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도서관 - 독일 뮌헨 바이에른 주립 도서관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도서관 중 하나[ Bayerische Staatsbibliothe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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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3.12.26. 07:54조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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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도서관
독일 뮌헨 바이에른 주립 도서관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도서관 중 하나
[ Bayerische Staatsbibliothek ]
바이에른 주립 도서관 전경. 〈출처: (cc) Aebsl at commons.wikimedia.org〉
뮌헨, 독일 동남부의 중심 도시
루드비히 거리의 시작인 개선문. 3개의 아치로 이루어진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축물로 1834년에 완공되었다. 〈출처: (cc) Guido Radig at commons.wikimedia.org〉
독일 바이에른 주의 수도 뮌헨은 독일 동남부의 정치ㆍ경제ㆍ문화 중심 도시이다. 옥토버 페스트로 유명한 맥주 축제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바이에른 주립 도서관이 위치한 루드비히 거리에는 뮌헨의 보수적인 특색이 그대로 드러난 신고전주의 건축물이 열을 지어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이 거리는 개선문부터 시작하여 주정부 청사와 뮌헨 대학교(LMU)를 지나, 주립 도서관, 오페라하우스, 뮌헨시청에 이르는 시의 중심을 관통하는 주작로이다.
뮌헨 대학 건물은 루드비히 거리에 산재해 있는데, 필자는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이곳에 재직한 바 있다. 이 대학은 [압록강은 흐른다]의 저자인 이미륵(李彌勒, 1899~1950)이 독일에서 처음으로 한국어를 가르친 곳이기도 하다.
알브레히트 대공이 세운 왕실 도서관
바이에른 주립 도서관은 1831년부터 1843년까지 지어졌다. 1831년 건축가 게르트너는 ˝도서관 계획은 루드비히 왕이 수백 번 고친 후에야 승인하였다. 그때 왕은 나의 어깨를 두드리며 '뮌헨에서 제일 훌륭한 건물이 될 거야' 라고 하였다.˝고 전했다.
루드비히 거리 16번지에 위치한 바이에른 주립 도서관은 독일에서 가장 큰 도서관 중 하나다. 이 도서관은 1558년 알브레히트 대공(Albrecht V. 1528~1579)에 의해 왕실 도서관으로 세워졌다. 1550년 부친이 죽자 바이에른 공작의 작위를 물려받은 알브레히트 대공은 예술을 사랑했으며, 뮌헨을 예술의 도시로 만들기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후원한 사람이다.
현재 수백만 권의 단행본을 소장한 주립 도서관은 건물은 루드비히 1세(Ludwig I, 1786~1868) 때의 건축가 프리드리히 폰 게르트너(Friedrich von Gärtner, 1791~1847)가 1831년부터 1843년까지 신축한 것이다.
1919년에 바이에른 주립 도서관으로 명칭이 바뀌었으며, 도서관 중앙문 앞에는 유럽 지성사를 상징하는 히포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호머, 투키디데스의 동상이 서 있다. 1943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건물의 약 85퍼센트가 무너졌고, 재건 공사를 시작하여 1966년에 동쪽 건물을 완공했다. 이곳을 방문한 유명인으로는 1936년에 히틀러와 1982년의 달라이 라마가 있다.
구텐베르크 성서, 중세 필사본 등 1만여 권의 희귀본
도서관 중앙문 앞에는 유럽 지성사를 상징하는 히포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호머, 투키디데스의 동상이 서 있다. 〈출처: (cc) Guido Radig at commons.wikimedia.org〉
이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희귀본 1만여 권은 알브레히트 대공이 오스트리아의 정치가이자 법률가 요한 알브레히트 비드만슈테터(Johann Albrecht Widmannstetter 1506~1557, 16세기 동양학 설립자 중 1인)가 수집한 것을 넘겨받은 것이다. 비드만슈테터의 개인 소장품이었던 신학ㆍ법학ㆍ철학 분야의 서적 900여 권과 히브리어 필사본 140여 권, 아랍어 필사본 50여 권을 포함한 동양학 분야의 필사본 300여 권 등으로, 오늘날 그 학문적인 가치를 평가할 수 없을 만큼 귀중본들이다.
두 번째는 1571년에 요한 야콥 푸거(Johann Jakob Fugger, 1459~1525)가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에서 구해온 것들이다. 푸거는 1552년부터 하르트만 쉐델스(Hartmann Schedels, 1440~1514)의 인큐내불럼(Incunabulum, 초기 간행본으로 1501년 구텐베르크 성서가 완성되기 전인 1454년과 1500년 사이에 만들어짐)을 소장하였다. 이때 귀중한 악보와 지도도 함께 도서관 소장 목록에 포함되었다. 푸거의 소장본들은 19세기까지 별로 관심을 받지 못하였으나, 현재 주립 도서관에 소장된 300여 장의 희귀본은 그 가치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이다. 푸거의 소장본들과 구텐베르크 성서, 중세 필사본, 속화(säkularisation), 중세 문학 등이 추가되어 1600년에는 이런 귀중한 자료들이 1만 7천여 권에 이르렀다.
그러나 30년 전쟁(1618~48)부터 1778년 칼 테오도르(Karl Theodors 1724~1799, 1777년부터 바이에른을 다스리면서 이곳을 문화ㆍ경제적으로 발전시킴) 전까지 이 도서관은 시대 상황으로 인하여 특별한 활동은 없었다. 칼 테오도르는 뮌헨으로 이주하면서, 1803년부터 이듬해까지 그가 있었던 만하임의 왕실 도서관이 소장했던 10만여 권의 서적들을 가져왔다. 이로 인해 이 도서관이 역사학, 자연과학, 프랑스문학, 이탈리아 문학 서적 등을 집중적으로 갖추게 되었다. 1803년에는 55만여 권의 장서와 18,600여 권의 필사본을 소장하여 명실 공히 국제적인 연구 기관으로서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중세 그림문서를 대표하는 하인리히 2세의 복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