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려해상 국립공원에서 가장 큰 섬 거제도로 떠나다
한려해상 국립공원에 속한 행정구역은 통영・거제・사천・남해・여수가 있다. 가장 동쪽의 거제도부터 전라도의 여수까지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푸른색 바다는 언제봐도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한다. 이 중 통영은 점점 더 아름다운 항구로 이름이 나 강구안 인근은 몰려든 사람들로 인해 발 디딜 틈조차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런 번잡함을 뒤로 하고 통영 앞 바다의 머나먼 섬들로 떠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남해 한가운데 오밀조밀하게 떠 있는 섬들을 보며 마음에 평안을 찾을 수 있다.
신선대
거제도의 아름다운 해안선
반면 거제는 전체가 섬이긴 하지만 거제대교와 신거제대교로 통영과 연결되어 있고 2010년에 개통한 거가대교로 인해 부산에서도 쉽게 갈 수 있게 되었다. 교량으로 연결된 섬들의 숙명은 하나같이 똑같다. 밀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섬 본연의 매력을 잃어버리고 난개발로 인해 파괴의 속도가 가속화되는 것이다. 거제도 또한 한려해상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음에도 자본주의의 논리 앞에 수많은 건물이 지어져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특히 거제도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인 바람의 언덕과 신선대로 향하는 길은 휴일만 되면 좁은 도로가 자동차로 가득 차곤 한다. 통영의 섬들을 보고 거제도에서도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려 했지만 차로 가득찬 일차선 도로를 보고 두 번이나 차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거제도에 다시 도전하게 된 건 동백꽃이 만개한 봄, 평일에 시간을 낼 수 있을 때였다.
국립공원 이야기 16 - 거제도 (巨濟島)
대한민국의 수많은 섬들 중 제주도와 울릉도를 제외하면 국민들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섬 중 하나로 거제도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거제도는 다른 거대한 섬에 비해 역사적으로 중요한 섬이 아니다. 강화도 (江華島)는 수도인 한양과 가까워 수많은 전투가 벌어진 호국의 성지이며, 진도 (珍島)는 고려 시대 삼별초가 끝까지 항거를 펼친 장소로 알려져 있다. 반면 거제도는 임진왜란 도중 벌어진 옥포 해전을 제외하면 섬 자체가 역사의 현장이 되었던 적은 드물다. 그럼에도 거제도가 유명한 이유는 거제도가 제주도에 이어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큰 섬 (379.5㎢)인 데다 조선업으로 대표되는 기업인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거제에 둥지를 틀었기 때문일 것이다.
거제도의 남파랑길 (출처: 남파랑길)
크기와 산업 측면 외에도 거제도를 주목할 만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거제도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한 명도 아닌, 두 명이나 배출한 곳이다.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인 김영삼은 장목면, 제19대 대통령인 문재인은 거제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서울이나 부산 같은 어지간한 대도시 출신 대통령이 한 명도 없다는 점에서 거제도는 참으로 신비한 섬인 것이다.
거제 시내만 벗어나면 한적한 어촌 마을을 만날 수 있다
이런 특성을 제외하고도 거제도는 다른 섬들과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자랑한다. 거제도의 해금강은 일찌감치 그 아름다움을 인정받아 명승 제2호로 지정되었으며, 바람의 언덕・해금강・학동 몽돌 해변・여차-홍포 해안 등 거제도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장소는 수두룩하다.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일원으로서 거제도는 대한민국의 아름다움을 대표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섬으로 인정받고 있다.
거제도의 상징, 바람의 언덕과 신선대를 거닐며
통영의 섬들은 크기가 작아 섬 전체가 한려해상 국립공원에 속한 경우가 많지만, 어마어마한 크기를 가진 거제도 전체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는 건 불가능하다. 삼성중공업이 위치한 고현과 대우조선해양이 있는 옥포는 거제의 옛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개발되어 한국의 일반적인 도시처럼 아파트로 가득 차 있다. 거제도에 처음 진입하면 아름다운 자연을 볼 수 있을 거란 원래 기대는 무참히 박살나고 만다. 실망을 뒤로 하고 거제도 동남부로 진입하면 구조라와 학동 같은 아름다운 해변이 나타나며, 발품을 좀 더 팔아 남쪽 끝의 갈곶리로 가면 바람의 언덕과 신선대를 만날 수 있다.
도장포
대중교통을 이용해 해금강까지 가기 위해선 고현시외버스터미널까지 가는 것이 좋다. 고현동에서 출발하는 55번 버스와 55-1번 버스가 해금강까지 가며, 각각 하루 6회・1회 운행한다. 과거에는 마산남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해금강까지 가는 직행 버스가 있었지만 현재는 운행 중지된 상태다. 당시엔 창원에 머물던 상태였기에 고현을 들리지 않고 해금강으로 바로 갈 수 있었다.
