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 9-1주차 / 온글문학 강의 요해>
[필자 註] 文史哲을 지향하는 시는 가부좌를 틀고 독경을 하는 자세로 읽어 내야 할 일입니다. 그만큼 오묘한 진리의 알레고리가 응축되고 생략된 행간에 유장한 강물처럼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강의를 중심으로 관련 시학의 경구를 소환하고 덧대어 이해하기 쉽도록 정리를 해봅니다. 건필을 소망합니다. / 悳泉
비움과 내림의 형이상학
- 「하늘 길」과 「하늘」에 나타난 삼위일체 와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심층적 교차를 중심으로 -
나병훈/ 문학평론가
1. 머리말
초월과 내재가 교차하는 자리로서의 ‘하늘’
김동수의 「하늘 길」과 청화스님의 「하늘」은 표면적으로 기독교적 영성과 대승불교의 선시(禪詩)라는 각기 다른 표상을 띠고 있다. 그러나 두 시가 도달하는 형이상학적 본질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 그것은 바로 ‘절대적 초월성(하늘)이 스스로를 비워 현상 세계로 내재화하고, 그로 인해 만물이 생명을 얻으며 궁극적으로 하나의 근원으로 통섭된다’는 종교철학적 진리다. 본 요약 평설은 기독교의 삼위일체 사상, 그리고 불교의 진공묘유(眞空妙有)와 연기(緣起) 사상이 두 시의 언어적 결 속에서 어떻게 상통하고 교차하는지를 심층적으로 조명하고자 한다.
2. 김동수의 「하늘 길」
신성한 비움과 천지인(天地人)의 일체적 삼위
「하늘 길」은 초월적 하늘이 현상 세계의 유기적 생명으로 스며드는 '비하(Kenosis)와 성육신(삼위일체)'의 우주적 역동을 그린다.
( 주: 비하(Kenosis)는 지극히 높고 거룩한 신(하나님)이 스스로의 영광과 권능을 내려놓고 가장 낮은 자리인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내려오신 사건을 가리킴.}
2-1. 비하(kenosis)로서의 하강과 삼위일체
하늘은 하늘에서 혼자 살 수 없다
땅으로 내려와
이슬 맺히고 햇살로 스며 일용할 양식과 열매가 되어
이 구절은 기독교 신학의 핵심인 성육신(삼위일체)적 사건을 시적으로 변주한다. 초월적 존재로서 하늘에 고립되어 존재하기를 거부하고 스스로를 낮추어(Kenosis) 땅의 미물과 일상적 요소(이슬, 햇살, 양식, 열매)로 스며드는 과정은, 신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내재하는 은총의 성육신과 정밀하게 대응한다.
2-2. 천지인(天地人)의 삼위일체적 통섭
아, 땅으로 내려온 하늘의 기운이여
그로 인해 땅에서 만물이 나고 또 사람이 태어나
천·지·인 한 몸 되어
하늘의 기운이 땅과 결합하여 인간과 만물을 낳고, 마침내 "天·地·人 한 몸"을 이루는 대목은 동양의 삼신사상(三神思想)인 동시에, 페르소나(Persona)는 상이하나 본질에서 하나를 이루는 삼위일체적 유기성을 동양적 언어로 구현한 것이다. 하늘(아버지)의 기운이 땅(피조세계)을 통해 인간(아들/성육신)과 하나 되는 우주적 융합을 보여준다.
2-3. 본향으로의 귀일(歸一)
육신의 옷 벗어 놓고
본디의 고향 하늘 길 돌아가는구나
성육신(삼위일체)하여 땅에서 천지인 일체를 이룬 생명은 '육신의 옷'을 벗고 본디의 고향으로 복귀한다. 이는 소멸이 아닌, 근원적 신성으로의 상승이자 우주적 삼위일체적 상호침투의 완성을 의미한다.
(주: 귀일(歸一) : 하나로 돌아가다", "모든 만물과 원리가 궁극의 근원(一)으로 돌아감".의 의미로 불교의 '만법귀일(萬法歸一)즉, “모든 법은 하나로 돌아간다”나 동양철학에서 “현상 세계의 다채로움이 근원적인 우주의 기운(天·道)으로 다시 통합되는 순환적 과정”을 말한다.
3. 청화스님의 「하늘」
자성(自性)의 비움[眞空]이 낳는 만물의 현현[妙有]
「하늘」은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무아(無我)의 부정론에서 출발하여, 그 비움이 곧 만물의 생성 기반이 되는 '진공묘유'의 대승적 경지를 극도로 절제된 시어로 보여준다.
3-1. 진공(眞空) : 고정된 자성의 부정을 통한 순수 공(空)
꽃에는 꽃이 없다
나에게도 나는 없다
아무 것도 없는 하늘 뿐, 하늘 뿐
"꽃이 없다", "내가 없다"는 선언은 연기적 상의상존(相依相存) 관계를 떠나 독립되어 존재하는 고정불변의 자성이 없음을 말한다. 대승불교의 '색즉시공(色卽是空)'이자, 자기를 철저히 비워낸 '절대적 공(空)'의 상태다. 이것이 바로 어떤 형상도 가지지 않는 순수한 바탕으로서의 '하늘'이다.
