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어 서원이라는 단어는 “네데르(neder)”인데 그것은 '서원, 맹세 혹은 서약한 제물을 의미했다. 구약성경에 60회 정도 등장하는 이 단어는 “아무의 입에서 나온 것으로 아무개 자신을 구속하다'를 뜻한다. 네데르는 하나님께 구두로 약속드린 어떤 것이다(민 30:4). 만일 누군가가 그렇게 약속하면 그는 그 약속을 이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신 23:22).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서원이란 단순히 행동 과정만이 아니라 제사를 드리기 위한 약속된 예물을 암시한다는 것을 문맥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성경의 '서원'은 항상 신에게 드려지는 것이지 결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약속이 아니다. 따라서 경솔한 서원은 피해야 한다(잠 20:25, 참조: 삿 11:30).”(한글 원어 사전)
구약시대에는 미성년자는 부모에게 그리고 아내는 남편에게 예속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에 미성년자와 여인의 서원은 그들의 세대주인 아버지와 가장인 남편에게 어느 정도 제약을 받았다. 그들이 서원했다고 하더라도 그 서원하는 날에 반대할 경우 그 서원은 무효화 되었다.
(민 30:3) 또 여자가 만일 어려서 그 아버지 집에 있을 때에 여호와께 서원한 일이나 스스로 결심하려고 한 일이 있다고 하자 (민 30:4) 그의 아버지가 그의 서원이나 그가 결심한 서약을 듣고도 그에게 아무 말이 없으면 그의 모든 서원을 행할 것이요 그가 결심한 서약을 지킬 것이니라 (민 30:5) 그러나 그의 아버지가 그것을 듣는 날에 허락하지 아니하면 그의 서원과 결심한 서약을 이루지 못할 것이니 그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였은즉 여호와께서 사하시리라
아내의 서원도 마찬가지였다. (민 30:13) 모든 서원과 마음을 자제하기로 한 모든 서약은 그의 남편이 그것을 지키게도 할 수 있고 무효하게도 할 수 있으니 그러나 만일 그 서원을 말하는 당일에 침묵하였다가 후일에 여러 날 지나서 그것을 무효화 하게 한다면 그 책임은 부모나 남편이 져야만 했다. (민 30:15) 그러나 그의 남편이 들은 지 얼마 후에 그것을 무효하게 하면 그가 아내의 죄를 담당할 것이니라
이 세상에는 수많은 네데르가 선언되고 시행된다. 그러나 이 우주가 있어 온 이래로 가장 거룩한 맹세는 하나님의 아들의 맹세일 것이다. 인간들이 죄를 짓고 영원한 멸망 당할 수밖에 없을 때 삼위 하나님은 깊은 의논을 거친 끝에 성자이신 예수님이 자원하여 죄로 인하여 멀어진 하나님과 죄인 사이의 화목제물(네데르)이 되기로 서원하셨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그것을 맹세로 용인하심으로 구속의 경륜이 세워진 것이다.
(히 7:20) 또 예수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히 7:21) (그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이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히 7:22) 이와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이 인간의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온갖 수난과 모욕당하시고 마침내 십자가에 달리셨으나 한 번도 그분은 후회하시거나 원망하시지 않으셨다. 기꺼이 짊어 지시기로 하신 그 고난의 십자가를, 그 진노의 잔을 홀로 들이키셨다. 그리고 마침내 “다 이루셨다고” 선언하신다.
인류의 구속을 위한 십자가의 희생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동의하신 거룩한 맹세로 이루어진 성자의 서원이었고 마지막 순간까지 그 서원을 이루셨다.
(요 12:27)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하나님 아버지! 그 누구도 책임을 묻거나 강요하지 않는 서원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거룩한 맹세로 약속하셨고 지옥의 가장 깊은 구렁텅이보다 더 깊은 이 땅에 죄인의 몸을 취하시고 오셨습니다. 고마워하지도, 감사하지도 않는 죄인들을 위하여 기꺼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무익한 저희를 위해 그 한 없는 사랑 보여주셨습니다. 그 사랑 기억하며 살게 하시고 조금이라도 그 사랑 나누며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