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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우리 할렐루야 찬양대 참 감사합니다. 말씀을 듣기 전에 우리 동영상을 먼저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은 이 용서하소서를 이번 주에 불러보라고 목사님께서 명령을 하셔서 한 이 삼일 전에 제가 이 악보를 받았습니다. 이게 우리나라의 최고의 전설 같은 남진 선배가 있지만 이틀 만에 어떻게 이 노래를 배워서 부른답니까?
내가 콩나물 대가 대가리도 잘 모르는데 그래서나 목사님의 명령이 주님의 명령이라고 생각을 하고 열심히 열심히 배웠습니다. 이틀 만에 주님 것은 고집하며 살아와 금은 보아 자녀들까지 주님 것을 내 것이니라. 아버지라 사랑은 소 용서하여 주옵소서 아성요 선한 이 내 것이다. 주의 일을 멀리 주십니다. 주님이시오 쓰시도 주님이 아버지 불청 용서하여 주옵소서 세상으로 하고 주의 힘을 주님 집 나간 탕자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얼마나 참으셨습니까? 저를 얼마나 기다리셨습니까? 저는 가끔 기도를 할 때마다 뭘 달라고만 했어요. 주님 나 정말 어려운데 좀 도와주세요. 우리 집에 누가 어디가 아픈데 뭘 좀 도와주세요.
뭘 주세요? 달라고만 기도를 했는데 어느 날 제가 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내가 문제가 뭐가 있는 걸 제가 발견했습니다. 송대관 너는 뭘 드렸는데 주님께 별로 드린 것도 없습니다. 달라고만 했지 저는 이제 안 하게. 저에게 어떤 큰 재물이나 모든 것들이 많이 제가 가질 수 있다면 이걸 다 주님께 돌려드리고 받치고 우리 새 에덴키 교회에 받치고 달아 드리렵니다.
주님 사랑 감사할 줄 몰라 주님 말씀 듣기만 하고 실행하지 못했어. 아버지 한 용서하여 주옵소서 순종하면서 주님. 네 우리 송대관 집사님 얼마 전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받기 전에 이렇게 하나님 앞에 찬양으로 영광을 올려드렸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이 복음 앞에 빚진 자라는 말씀의 제목입니다. 사람은 살다 보면 누군가로부터 이런저런 비춰지기도 합니다. 정말 힘들고 어려울 때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거나 할 때 빚을 진 것입니다. 꼭 큰 것이 아니더라도 누가 나에게 차 한 잔을 사거나 또 밥 한 끼를 대접할 때 다음에 내가 사야지 하는 마음의 빚도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빚을 지기도 하고 빚을 갚기도 합니다.
간혹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줄 것도 없고 받을 것도 없는 사람이다. 그러니 나는 절대 빚을 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이런 분들은 인생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일 것입니다. 물론 누군가로부터 빚을 진 것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은 누군가로부터 빚을 진 것이 있어서 여러분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줄 여러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누군가 여러분들에게 복음을 전해주었고 누군가 여러분들을 위해서 기도를 해 주었고, 누군가 여러분과 함께해 주었기에 이 자리에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절로 내가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아닙니다. 내가 지금까지 잘해서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지난 금요일부터 또 토요일까지 우리 중고등부 동계수련회를 가졌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은혜 가운데 이 동계수련회를 잘 마칠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 아이들과 함께 저도 잠시 함께 있었습니다. 있으면서 정말 옛날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저도 저럴 때가 있었지 한참 이렇게 아이들 때 아이 때 그런 때가 있었고요.
또 한 가지는 우리 아이들이 지금 오늘 이 시대 속에서 2025년도를 살아가면서 이 시대 속에서 이런 동계수련회를 가질 수 있음에 너무나 고맙고 감사를 했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을 조금 오래 해 보신 분들은 잘 알 것입니다. 과거에는 우리 아이들이 넘쳐났습니다. 시골에도 아이들이 넘쳐났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시대는 굉장히 힘든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교회 학교가 있는 곳보다는 없는 교회들이 훨씬 많습니다. 우리 달성 시찰 이 지역에도 교회가 약 한 40개가 되는데요. 그중에 이 교회 학교 있는 교회는 이 다섯 손가락 꼽으라고 해도 굉장히 어렵습니다.
