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하도에 단풍 흔적이 흥건하다. 물론 여느 산만큼 곱진 않다. 그래도 숲 사이로 울긋불긋 이어진다. 길이 보여주는 색감이 다채롭다. 사철 푸른 침엽수의 초록은 여전하다. 붉고 노랗게 불붙은 단풍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연보라의 자주쓴풀꽃이 무리로 핀다. 보색 효과가 두드러진다. 얼굴 삐죽이 내밀며 쉬어 가라 이른다. 잠시 숨을 돌리고 무릎 꿇고 바라본다. 유화 물감 연하게 바른 꽃잎들이 줄지어 빛난다. 바람이 그 새 예쁜 빛깔을 그리고 간다.
색의 계절이 아주 천천히 섬을 덮는다. 한층 깊어진 가을색이 만추의 숲에 깃든다. 바람도 햇살도 사람도 잠시 쉬어간다. 솜사탕 안개가 굽이 산길을 돌아간다. 그물에 걸리지 않고 온통 산을 메운다. 눈부신 가을을 시샘하는 바람이 분다.
망개나무 열매가 빨간 꽃이 돼 붉게 타오른다. 선명하게 물든 나뭇잎의 색이 빨간 열매로 도드라진다. 유화 물감을 빨갛게 바른 듯하다. 빨강이 얼마나 진한지 선홍빛이다. 노란 활엽수 잎과 어떻게 다른지 보여준다.
짙은 솔향기가 피어오른다. 시원한 조망이 터진다. 제법 위용을 갖춘 암릉길이 이어진다. 길 오른쪽은 내리막 절벽이다. 밑으로 짙푸른 바닷물이 철썩거린다. 바다 건너 유달산과 목포해양대학교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목포라는 이름에서 바다 냄새가 난다. 이즈음 가장 좋다. 가을 목포를 말하면 고하도를 빼놓을 수 없다. 물론 다른 명소만큼 거대하거나 압도적이진 않다. 예상치 못한 가을의 절정을 고하도 숲길에서 보게 된다.
고하도 용오름길은 언제든 걷기 좋다. 좋은 기운을 받고 싶은 사람들에겐 더 없이 좋다. 용이 날개를 펴고 하늘을 승천하는 등허리를 타고 걸을 수 있다. 용의 기운을 듬뿍 받을 수 있다. 물론 길 입구 안내도에 있는 문구다.
시간의 힘은 언제나 변함없이 무섭다. 계절은 비가 오고 날씨가 흐려도 오고 또 간다. 여름 뒤 가을 지나 겨울이 온다. 그리고 다시 봄이 찾아온다. 거스르지도 않고 건너뛰지도 않는다. 늦가을, 무언가를 내려놓는 계절이다.
산 밑 농부의 수런거림에 귀 기울인다. 귀로 듣는 풍경화가 예쁘고 아름답다. 고하도가 점점 오색으로 물들어간다. 풍경 하나에 사랑 하나가 들어찬다. 검붉은 나뭇잎에 찬 이슬이 맺힌다. 자연이 빚은 예술 속으로 들어간다.
숲속 나무 그늘이 볕에 곁을 내준다. 추억이 고요 속에 묵묵히 흘러간다. 파란 풍경화 같던 숲에 마법이 인다. 울긋불긋한 빛깔이 들쑥날쑥 한다. 고하도 해안데크에 사람이 모인다. 용오름을 순례처럼 걸어가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