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텅빈 정수리", 탈모인 절반은 여성…그런데 약이 없다

[봉쥬르 (박봉주)]

"어느날 텅빈 정수리", 탈모인 절반은 여성…그런데 약이 없다

안정준 기자 - 

국내 탈모인의 절반 가량은 여성이다. 남성과 달리 초기 증상을 인지하기 어려운 여성 탈모 특성 상 어느날 갑자기 정수리 주변 머리숱이 줄어든 것을 알고서야 병원을 찾곤 한다. 하지만 먹는 탈모약과 바르는 탈모약 등 선택지가 다양한 남성에 비해 여성은 바르는 약 하나밖에 없다. 그나마 바르는 약의 효과를 볼 수 있는 사람도 제한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지난 수년간 '사각지대'로 남아있던 여성 탈모 치료현장에 새 대안이 추가될지 주목된다. 새로운 여성 탈모약 임상이 속도를 내기 시작한 것.

"어느날 텅빈 정수리", 탈모인 절반은 여성…그런데 약이 없다© MoneyToday

18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최근 종근당은 여성 탈모 치료제 CKD-498의 국내 임상 2상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승인받았다. 이에 따라 종근당은 조만간 여성 안드로겐성 탈모 환자를 대상으로 CKD-498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비교 평가하는 임상 2상에 착수할 예정이다.

국내에서 시도되는 사실상 유일한 여성 탈모 치료제 임상이다. 게다가 임상 2상은 1~3상으로 짜여진 전체 의약품 임상 과정 중에서 의약품의 효능을 본격적으로 따져보기 시작하는 '치료적 탐색' 과정이다. 2상을 지나 3상에 진입하면 이 같은 탐색을 바탕으로 마지막 '치료적 확증'을 하게 된다. 이 치료제가 임상 2상에 진입했다는 것은 1상에서 안전성을 검증하고 이제 개발에 어느정도 속도가 붙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CKD-498 관련 공개된 정보는 이 정도가 전부다. 핵심성분과 투약방법, 임상 참여자들의 구성 등 의약품의 대체적 성격을 미루어 짐작해 볼 만한 대부분의 정보는 비공개 상태다. 종근당 관계자는 "개발 전략상 세부 내용을 공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업계에서는 미개척 영역에서 시도되는 사실상의 유일한 임상이기 때문으로 보인다는 반응이 나왔다. 한 업계 관계자는 "다수의 제약사가 여성탈모 관련 의약품 개발을 물밑에서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때문에 경쟁사 관리 차원에서도 임상 정보를 쉽게 공개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임상 2상 단계에서부터 '보안'을 유지할 만큼 여성 탈모치료제 시장 잠재력은 크다. 우선 환자 수가 생각보다 많다.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건강보험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 병적 탈모증으로 진료를 받은 국민은 24만3609명인데 이중 44.2%인 10만7764명이 여성이다.

여성 탈모는 증상이 상당히 진행된 뒤에야 병원을 찾는 경향이 있어 실제 여성 탈모인은 '병적 탈모증 진료'로 건강보험에 집계된 숫자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일명 'M자 이마'로 진행돼 증상을 빨리 알아차릴 수 있는 남성 탈모와 달리 여성 탈모는 통상 정수리 모발이 가늘어지다가 숱이 줄어드는 양상으로 진행된다. 때문에 정수리 주변 두피가 훤히 보이는 상태가 돼서야 병원을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

탈모로 고통받는 여성은 많지만 약은 사실상 바르는 탈모치료제 미녹시딜 하나가 전부다. 남성들이 흔히 복용하는 프로페시아 등 경구 치료제는 여성이 처방받기 힘들다. 가임기 여성이 복용하면 기형아 출산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사실상의 유일한 치료제인 미녹시딜도 농도 3% 이하만 사용해야 한다. 그 이상을 쓰면 여성 다모증이 생겨 턱이나 입술 주변, 가슴 등에도 털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농도 3% 이하를 사용해 효과를 보는 경우도 10명 중 2명을 넘는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환자는 많은데 약이 거의 없다면 제약업계에서는 '최고의 시장'이다. 종근당의 이번 여성탈모치료제 임상이 눈길을 끄는 이유다. 하지만 지금까지 약이 없었던 것은 그만큼 개발도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성 탈모의 원인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것도 개발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여성이 보유한 남성호르몬의 증가나 이를 받아들이는 수용체의 민감도가 커져 여성 탈모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 해외 기업 중 보툴리눔톡신 제제를 이용해 여성과 남성 탈모 모두 치료 가능한 치료제 임상을 시도하는 곳이 있지만 여성 탈모 시장은 여전히 미개척 영역"이라며 "구체적 임상 정보가 나와봐야 여성 탈모 치료제 성공 가능성을 따져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