약속의 확실성에 대한 가장 큰 보증이 되신다(Lane).

  • 작성자 26.07.25 08:37

    =====6:14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 본절은 70인역의 창22:17을 다소 변형시킨 인용구이다.
    70인역에는 '플레뒤노 토 스페르마 수'(* , '내가 너의 씨를 번성케 하리라')로 되어 있는 반면에 본절에서는 '플레뒤노 세'(* , '내가 너를 번성케 하고')로 되어 있다. 두 구절의 의미는 동일한 것이나, 이렇게 저자가'너의 씨'를 '너'로 변경시켜 인용한 것은 이야기의 초점을 아브라함에게 집중시키기 위함이다(Schroger). 또한 창22:17에서 하나님의 약속은 자손의 번성뿐만 아니라 땅에 대한 소유까지도 포함하고 있으나 본절에서는 자손에 대한 약속만을 언급한다. 이는 11:17-19의 내용 즉 약속을 성취받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인 이삭을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기까지 인내한 아브라함의 믿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Swetnam).

    =====6:15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그의 믿음과 인내에 대해 엄격한 시험을 거친 후에 약속에 대한 보증을 받을 수 있었다(창22:1,15-18). 약속의 성취는 이삭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었으나

  • 작성자 26.07.25 08:37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이삭마저도 제물로 바치려 하였다. 이것은 어떠한 절망 가운데서도하나님이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아브라함의 믿음이었으며, 그와 같은 믿음은 약속을 기다리는 모든 자들이 본받아야 할 본보기였다(Lane). '약속을 받았느니라'는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삭과 손자인 에서와 야곱의 출생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이것은 약속의 완전한 성취로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 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요8:56)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약속의 보다 깊은 의미를 내다보고 있었음을 시사한다(Morris).

    =====6:16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저희 모든 다투는 일에 최후 확정이니라 - 저자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17절) 당시 일반 사람들이 하던 맹세와 비교하여 설명한다(Cicero, Philo). 일반적으로 맹세는 발언한 것에 대한 결정적이고도 구속력이 있는 확증이었다. 구약성경에서 맹세는 맹세하는 사람보다 더 크고 위대한 여호와의 이름으로 되어졌으며(신6:13;10:20) 만일 맹세를 하고서 이를 어기면 그것은

  • 작성자 26.07.25 08:38

    십계명 중 제3계명을 어기는 것이 되었다(출20:7;신5:11;슥5:3,4). 실제로 맹세는 약속한 것의 명백한 진실성을 비준해 달라고 하나님을 엄숙히 부르는 행위를 수반하였다(Philo). 저자는 아마도 아브라함이 이방인들과 다툼을 방지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요구한 사실과 이러한 맹세는 최후 결정으로 더 이상 변개(變改)할 수 없음을(창14:22;21:23-24;24:3) 염두에 두고 본절을 기록하였을 것이다(Lane).

    =====6:17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 본절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를 나타내는 것으로 창22:16-17에 대한 언급이다. 여기서 '맹세로 보증하셨나니'는 하나님의 약속의 불변성을 의미한다. 특히 '보증하셨나니'의 헬라어 '에메시튜센'(* )은 '중재자'란 뜻의 '메시테스'(* )에서 유래한 말로서 '중재자가 되다', '보증인이 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하나님은 맹세가 필요 없으나 자신의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주기 위하여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셨다.

  • 작성자 26.07.25 08:38

    한편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은 아브라함을 포함하여 그의 후손들을 시사하는 것으로 육체적인 후손이라기보다는 영적인 후손 즉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한다(Lane, Mo-rris).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하신 맹세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확신을 고무(鼓舞)시켜 주는 말씀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 즉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까지 확장되어 적용된다(Michel, Spicq, Foerster). 따라서 아브라함에게 하신하나님의 맹세는 자신의 약속이 변치 않는다는 사실을 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보증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6:18
    본절은 '히나'(* , '위하여')로 시작하는 목적절로 하나님께 맹세하신 목적을 나타낸다.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 '이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은 13절과 17절에 나타난 하나님의 '약속'과 '맹세'를 가리킨다(Bruce, Michel, Kuss). '약속'은 모든 날 마지막에 나타난 말씀인 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키는 것으로(1:2), 하나님께서 '맹세'하여 보증하신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 성취되었다

