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인
불자여,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아지랑이와 같다는 인(忍)인가.
불자여, 보살은 일체 세간을 마치 더울 때의 아지랑이와 같이 실체가 없는 것임을 깨달아 압니다.
또 보살마하살은 모든 것은 일정하지 않아서 안도 바깥도 아니요,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며, 모든 것은 다 거짓 이름으로서 한 빛깔도 아니요, 여러 빛깔도 아니라고 관찰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법을 완전히 깨달아 아나니 불자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얻는 다섯 번째, 아지랑이와 같다는 인입니다.
불자여,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꿈과 같다는 인(忍)인가.
불자여, 보살은 모든 세간이 꿈과 같음을 압니다. 비유하면 꿈은 세간도 아니요, 세간을 떠난 것도 아니며, 욕심의 세계도, 형상의 세계도, 무형의 세계도 아니요, 남[生]도 죽음도 아니며 깨끗한 것도 더러운 것도 아니요, 맑은 것도 흐린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서도 모든 것은 나타난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은 모든 세간이 다 꿈과 같음을 알아 꿈을 깨뜨리려 하지도 않고 꿈에 집착하지도 않으며, 꿈은 본래 적멸하고 꿈은 실체가 없으므로 모든 법을 받아 지니되 다 꿈과 같음을 알아 허망하게 그것을 취하지도 않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세간이 다 꿈과 같음을 아나니, 불자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얻은 여섯 번째, 꿈과 같다는 인입니다.
불자여,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메아리와 같다는 인(忍)인가.
불자여, 보살은 모든 법을 잘 배우고 성취하여 저 언덕에 이르고 모든 법이 다 메아리 같음을 알면서도 온갖 소리를 다 분별합니다.
마치 메아리가 이르는 곳이 없는 것처럼, 모든 것이 인연을 따라 일어나는 것임을 알지만 그래도 법의 보시를 파괴하지 않고 음성에 깊이 들어가서는 뒤바뀐 생각을 멀리 떠나 일체를 잘 배웁니다.
또 제석천이 한 음성에서 천 가지 묘한 소리를 내면서도 허망한 음성에 집착하지 않는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허망을 떠난 법계에 들어가 절묘한 방편의 지혜를 내어 한량없는 세계에서 중생들을 위해 깨끗한 법륜을 굴려 일체 중생을 구제합니다. 불자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얻은 일곱 번째, 메아리와 같다는 인입니다.
(<화엄경> 제 24장 십인품(十忍品)
- (‘서재영의 불교 기초 교리 강좌’에서)
하나님, 시온에서 주님을 찬양함이 마땅한 일이니, 우리가 주님께 한 서원을 지키렵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주님, 육신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주님께로 나아옵니다.
저마다 지은 죄 감당하기에 너무 어려울 때에, 오직 주님만이 그 죄를 용서하여 주십니다.
주님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시어 주님의 뜰에 머물게 하신 그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집, 주님의 거룩한 성전에서 온갖 좋은 복으로 만족하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 주님께서 그 놀라운 행적으로 정의를 세우시며, 우리에게 응답하여 주시므로 땅 끝까지, 먼 바다 끝까지, 모든 사람이 주님을 의지합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힘으로, 주님의 능력으로 허리에 띠를 동이시고 산들이 뿌리를 내리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바다의 노호와 파도 소리를 그치게 하시며, 민족들의 소요를 가라앉히셨습니다.
땅 끝에 사는 사람들까지, 주님께서 보이신 징조를 보고, 두려워서 떱니다. 해 뜨는 곳과 해 지는 곳까지도, 주님께서는 즐거운 노래를 부르게 하십니다.
주님께서 땅을 돌보시어, 땅에 물을 대주시고, 큰 풍년이 들게 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손수 놓으신 물길에, 물을 가득 채우시고, 오곡을 마련해 주시니, 이것은, 주님께서 이 땅에다가 그렇게 준비해 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또 밭이랑에 물을 넉넉히 대시고, 이랑 끝을 마무르시며, 밭을 단비로 적시며, 움 돋는 새싹에 복을 내려 주십니다.
주님께서 큰 복을 내리시어, 한 해를 이렇듯 영광스럽게 꾸미시니, 주님께서 지나시는 자취마다, 기름이 뚝뚝 떨어집니다.
그 기름이 광야의 목장에도 여울져 흐르고, 언덕들도 즐거워합니다.
목장마다 양 떼로 뒤덮이고, 골짜기마다 오곡이 가득하니, 기쁨의 함성이 터져나오고, 즐거운 노랫소리 그치지 않습니다.
