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속마음을 알 수가 없다. 완전 크레물린(Ktrmlin)이다. 크렘린 궁정은 공산주의의 독재를 상징하는 요새이다. 막강한 권력을 가진 소비에트 정권의 중추임에도 외부에 공개되지 않고 베일에 싸여있다고 하여 우리는 속을 내비치지 않는 사람을 ‘크레물린’이라고 칭한다. 오늘따라 무겁게 드리워진 친구의 베일을 걷어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우리는 같은 대학캠퍼스에서 청운의 꿈을 함께 키웠다. 사회진출 후에도 부산에서 서울에서 우정의 끈을 놓지 않았다. 50년을 함께 해온 우정을 ‘크레물린’이란 제목으로 글을 쓰기가 머쓱하여 많이 망설여지지만 보고 플 때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랠 길이 없다. 이 또한 안고 가야 할 삶의 무게라면 차라리 비우고 가는 게 낫겠다는 심정으로 용기를 내어 본다.
중년기에 접어들면서 매년 여름이면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과 지리산 계곡에 피서를 갔다. 처음에는 부부동반, 이었지만 남녀 간의 감성과 가족문화의 괴리감이 있고 군사가 너무 많아 번거롭기도 하여 지금은 남자들만 간다. 언젠가 “다른 친구들은 술 먹고 노는데 왜 당신은 바보같이 설거지만, 하느냐.”고 핀잔을 받았다는 뒷얘기. 그 사람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 L 친구이다.
그는 무척 다정다감하고 바지런하며 매사에 솔선수범하는 상 남자였다. 경남 고성이 그의 고향이다. 47년 전 고성에서 전통혼례를 치르던 날, 부산에서 고성 혼례식장으로 가는 도중에 택시가 고장이 나서 안절부절못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는 음식솜씨 좋고 마음씨 고운 고성 댁을 만나 서울에서, 안양에서 중년기를 보냈고 이태 전에 안태 고향인 고성으로 귀촌하였다고 했다. 입이 천근만근이라 처음에는 귀촌한 줄도 몰랐다. 가을비가 촉촉이 내리던 창가에 앉아 추억에 젖노라니 L 친구가 생각나 전화를 했더니, 그제사 고성에 있다고 이실직고한다. 친한 친구들과 한번 쳐들어가겠다고 해도 가타부타 말이 없다. 나 같았으면 기쁜 마음으로 “그거 좋지, 친구들과 함께 한번 다녀가시게.” 했을 법한데 묵묵부답이었다. 나이 들수록 보고 싶은 사람이 친구일 텐데 이럴 수가. 일순간 의아했다. 분명히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듯한데 베일에 잠긴다. 크레믈린같이….
코로나 펜데믹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엄격했던 지난여름, 간 큰 친구 네 명이 지리산 계곡 피서길에 올랐다. 세월 따라 하나둘 이 세상을 등져 가고 이렇게 네 명만이라도 함께 할 수 있다니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지리산 거림계곡으로 가는 길목, 지난날 함께 야영을 즐겼던 덕천강 변에서 알싸한 피리 조림에 걸쭉한 막걸리로 회포를 풀고 강둑을 내려갔다. 알몸으로 첨벙첨벙 자맥질을 했다. 민 살결에 부딪히는 물살이 그렇게 감미로울 수가 없다.
술맛 당길수록 친구 생각이 간절해지는 법, 크레믈린 친구가 생각나 지리산에서 일박하고 욕지도를 가기로 했다. 욕지도를 가려면 고성을 경유하기 때문이다. 크레믈린 친구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기대감과 넷보다 다섯이면 더욱 즐거울 것 같아 기쁜 마음으로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내일 욕지도를 가는데 가는 길에 픽업할 테니 함께 가지 않을래?” 흔쾌히 동행할 줄 알았다. 그러나 “일이 있어 같이 못 가네.”
긴 세월을 두고 얼마나 다져온 우정인데 이렇게 만남을 피할까. 함께 하지 못할 그 무슨 이유라도 있을까. 쉽게 풀어지지 않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통영에서 욕지도행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갈매기 가족들도 따라나선다. 욕지도의 명물 고등어 요리와 소주잔에 곰삭은 우정을 타서 마시고 거나한 심신으로 출렁다리에 올랐다.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수평선 너머 고성 친구의 환영이 물결친다.
“앞으로 우리 만나봐야 몇 번 만나겠노.” 출렁다리 언덕길 오르며 거친 숨결로 내뱉던 서울 친구의 말이 가슴을 짠하게 했다. 길어야 십 년 세월. 순간순간이 천금 같은 세월인데 오늘따라 고성 L 친구의 빈자리가 너무 아쉽고 허전하다. 돌아오는 길, 차창으로 스쳐 지나가는 ‘고성’이란 표지판에 친구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크렘린 궁전 우정의 문은 아직도 굳게 닫혀 있을까. 세월 따라 가노라면 언젠가는 활짝 열리겠지. 반백 년 전 대학캠퍼스에서 처음 만나 굳은 악수로 우의를 다졌던 그 날처럼.
공자의 인생삼락(人生三樂) 중에 하나인 ‘유붕(有朋)이 자원방래하니(自遠方來)하니 불역락호(不亦樂乎)이여라.’ 라는 말이 생각났다. 멀리서 친구가 찾아오니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2,500년이 흐른 지금도 친구를 그리는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일 텐테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을 한잔 술로 달래며 또 하루를 살아간다.
욕지도로 가는 그날이 하필이면 L 친구 부모님의 제삿날이었다고 한다. 그것도 친구로부터가 아닌 그의 아내 고성 댁의 말씀이다. “고마 여기 와서 회 한 접시하고 갔으면 됐을 낀데.” 그 말 한마디에 맺힌 가슴을 깔끔하게 걷어주었다. 친구야. 우리 말 좀하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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