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나눔공동체사상’의 근본 바탕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것은 예수의 ‘사람 봄’(인간관)에 있습니다. 예수는 사람을 모두 ‘하느님의 아들-딸’( 子女)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존엄한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누구나 받들어 섬겨져야 합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하는 세상, 그것이 바로 예수의 ‘하느님나라’입니다. 예수는 그런 세상을 위해서 목숨을 바쳐 운동을 벌였고, 마침내 십자가형틀에서 참혹하게 살해되었습니다. 특히 그때 가난한 사람들,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 여성이나 어린이들은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모두 ‘죄인’으로 따돌림을 받았는데, 예수는 이들도 ‘하느님의 아들-딸’ 곧 ‘사람’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는 실제로 그들을 사람으로 받들고 섬겼습니다. 예수의 ‘나눔살이’는 사람을 섬기고 받드는 데 근거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죄인’으로 몰려 따돌림을 받는다고 해도, 그도 어디까지나 사람으로 받들어 섬겨져야 한다는 예수의 ‘인간화사상’을 잘 드러내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가 한센병환우를 치료했던 일입니다. 이 이야기는 예수의 하느님나라운동에서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는 문둥병자를 고쳐 준 다음에, 그의 몸을 사제에게 보이라고 합니다. 사제의 확인증이 있어야 그가 쫓겨난 집으로 돌아갈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센병환우에게 참다운 구원은 단순히 병이 낫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었고, 그가 쫓겨난 고향이나 집으로 돌아가 ‘사람’으로 인정을 받으면서 그를 ‘죄인’으로 몰았던 사람들과 함께 사는 일이었습니다. 예수가 치유하는 궁극의 목적은 바로 이 ‘인간복권’(人間復權)이란 점에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깊이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그만큼 예수의 인간화운동은 아주 철저했습니다.
이처럼 예수의 하느님나라운동은 사람이 골고루 함께 먹고 살 수 있는, 그러면서 동시에 사람이 사람으로서 받들어 섬겨지는 ‘사람평등공동체’를 실현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사람이 사람과 함께, 사람답게 사는 공동체라는 뜻에서, 사람 사이의 공동체 곧 ‘인-간 공동체’(人-間 共同體)라 부릅니다.
이세종의 ‘나눔살이’는 아무래도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의 아들과 딸’로서 반드시 사람으로 받들어 섬겨야 한다는 예수의 정신과 그 뜻을 실천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선생의 나눔살이는 분명히 예수가 실천한 ‘인간존중사상’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선생에게 이 사실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준 사건이 있었습니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그가 자기를 배반한 그의 아내에 대한 태도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선생은 자기를 버리고 두 번씩이나 남자를 골라 떠나버린 아내를 찾아가 친히 돕고 격려하면서, 마침내 그 아내에게 예수를 믿게 함으로써, 아내가 새 사람으로 거듭나게 했습니다. 아마도 선생이 아내에게 했던 일은 인류 역사상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선생의 ‘아내 사랑’은 “이웃을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라.”는 윤리에서 우러난 것이기도 하겠지만, 실제로는 사람을 사람으로 받들고 섬겼던 예수의 ‘인간화사상’(人間化思想)을 따른 데서 나오지 않았는가 싶습니다. 이것은 동학의 2대 교주 해월(海月) 최시형(崔時亨)의 ‘사인여사천’(事人如事天) 사상과 상통합니다. 하늘을 섬기듯이 사람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동학의 1대 교주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는 반상(班常)이 뚜렷한 차별사회에서 사람의 평등성을 깨닫고, 몸종 하나는 딸로, 하나는 며느리로 삼았다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아내에게는 큰 절을 올렸다고 합니다.
엄두섭에 따르면, 이세종은 “사람만 섬기고 받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산천초목과 금수곤충에 이르기까지 만물을 사랑했습니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을 경외하고 사랑했습니다.” 길가에 있는 잡초도 안전한 곳으로 옮겨 심었고, 산길을 가로질러 뻗어간 칡넝쿨이 밟혀 꺾이는 것을 보고 가슴 아파했습니다. 그는 생명을 몹시 사랑해서 이나 빈대도 죽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는 송등원에 입원해 있을 적에 그 덕(?)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입원실에 쥐가 하도 난리를 쳐서 “쥐를 잡읍시다. 환우들이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쥐 잡는 일이 지옥 가는 일이라면 내가 대신 가겠습니다.” 고 제의했습니다. 그러다가 송등원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는 자연보호의 원조였고, 환경운동의 효시였습니다. 그에겐 자연사랑과 사람사랑이 둘이 아니었습니다. 이세종 선생의 ‘나눔살이’는 사람을 받들고 섬기려는 마음,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고서는 결코 이루어지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 점에서 이 새종은 예수보다 한 수 위였던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