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고지 상봉과 신선봉에 오르기 위해 마지막 백두대간 연결 산행으로 '미시령 → 상봉 → 화암재 → 신선봉 → 대간령 → 암봉 → 병풍바위 → 마산 → 흘리 → 진부령' 16km 구간을 7시간 동안 달릴 예정이었다.
1
신선봉
높이: 1,212m
위치: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설악산 외곽의 미시령 부근에 비교적 덜 알려졌으면서도 뛰어난 경관을 지닌 등산 대상지로 화암사에서 백두대간 신선봉을 잇는 코스는 몇 년 전부터 국제마라톤대회를 개최하고 있는 이 코스로서 특히 울산바위의 기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꼽을 만큼 조망이 뛰어나다. 날씨가 좋으면 푸른 동해의 시원스러운 모습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이 지역은 미시령과 마찬가지로 상습 안개 구간이어서 좋은 전망을 바란다면 산행 일을 잘 골라야 한다. 만약 일기가 급속도로 나빠져 도중에 탈출하려면 온 길을 되짚어 내려가는 것이 상책이다. 상봉에서 미시령 쪽으로 하산하는 것도 가능하다. - 한국의 산하
마산
높이: 1,052m
위치: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토성면
마산은 백두대간의 남한 쪽 분단이다.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과 토성면의 경계에 있는데 북으로 더 나가지 못하고 있어 아쉬운 마음이 들 수 있다.
날씨가 좋을 경우 진부령에서 향로봉, 비로봉을 비롯한 금강산 연봉까지 어슴푸레하게 볼 수 있다.
신선봉은 백두대간 종주 등산로에서 약간 동쪽으로 벗어나 있는 봉우리다. 너덜이 깔린 신선봉 정상에 서면 동해와 신평벌, 설악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산과 신선봉은 능선으로 바로 연결이 돼 있으며 알프스 스키장이 산행 초입이 되어 겨울철에는 알프스 스키장까지 이동하는 차편이 무궁무진하여 교통은 어렵지 않다.
두 산을 종주하거나 거꾸로 미시령에서 시작해서 알프스 스키장으로 하산할 수 있다. - 한국의 산하
이번 주 일요일인 7월 2일은 토요 무박으로 169번째 천고지인 북설악 신선봉과 상봉에 오른다. 그리고 신선봉과 상봉이 백두대간 상에 있어, 미시령에서 진부령까지의 마지막 백두대간 연결 산행을 겸하고 있다. 고로 169번째 천고지 신선봉과 백두대간 연결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산행이다. 이 구간은 안내산악회 백두대간 종주팀이 아니면 접근이 힘든 구간이라, 대간 종주팀의 산행 계획이 나오기를 작년부터 기다렸는데, 다양한 이유로 연기되거나 취소되더니 마침내 7월 2일 실행한다. 이번에 같이하는 인솔 대장은 도솔봉에 오르기 위해 묘적령에서 죽령까지, 백화산에 오르기 위해 이화령에서 사다리재까지, 대간 연결을 위해 육십령에서 삿갓재까지 그리고 버리미기재에서 은티재까지 백두대간을 같이 달려, 인연이 꽤 깊은 편이다.
이 구간 중 흘리에서 대간령까지는 2020년 신년 산행으로 다녀와[산행기], 천고지나 백두대간 연결을 위해서는 굳이 미시령에서 진부령까지 달릴 필요 없이, 미시령에서 대간령까지만 가면 된다. 하지만, 미시령에서 대간령 구간이 설악산 국립공원의 출입 금지 구역이라, 안내산악회에서 단속을 피해 무박으로만 진행해, 가성비를 위해 흘리까지 달리는 산행이 됐다. 그럼에도 무박 산행치고는 대단히 짧은 17km에 불과하지만. 어쨌든 이 기수는 중산리에서 시작해 진부령에서 끝내는 북진팀이라, 이번 산행으로 백두대간 종주를 마감한다. 안내산악회에서는 그걸 졸업이라 부르는데, 의미가 부합하나? 따라서 일찍 산행을 마감하고 진부령에서 축하주를 마실 확률이 높다. 안내산악회도 게시판에 꽃다발로 축하 중이고 선물도 준다. 나 또한 백두대간 연결 산행을 시작할 때 이 구간만큼은 마지막으로 진행할 생각이었던 지라, 이 기수와 같이 백두대간 종주를 끝낸다. 고로 같이 축하주를 마실 예정이다.
5월 5일 산행 공지를 발견하고 신청할 당시만 해도, 종주 팀원이 버스의 좋은 자리를 대부분 차지하고 있어, 남은 자리 중 괜찮은 좌석을 신청했었다. 그런데, 이 구간 산행은 2022년 10월 16일 실행하고, 거의 7개월 만인 2023년 5월 27일 진행 후 다시 1개월 반 만에 진행하는 거라, 금방 신청이 몰려, 처음 28인승 버스에서 36인승, 출발 하루 전에는 최종 40인승 버스를 가득 채우고, 대기자까지 있을 정도다. 그리고 현재 장마 기간이나, 다행히 출발일과 산행일은 오랜만에 쨍쨍할 거라는 산악날씨 예보로, 오히려 덥지 않을지 걱정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지난 설악산행과 같은 준비를 한다[산행기]. 다만, 아침을 라면으로 할지 김밥으로 할지는 출발 전에 결정한다. 점심은 제시간에 식당에서 하산주를 반주 삼아 먹을 예정이다.
출발 전 배낭을 싸며, 코펠과 버너에 라면, 아니면, 김밥? 고민하다가, 앞선 대간꾼의 산행기로 거리와 소요 시간을 다시 한번 검토해 봤다. 거리는 16km가 채 안 되고, 소요 시간은 6시간 30분이 정도 걸렸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 넉넉잡아도 7시간이면 충분히 완주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무박 산행이니, 미시령에서 3시경 출발하면, 10시면 진부령 또는 흘리에 도착한다. 다행히 한낮의 땡볕은 피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리고 약간은 늦은 '아점', 요즘 얘기로 '브런치'를 먹을 수도 있다. 해서 불광역 부근 김밥 전문점에서 김밥을 사 가기로 했다. 그리고 버스에서 잘 자는 게 중요해, 수면제를 반주로 저녁을 먹을 예정이다.
