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둔지산 제 이름, 제 자리 되찾기
민연대 동참 제안서
용산과 둔지산에 제 이름과 제 자리를 찾아줍시다
올바른 역사성과 장소성 회복의 시작점 돼야...
지난 3월 20일 윤석열 제20대 대통령은 대통령실을 용산 미군기지가 있는 서울 용산구의 국방부 청사로 옮기겠다고 밝혔습니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을 결정한 이후 그 어느 때보다 용산에 관한 다양한 정보들이 쏟아지면서 용산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통령실 용산 이전과 관련해 우리 사회가 보다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할 점들이 있습니다. 대통령실이 들어선 국방부 청사는 엄밀한 의미에서 ‘용산(龍山)’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의 국방부와 미군기지가 있는 지역을 용산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하기 시작한 즈음부터의 일입니다. 그 이전까지 우리는 이 지역을 단 한 번도 ‘용산(龍山)’이라고 부른 일이 없습니다.
애초에 지금의 국방부와 용산 미군기지는 용산 자락에 들어선 것이 아니며, 용산 미군기지 안에는 ‘용산(龍山)’이 없습니다. 따라서 세간에 떠도는 용산의 지맥, 용의 기운이 모이는 명당 운운하는 말들은 지금의 용산과 무관한 이야기입니다. 이곳은 원래 조선 시대에 한성부 남부 둔지방 내 ‘둔지산(둔지미)’과 마을이 있던 지역이었습니다. 원래 이곳에 있던 나지막한 산의 이름은 ‘둔지산(屯芝山)’이고, 고유어로는 ‘둔지미’였습니다. ‘미’는 ‘메’나 ‘뫼’와 마찬가지로 ‘산(山)’을 뜻합니다. 둔지미는 이 지역을 대표하는 마을 이름으로 수백 년 동안 우리가 이 지역을 부른 이름이었습니다.
둔지산(또는 둔지미) 일대를 용산으로 바꿔 부른 것은 일제였습니다. 1905년 러·일 전쟁에서 이긴 일제는 수백 년 간 삶의 터전이었던 둔지산 일대를 군용지로 강제수용해 한국 주둔군(주차군) 사령부를 설치하면서, 이곳 이름을 제멋대로 ‘용산(龍山)’이라고 바꿔 붙였습니다. 일제는 이곳의 지명이 ‘둔지산(屯芝山)’이라는 점을 명확히 알고 있었는데도, 이렇게 이름을 엉터리로 바꿨습니다. 다시 말해 둔지산이 있던 이 지역을 ‘용산’으로 바꿔 부른 것은 일제의 잔재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한 세기 넘게 둔지산이 왜 ‘용산’으로 바뀌었는지를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한 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용산은 어디에 있을까요? 용산은 인왕산에서 시작되어 서울 남서쪽 만리재에서 효창공원(효창원), 용마루 고개, 용산성당, 청암동에 이르는 긴 산줄기를 말합니다. 그 산줄기가 마치 용(龍)의 모습을 닮아 선조들은 ‘용산(龍山)’으로 불렀던 것입니다. 현재는 주택과 아파트로 뒤덮였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만리재에서 청암동까지 산줄기가 뚜렷했습니다. 서울의 진짜 ‘용산’은 고려 때부터 역사 기록에 나올 정도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고, 널리 알려진 지명이자 산 이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역사에 대해 우리는 잘 모릅니다. 가르쳐주지도 배우지도 않았습니다. 정부는 외국군 주둔의 고통스런 역사를 청산하고, 자연생태의 회복과 역사의 보존이라는 목표 아래 이곳에 90만 평이 넘는 국가공원 조성을 결정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국가공원의 이름도 국민에게 공모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국민들은 수백 년간 삶의 흔적을 담은 지명인 ‘둔지산(또는 둔지미)’을 알지도 기억하지도 못했고, 결국 검토조차 되지 못했습니다.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최초의 국가공원 이름은 일제가 붙인 지명을 그대로 사용해 ‘용산공원’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이것이 과연 아픈 역사를 치유하고, 올바른 역사성과 장소적 정체성을 회복하고자 한 결정이었는지는 우리 사회가 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왜곡된 역사와 지명을 지금부터라도 바로잡기 위해 녹색연합, 보담역사문화연구소, 서울환경운동연합,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용산역사문화 사회적협동조합, 용산학연구센터, 용산역사문화해설사, 통일안보전략연구소, 한국땅이름학회,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가나다 순서) 등 10여개 단체들이 ‘용산 둔지산 제자리 찾기 시민연대’(이하 ‘용산 둔지산 찾기 연대’)라는 이름으로 모였습니다.
