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영의 [소통의 월요시편지_480호] 엉겅퀴
엉겅퀴 / 박제영
텅 빈 숲 기슭에
엉겅퀴 홀로 지고 있다
지난 계절,
가시를 세우고 독을 품은 것도
제 설움을 가리고 싶었을 뿐이라며
보라,
보랏빛 한 설움이 지고 있다
한 생을 꼬박 앓고도
꽃으로 스미지 못 한 당신,
그리고 나
보라,
엉겅퀴 하얗게 지고 있다
*
한 해가 또 저뭅니다. 올해 마지막 시편지를 띄웁니다. 올해 첫 시편지로 띄운 것이 도종환 시인의 「책꽂이를 치우며」라는 시였는데 기억하실런지요? 마음의 창을 가리고 있는 쓸데없는, 쓸모없는 책(지식)들은 없는지... 가끔은 지식도 분리수거가 필요하다는 말씀으로 한 해를 시작했더랬지요.
올해 마지막 시편지로 무얼 띄울까 고민하다 졸시, 「엉겅퀴」를 띄웁니다. ‘하나의 꽃이 사랑이기까지 /하나의 사랑이 꽃이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잃고 또/ 떠나야 하는지’(「엉겅퀴의 노래」) 복효근 시인의 시문을 지팡이 삼아 산에 올랐더랬지요. 원창고개를 올랐더랬지요. 그 기슭에 홀로 지고 있는 엉겅퀴가 왜 그리도 쓸쓸하고 서럽던지요. 지난 여름의 일이었습니다.
붉은 꽃 다 떨구고 하얗게 지고 있는 엉겅퀴. 엉겅퀴처럼 한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시편지 식구들 모두 한 해 마무리 잘 하시고, 새해에도 그저 여여하시기 바랍니다.
2015. 12. 28.
박제영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