2 – 1
평소보다 늦게 수면제인 인삼주를 반주로 저녁을 먹은 후 배낭을 꾸려, 10시 30분경 집을 나섰다. 불광역발 11시 1분이나, 10분 열차를 타면 되나, 마을버스 도착 시간을 종잡을 수 없어, 좀 일찍 나섰다. 물론 김밥도 사야 하고.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10시 32분 도착한 버스를 타고 불광역으로 향해, 10시 36분경 도착, 김밥집에 들러, 김밥을 사서 역으로 내려간 시각이 10시 45분이다. 그리고 10시 51분 도착한 열차를 타고 양재역에 10시 31분 도착했다. 거의 30분 일찍 도착했다. 이게 다 걷는 게 싫어 마을버스에 의지해서 발생한 일이다. 딱히 할 일은 없고, 외교원 앞으로 가봐야 앉을 곳도 없어, 승차장 의자에 앉아, 책을 읽다가, 11시 45분경 외교원으로 향했다.
버스 출발까지는 아직은 이른 시간임에도, 외교원 앞에는 생각보다는 많은 등산객이 심야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하긴 양재 국립외교원에서 24시 출발하는 심야 버스가 7대나 되니, 놀랄 일도 아니다. 오랜만에 서초구청 주차장 석축에 자리잡고 앉아, 속속 도착하는 등산객을 구경하고 있다가, 11시 55분 설악산 종주 버스가 도착하는 걸 보고, 이미 분리해 놓은 버스 안에서 들고 갈 보조 파우치와 배낭을 들고 외교원 앞으로 갔다. 그런데, 안 온다. 설악산 종주, 섬티아고 산행 버스는 이미 승객을 태우고 출발했는데, 우리 버스는 아직이다. 해석 혹시 내가 시간을 오해하고 있는 게 아닌가, 산악회 게시판을 다시 확인했는데, 맞다.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예측이 안 되는 상황이라, 손에 들고 있던 짐을 바닥에 내려놓고 있으니, 11시 58분경 후미 그룹의 버스가 도착한다. 물론 백두대간 미시령~진고개행 버스도!
배낭을 짐칸에 넣고, 버스에 타 자리를 잡고 앉은 후, 등산화를 슬리퍼로 갈아 신고, 자려고 가장 편한 자세를 잡는데 버스의 실내등이 그대로라, 마지막 정차지인 복정역까지 눈만 감고 있었다. 그리고 복정역에서 나머지 승객을 태우고 미시령을 향해 버스가 출발하자, 인솔 대장이 마이크를 잡고 이번 산행의 코스와 주의 사항에 관해 설명을 시작한다. 당일 산행은 휴게소에서 출발할 때 하는 게 일반적이나, 무박 산행은 승객의 취침을 위해 마지막 정차지를 출발할 때 한다. 물론 인솔 대장에 따라 다르지만. 어쨌든, 코스야 백두대간이니, 더 설명할 게 없으나, 전체 거리 17km에 불과한 구간을 무박으로 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 이번 산행의 일부 구간이 설악산 국립공원 내 비탐방 구역이라, 요원이 지키는 일이 종종 있어, 시작부터 일정 시간까지는 같이 움직여야 한다. 들머리도 미시령이 아니라, 그 아래 계곡이다.
미시령이 아니라, 그 아래 계곡에서 산행을 시작하지만, 그래도 만일에 대비해 휴게소에서 쉬는 동안, 준비를 끝내고 대기하고 있다가, 버스가 정차한 후 내리라는 신호를 보내면 바로 산행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하라는 말로 설명을 끝냈다. 휴게소고 뭐고, 계속 잘 생각이었는데, 틀렸다! 그리고, 대장 말을 무시하고, 계곡이 아니라, 미시령에서 시작할 예정이다. 그렇게 결정하고, 깊은 잠은 못 들고 비몽사몽 헤매고 있는데, 실내등이 들어와 시계를 보니, 1시 57분이다. 당연히 미시령, 한계령 갈림길에 있는 폐업한 휴게소라 생각했는데, 아니다. 인제다! 그것도 휴게소가 아니라, 호텔 주차장. 잠자기는 틀려, 기상하면 치루는 의식을 수행하기 위해 버스에서 내리자, 우리보다 앞서 도착한 버스가 보인다. 우리보다 5분 정도 일찍 출발한 같은 산악회의 설악산 종주 버스다. 그걸 확인하는 순간, 지난 설악산 종주 산행이 떠올랐다[산행기]. 그럼, 그때도 여기서?! 아니, 삼일절 서북 능선 종주도[산행기]?!
화장실이 작아 소변도 줄 서서 봐야 하는 상황이라, 의식은 산에서 치르기로 하고, 밖으로 나와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우리 버스의 승객들이 짐칸에서 배낭을 꺼내 등산 준비하는 걸 지켜봤다. 그러다 양재에서 짐칸에 배낭을 넣을 때 한 칸이 '사용금지. 대장'이라고 적힌 걸 발견하고 저건 뭘까 궁금했는데, 그 안에 백두대간 종주 기념 이벤트 물건이 들어 있다. 꽃다발, 케이크, 선물 등! 이 버스는 이벤트 전용인가? 그 모든 걸 기록으로 남기고 짐칸의 배낭에서 물을 꺼내 한 모금하고 버스에 타서 다시 잠을 청했다. 신발만 갈아신으면 등산 준비는 끝이라, 굳이 미시령까지 눈을 뜨고 갈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자리가 인솔 대장 바로 뒤라, 대장과 기사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는데, 여성이라 그런지 요원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실내등을 꺼라, 목적지 표시 LED를 꺼라 등 대단히 섬세하고 조심스럽다.
2 – 2
버스가 터널이 아닌 구 미시령 도로로 들어서는 순간, 슬리퍼를 등산화로 갈아신고, 끈을 조이는 거로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2시 49분 미시령 바로 아래 계곡에 도착하자, 먼저 인솔 대장이 버스에서 내려 이상이 없는 걸 확인하고, 모두 내리라고 지시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짐칸에서 배낭을 꺼내 둘러메고, 핸드폰과 스마트워치의 등산 앱을 기동했다. 물론 현재 위치의 고도를 확인하는 걸 잊지 않았다. 770m, 오차를 고려하면, 750m 내외다. 상봉이 1,244m, 표고차는 500m 내외로, 높이만 보면 아주 가벼운 산행이다. 다만, 길이 아주 잘 정비된 백두대간이 아니라, 계곡에서 능선, 즉 백두대간으로 올라서야 하는 게 문제다. 나야, 미시령에서 올라갈 거지만. 그런데,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대간꾼이 대장에게 미시령으로 가겠다고 하자, 대장이 알아서 하라고 한다. 해서 랜턴을 켜고 구 도로를 따라 앞장서 미시령으로 향했다.