  • 작성자 26.07.25 08:39

    (20절;히5:6,10;7:17,21,28;시110:4, Lane). 한편 본문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 뒤오 프라그마톤 아메타데톤 엔 호이스 아뒤나톤 프슈사스다이 데온'(* )은 '이 두 가지 변할 수없는 사실에 대하여 하나님은 거짓말 하실 수 없으므로'(by two unchangeable thingsin which it is impossible for God to lie, NIV)라는 의미로 이 두 가지 사실 즉 '약속'과 '맹세'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거짓말하실 수 없음을 시사한다. 이것은 성경의단편적인 한 두 구절에서 유추한 것이 아니라 구약성경 전체에 흐르는 사상에 뿌리를 둔 것이다(민23:19;삼상15:29;시89:35;사31:2).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소망'은 본서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을 가리키는 것으로 현재 이룩되었으며 앞으로 완성되어질 구원을 나타낸다(Michel, Grasser,Glaube, Mora). 저자는 '앞에 있는 소망' 즉 그리스도인들의 종말론적 구속의 소망이 하나님의 변할 수 없는 약속과 그리스도를 통한

  • 작성자 26.07.25 08:39

    구속 사역으로 인해 이중의 보장을 받고 있음을 강조한다(Lane, Schierse). 이러한 소망을 바라보고 삶을 영위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죄악을 피해가야 한다(Morris). 한편 '큰 안위'는 앞서 언급한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오는 '용기' 혹은 '위로'를 가리킨다(Robertson). 하나님은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 즉 자신이 행하신 약속과 맹세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성취하셨으며,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 현재 구원을 누리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변개할 수 없는 하나님의 약속과 맹세를 인해 종말론적 구원의 성취를 소망하고 현재 지상의 삶 가운데서 위로를 받게 된다.

    =====6:19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 본절에서 닻의 비유가 사용되는 것과 같이 '삶'을 '항해'에 비유하는 것은 고대 문학에 있어서 흔히볼 수 있는 표현이었다(Hilgert). 그러나 신약성경에서 이와같은 비유는 오직 본절에서만 나타난다. 이 '닻'의 비유는 헬라문학에서도 그러했듯이 흔들리지 않는 굳건함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Lane). 저자는 소망이 '영혼의 닻'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표현을 통해

  • 작성자 26.07.25 08:40

    그리스도인이 소망하는 종말론적 구원의 성취가 확고한 것임을 시사한다. 한편 본절의 '영혼'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쉬케스'(* )는 인간을 '육'과 '영혼'으로 분리하는 헬라 철학의 이원론적 개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本質的)인 생명을 나타낸다(Morris).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 '휘장'은 구약 시대의 성막 안에 있던 두 개의 방 즉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천을 가리킨다. 이 휘장 너머 즉 안쪽은 지성소를 의미한다(출26:31-35;레16:2,12,15;21:23;24:3). 지성소는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한 번 속죄일에만 들어갈 수 있었다(레16:2).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이 되셔서 들어가심으로(20절) 휘장은 찢어졌고(마27:51;막15:38)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모든 자들이 자유롭게 지성소 즉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종말론적구원의 성취를 통해 완전히 이루어질 것이다. 한편 '들어가나니'의 헬라어 '에이세르코메넨'(* )은 '에이세르코마이'(* , '들어가다')의 현재분사로서 '닻'(* , 앙퀴란)을 수식한다. 따라서 휘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닻'이다.

  • 작성자 26.07.25 08:40

    그래서 혹자는 이 '닻'과 '예수 그리스도'를 동일시한다(Windisch,Kasemann, Grasser, Koster, Schroger). 그러나 이 '닻'은 다시 소망을 설명하고 있으므로 결국 휘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소망'이다(Lane, Kuss, Michel, Spicq). 휘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소망'이라는 사실은 7:19의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는 말씀으로 더욱 확증된다. 그리스도인들이 지닌 소망은 닻과 같이 튼튼하고 안전하여 세상의 어떠한 시련이나 유혹을 뛰어넘어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갈 수 있도록 한다(Morris).