특히 중고등부는 굉장히 더 어렵습니다. 우리 아이가 있기는 있는데 때로는 아이가 있기는 있는데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교사들이 없다는 겁니다. 교회마다 우리 교사들이 헌신하고 봉사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 중고등부 아이들 굉장히 다루기가 힘듭니다. 아이들이 어디로 튈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교사를 한다는 것은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해 보면 우리 교회에 정말 이렇게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교사들이 많다는 것은 정말 큰 행복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우리 선생님들의 수고와 헌신이 있었기에 아이들을 잘 가르칠 수가 있고 아이들에게 이런 정말 행복을 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뿐만 아닙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새벽마다 기도해 주시는 분들, 또 관심 가져주시는 분들 이런 분들이 우리 성도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이 그냥 되는 게 아니라고 봅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저는 교회 대표자로서 또 목회자로서 우리 성도들과 우리 교사들에게 정말 빚을 많이 진 사람이 맞습니다.
오늘 바울은 정말로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한마디 합니다. 그는 스스럼없이 하는 말이 나는 빚쟁이라는 겁니다. 나는 뭐라고요? 빗쟁이다 우리 14절 말씀을 한번 볼까요? 14절 말씀 시작
그날 이니라 야만이 아니라 주의 이름 따라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김치 자라
아멘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무슨 자라고요? 빚진 자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사도 바울은 이런 사람들에게 빚을 진 적이 없습니다. 여기 뭡니까? 좋은 사람도 있고 좋지 않은 사람도 있잖아요.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나 다 내가 빚을 졌다. 때로는 이 말씀 이해하기도 굉장히 어려운 말씀입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조금 더 깊이 생각하면 이해가 될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인생을 살다 보면 좋은 사람도 있는데 때로는 좋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겁니다. 만나고 싶은 사람도 있지만 만나기 싫은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좋은 사람만 만나서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때로는 나를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하는 사람들도 내 인생 속에서는 저는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이 사도 바울이 왜 자기는 나는 빚쟁이다. 빚을 진 사람이라고 했을까요? 그의 인생의 과거를 돌아보면 과거에 그는 스데반 집사님을 죽인 적이 있습니다. 직접 죽이지는 않았지만 죽이는 일에 가담을 했습니다. 만일 바울이 스데반을 죽이지 않았더라면, 스데반 집사님을 죽이지 않았더라면 이 스데반 집사님으로 인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었을 것입니다.
스데반에게 복음을 들었던 수많은 사람들, 가족, 친구,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했을 것이고, 또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많이 전했을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또 바울이 그리스도인으로 오게 가둔 사람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노인이나 어린아이 할 것 없이 물불 가르지 않고 예수만 믿으면 다 감옥에 다 넣어버렸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이 사도 바울의 마음이 이해가 갑니다. 자기가 복음을 도둑질한 자다 복음을 빼앗은 자다.
바울의 핍박 때문에 수많은 사람에게 전달되어질 복음이 도난당한 것입니다. 바울은 온 백성에게 전파될 구원을 빼앗았고, 저들의 생명을 빼앗았고 영혼을 빼앗은 사람이 되고 만 것입니다. 바울이 핍박하지만 않았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내가 복음에 비친 자입니다. 그럼 오늘 고백을 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가정에 신방을 갔는데 그분이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지금은 지금은 교회 가는 게 너무나 기쁘고 좋고 행복하다는 겁니다. 하지만 과거에는 교회 가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질 않았고 또 자기 자녀들에게도 교회 가지 말라고 말렸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왜 내가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잠시 후회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지금 신앙생활을 더 열심히 하고 또 새벽 기도 빠지지 않으려고 하고 전도도 잘 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모습을 보면서 아 집사님은 빚진 자의 모습이 있구나 그런 마음을 마음을 가졌습니다.
오늘 바울은 모든 사람에게 빚진 자라고 했습니다. 헬라인에게도 빚졌고, 야만인에게도 빚졌고, 지혜 있는 자에게도 빚졌고, 어리석은 자에게도 빚을 졌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빚진 사람이기 때문에 이 빚을 갚아야 할 의무가 있고 책임이 있음 이것을 갚지 않으면 나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 복음의 빚을 갚지 아니하면 나는 나도 죄인이고 온 백성에게도 죄인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므로 나는 이 복음의 빚을 갚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바울의 고백이 정말 마음에 와닿습니다. 얼마든지 무시해버리고 그냥 나 한 사람 행복하며 살면 되지 나만 잘 살면 되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아니하고 늘 복음의 빚을 갚고자 하는 그 마음, 그 중심 참으로 빚진 자의 모습이 아닌가 봅니다.
여러분 오늘 어떻습니까? 여러분에게 이런 마음이 혹시 있습니까? 오늘 사도 바울처럼 나도 복음의 빚을 진 사람입니다.나도 사랑의 빚을 진 사람입니다. 나에게 복음이 전파되기까지 주변의 사람들이 여러분을 위해서 얼마나 많이 기도했을까요? 여러분들이 하나님께로 오도록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간구했겠습니까?