인솔 대장이 계곡으로 진입하기 위해 철책의 틈새를 찾는 걸 지켜보다가, 도움을 주기 위해 랜턴을 철책 방향으로 틀었다. 미시령은 이보다 더한 철책으로 막혀 있으니, 그 직전에 대간꾼이 만든 틈을 찾기 위함도 있다. 철책을 주시하며 위로 가다가, 뒤로 돌아보니, 대장이 다른 대간꾼을 이끌고 뒤를 따라오는 게 보인다. 뭐 그러려니 하고, 철책을 주시하며 가자, 예상대로 미시령 직전에 철책을 넘나든 흔적이 있어, 거기서 철책을 넘었다. 이후 대장과 몇 사람이 넘어오는 걸 도와준 후, 거의 무릎에 이르는 풀숲을 헤치고 백두대간 즉 능선을 향해 올랐다. 그러자, 대장이 혼자 가지 말라고 잡는다. 어차피 목적대로 미시령에서 시작한 거나 다름없어, 대장 말을 듣기로 하고, 대장을 앞장세운 후, 그 뒤 4번째에 자리를 잡고 따라갔다.
예상대로 백두대간에 올라서자, MTB가 다녀도 좋을 정도의 널찍한 길이 나타났다. 대간꾼을 위한 건 아닐 거고, 오른쪽 삼척의 야경을 기록으로 남기며, 상봉을 향해 가는데,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앞으로 똑바로 걷는 게 힘들 정도라, 약간 왼쪽으로 가야 직진할 수 있다. 그렇게 강한 바람과 맞서며, 급경사를 오르자, 군데군데 토양 유실을 막기 위한 목책이 서 있다. 문제는 목책이 허벅지 높이라 바로 위로 올라갈 수 없어, 길에서 벗어나, 두 번인가 목책을 우회하자, 그다음부터는 목책 아래에 계단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나무 상자가 놓여 있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보던 상자라, 랜턴으로 비춰봤다. 연대 탄약병 시절 수없이 날랐던, 4.2" 박격포 탄박스다! 첫 안부에 도착할 때까지 탄박스가 이어진다. 그걸 보니, 대장이 버스에서 코스 설명하며, 어두워 길을 확인할 수 없는 때는 검은 선만 따라가라고 했는데, 이제야 이해가 됐다. 검은 선은 통신대의 삐삐선이다. 고로 이 길은 대간꾼을 위한 게 아니라, 군 작전도다!
인솔 대장의 말대로 갈림길처럼 보이는 곳에서는 삐삐선의 도움을 받으며, 첫 번째 목표인 상봉으로 향하는데, 정상 부근에 마대로 무언가를 둘러싸고 있는 게 여기저기 보여, 그 안에 뭐가 있는지 살펴봤다. 예상대로 나무다. 둘러싼 마대가 강한 바람으로부터 약한 나무를 보호하고 있다. 분위기로 봐서는 야영지를 야생으로 돌려보내는 작업 중이다. 그것도 기록으로 남기고 계속 길을 가니, 어느 순간 등산 앱이 고지 반경 50m 내라고 음성으로 알려준다. 상봉이다. 하지만, 중간에 뭐가 있을지 몰라 핸드폰을 꺼내 확인했다. 맞다! 상봉 반경 50m 내다. 해서 보이는 건 없지만, 그래도 기록을 위해 동영상을 찍으며 상봉으로 향해 4시 8분에 도착했다. 그리고 동영상 찍는 걸 중지하려고 보니, 촬영 중이 아니다. 동영상 버튼을 클릭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먼저 주변의 일행과 상부상조해 인증을 남긴 후 정상석에서 한쪽으로 벗어나, 어둠 속에 잠긴 속초와 동해를 기록으로 남겼다. 물론 신선봉이라 생각되는 봉우리도! 상봉에서 해야 할 일을 마치고 다음 목표인 신선봉으로 향해 내려가려고 보니, 직벽 수준의 암릉이다. 내가 먼저 내려가겠다는데, 굳이 대장이 앞장서, 뒤에서 랜턴으로 길을 밝혀줬다. 이후 그 뒤를 따라 내려가, 일행 몇이 내려올 때까지 밑에서 위로 랜턴을 비춰준 다음, 길을 재촉했다. 밝아오는 여명 속에 저 앞에 마산봉으로 보이는 봉우리와 대간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며 대장의 뒤를 따라가는데, 대장이 등산로에서 벗어나, 절벽 방향으로 간다. 전망대라 생각해 대장의 뒤를 따라갔다. 전망대는 맞다. 그리고 사진도 찍었다. 그런데, 대장은 전망대라 간 게 아니라, 버스에서 얘기한 대로, 여명이 밝아 오는 4시 반까지만 같이 움직이고, 그 이후는 각자 알아서 하라는 그 시각이라, 길을 양보한 거다. 대장이 선두 그룹인 우리를 보고 알아서 먼저 가란다. 자기는 반응이 없는 후미를 기다렸다가 같이 가겠다고. 여기까지 오는 동안 후미의 위치를 계속 확인했으나, 반응이 없어, 대장이 걱정을 많이 한 거 같다.
전망대에서 대장과 헤어져 내려가니, 고개다. 당시만 해도 그 고개의 의미를 몰랐는데, 나중에 미시령에서 새이령 구간에서는 중요한 화암재라는 걸 알았다. 동쪽의 성인대로 내려가는 갈림길로 중요하나, 반대편으로 내려가는 게 산행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다.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신선봉도 이제야 왔다. 다음 여기 왔을 때는 화암재에서 마장터로 내려가기 위함이다. 그 화암재를 지나, 가쁜 숨을 몰아쉬며 위로 오르자, 바위너설이 반겨준다. 그동안 신선봉에 관해 갖고 있던 모습이 허상이라는 게 밝혀지는 순간이다. 신선봉은 숲속의 흙산이라 생각했는데, 황철봉, 대청, 귀청과 다를 바 없는 암봉과 바위너설의 봉우리다. 왜 신선봉은 다를 거로 생각했을까? 어쨌든 그중 한 바위 전망대에 올라, 뒤로 돌아 상봉과 그 주변의 모습을 파노라마로 남기고, 여명이 밝아 오는 신선봉도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정상을 향해가자, 4시 58분 등산 앱이 신선봉 반경 50m 내라고 음성으로 알려준다.