    =====6:20
    그리고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 - '앞서 가신'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드로모스'(* )는 본절에서와 같이 단수로 사용된 용례가 고전에서나 헬라 문헌에는 거의나타나지 않는다. 이 단어의 복수 형태인 '프로드로모이'(* )는 주력 부대 앞에 나가있는 '첨병'이나(Herodotus, Polybius), '주력 함대를 앞서 인도하는 배들'(Alciphron),

  • 작성자 26.07.25 08:41

    '처음 익은 열매'(민13:20;사28:4), 혹은 '전령'(Herodotus)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이와 같은 용례에 비추어 볼 때 본절의 '프로드로모스'는 '선구자', 혹은 '선두주자'라는 의미를 지니며 동시에 누군가가 '프로드로모스'의 뒤를 따른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예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의 선구자(先驅者)로 멜기세덱과같은 대제사장직 수행을 위해 먼저 휘장 안으로 들어가셨다(5:7-10). 즉 예수께서는 자신의 대속적인 희생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셨으며 그 구속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를 씻어 백성들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게 하셨다(10:14, Lane).따라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심은 그리스도인들이 그의 구속을 힘입어 뒤따라 하나님 존전에 나아갈 수 있는 확증이 된다(Hewitt).

  • 26.07.25 08:54

    네, 잘 읽고 참고하겠습니다.

  • 작성자 26.07.25 08:44

    <매튜 헨리 주석: 히브리서>

    바울이 하나님이 약속이 불변함을 완전하고 명백하게 설명함으로써 이 장을 끝내고 있다(13-20절).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의 맹세로써 보증하신 것이었으며, 이러한 약속들은 하나님이 영원한 뜻 가운데서 유래된 것들인 것이다.

    1.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께서는 맹세하심으로 보증하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약속을 주시고 그 약속을 친히 인봉하셨을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서원을 예로써 발하였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모든 믿는 자들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에게 하신 맹세는 모든 참된 믿는 자들에게로 강력한 효력을 지니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었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11절)라고 하였다.

    (1) 약속의 내용. 그것은 "내가 반드시 복 주고 너를 복 주며 너를 완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축복은 그의 백성들에게 주는 축복이다. 하나님은 그가 진정으로 축복한 자들을 계속하여 축복하실 것이며 그들을 완전한 축복에 으르게 하실때까지 축복을 더욱 더 증강시켜 그들에게 주실 것이다.

  • 작성자 26.07.25 08:44

    (2) 하나님의 약속을 보증하시는 맹세의 내용.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가리켜 맹세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존재와 자신의 복되신 위치를 걸고서 맹세하셨다. 어떠한 맹세도 이보다 더 안전하고 바람직한 것은 없을 것이다.

    (3) 하나님의 맹세가 성취된 방법. 아브라함은 때가 이르렀을 때 그 약속을 얻었다. 아브라함의 끈질긴 인내는 마침내 그에게 유익한 결과를 가져오게 하였다.

    [1] 약속과 약속의 성취 사이에는 언제나 간격이 있는데, 때로는 그 간격 시간이 길 때도 있다.

    [2] 간격은 믿는 자들이 끝날 때까지 인내하느냐 못하느냐를 시험하는 시험 기간이다.

    [3] 인내하며 노력하는 자들은 아브라함이 약속된 축복을 얻었던 것처럼 분명히 약속된 축복을 받을 것이다.

    [4] 하나님의 맹세하심은 약속에 대한 보증이 되며 약속이 성취되기를 인내하며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격려가 된다(16절).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맹세는 확고한 것으로 모든 의심을 말소시키는 것이다. 사람들은 맹세할 때 자기보다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을 걸어 맹세하시지 않고 하나님 자신을 가리켜 맹세하셨다. 하나님의 맹세는 이같은 것이므로 이 맹세에

  • 작성자 26.07.25 08:45

    대한 왈가왈부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들 자신의 내적인 갈등 즉 의심과 불신이 있어도 안 되는 것이며 다른 사람들과 이 약속에 대한 논쟁을 벌여도 안 되며 특히 약속하신 분에게 시비를 벌이려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자신을 낮추시기까지 하며 맹세를 하셨으면, 하나님은 틀림없이 그 맹세를 기억하고 계실 것이다.

    2. 하나님의 약속은 그의 영원한 뜻 가운데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었다. 약속에 대한 그의 미리 정하신 뜻은 불변의 뜻인 것이다.

    (1)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주신 축복의 언약은 성급하게 서둘러서 이루어질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의 결과인 것이었다.

    (2) 하나님의 목적은 그의 뜻과 일치되는 것으로 영원한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과 성령 사이에서 이미 정해진 것이었다.