봄날의 따뜻한 햇살 속에서 에메랄드빛 바다를 볼 수 있을 거란 내 기대와는 달리 날씨는 흐렸다. 시외버스에서 내린 뒤 사람없는 해금강을 보며 휴일에 가기조차 힘든 그 곳이 맞는지 의심이 되었다. 해금강을 보기 위해선 해금강 주차장에서 우제봉을 거쳐 석개해변으로 가는 1.5㎞짜리 탐방 코스를 이용해야 한다. 40분이면 완주할 수 있는 코스에는 해금강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멀리서 본 해금강의 정식 명칭은 갈도지만, 기암 절벽으로 이루어진 섬의 모습이 마치 금강산과 비슷하다 하여 해금강이란 별명이 붙게 되었다. 한국의 해안에서 쉽게 찾기 힘든 웅장한 경관을 간직한 섬이라 오래 전부터 유명한 관광지로 손꼽혔다. 탐방로에 있는 전망대에서도 해금강의 절경을 관찰할 수 있지만, 유람선을 타고 가까이서 보는 것이 훨씬 멋있다. 날씨도 흐린데다 해금강은 멀찍히 떨어져 있어 큰 감흥을 느끼긴 힘들었다.
바람의 언덕
석개해변에서 바닷소리를 들은 뒤 해금강을 뒤로 하여 바람의 언덕과 신선대 쪽으로 향했다. 야트막한 봉우리를 넘어 30분만 걸으면 바람의 언덕으로 갈 수 있다. 바람의 언덕이 위치한 도장포는 신선대와 함께 거제도의 해안 풍경을 보는 곳으로 인기가 많다. 바람의 언덕은 거제 사람들만 알던 숨겨진 장소였으나, 매체를 통해 알려진 뒤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 명소가 되었다. 바닷바람을 곧바로 마주 하는 언덕은 사람이 없는 조용한 상태라 운치를 더한다. 바람의 언덕은 띠가 덮인 언덕이라 옛 이름은 ‘띠밭늪’이었다. 바다로 길게 뻗어 있는 데다 청정해역으로 감싸여 있기에 바닷바람을 느껴보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날씨가 좀 더 좋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잔디밭에 앉아 느껴보는 바닷바람은 왜 바람의 언덕이 유명해졌는지 알게 해주었다. 아직 초봄이라 쌀쌀한 편이라 오랫동안 앉아있지 못 한 것이 유감이었다.
신선대
‘바람의 언덕과 신선대’라는 이름으로 거제9경 중의 하나로 꼽히는 신선대는 바다가 시원스레 내다보이는 곳으로 바닷가에 큰 바위가 자리 잡은 형태다. 마치 신선이 되어 주변의 아기자기한 경관을 바라보며 신선놀음을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신선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작은 몽돌해변이 가까이 있는 데다 거제도 남부의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풍경이 아름답긴 하지만 역시나 날씨가 아쉬웠다. 바람의 언덕과 신선대는 통영의 섬들과는 다른 거제도만의 매력이 묻어 있는 곳이라 거제도를 찾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방문해야 하는 곳으로 꼽힌다.
지천에 널린 동백꽃을 따라 걸으며
사람들은 봄이 되면 벚꽃을 보러 전국 각지로 떠나곤 한다. 벚꽃을 가장 먼저 피우는 곳인 남도 지방으로 가면 벚꽃 뿐 아니라 경기도나 강원도에서 볼 수 없는 수많은 꽃들이 사람들을 반긴다. 동백꽃은 중부지방에서 볼 수 없는 꽃으로 3월 말이나 4월 초가 되면 화사하게 핀 꽃봉우리들이 통째로 길에 떨어져 마치 카펫을 깔아놓은 듯 하다. 바람의 언덕과 신선대도 멋있었지만 이번 여행에서 가장 감동을 느끼게 한 건 해금강 탐방로를 따라 늘어선 동백꽃이었다. 꽃을 밟는 게 아까워 빈 자리를 찾으려 했지만 발 디딜 틈조차 주지 않은 동백꽃은 왜 봄에는 항상 남도로 가야하는지 알게 해 주었다.
동백꽃으로 수놓아진 거제도
해금강을 가까이서 볼 그 날을 기다리며
한려해상국립공원 거제지구 첫 탐방은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지만 다음 탐방에는 오히려 뜨거운 햇살로 나를 맞이했다. 날씨가 좋지 않아 해금강 유람선을 타지 못 했기에 다음 거제도 여행의 최우선 목표는 해금강 유람선을 타는 것이었다. 한여름 땀을 뻘뻘 흘릴 수밖에 없는 날씨 속에 휴가를 내어 방문한 거제도 장승포는 해금강과 외도 보타니아를 함께 볼 수 있는 유람선이 운행되는 항구였다. 해금강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기암절벽은 소매물도를 방문했을 때만큼 나에게 감동을 안길까. 외도 보타니아는 명성만큼 아름다운 섬일까. 많은 기대를 안고 두 번째로 거제도를 탐방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