등산 앱이 고지 반경 50m 내라고 알려주면, 기록을 위해 동영상을 찍으며 가는 게 산행의 한 과정이라, 동영상을 찍으며 올라가, 5시 정각 바위에 박힌 화강암 명패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런데, 정상을 향해 가며 왼쪽을 보니, 배낭이 없는 등산객 몇이 올라오는 게 보인다. 당연히 우리 일행이 배낭을 벗어두고 오는 거로 생각했다. 해서 풍파에 3/4가 날아간 정상석? 명패를 기록으로 남기고, 먼저 도착한 일행에게 인증을 부탁했다. 이후 속속 도착한 일행을 배낭이 없는 그 친구가 인증을 찍어 주는 걸 구경하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날 부른다. 응? 내 이름을 아는 사람은 없는데, 깜짝 놀라 돌아보니, 삼토회 윤경이다. 그리고 주변의 몇 사람을 소개한다. 다 배낭이 없는 친구로, 당연히 삼토회 멤버다. 그중에는 인증을 찍어준 친구도 있다. 실수했다. 어쨌든 삼토회 멤버도 안내산악회와 같이 왔을 거로 생각해 어떻게 왔는지 물었다. 비박이란다. 정확히는 야영! 아직 청춘이다!
그들이 인증을 남기는 걸 옆에서 지켜보다가, 동해에 떠오르는 해와 북진하는 백두대간을 기록으로 남긴 후, 작별을 고하고, 정상을 넘어 바위너설로 새이령/대간령을 향해 내려갔다. 그런데, 길은 없는데, 검은선, 즉 삐삐선은 이어지고 있다. 아무리 봐도 대간은 왼쪽의 능선이다. 하지만, 통신대의 전화선은 바위너설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 무언가 이상해 등산 앱의 지도를 확인했다. 애초 등산로는 신선봉에서 왔던 길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동안 고마웠던 검은선/삐삐선과 헤어져야 할 순간이다. 신선봉으로 올라오는 길목에 새이령으로 빠지는 갈림길이 있었다. 그런데, 본 기억이 없다. 신선봉 도착에 취해 못 보고 지나쳤나? 와중에 만보기로 말썽을 부리는 등산 앱에는 새이령으로 가는 길이 아예 없다! 여기까지 와서 다시 신선봉으로 돌아가는 건 스스로가 용납이 안 돼, 바위너설과 울창한 숲을 뚫고 능선, 즉 백두대간으로 향해 5시 21분에 능선에 합류할 수 있었다.
다시 대간에 합류해 왔던 길? 인지 명확하지 않은 길을 따라 100여 미터를 내려가자, 갈림길이 나타났다. 누가 봐도 오른쪽이 새이령이다. 그런데, 돌다리도 두들기라고, 핸드폰을 꺼내 등산 앱 지도로 확인하는 사이 나를 앞질렀던, 일행이 그 갈림길에서 모두 배낭을 내려놓고, 각자 핸드폰으로 확인한다. 저들도 나와 같이 신선봉에서 새이령 가는 길을 찾아 헤맨 결과이리라! 어쨌든 그들이 지도를 확인하는 걸 지나쳐 오른쪽 길로, 아래로 내려가자, 앞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그 소리를 들으며 계속 가니, 몇 동의 텐트가 보인다. 삼토회 별장이다. 그런데, 인기척이 있다는 건 다른 산악회의 별장일 수도 있어, 문으로 고개를 빼꼼 내민 야영꾼에게 '삼토회?'하고 묻자 놀라며, 어떻게 알았냐고 되물어 위에서 만났다는 말을 남기고 갈 길을 갔다.
야영지를 지나, 새이령/대간령으로 본격적인 하산을 시작해 25분가량 내려가자, 개활지가 나타나 전면의 모습을 그래도 보여준다. 병풍바위와 마산봉이다. 그리고 그 앞이 암봉이다. 암봉과 능선이 끝나는 곳의 아래로 떨어지는 곳에 새이령이 있다. 그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새이령이 멀지 않은 것에 기뻐하며 내려가는데, 등산 앱이 알람을 울려 확인하니, 문제의 만보기다! 이것 때문에 배터리 소모가 많아, 핸드폰 배터리 문제로 조난 시 등산 앱을 만든 회사에 손배를 청구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계속 내려가 6시 4분에 헬기장을 통과했다. 와중에 그동안 오르기만 했지, 그 모습을 본 적 없는 병풍바위봉과 암봉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지금까지 완만한 경사에서 급경사로 바뀐 등산로로, 12분가량 가자, 6시 16분경 등산 앱이 새이령 반경 50m 내라고 알려준다.
동영상을 찍으며 내려가는데, 좌우에 군사용? 비박용? 인지 명확하지 않은 돌을 쌓은 야영지가 보인다. 그것들을 기록으로 남기며, 출입 금지 경고문을 지나, 금줄 사이를 통과해 음지의 신선봉 능선에서 양지의 새이령에 도착했다. 새이령에 도착한 순간 남한의 백두대간 연결은 끝났다. 여기서부터 앞프스리조트까지는 반대로 달렸던 구간이라, 연결이라는 목적만 놓고 보면 다시 달릴 이유가 없다. 해서 초반에는 박달나무 쉼터로 바로 하산할까도 잠깐 고민했으나, 유종의 미를 거두고, 반대로는 달려본 적이 없어 진부령까지 가기로 했다. 그 대간령 쉼터에는 신선봉에서 길을 찾아 헤매는 동안 먼저 출발한 일행이 쉬거나, 아침을 먹고 있다. 그들의 모습을 잠깐 둘러보고, 바로 암봉을 향해 출발했다. 물론 떠나기 전 고도를 확인하는 걸 잊지 않았다. 684m!