    (3) 이 하나님의 뜻은 결코 변경될 수 없다. 그의 뜻은 불변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뜻을 변경하실 필요를 느끼시지 않는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끝까지를 미리 아시고 계시는 하나님에게는 돌발적인 사태란 생길 수 없기 때문이다.

    3. 불변하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미 정해져 있었고 또 하나님의 맹세로 인하여 확인된 이 약속은

  • 작성자 26.07.25 08:45

    우리가 안심하고 믿을 수 있는 약속이다. 왜냐하면 이 약속에는 두 가지 불변하는 요소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의 뜻과 맹세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의 뜻과 그의 본성과는 전혀 일치하지 않게 그가 거짓말 하신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제 다음을 살펴 보자.

    (1) 하나님께서 이같이 축복을 절대 보장해 주신 대상.

    [1] 하나님은 약속을 물려받을 후사들에게 이런 축복을 보장하셨다. 이들은 유업으로 또 새롭게 태어남으로써, 그리스도와 하나가 됨으로써 약속의 자격을 얻은 사람들이다. 우리는 본래 진노의 자녀들이었다. 우리들이 태어날 때는 저주밖에 상속받을 것이 없었다. 그러나 새로운 출생에 의해 약속을 상속받을 자가 된 것이다.

    [2] 하나님께서는 자기들 앞에 놓인 소망에 자신을 의뢰한(피신시킨) 사람들에게 이러한 축복을 보장하셨다. 율법 아래에서는 피의 복수자들에게 쫓기는 사람들을 위해서 마련된 도피성이 있었다. 그렇지만 복음 아래서는 복음에 의해 마련된 보다 훌륭한 도피성이 있다. 이 도피성은 이곳에 피신하기를 원하는 모든 죄인들에게 개방되어진 도피성인 것이다. 비록 아무리 큰 죄인일지라도 이리로 올 수 있는 것이다.

  • 작성자 26.07.25 08:46

    (2) 하나님이 맹세까지 하신 것은 믿는 자들로 안심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즉 그들이 큰 위로를 얻기를 바라셔서였다. 이제 다음을 생각해 보자.

    [1]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의 성화(聖化)에만 관심이 있으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안위에 대해서는 그의 자녀들이 주를 경외하고 또 성령의 위로를 맛보며 생활하게 하고자 하신다.

    [2] 그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위로는 대단히 강력한 것이므로 이 위로를 받는 사람들은 어떠한 시련도 이길 수 있는 것이다. 세속이 주는 위로는 너무나 약해서 시험과 박해와 죽음이 닥치면 우리의 영혼은 그 어려움을 감당하지 못하고 좌절하고 만다. 그러나 주의 위로는 결코 드물게 우리에게 임하거나 또는 보잘 것 없게 우리에게 임하지는 않는다.

    (3)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주신 영원한 축복에 대한 힘이되고 위로를 주는 희망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어떤 소용이 되는가? 이 희망은 "닻과 같아서 우리의 영혼을 안전하고 든든하게 보호해 준다"(19절). 다음 사실을 생각해 보자.

    [1]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모습은 마치 바다에 떠있는 배와 같아서 이리저리로 흔들리며 언제 부서질지 모르는 위기 가운데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 작성자 26.07.25 08:46

    우리의 영혼은 배이다. 우리 영혼안에 깃든 안락함과 소망과 은혜와 축복은 영혼이란 배가 싣고 있는 아주 귀중한 화물인 것이다. 또 하늘 나라가 당하는 유혹과 박해와 고난은 배를 난파 시키려고 하는 폭풍과 파도와 같은 것이다.

    [2] 우리는 우리의 안전을 보장해 줄 튼튼하고 견고한 닻을 필요로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해서 위험 속에 처할 것이다.

    [3] 복음이 주는 소망이 우리의 닻이다. 이 소망은 우리의 영적인 전쟁에 있어서는 철모와 같은 역할을 하며 사나운 폭풍이 치는 이 세상 속을 향해해 나가는 데는 닻과 같은 역할을 한다.

    [4] 복음이 주는 소망은 튼튼하고 견고하다. 만일 그것이 튼튼하고 견고하지 못하다면 우리를 보호해 줄 수 없을 것이다. 첫째, 복음이 주는 소망은 본래부터 확실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 희망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복음이 주는 소망은 은혜를 통해서 주어진 아름다운 소망인 것이다. 그 소망은 거미줄로 이루어진 것처럼 그럴듯하게 외관만 갖춘 소망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신 튼튼하고 변함이 없는 것이다.
    둘째, 복음이 주는 소망은 복음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만큼 견고하다. 그것은 든든하게 박혀있는 뜻과 같다.

