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나타!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토요일입니다. 토기 그릇 같은 나를 주님 손에 맡깁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16-18절 말씀)
1.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살전 5:16-18)
하나님은 우리에게 행복과 기쁨을 주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감사하고 찬미하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1) 항상 기뻐하라
그리스도인은 인생을 즐겁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표정은 기쁨으로 밝아야 합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얼굴이 어둡고 늘 우울하게 있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마음이 유쾌하고 기뻐하고 즐겁게 사는 것, 이것을 하나님께서 보기를 원하시고 이렇게 살라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입니다. 시편 16편 11절에 보면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기록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전 앞에 나가려면 기쁨을 가지고 나가야지 슬픔과 원망과 미움을 가지고 나가면 자신과 공동체의 분위기를 망쳐 놓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가는 길이 바로 기뻐하는 일입니다. 마음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면 하나님께 나가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우편에는 즐거움이 넘치기 때문에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오셔서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통하기 위해서도 마음에 기쁨과 즐거움이 있어야 합니다. 기쁨은 마음의 풍랑을 다스려 긍정적이게 하고 꿈과 믿음이 활동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2절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기록합니다. 즉 시험을 당할 때도 울고 탄식하지 말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그냥 조금 기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100% 기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환난과 시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사람에게는 결국 시간이 지나면 겪은 환난과 시험과 동등 혹은 그 이상의 소망과 축복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소망은 쉽게 오지 않습니다. 소망의 전초로서 슬픔과 고통이 먼저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통이 다가와서 문을 두드릴 때 그것을 원망하고 불평하면 소망도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환경이 어려울 때 즐거움으로 받아들이고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면 얼마 안 있으면 그 환경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변화됩니다. 그러므로 기뻐하는 것이 삶의 원천이 됩니다. 인생이 지치고 피곤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우리가 감사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면 그것이 바로 힘이 되는 것입니다. ‘웃음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노만 카슨스는 원래 미국의 유명한 잡지사의 편집장이었습니다. 해외여행을 갖다 오다가 50세도 안되는 나이에 희귀한 병에 걸려 잡지사를 관두고 웃음의 연구를 통해 그 질병에서 치료받고 미국 UCLA대학교에서 75세까지 웃음과 건강학을 연구했습니다. 이처럼 그의 경험과 연구 결과를 담은 「질병의 해부」라는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그 책에서 그는 기록하기를 “웃음은 방탄조끼다. 총을 쏴도 뚫리지 않는 방탄 조끼다. 어떠한 세균이나 병균, 바이러스도 웃는 사람에게는 들어올 수 없다”고 기록합니다. 웃음은 마치 방탄조끼를 입은 것 같아서 세균이나 병균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주고 건강하게 살 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웃음은 약도 되고 빛도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웃는 사람은 밝고 맑고 환하고 마음이 건강해집니다. 기쁨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이요, 하나님과 교통하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입술의 고백으로 “기쁘다! 나는 기쁘다!”라고 말하고 억지로라도 소리 내어 웃으면 하나님이 그런 사람을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기쁨은 이렇게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항상 우리가 기뻐해야 되는 것입니다.