물론 국방부와 미군기지 일대에 붙여진 ‘용산’이라는 이름을 하루 아침에 ‘둔지산’으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용산 미군기지 일대가 애초 ‘용산’이 아니라 ‘둔지산’이었다는 사실을 외면하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특히 이렇게 잘못된 지명이 붙은 것이 일제의 한국 침략과 식민 지배의 결과라는 점을 국민들이 명확히 인식해야 합니다. 국격의 상징인 대통령실이 이전하고 용산 미군기지가 국민의 품으로 다시 되돌아오는 지금이 왜곡된 지명을 바로잡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용산 둔지산 찾기 연대’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 요구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앞으로 지속적인 운동을 벌여나갈 계획입니다.
첫째, 윤석열 정부는 공모를 거쳐 6월 초 새 대통령 집무실의 이름을 결정할 때 이 지역이 역사적으로 ‘용산’이 아니라, ‘둔지산(둔지미)’이었음을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아무런 근거가 없고, 일제가 침략 과정에서 이 지역에 제멋대로 붙인 ‘용산’이라는 지명을 새 집무실의 이름에 붙여서는 안 됩니다. 새 집무실의 이름에 ‘용산’을 포함하지 말기를 강력히 요구합니다.
둘째, 용산국가공원 조성을 맡은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용산구 등은 용산공원으로 조성 중인 용산 미군기지 일대의 정확한 지명이 ‘용산’이 아니라, ‘둔지산’임을 명확히 밝혀야 합니다. 이곳을 관행적으로 ‘용산’이라고 부르는 일을 당장 바꿀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앞으로는 이곳이 ‘둔지산’임을 명확히 밝혀나가야 합니다. 앞으로 조성되는 용산공원에도 ‘둔지산’ 또는 ‘둔지미’라는 지명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합니다. 더불어 용산 미군기지 내 사라진 옛 마을 이름인 정자동, 대촌(큰말) 이라는 고유 지명도 살리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셋째,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용산구 등은 용산과 둔지산에 표지판(또는 안내판)을 세워 이 곳들이 용산과 둔지산임을 명확히 밝혀야 합니다. 먼저 용산의 정상인 서울 용산구 산천동 용산성당 일대에 ‘용산 정상’이라는 표지판을 설치해야 합니다. 동시에 둔지산의 정상인 용산구 미군기지 안(일제강점기 신사 자리, 현 주한미군 물탱크 자리)에도 ‘둔지산 정상’이라는 표지판을 세워야 합니다.
넷째, 정부는 앞으로 ‘용산’과 ‘둔지산’에 관한 정확한 역사 지리를 국민이 올바르게 알 수 있도록 홍보하고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현재 미군기지가 있는 둔지산 일대는 향후 모든 국민이 자유롭게 이용하는 대한민국 최초의 국가공원이 들어서는 만큼 정부는 이곳에 대한 정확한 역사와 지리를 국민에게 알려 주어야 합니다. 정부의 공식 문서와 교육기관의 교재, 그 밖의 출판물에도 이들 지명이 정확히 표시되도록 해야 합니다.
다섯째, 정부는 ‘용산’과 ‘둔지산’의 명칭 회복과 함께 일제강점기에 잘못 지어졌거나 왜곡된 역사적 지명들을 바로잡을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한때 일본식 지명인 ‘욱천(아사히카와)’으로 잘못 불렸던 ‘만초천(蔓草川·덩굴내)’이 제 이름을 되찾았던 사례도 참고해 볼 만합니다. 앞으로 이 지역에 새로운 지명이나 건물 이름, 도로 이름을 붙일 때 역사적으로 정확한 이름을 쓰도록 요구하고 유도해야 합니다.
여섯째, ‘용산 둔지산 찾기 연대’는 주요 지도와 웹사이트, 그리고 각종 안내판에 용산과 둔지산을 명확히 표시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정부 산하의 국토지리정보원, 국립중앙박물관 야외 안내판, 이태원 역사 부군당 전망대, 남산 전망대, 용산공원 부분 개방 부지와 스포츠필드 부지, 그리고 주요 포털 사이트에 ‘용산과 둔지산’의 위치와 높이 등을 정확히 표시하도록 공식적으로 요청할 계획입니다.
용산과 둔지산의 제 이름과 제 자리를 찾는 일은 더이상 미루어서는 안 됩니다. 이는 왜곡된 역사와 뒤틀린 지명을 바로잡고, 이 땅의 올바른 역사성과 장소성을 회복하는 첫걸음이자 미래 세대를 위해 지금 세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언론과 국민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22년 5월 16일
용산 둔지산 제자리 찾기 시민연대
(가나다순: 녹색연합, 보담역사문화연구소, 서울환경운동연합,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용산역사문화 사회적협동조합, 용산학연구센터, 용산역사문화해설사, 통일안보전략연구소, 한국땅이름학회,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 붙임 : 용산 둔지산 지명 유래와 정상 위치(2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