6시 18분 새이령을 떠나, 급경사의 숲길을 통과해 6시 40분 바위너설 지역에 도착했다. 지금 오르고 있는 봉우리의 이름이 '암봉'으로, 암봉이라는 이름을 얻게 한 바위 군락이다. 이번이 네 번째 오르는 건가? 다섯 번째 오르는 건가, 어쨌든 암릉에 오르자, 전망대다. 과거 전망대에 올랐을 때는 뒤돌아 보이는 봉우리와 능선의 정체를 몰랐으나, 지금은 저기서 달려오는 길이라, 명확히 안다. 역시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과는 감회가 다르다. 앞의 높은 봉우리가 신선봉, 뒤가 상봉이다. 물론 이어지는 능선은 백두대간! 그 모습과 그 왼쪽 동해와 속초 영랑호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동영상을 찍으며 암봉 정상을 향해 길을 재촉했다. 그리고 6시 52분, 정상 바로 아래 전망대에 도착해 다시 뒤로 돌아 전면에 보이는 봉우리와 능선을 기록으로 남겼다. 물론 왼쪽의 북진하는 대간과 병풍바위봉 등도!
6시 56분 조금 전에 올랐던 바위 봉우리의 이름이 '암봉'이라는 걸 알 수 있는 이정표를 지나, 병풍바위를 향해 갔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울창한 숲 사이로 난 등산로를 따라가자, 아랫배가 슬슬 아파져 온다. 의식을 치르라는 신호다. 해서, 등산로에서 벗어나 깊은 숲으로 들어가 땅을 파고 볼일을 봤다. 물론 일이 끝나고 잘 묻는 걸 잊지 않았다. 다시 등산로로 돌아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위로 가는데, 쉽지 않다. 과거에도 이 구간이 제일 힘들었던 걸로 기억된다. 가다 쉬기를 반복하며 올라, 7시 43분 병풍바위 갈림길에 도착했다. 직진은 마산봉, 좌회전은 병풍바위로 향한다. 뒤에서 따라오던 이 기수 멤버는 볼 것도 없다는 듯이 마산봉으로 향한다. 이미 몇 번 오른 병풍바위봉이나,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좌회전했다. 말 그대로 10m 걷고, 10초 쉬면서 올라가는데, 등산 앱이 병풍바위 반경 50m 내라고 알려줘 동영상을 찍으며 올랐으나, 4분 후인 7시 53분경 정상에 도착했다. 등산 앱이 맞는다면, 50m에 4분 걸렸다.
정상에는 먼저 도착한 일행이 마산봉을 향해 떠나자,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배낭만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어, 그 배낭의 주인을 찾아봤다. 병풍 위에 있어, 잘 보이지 않았던 거다. 그를 확인하고 나서는 주변의 산세를 살폈다. 백두대간으로 이어지는 마산봉과 군 기지가 차지하고 있는 그 쌍둥이 봉우리, 그리고 진부령 너머의 매봉산과 칠절봉, 향로봉, 날이 흐려 금강산이 보이지 않는 게 유감이다. 일단 보이는 모든 걸 기록으로 남기고 정상을 떠나려는데, 막 도착한 일행이 그래도 정상에 올랐으니, 인증을 남겨야 한다며, 찍어주겠다고 해서, 인증을 남겼다. 물론 그도 찍어주고, 병풍바위봉을 떠나 마산봉으로 향했다. 마산봉까지 남은 거리는 1km!
기상하자마자 치르는 의식도 거행했건만, 배가 고프지 않다. 지금 상태라면 10시 정도면 진부령 도착이라, 지난밤에 산 김밥을 없애야 한다. 해서 배는 고프지 않으나, 김밥을 꺼내 먹으며, 마산봉으로 향했다. 그런데, 양이 많아도 너무 많다. 사당역이나, 신사역에서 사는 김밥과는 차원이 다르다. 혼자 먹기에는 감당이 안 되는 양이나, 버릴 수도 없어 꾸역꾸역 집어넣으며 가, 8시 7분경, 7시 43분에 통과한 병풍바위 갈림길에서 마산봉으로 향하는 길과 합류하는 지점을 통과했다. 암릉이 아닌 울창한 숲으로 난 등산로로, 계속 전진하자, 등산 앱이 마산봉 반경 50m 내라고 알려줘 그 순간부터 동영상을 찍으며 올라, 8시 25분에 도착했다. 이론적으로는 남한 지역 백두대간의 북쪽 끝 봉우리에 도착했다. 물론 칠정봉, 향로봉 등이 있으나, 그 봉우리는 아무나 오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정상에는 종주를 기념하는 플래카드를 만들어 온 부부가 인증은 남기고 있어, 그 모습을 구경하다가 나도 종주이기는 마찬가지지만, 만들어 온 플래카드는 없으나, 인증은 남겨야 할 거 같아, 일행에게 부탁했다. 비록 두 번째 방문이지만, 첫 방문이 2020년 신년 산행이라[산행기], 그사이 변한 게 있나 주위를 둘러보고 기록으로 남겼다. 그런데, 2020년 당시 기억이 전혀 안 나, 변한 게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다. 이후 인증 남기기가 끝난 정상석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 진부령 건너의 칠절봉과 향로봉을 기록으로 남기고, 이정표가 지시하는 홀리로 향했다. 그런데 가다 보니, 임도, 정확히는 작전도로 이어진다. 당연히 중간에 등산로가 있을 거로 생각하며, 왼쪽을 주시하며 내려갔으나 없다! 아무리 기억이 없다고 해도 작전도는 생소해, 핸드폰을 꺼내 지도를 확인하려는 순간 뒤에서 '길이 맞냐?'고 물어 돌아보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나, 일행 중 한 명이 뒤를 따라오고 있다가 그도 이상했는지 물은 거다. 확인 중이라고 답하고 지도를 보니, 아니다! 백두대간은 마산봉 직전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내려가야 한다. 말인즉 마산봉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거다.
