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성도들의 삶 속에서 나타나는 성령의 열매를 보고 싶어 합니다.
사도행전을 “성령행전”이라고도 불리는 이유는 성령의 역사의 모습들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오순절 다락방에 임하신 성령은 두려움 속에 숨어 있던 제자들을 거리로 내몰았고, 떨리는 입술을 담대한 복음의 증언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경험했던 제자들조차 성령이 임하기 전에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임하셨을 때 그들의 삶은 완전히 새로워졌습니다. 교회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의 임재가 없는 신앙은 형식만 남은 종교가 되기 쉽지만,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삶은 여전히 살아 움직이며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약속은 바로 보혜사 성령의 강림이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성령을 “너희와 함께 거하시며 또 너희 속에 계실 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은 단지 신비로운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임재입니다. 그래서 성령강림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선언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1장에 나타난 안디옥 교회의 이야기는 성령의 역사가 어떻게 세상을 넘어 확장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스데반의 순교 이후 성도들은 박해를 피해 여러 지역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흩어짐은 실패가 아니라 복음의 씨앗이 퍼지는 과정이었습니다. 성경은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라고 기록합니다. 교회의 진정한 부흥은 인간의 능력이나 전략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이 함께하시는 데서 시작됩니다. 그때 예루살렘교회는 안디옥으로 바나바를 보냅니다.
바나바는 초대교회 속에서 가장 따뜻한 영성을 가진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은 그를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는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모두가 두려워하던 사울을 품어 주었고, 그를 사도들에게 연결해 주었습니다. 성령의 사람은 다른 사람의 허물보다 가능성을 바라봅니다. 또한 바나바는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다른 사람을 세워 주는 삶을 살았습니다. 성령충만은 단지 감정의 뜨거움이 아니라 삶의 변화로 드러납니다.
안디옥교회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안디옥 성도들의 삶 속에서 예수님의 흔적을 보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태도와 서로를 섬기는 모습, 그리고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삶이 그들을 그리스도인으로 보이게 했습니다. 메마르고 차가운 시대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성령의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사람을 살리는 사람, 은혜를 기뻐하는 사람, 공동체를 세우는 사람, 그리고 예수님의 향기를 드러내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바나바처럼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일 것입니다. <석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