  • 작성자 26.07.25 08:47

    이 소망은 우리로 휘장 안으로 들어가게 해 준다. 이 소망은 영원한 반석이신 예수님에게 내려진 닻이다. 이 소망을 지닌 우리들은 암초에 걸려서는 안 되며 휘장 안으로 들어가 거기서 그리스도에게 소망의 닻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이 그리스도가 우리의 목적이시며 믿는 자들의 소망은 닻을 든든하게 받쳐 주시는 분이시다. 휘장 안에 보이지 않는 영광이 신자들의 바라는 바 희망인 것처럼, 휘장 안에 계셔서 보이지 않는 예수님 또한 신자들 희망의 기본이 되신다. 하나님의 자유스런 은총과 그리스도의 공로와 중보, 성령의 능력있는 감화력은 믿는 자들의 소망의 근거이다. 그러므로 복음이 주는 희망은 확고부동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 가지 점에서 믿는 자들의 소망 목표가 되시며 근거가 되신다.

    a. 그리스도께서 휘장 밖 즉 이 세상에 계실 때 드리신 희생으로 말미암아 그가 이제 휘장 안 즉 하늘 나라에 가셔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중재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같이 우리의 소망은 그의 희생 제물되심과 중제하심에 근거한 것이다.

    b. 그리스도께서 믿는 그의 백성들의 선두주자가 되셔서 휘장 안으로 들어가서 그들이 있을 곳을 준비해 놓으시고 그를 따라 오라고

  • 작성자 26.07.25 08:47

    확실히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믿는 자들의 예표요 첫열매이시다. 즉 그는 부활에 있어서나 승천에 있어서 우리의 예표와 첫열매이신 것이다.

    c. 그리스도는 멜기세덱의 계열을 이으신 영원한 대제사장으로서 하늘나라에 거하신다.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직분은 그가 구원의 역사와 계획을 완성하시기까지 중단됨이 없을 것이고 또 실패됨도 없을 것이다. 그의 사업이 완성될 때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완전하고도 최종적인 축복이 주어질 것이다. 이 축복에 이르게 될 때 우리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위해 또 우리의 안전을 위해 우리의 선두주자가 되셔서 하늘나라에 들어가신 그분에게 소망을 두어야 하는 것이다. 그는 지금도 하늘나라에 계시면서 우리를 염려하시고 돌보고 계신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우리의 안전을 위해서 휘장 안으로 들어가셨으며, 우리들에게 가장 큰 관심과 열심을 보여 주신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더욱 하늘나라를 더욱 사모하게 된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거기에 있게 되기를 더욱 바라게 되는 것이다. 하늘 나라는 우리에게 영원한 안전과 만족을 줄 것이다.

  • 26.07.25 09:23

    아멘 🙏

  • 26.07.25 09:23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무질서한 자의성이 아니라, 그분의 절대적인 거룩함과 진리 안에서만 발휘된다는 진리가 가슴 깊이 와닿습니다.
    거짓말을 하실 수 없고 자가당착이 없으신 하나님이시기에, 우리가 믿는 그분의 약속과 말씀은 온전히 신뢰할 수 있음을 다시금 고백합니다.
    세상의 권력처럼 휘둘리는 힘이 아니라,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성품과 완벽히 일치하는 권능만이 참된 영원한 주권임을 깊이 묵상하게 됩니다.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영원한 아버지로 모시고 살아가는 은혜에 감사하며, 신앙의 정절을 지켜나가기를 소망합니다.

  • 작성자 26.07.25 10:07

    아멘!

  • 26.07.25 09:24

    거짓과 변함이 없으시며 거룩한 성품 안에서 신실하게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완벽한 공의와 주권을 진심으로 찬양합니다.
    자의적인 권능이 아닌 진리와 사랑으로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오늘 하루도 그 크신 말씀의 위로와 평안 속에 담대히 거하게 하소서.

  • 작성자 26.07.25 10:15

    아멘!