3-2. 묘유(妙有): 비움이 완성하는 생명적 긍정
그러나 하늘에는 하늘이 있다 꽃 도 되고 나도 되는 하늘
묘하고 묘한 그 하늘이 있다
시의 반전인 "그러나 하늘에는 / 하늘이 있다"는 공(空)이 허무(니힐리즘)로 떨어지는 것을 막는 단호한 전환점이다. 모든 자성이 비어있기 때문에[眞空], 역설적으로 비어있는 그 하늘은 인연과 연기에 따라 "꽃도 되고 / 나도 되는" 온갖 신비로운 현상[妙有]으로 나타난다. 이는 '공즉시색(空卽是色)'의 정수이며, 비어있기에 모든 것을 품고 낳는 우주적 법성(法性)의 연기적 현현이다.
4. 비교를 통한 심층 고찰
4-1. 하늘의 본질: 초월을 넘어 비움과 내림으로 다가서는 근원적 바탕
김동수의 「하늘 길」과 청화스님의 「하늘」에서 '하늘'은 관념적이고 초월적인 저 높은 곳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 기독교적 차원에서 김동수의 하늘은 홀로 존재하기를 포기하고 스스로를 낮추어 땅으로 내려오는 사랑과 은총의 근원으로 형상화된다. 이는 초월적 절대자가 피조세계 속으로 깊숙이 스며드는 하강의 역동성을 띤다. 반면, 불교적 차원에서 청화스님의 하늘은 고정된 자성(自性)이 비어 있어(眞空) 온 우주와 만물을 담아내는 법성(法性)의 바탕이다. 두 시가 도달하는 융합적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두 하늘 모두 관념적인 절대 초월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낮추고, 자기를 비워냄(空)으로써 만물과 호흡하는 근원적 바탕이 된다는 점이다.
4-2. 생명 창조의 기제: 성육신(Incarnation)의 내재화와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연기적 현현(現現)
하늘이라는 근원이 현상 세계에서 만물을 살려내는 방식 또한 깊은 철학적 감응을 이룬다. 김동수는 하늘이 이슬이 되고 햇살이 되며, 일용할 양식과 열매로 화(化)하는 과정을 통해 성육신(삼위일체)의 사상을 시적으로 번역해 낸다. 하늘의 기운이 물질적 실재로 스며들어 생명을 낳는 것이다. 한편 청화스님은 아무것도 없는 비움[眞空]이 역설적으로 꽃도 되고 나라는 존재도 되는 묘유(妙有)와 연기(緣起)의 신비를 보여준다. 비어 있기에 모든 것으로 나타날 수 있는 법성의 이치다. 신의 은총이 피조세계에 내재하는 성육신의 사건과, 자성이 비어 만물로 화현하는 연기적 현현은 '만물을 살리고 탄생시키는 우주적 생명 작용'이라는 하나의 실상으로 수렴된다.
4-3. 存在의 궁극 구조 : 천·지·인 삼위일체와 中道·無我가 이루는 생명공동체
마침내 두 시가 지향하는 우주의 궁극적 구조는 하나의 거대한 생명공동체로 완성된다. 김동수의 시에서 내려온 하늘의 기운은 땅과 인간을 만나 "천·지·인 한 몸"을 이룸으로써, 위격은 달라도 본질에서 완벽한 통일을 이루는 삼위일체적·삼신적 유기성을 드러낸다. 청화스님의 시 역시 "꽃에는 꽃이 없고 나에게도 내가 없다"는 선언을 통해, 주체와 객체의 구분이 지워진 중도(中道)와 무아(無我)의 연기적 유기체를 보여준다. 결국 두 시인은 인간과 자연, 그리고 신성(하늘)이 결코 분리된 개별자가 아니며, 본래 하나의 끈으로 촘촘히 연결된 우주적 생명공동체라는 위대한 진리를 서로 다른 철학적 언어로 증명해 내고 있다.
5. 맺음말:
현대적 구원론으로서의 ‘하늘’
김동수의 「하늘 길」과 청화스님의 「하늘」은 기독교 신학과 대승 불교철학이라는 두 거대한 유산이 '한국적 시학의 언어'를 통해 어떻게 아름답게 통섭될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하늘이 땅으로 내려와 천지인이 한 몸이 되고(성육신과 삼위일체), 자성을 비워 꽃과 내가 되는 하늘을 발견하는 것(진공묘유와 연기). 두 시인이 노래한 '하늘'은 개별화되고 파편화된 현대인들에게, 우리가 본래 하나의 거대한 생명적 근원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닫게 하는 형이상학적 고향이자 궁극적인 구원의 이정표라 할 수 있다.
참석하신 분/ 수고하셨습니다.
김동수교수님, 김덕임, 양선호, 류인명, 김기화, 박완진, 강명수, 조삼현, 홍미경, 김남희, 김재근, 이용자, 황복숙, 유인봉, 박용귀, 전병윤,김인술, 이화연, 나병훈 (19명)
붙임 : 인용 시 두 편
하늘 길
김동수
하늘은 하늘에서 혼자 살 수 없다
땅으로 내려와
이슬 맺히고 햇살로 스며 일용할 양식과 열매가 되어
아, 땅으로 내려온 하늘의 기운이여
그로 인해 땅에서 만물이 나고 또 사람이 태어나
천·지·인(天地人) 한 몸 되어 그리 살다
육신의 옷 벗어 놓고
본디의 고향 하늘 길 돌아가는구나
하늘
청화스님
꽃에는 꽃이 없다
나에게도 나는 없다
아무 것도 없는 하늘 뿐, 하늘 뿐
그러나 하늘에는 하늘이 있다
꽃도 되고 나도 되는 하늘
묘하고 묘한 그 하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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