예수 잘 믿어라. 기도 많이 해라. 당신을 축복합니다. 그런 어떤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여러분들의 격려 기도가 있었다고 봅니다. 저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목사가 되기까지 저를 위해서 정말 헌신하고 기도해 주신 분들이 많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저절로 교회에 온 게 아닙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우연하게 교회 온 것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빚을 많이 진 사람입니다. 여러분 믿습니까? 거기에 여러분들이 아멘 내가 믿습니다고 고백하면 여기에 여러분 헌신도 있고 사랑도 있고 충성도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나도 그 빚을 갚아야지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것이 바로 은혜 받은 자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어느 집사님이 자신의 질병으로 많이 힘들어 했을 때 우리 성도들이 자신을 위해서 기도해 준 것이 너무 고마워서 작은 것이지만 하나님 앞에 식사로 한번 섬기겠습니다.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분의 모습은 제대로 빚을 갚을 줄 아는 모습이 있구나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우리 성도들이 아픈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 주는 것 특별하지 않지 않겠습니까? 그냥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목회자가 여러분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는 것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이 받는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 좋지 않습니다. 내가 빚을 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의 마음 자세가 아닙니까? 그렇지 아니하고 교회가 나를 위해서 해준 게 뭐가 있느냐 목사님은 왜 내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느냐 그렇게 만일 불평하고 원망을 늘어놓는다면 그 사람은 빚진 자의 마음이 아니라 도리어 빚을 갚으라고 소리를 치는 사람과 다를 바가 뭐가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빚진 자의 마음으로 살아가야 됩니다. 우리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 그 은혜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받았습니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의 그 사랑에 빚진 자입니다. 조금 전에 우리 송대관 집사님이 찬양을 하며 잠시 간증을 했습니다만, 처음 교회에 왔을 때 그는 절박한 심정으로 교회에 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할 때 무조건 하나님 달라고 달라고만 기도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주님 내가 어려운데 제발 좀 날 도와주세요. 주님 누가 아픈데 제발 좀 고쳐주세요. 주님 물질이 없을 때 물질 좀 주세요. 그렇게 기도를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주님의 음성이 말씀하기를 송대관 너는 나한테 뭘 달라고 했지?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준 게 있느냐고 그렇게 했을 때 자신이 아무것도 준 것이 없음을 깨닫고서는 그때 주님을 만나게 되었으면 이제는 달라고 하지 않고 주님을 드릴 수 있는 주님께 바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겠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은혜 받은 자의 모습이 아닙니까? 빚진 자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우리의 마음에는 예수님께로부터 큰 빚을 지게 됩니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누가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속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내 속에 가득 차게 되면 내가 정말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았구나, 은혜를 많이 받았구나 하면서 내가 빚진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 빛이 있을 때 우리 마음속에는 거룩한 부담감이 생깁니다. 뭐가 생긴다고요? 거룩한 부담감이라고 했습니다. 그냥 부담감이 아니고 거룩한 부담감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참 받은 게 많은데 받은 은혜도 많은데 내가 어떻게 하면 갚을까 내가 어떻게 하면 주를 위해서 섬길까 그것이 바로 거룩한 부담감 아니겠습니까?
이 복음의 빚진 마음이 있을 때 내가 어떻게 하면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내가 어떻게 하면 저 사람들이 예수 믿게 할 수 있을까 내가 빚진 자의 마음이 있을 때 교회를 사랑하고 또 우리 성도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찬송 85장의 가사에 이런 가사가 있어 예 예수의 넓은 사랑을 어찌 다 마라려 주 사랑 받을 사람만 그 사랑을 도다.
할렐루야 주 사랑 받은 자만 그 사랑 안다. 여러분 주 사랑받은 자라는 것은 복음의 빚을 진 것을 알기에 그 사람은 나도 갚기를 원한다는 거죠. 그래서 전도를 하게 됩니다. 여러분 주님은 나에게 전도하라고 은혜를 주셨고 구원해 주셨는데 그냥 나 혼자 꿀떡 삼키고서는 전도하지 않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 이제는 그 빛을 갚을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자기 스스로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았어 스스로 나는 빚진 자라고 했습니다. 나는 복음의 빚을 진 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죽는 날까지 복음을 전하다가 하나님께로 나아갔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누가 여러분에게 빚을 졌다라고 말할 사람도 없고,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할 자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복음의 빚을 진짜라고 한다면 나는 거룩한 부담을 가지고 내가 주님을 위해서 효율을 위해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고백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복음 앞에 거룩한 부담을 가지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