걸음을 돌려 마산봉으로 돌아가자, 막 도착한 일행이, 역시 플래카드를 들고 인증을 남기고 있어, 그 모습을 기록으로 남긴 후 왔던 길로 내려가, 8시 39분경 다시 갈림길에 도착했다. 이정표의 흘리가 아니라 알프스리조트 방향으로 가야 한다. 산행만 놓고 보면, 1.9km 거리의 알프스리조트까지 내려가면 끝이나, 백두대간 종주는 5.2km 거리의 진부령까지 가야 한다. 목표는 진부령에 10시까지 도착이다. 하지만, 남은 1시간 20분 내에 5.2km를 갈 수 있을지 미지수다. 서두르면 가능할 거 같기도 하고. 어쨌든 서둘러 1차 목표인 알프스리조트로 향했다. 그런데 2020년 신년 산행 때 올라오며 만만치 않다고 느꼈는데, 하산은 당시보다 더 힘들게 느껴진다. 더욱이 산행 시작 때 날아갈 거 같은 강풍과는 달리 바람 한 점 없이 내리쬐는 햇살이라 더 힘들다.
내리쬐는 햇살과 급경사 백두대간을 따라 알프스리조트를 향해 내려가, 8시 54분 진부령까지 5.3km 남은 이정표를 통과하고, 9시 3분 4.9km 이정표를 통과했다. 0.4km, 즉 400m를 내려오는데, 9분이 걸렸다. 목표인 10시까지 남은 시간은 57분, 남은 거리는 4.9km, 이 속도면 목표 시간 내 도착은 힘들다. 하지만, 알프스리조트부터는 기복이 거의 없는 도로라 5km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있으니, 목표 시간 내 도착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잡생각을 버리고 앞만 보고 내려갔다. 그렇게 가다 보니, 울창한 숲 사이로 알프스리조트가 보인다. 스키어가 찾지 않아 버려진 건물인데, 멀리서 보면, 전쟁 후 황폐한 모습이다. 미래의 역사서에 전쟁의 상흔이라 기록되지 않을까? 그리고 9시 12분경 백두대간을 달리는 개인 또는 산악회가 출발을 또는 도착을 알리는 리본이나 명패를 매단 철책에 도착했다. 2020년 신년 산행을 시작하며, 달았던 ‘삼토회’와 ‘85등산방’의 펜던트를 찾아봤으나, 없다. 기간이 오래돼서 사라진 거 같지는 않고, 누군가 가져갔을 확률이 높아 보인다. 의도적으로 훼손했거나?!
철책을 떠나, 산책로 수준의 등산로를 따라, 갈증 해소를 위해 오이 한 조각을 꺼내 먹으며, 진부령으로 향해, 9시 21분경 진부령 4.0km 이정표이자, 알프스리조트 입구에 도착했다. 남은 거리와 시간만 놓고 보면 목표 달성은 틀렸다. 그렇다고, 일부러 속도를 늦출 이유도 없고, 시간이 갈수록 햇살만 강해질 뿐이라, 페이스를 유지하며 갔다. 9시 23분 열기를 뿜고 있는 포장도로에 들어서고, 9시 25분 풀이 무성한 임도, 9시 31분 바닥이 보이지 않는 습지를 통과해, 9시 32분에 농로이자 군 작전용 시멘트 포장도로에 들어섰다. 백두대간은 농로를 따라 200여 미터를 북진하다가, 마을 뒷산으로 올라간다. 해서 오른쪽을 주시하며 가는데, 저 멀리 일행이 핸드폰을 주시하며 이쪽으로 오고 있다. 갈림길을 지나쳐 돌아오고 있는 거라, 나도 핸드폰을 꺼내 지도를 확인했다.
10m 내에 갈림길이 있다. 하지만 어디에도 이정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길을 찾아 되돌아온 일행을 만나 둘이 갈림길에 관한 얘기를 나눈 후, 그가 포기하고 뒤돌아서다가, 멀지 않은 오른쪽 숲에서 산악회 리본이 달린 나뭇가리를 발견했다. 당연히 기뻐하며 달려 올라가 대간을 확인하고, 뒤돌아오며, 막혔다고 알려준다. 사유지로 길을 막아, 이정표도 없고, 대간꾼이 다니지 않아 갈림길이 눈에 띄지 않았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도로를 따라 진부령 정상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도로는 거의 직진이고, 백두대간은 3.3km를 빙 돌아 다시 도로와 만난다. 의도한 건 아니나, 결과적으로 2km 이상 거리를 단축할 수 있었다. 그 도로를 따라 '소똥령마을' 갈림길에 도착하자, 다시 시내버스가 다니는 아스팔트 포장도로다. 지금부터는 더 더위지기 전에 열기를 뿜어내는 아스팔트를 재빨리 지나, 진부령에 도착하는 게 중요하다.
내리쬐는 햇살을 막기 위해 수건을 꺼내 머리에 뒤집어쓰고 진부령 정상으로 향해, 9시 41분경 진부리 갈림길을 통과했다. 정상까지 남은 거리는 1.8km! 10시 도착이 가능한 시간과 거리라, 고무된 기분으로 길을 재촉하는데, 저 앞에 한 무리의 등산객이 걸어오고 있다. 이미, 남진하는 몇 사람의 대간꾼을 만나, 길이 없어진 것에 관한 얘기를 나눴으나, 당시에는 자차를 이용한 대간꾼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뜨거운 햇살 아래 남진하는 10여 명의 대간꾼을 보니, 그들도 이들과 동행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서로를 향해 마주 보고 접근하다가 어느 정도 거리가 되자, 먼저 저쪽에서 축하한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예측으로 남진을 시작하는 팀이라는 건 알고 있었으나, 확실히 하기 위해 '남진 시작이냐?'고 물었다. 돌아온 답은 당연히 '그렇다!'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하다. 이제 시작해 언제 대간령까지 가나?
너무 늦게 시작한 그들을 걱정하다가,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기와 내리쬐는 햇살에 정오가 넘은 것처럼 느끼고 있으나, 사실은 아직 10시도, 되지 않았다. 말인즉, 7시 서울에서 떠나, 9시 30분경 진부령 정상에 도착해 발대식을 갔고 출발했으면, 이 시각에 우리와 조우하는 게 맞다. 날이 뜨거우니 정신이 오락가락한다. 그런데 앞서 만나 대간꾼도 그렇고 지금 만나 대간꾼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번이 초행이 아닌 진정하 꾼이 많다. 물론 우리 일행 중에도. 초기 안내산악회를 이용해 산행을 다닐 때는 그게 의아했는데, 하나둘 산행 목표를 달성해 가는 요즘 그 이유를 알았다. 더는 오를 산이 없어, 다시 하는 거다. 내가 그럴 위기라, 무언가 새로운 목표를 만들어야 한다. 어쨌든 피망 마을 입구와 피망 비닐하우스를 지나, 9시 59분 백두대간 종주 기념 공원을 지났다.