  • 26.07.25 11:27

    하나님은 유일무이한 절대자로서 만물의 창조주, 통치자이십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거룩하심과 진리의 속성 안에서만 발휘된다는 점을 정통주의 신학자들이 확립했는데요. 이점을 높이 사고 싶습니다. 전능자가 절대적인 선과 거룩함, 진리로 통제되지 않고 마구잡이로 권능을 행사한다면 그와 같은 지옥이 어디 있겠습니까? 마귀와 그 수하들은 쥐꼬리만한 능력으로 인간들을 공포로 몰아넣고 파멸로 이끌고 있으니 너무나 비교가 됩니다. 거룩함, 절대 선, 진리는 죄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하나님의 성품으로서 예수와 연합한 자들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성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여전히 죄의 본성으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물려 받은 고귀한 성품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고 눌릴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죄인된 인간의 실존을 제대로 이해해서 내 속에서 진리의 사람이 항상 일 하도록 성령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유명론자들의 신학적 오류를 분별하고 올바른 삶의 지침을 따르도록 자극을 주는 좋은 묵상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26.07.25 11:50

    공감합니다. 깊은 분별을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 26.07.25 11:52

    절대자가 악한 면으로까지 전능함을 행사하면 그것이 지옥이라는 위에 분 말씀과, 포스팅 본문에 매우 공감합니다!

  • 26.07.25 11:58

    1문단에 대하여: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거룩하신 본성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자가당착이나 자의적 악행이 아닌 신실한 진리 안에서 발휘된다는 깊은 통찰에 큰 은혜를 받습니다.

    창조와 섭리, 구속과 부활로 증명된 전능하심이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함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우리의 소망과 믿음이 결코 흔들리지 않음을 확신하게 됩니다.

    개혁주의적 전통에 따라 무질서한 자의성을 배격하고 거룩한 성품 안에서 무한히 초월하시는 하나님만을 영원한 주권자로 바라보는 바른 신앙의 눈을 뜨게 해주는 감동적인 글입니다.

  • 26.07.25 15:05

    네, 공감합니다.

  • 26.07.25 11:59

    2문단에 대하여:

    하나님의 다양한 성호와 구속사적 사건들 속에 나타난 전능하심을 성경 구절과 함께 명확히 풀어주셔서 깊은 은혜가 됩니다.

    창조와 섭리, 그리고 부활에 이르기까지 온 우주와 역사 속에 선포된 하나님의 능력이 곧 우리의 영원한 소망이자 위로임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보다 넘치도록 채우시는 신실하신 하나님만을 온전히 신뢰하며 찬양하는 삶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 26.07.25 15:06

    아멘!

  • 26.07.25 12:00

    3문단에 대하여:

    중세 유명론의 오류인 자의적 '절대적 능력'과 세상 철학의 제한을 비판하고, 하나님의 완벽한 거룩함과 일치하는 참된 전능하심을 명쾌하게 해설해 주셔서 큰 은혜가 됩니다.

    하나님의 전능함이 무질서한 폭력이 아니라 거룩한 성품 및 진리와 온전히 하나 되어 발휘되는 주권적 권능임을 깨닫고 참된 안식과 확신을 얻게 됩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는 신실하신(미쁘신)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 고난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소망의 뿌리가 됨을 깊이 새기게 됩니다.

    우리의 영원한 아버지 되신 하나님의 거룩한 주권과 사랑을 온전히 신뢰하며, 날마다 주님의 미쁘심을 의지해 담대히 살아가는 삶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 26.07.25 15:07

    아멘!

  • 26.07.25 12:01

    마지막 문단에 대하여: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거룩한 본성과 일치하는 신실한 통치임을 밝혀주신 정교한 고백을 통해, 어떤 역경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천국 소망과 깊은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거짓이 없으신 미쁘신 전능자께서 선한 손으로 우리의 삶을 붙드심을 온전히 신뢰하며, 날마다 담대한 믿음으로 주님의 주권을 찬양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 26.07.25 15:08

    아멘!

  • 26.07.25 15:09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자의적 권력이 아니라 완벽한 거룩함과 공의 안에서만 작동한다는 진리를 성경과 개혁주의 전통으로 명쾌하게 짚어주셔서 큰 도전과 은혜가 됩니다.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의 신실하신 본성을 바탕으로 선포된 구원의 약속이기에,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의 믿음과 소망을 흔들림 없이 올려드릴 수 있음을 깊이 고백하게 됩니다.

  • 26.07.26 16:25

    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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