2)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가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기 때문에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과 멀어집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안에서 식구들끼리 서로 대화를 많이 하면 친밀해지지만 일이 바빠서 서로 대화를 할 수 없으면 멀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멀어지고 가까워지는 것은 대화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쉬지 말고 기도하여 하나님과 대화하면 하나님께서 기쁘게 여기시고 즐겁게 받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기를 원하고 모든 민족이 구원 받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 찬양을 하고 하나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도 원하는 것이 있었으나 자기 소원을 내려 놓고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기도의 모범을 따라야 됩니다. 모든 일에 우리의 소원이 있지만 우리의 소원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아버지의 뜻인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존재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소원을 이루는 것을 항상 우리 기도의 최우선으로 삼아야 합니다. 요한일서 5장 14절에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가 기도하면 그 기도는 상달되고 이뤄 주시는 것이니 아버지의 뜻을 먼저 추구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8장 26절로 27절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고 기록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가 아버지의 뜻을 따라 기도하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와 계신 것입니다. 기도는 실제적인 힘입니다. 기도는 형식적인 종교 행위가 아닙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의 응답이 반드시 나타납니다. 역대하 20장에는 모압, 암몬, 마온의 연합 군대가 유다를 치러 왔을 때 유다의 모든 백성이 합심으로 기도하여 적군을 물리친 기록이 나와 있습니다. 유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아내와 자녀와 어린이와 더불어 야훼 앞에 서서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모압, 압몬, 마온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싸워서 멸망케 된 것입니다. 역대하 32장에는 히스기야 왕이 병들고 외적이 쳐들어와서 나라가 백척간두에 있을 때 왕과 이사야 선지자가 함께 기도해서 적을 물리치고 히스기야는 몸의 병이 나은 것입니다. 고아의 아버지 조지 뮬러는 스스로 5만 번 기도응답을 받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구하는 기도에 응답을 주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에게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네게 응답하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응답의 하나님입니다. 안될 것은 “안된다”고 응답해 주시고 되는 것은 “된다”고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크고 비밀한 일을 너희에게 보여 주리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쉬지 말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3) 범사에 감사하라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기록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도우심에 우리가 감사해야 될 것은 환난과 고난 중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시편 121편 1절로 2절의 말씀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야훼에게서로다”라고 기록합니다. 우리는 항상 보는 방향을 올바르게 가져야 됩니다. 인생의 태산을 보고 사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염려와 근심, 걱정, 실패와 고통과 괴로움의 태산을 바라보고 통곡을 하고 너무나 쉽게 “나는 죽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태산과 같이 천지를 지으신 야훼께서 같이 계신 것입니다. 야훼를 바라봐야 됩니다. 빌립과 안드레가 똑같은 광야에 있고 똑같은 군중들이 굶주려 있었으나 예수님께서 저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할 때 빌립은 광야만 바라보고 군중만 바라보고 떡을 구할 곳이 없는 것을 바라보고 없는 것을 바라보고 주님께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제자인 안드레는 한 아이가 가지고 온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가지고 주님을 바라보며 나온 것입니다. 빌립은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했지만 안드레는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우리는 다 인생의 광야 가운데 삽니다. 크고 작은 광야가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 광야 가운데 광야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예수님이 계십니다. 천지를 지으신 야훼가 계십니다. 바로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와 항상 같이 있겠다”고 말씀하신 주님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광야만 바라보면 안됩니다. 오직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의지하면 기적을 기대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7절로 58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 기록합니다.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더불어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아무리 우리의 환경이 어둡고 캄캄해도 이미 예수님이 우리보다 먼저 지나가셨습니다. 예수님이 사망의 골짜기도 이미 생명으로 바꿔 놓았고 허물도 거룩함으로 바꿔 놓았고 병도 채찍에 맞으므로 치료로 바꾸어 놓았고 저주도 십자가에서 청산하므로 아브라함의 복으로 바꿔 놓았고 죽음도 주님께서 부활하시므로 영생으로 바꿔 놓은 것입니다. 어떠한 사망이 다가와도 그 앞길을 주님께서 이미 먼저 지나가셨기 때문에 주님이 같이 계시면 우리는 예수님을 의지하고 사망을 넉넉히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5절에서 37절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기록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살면 우리는 넉넉히 이깁니다. 그러므로 이긴다고 생각하고 늘 감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면 언제나 이기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희망과 꿈을 바라보고 감사해야 됩니다. 우리에게는 희망과 꿈이 있습니다. 십자가가 바로 희망이요 꿈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희망과 꿈을 바라보고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더 놀라운 희망과 꿈을 주시는 것입니다.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는 “우리는 감사를 통해 부자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감사하면 하나님이 더 주시기 때문에 더 부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신학자인 존 헨리도 “감사는 최고의 항암제이자 해독제이며 방부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감사가 우리 몸과 마음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를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세 가지를 실천할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아버지의 뜻이니라!” 그러므로 이 세 가지를 실천하면 우리 생활에 큰 복을 받고 현세에서는 참된 평안을 얻고, 내세에서는 영생 복락을 얻으며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억지로라도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모든 일에 감사드리는 단기선교회원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