평소라면, 목표를 달성하든 못 하든, 공원에 들러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기록으로도 남기겠지만, 조금만 더 지나면 열사병으로 쓰러질 거 같은 뜨거움이라, 빨리 그늘을 찾아 들어가는 게 중요해 표지석만 기록으로 남기고 바로 떠났다. 급경사라 갈지 자를 쓰고 있는 도로를 따라 공원 아래 고개를 돌자 저 아래로 진부령 미술관과 군부대가 보인다. 그리고 차에서 내려 부대로 들어가는 한 무리의 군인도. 그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가능하면 그늘로 길을 따라 내려가 다시 고개를 돌자, 빨간 버스가 주차해 있다. 우리가 타고 온 버스다! 고로 다 왔다. 하지만, 진부령 정상은 버스를 지나 더 가야 한다. 해서 버스에 짐을 두고 갈까 하다가,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그대로 가기로 하고 계속 가자, 마을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이 표지석 앞에서 행사 준비하고 있다고 알려준다. 응? 행사까지? 꽃다발이나, 개인이 만든 플래카드는 알고 있었는데, 행사까지 할 줄이야.
행사고 뭐고 지금은 진부령에서 인증을 남기는 게 중요해 표지석을 찾아 북진하는데, 왼쪽 앞에 '진부령 전망대'라는 팻말이 보인다. 해서 그 문으로 들어가면 진부령 정상이라 생각하고 그 문을 향해 가는데, 등산 앱이 이미 알고 있는 진부령 반경 50m 내라고 알려줘, 주변을 둘러보니, 그 문이 아니라 그보다 더 먼 거리에 우뚝 솟은 비석이 보인다. 속으로 ‘저거 다!’를 외치고, 동영상을 찍으며 가, 10시 9분 진부령 정상에 도착하는 거로, 2022년 3월 5일 피앗재~화령재 구간 산행으로[산행기] 백두대간 연결을 시작한 대간 종주가 끝났다. 진부령 표지석은 태극기를 둘렀고, 기단에는 안내산악회에서 만든 54기 종주 축하 플래카드를 둘렀다. 그런데, 플래카드의 내용 중 후원자 명단을 보고 놀랐다. 대한산악연맹, 까만 소에 서울특별시청, 경기도청까지는 이해한다고 해도, 대한민국 대통령실?! 어쨌든 그 표지석 앞에는 다리를 깁스한 미니스커트의 청춘이 인증을 남기고 있어, 그를 찍어준 일행에게 부탁해 나도 인증을 남겼다.
3
백두대간 연결이라는 목표라는 이름을 가진 대간종주가 끝나고, 잠깐 휴식하기 위해 옆의 쉼터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아, 주변을 둘러봤다. 일단 오늘 같이한 일행 중 4번째로 도착했다. 그리고 나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 대간꾼은 분명 종주 공원을 구경하고 있었으니, 나보다 늦게 도착해야 하는데, 벌써 와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있다. 당연히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백두대간 등산로는 갈지(之) 자를 그리는 도로를 가로지르고 있는데, 내가 그걸 알아채지 못하고 빙빙 돌고 있어, 소리쳐 부르려고 했는데, 거리가 너무 멀어 포기하고 먼저 왔다는 거다. 길이 막혀 거리를 단축한 걸 설명한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는 내용이다. 고로 굳이 돌지 않아도 되는 거리를 돌았다. 다만, 그렇게 도로를 따라, 갈지(之) 자를 쓴 덕분에 그가 모르는 버스와 식당의 위치를 알고 있다는 게 땡볕에서 빙빙 돈 수확이다.
궁금증을 해소하고 그늘에서 쉬고 있는데, 먼저 도착한 일행이 떡을 가지고 와 맛보란다. 응? 이 안내산악회가 돈을 쓸 얘들이 아닌데, 떡을? 그 궁금증도 바로 해소됐다. 진부령으로 오는 중에 만났던 남진하는 팀이 여기서 발대식을 겸해 산신에게 제를 올린 후 주고 간 떡이다. 그럼, 그들을 만났을 때 가졌던 궁금증도 해소된다. 백두대간 종주는 누구나 끝에서 시작해, 끝에서 끝내고자 하나, 기상이나 여러 가지 이유로 순서가 바뀌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런데, 그들은 우리를 보자마자 축하해, 우리가 여기서 끝나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했었다. 그들이 종주 기념행사 준비하는 걸 본 거다. 그리고 깁스한 처자는 대간 종주 54기로 시작해, 백두대간을 열심히 달리다, 몇 구간을 남겨두고 산행 중 부상으로 다 달리지는 못했으나, 완주 행사에는 참여하고 싶어서 왔다는 것도 들었다.
모든 궁금증은 해결했고, 씻고 아점, 브런치를 먹어야 하는데, 계곡이 있으면 백두대간이 아니니, 식당이나, 미술관 등의 화장실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막 도착한 일행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식당으로 가자고 하니, 좀 더 쉬었다 가겠다고 해, 위치만 알려주고 먼저 일어났다. 그리고 버스로 가 배낭을 짐칸에 넣고, 슬리퍼로 갈아 신은 후 식당으로 갔다. 역시 예상대로 아무런 준비가 안 되어 있다. 주인장 말에 의하면 사러 간 고기만 오면 바로 준비가 된다는데, 고기를 사? 대장에게 듣기로는 ‘황태구이 정식’인데, 황태를 사 와야 한다고? 어쨌든 대장이 12시로 예약한 덕에 식당에서는 느긋하게 준비하고 있다가, 내가 들어오는 걸 보고 놀라는 눈치다. 해서 이미 거의 다 도착했으니, 빨리 준비하는 게 좋을 거라고 얘기하고 화장실로 갔다. 그런데, 화장실의 세면 시설이 딱 볼일을 보고 손을 씻는 용도다. 그럼에도 발까지 깨끗이 씻고 나오는 걸 보더니, 주인장이 '이게 아닌데!' 한다.
