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아이들의 일생이 옵니다 / 한정숙
“세상에, 팔까지는 괜찮은데 손은 시커멓게 탔네요. 오늘 아침 교문에 들어오는데 눈에 확 띄더라고요. 모자도 장갑도 없이 아이들을 만나니까 그렇지요” 점심 식사 후 운동장을 몇 바퀴 돌고 들어가려는 내 생각을 읽었는지 예순 넘은 여선생님 두 분이 따라나서며 주거니 받거니 하신다. 사실 나는 살갗이 검은 편이다. 젊었을 때야 까무잡잡해도 윤기가 흐르고 탄력이 있었지만 지금은 볼 품이 없어 반소매 옷으로 나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오늘 아침에는 비가 오락가락하여 우산을 챙기느라 장갑이고 모자고 나 몰라라 했다. 안개가 걷히고 몇 방울 떨어지던 비가 멈추면서 햇살이 퍼지자 역시나 그동안 새까맣게 탄 손이 보인다. 출근하던 선생님이 눈치챌 정도이니 나도 어지간히 무심하다. 그러나 남보다 그을린 얼굴과 손을 탓하지 않는다면 교문 앞 아침 풍경은 여러 가지로 재미가 난다. 정현종 시인의 말이 아니라도 학생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오기 때문이다. 그들의 마음과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해가 거듭할수록 학생 수는 표가 나게 줄어 올해는 백 명에도 한참 못 미친다. 그래서 학생들 이름 외우기도 쉽고 가정 형편이나 가족관계를 읽어내는 일도 어렵지 않다. 나는 보통 월요일과 금요일 아침에 교문 앞에서 아이들을 맞는다. 월요일에 출장이 있거나 공휴일이 걸리면 화요일에 교문으로 나가고, 금요일에 출근 못할 일이 생긴다면 목요일 아침을 이용한다. 정해진 날 교문에 보이지 않으면 아이들이 궁금하여 다른 이들에게 물어 확인한다 하니 내 방문 앞에 ‘출장’을 비롯한 움직임은 꼭 알린다. 교문에 나가지 않는 날은 학교 도서관에서 아이들과 책을 읽는다. 아이들과 눈을 맞추는 나의 방식이다.
등교하는 아이들에게는 제각각의 이야기가 있다. 학교를 향해 걸어오는 발걸음이나 휴대폰 액정과 딱 붙은 얼굴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유독 늘어진 어깨로 그냥 지나가려고 하거나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사뿐사뿐 다가오는 아이들은 가만히 이름을 불러 어깨만 두드려줘도 이야기가 쏟아진다. 나는 교문을 향하는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고 인사를 나누며 혹여 가정에서 듣지 못했을 기분 좋은 말로 하루를 열어준다. “희래는 오늘 얼굴이 유난히 빛난다. 학교에서 기분 좋은 일이 생기겠다. 얼마나 좋을까?” 날마다 정보지를 들고 오는 유승이에겐 “오늘도 부동산 박사님은 정보지를 챙겨 오시네, 어른이 되면 큰 부자가 되겠어요.” 정해진 등교시간을 넘겨서 오는 꿈이 검사인 친구에겐 “어이 서검사님, 검사님이 시간을 안 지키면 되겠습니까? 조금 일찍 와주세요.” 하며 교실 들어가는 길을 가볍게 해주려 한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던 A는 피부가 하얗고 자그마한 남자아이로 4학년이다. 곱상한 얼굴에 유아 언어를 사용하며 등교 시간이 늦고 기운이 없었다. 작년 3월, 등교맞이 첫날부터 관심을 끌어 담임 선생님을 비롯한 상담사, 보건교사와 교육복지사를 통해 학생의 상황을 전해 듣고 도울 방법을 찾고자 어머니께 상담을 요청했다.
고맙게도 직장을 쉬는 날 학교에 오셨는데 미리 알고 있었지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가 열 살인데 엄마는 서른이 안 되었다. 예쁘장한 아가씨였다. 친구들과 차 마시고 쇼핑하며 꿈꾸는 미래를 위해 열심히 일 할 나이에 아빠 없이 아이를 키우려니 얼마나 고단할까 싶었다. 남편과는 아이가 아주 어릴 적에 헤어져서 아빠의 얼굴도 모른다고 했다. 순간 이런 가정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답답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이런 가정은 A뿐만이 아니었다.
