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삐용(2017)을 우연히 보았다. 예전 스티브 맥퀸과 더스틴 호프만 버전을 새로운 배우들로 대체해서 최근에 다시 촬영한 영화다. 빠삐용이 무죄라고 주장하는 사막씬에서 판관들이 인생을 낭비했다는 죄가 있다고 판결하자 그가 유죄를 인정한 장면은 빠삐용을 연상하면 항상 기억나는데 인간을 포함한 생물은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죽을 운명이니 태어난 목적을 달성해야 할 것이다. 동물은 새끼를 낳는 것이 출생의 이유인데 사회적 동물인 사람은 아이를 낳는 것외에도 아이가 잘 살 수있도록 사회를 더 좋게 만드는 목적도 있을 것이다.
그는 아이를 만들거나 거기에 더해 사회를 개선하는데 능력을 사용해야 하는 의무는 이행하지 않고 뚜쟁이로 본능적인 쾌락만을 추종했으니 유죄를 부인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제 회갑이 되가면서 또 다른 장면을 떠올린다면, 빠삐용이 드가에게 마지막 탈출을 권하지만 안락한 섬의 유배생활에 만족하는 그에게 거절당하고 야자열매로 엮은 부유물을 이용하여 탈출을 감행하면서 내뱉은 말이다. 나는 아직 죽지않았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탈출후 행적은 여전히 유죄라는 측면은 다소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