아무런 준비가 안 된 식탁 의자에 앉아, 찬물만 들이켜고 있는데, 고기를 사러 간 남자 주인장이 돌아와 그와 예약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그러다, 술은 어떻게 하기로 했냐고 물었다. 아무런 생각이 없어, 우리의 구성 방식에 관해 얘기해 주고, 식사야 대장이 모아서 일괄 지급하겠지만, 술값은 계산할 사람도 없고, 주인장이 테이블 별로 계산했다가는 돈을 못 받는 사태가 발생할 테니, 선급으로 하라고 방법을 알려줬다. 그러고 있는데, 상차림을 해야 하니 나가달라는 여 주인장의 얘기에 밖으로 나와, 야외 테이블 의자에 퍼질러 앉아, 식당 밖 수돗가에서 씻고 있는 일행을 구경했다. 물론 화장실을 찾았으나, 주인장이 사용할 수 없다고 해 밖에서 씻고 있는 거다. 오히려 발을 씻기에는 밖이 좋지만.
11시 30분경 준비가 끝났으니 들어오라고 해, 식당으로 들어가자, 테이블당 네 명이 차야 밥과 국을 주겠다는 말에 넷을 채워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물론 술은 각자 알아서 사와야 한다. 먼저 취향대로 들고 온 술로 완주를 축하하는 건배를 하고 있으니, 밥과 국이 나온다. 이어 고기가 나오는데, 황태구이가 아니라 제육이라, 벽에 있는 차림표를 확인했다. ‘황태구이 정식’은 메뉴에 아예 없다. 해서 옆의 대간꾼이 상추를 달라고 하자 없다는 답이 돌아오자, 여기저기서 작은 소리의 불만이 터져 나온다. 식탁당 6만 원이면, 백숙을 먹을 수 있는데, 이 상차림으로 6만 원이라니 테이블을 뒤집어엎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분위기다. 이게 다 날이 날인 만큼 참는 거고, 그걸 이용하는 사람도 있어서 발생하는 문제다. 이들과 몇 번 동행한 거 외에는 별 인연도 없는 내가 취했으면, 엎었을까? 와중에 차림표에는 소주와 맥주가 4,000원인데, 5,000원을 받는다.
불만이야 많지만, 하산주에 진심인 사람은 나밖에 없고, 54기 멤버들은 서로 축하하기 바쁘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인솔 대장이 손수 만든 수료증도 주고 이벤트를 진행한다. 아, 깁스한 처자도 수료증을 받았다! 스물 서넛 먹어 보이는 처자 대간꾼은 마지막 산행에 모친과 남친이 동행해서 달렸고, 그 외에도 친구나 가족이 같이 달린 꾼도 몇 있다. 그런데 2시경 서울로 출발할 예정이었으나, 대략 12시 반경 식사가 끝나 다들 버스에 타자, 차가 출발해 예정보다 1시간 30분이나 일찍 출발한다고 좋아했는데, 버스가 속초 방향으로 간다. 속초에서 고속도로를 타려는 건가? 인제로 나가는 게 더 빠른데,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차가 진부령 표지석 앞에 정차한다. 대장 왈 사진을 찍어야 한다면서, 모두를 차에서 내리라고 독려한다. 나를 포함 몇 사람은 관심은 없으나, 분위기 깨기 싫어 차에서 내렸다. 다만, 찍는 대상이 아니라, 기록자가 됐다. 그렇게 기록을 남긴 후 차에 타며 보니, 끝까지 버틴 사람이 두 명이다. 남녀 각 1인!
사진을 다 찍고 다시 버스에 타자, 차가 속초 방향으로 내려가 고개를 갸우뚱했는데, 좀 넓은 곳에서 유턴한다. 그리고 서울을 향해 달리는 내내 깊은 잠에 빠졌다가 깨기를 반복했다. 와중에 몸을 가누지 못해 옆자리 승객에게 불편을 끼치기도 하고. 분명 휴게소에서 쉰 거 같은데, 어딘지 기억이 없다. 그리고 기사와 대장의 대화 중에 왜 이리로 가냐는 말에 차가 막혀서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아니 토요일에 그렇게 막히나, 했다가 토요일 심야에 출발해 지금은 일요일이라는 걸 곧 깨닫고 둘의 대화 내용을 이해했다. 어쨌든 돌든 뭐든 5시 2분 양재역에 도착하는 거로 마지막 백두대간 연결 산행이자, 169번째 천고지인 신선봉 산행을 마감했다. 기사의 말에 의하면 예정보다 1시간 일찍 도착이다. 물론 집에 도착해 이런 때를 위해 담은 매실주로 종주 축하 2차를 했다.
169번째 천고지 산행이자, 마지막 백두대간 연결 산행으로 '미시령 → 상봉 → 화암재 → 신선봉 → 새이령/대간령 → 암봉 → 병풍바위 → 마산 → 알프스리조트/흘리 → 진부령'의 16.7km(트랭글) 구간을 7시간 24분 동안 즐겼다. 이동 7시간 20분, 휴식 4분!
2022년 3월 5일 피앗재~화령재 구간[산행기]을 달리는 거로 시작한 백두대간 종주가, 이번 2023년 7월 2일 미시령~진부령을 달리는 걸로 완료했다. 1년 3개월 만인가? 이 기간 순순하게 백두대간 연결을 위해서만, 총 23구간을 달렸다. 일반적으로 백두대간을 54~56회로 나눠 진행하니, 대략 42% 정도다.
주요 전망대를 어두운 새벽에 통과하는 바람에 주변 조망을 즐기지 못했지만, 어차피 대간과는 무관하게 수시로 갈 봉우리라, 큰 아쉬움은 없다.
이번 산행으로 175봉우리의 천고지 중 169곳에 올랐으니, 6봉우리만 더 오르면 그 목표도 달성한다. 현재 계획으로는 나머지도 올해 중 오를 예정이다. 늦어도 2024년 상반기까지.
천고지 목표까지 달성하면, 목표 없는 산행을 진행하는 사태가 발생하는데, 그걸 막기 위해 또 다른 목표를 만들려고 시도 중이나, 딱히 잡히는 게 없어 고민 중이다. 최악은 이미 달성한 목표를 다시 달리는 일도 발생할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