만들기와 관찰을 좋아한다는 A에 대해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공감하고 용기를 주며 잘 키워보자고 하면서도 “아무리 엄마가 어릴지라도 역할이 있으니 아이를 우선으로 생각해라, 아이들은 시킨 데로 하지 않고 본 데로 한다, 웬만하면 아침을 먹여서 학교에 보내주시라, 쉬는 날엔 교문 앞까지 배웅하여 아들이 으쓱하게 해 달라. 아이의 말 습관과 손톱 물어뜯는 것을 보니 표현해 주는 사랑이 많이 필요하겠다,” 하며 말끝마다 선생티를 냈었다. 고맙게도 어린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리하겠다고 했다. 나는 생각이 많을 그이를 가만히 안아주고 보냈었다.
A는 그날 이후 부쩍 내 방 출입이 잦아졌다. 엄마께 전해 들은 인사를 잘한다는 교장선생님의 칭찬이 출입증인 양 종일 들락거려 담임교사는 아이가 사라지면 내게로 오기 일쑤였다. 내가 이 학교에 오기 전까지는 보건실을 찾아 마음의 허기를 채우던 A는 한동안 네게 어리광을 피우다가 “이젠 유치원 말에서 졸업하고 초등학교 형처럼 말해야지.” 하며 한 가지씩 주문이 늘어나자 살그머니 상담실로 옮겨 갔다. 교실에서는 본인이 좋아하는 과학시간이 아니면 책상 밑으로 내려가 숨어있거나 주변을 어질렀다. 신경이 예민하여 조금만 시끄러워도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르는 일이 잦아 친구들과는 어울리지를 못하였다.
A를 위해서 정서행동 검사와 전문 상담을 추진하고 병원 진료도 연결하여 심리적 안정과 친구들과 소통하는 능력을 키우고 있다. 나는 ‘A’라는 이름 대신 ‘과학 박사’라고 부르며 아이의 자존감을 높이는데 관심을 기울인다. 가정에 예기지 못한 상황이 생기기도 하여 아이가 불안할 때도 있지만 “우리 과학 박사가 이젠 4학년 형처럼 말하는구나.” 하면서 칭찬을 미리 당겨쓰며 좋은 말 습관을 갖도록 돕는다. 과학 박사는 분명 ‘웃음 박사’도 될 것이다.
오늘 아침에도 A는 내 앞으로 다가와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고 점점 더 멋있어진다는 나의 칭찬을 들었다. 가방을 교실에 두고 그 아이는 복지실에 들러 아침식사를 한 후 스스로 성장하는 하루를 지내고 있을 것이다. 금요일과 달리 월요일 아침에는 학생들의 몸놀림이 가볍지 않다. 마음 편히 쉬었던 주말의 여운을 가방에 담고 오는 모양이다. 그래도 아이들이 가져오는 과거는 더 건강한 현재로 바뀔 것이고, 우리 모두의 응원을 받으며 꿈을 이룰만한 미래가 될 것이다.
오늘 아침 수업 시작을 알리는 음악이 울릴 즈음에야 교문을 들어 선 서검사를 맞으며 문득 ‘시작종 소리’로 시작했던 글쓰기를 생각하며 부끄럽게 웃었다. 아직 나에게 끝 종은 이르다. 나머지 공부가 제격이다.
첫댓글 교문에서 아침 맞이로 하루를 시작하시는군요.
아이들의 과거와 현재를 알 수 있는 말에 호기심이 생깁니다.
저는 한 번도 해 보지 않았거든요.
사실 느린 학습자 가르치느라고 시간이 없기도 하구요.
선배님!
나의 -내
A는 한글 이름으로
오타 등 교수님께 혼날 일이 많습니다.
어찌까요? 하하.
글은 정말 좋네요. 저만 보기 아깝네요.
어려운 아이를 사랑으로 감싸 안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하하
미리 예방주사 주셔서 고맙습니다.
교수님께 혼나는 일은
워낙에 이골?이 났는지라
감사히 받들겠습니다.
정말 좋은 글 이네요. 아이들의 일생에 힘을 불어 주시는 선생님 감동입니다.
몸에 베인 게으름이 마감일도 넘기고
손도 못본 체로 베짱좋게 올려서 교수님의 질타를 기다린답니다. 비타민 주셔서 고맙습니다.
감동적인 글이네요. 고맙습니다.
아침 등굣길에 교장 선생님이 이름을 부르며 격려, 축복해 주시는 그 학교 학생들은 참 행복할 것 같아요.
지연 따지는 것 같아 거시기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고향 분인 선생님과 함께 공부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