-(<시편> 65편)
오늘 화엄경을 보면, 아지랑이, 꿈, 메아리를 인(忍)과 연결시켰다.
나도 하나 해보자.
“사람들이여, 모든 세간은 생각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생각하면 세간이 이렇게 되고 저 생각하면 세간이 저렇게 됩니다. 생각 하나로 세간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의 실체를 알면 인(忍)은 저절로 해결됩니다.”
문장이 품위가 없고 저급하다. 세속적이다.
오늘 시편에서 “주님께서 큰 복을 내리시어, 한 해를 이렇듯 영광스럽게 꾸미시니, 주님께서 지나시는 자취마다, 기름이 뚝뚝 떨어집니다.”를 보자.
종교의 목적이 선명하게 드러난 문장이다. 이승의 삶이 행복해야 한다.
<식물의 죽살이>에 나오는 글이다.
[씨 밖에 있는 면이 씨껍질(종피)인데 식물 종마다 색, 질감, 두께가 다르다. 씨껍질의 두께와 단단한 정도는 물이 얼마만큼 빨리 흡수되는가를 결정하기 때문에 씨가 발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결정한다. 씨가 발아하려면 씨껍질에 균열이 생겨 물이 잘 침투해야 하는데 자연 상태에서는 토양에 있는 곰팡이나 세균이 씨껍질을 천천히 분해해 상처가 날 수 있고, 폭우가 오면 흙과 씨 사이에 마찰이 일어나 흠집이 날 수 있다. 단단한 씨껍질은 새의 모이집이나 동물의 위(강한 산성 환경을 가짐)를 통과하면서 흠집이 나기도 한다.]
씨가 발아하는데 다음과 같은 단어가 등장했다. ‘흡수, 균열, 상처, 흠집.’ 기억해두었다가 시로 써보자.
<꽃의 제국>에 나오는 글이다.
[이끼는 뿌리, 줄기, 잎의 구별이 없으며, 몸의 조각이나 무성아컵에서 만들어진 무성아라고 불리는 둥근 세포조직을 적당한 곳에 떨어뜨린 뒤 곧 세포분열로 몸을 늘려간다. 우리가 흔히 보는 이끼는 염색체가 짝을 이루지 않은 반수체의 배우체이다. 암컷 반수체는 장난기를, 수컷 반수체는 장정기를 형성하고 장정기에서 생산된 두 개의 편모를 가진 정자가 물 속을 헤엄쳐 장난기의 난자로 이동하여 수정이 일어난다. 수정 이후부터 이배체 포자체 세대가 시작된다. 이배체 배는 감수분열을 거쳐 많은 홀씨를 만들고, 마침내 포자낭이 터지면 먼지같이 작은 홀씨가 바람에 날려 퍼진다. 홀씨가 적당한 곳에 떨어져 싹이 트면 다시 반수체 몸을 형성하여 새로운 생활사가 시작된다. 그래서 염색체가 쌍으로 들어 있는 이배체 포자체는 포자낭을 이루는 생활사의 극히 짧은 시간 동안만 관찰할 수 있다.]
관찰하지 않고 책으로만 지식을 쌓으니 오랜 기억으로 이어질 수 없다. 그렇다고 관찰하는 삶으로 옮겨가지도 않을 것이고. 그저 관찰 기록을 남겨주는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보자.
[“여보” 하고 코타르 부인이 간청했다. “물론 제 아내는 반박하죠. 여자들이란 모두 신경증 환자들이니까요.” “하지만 의사 선생님, 전 신경증 환자가 아닌데요.” “뭐라고? 신경증 환자가 아니라고? 아들이 아프면 불면증 증상을 보이는데도? 하지만 결국 저는 소크라테스와 그 밖의 사람들이 탁월한 교양을 위해서나, 자산이 아는 걸 설명하는 재능을 얻기 위해 필요하다는 걸 인정합니다. 저는 항상 첫 번째 강의에는 학생들에게 ‘그노티 세아우톤’이란 말을 인용합니다. 그걸 안 부샤로 영감께서도 칭찬해 주시더군요.” “저는 시를 읽으면서 풍부한 운율을 수집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형식을 위한 형식의 주창자가 아닙니다.” 하고 브리쇼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인간 희극>(전혀 인간적이라고 할 수 없는)은 그 고약한 비평가의 말처럼 오비디우스가 말한, 예술이 내용을 넘어서는 작품들과는 상반되는 작품이죠.”]
교양이 철철 넘치는 대화들이다. 이런 대화를 하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관심도 가져야 한다. 삶에 녹아들어야 한다. 차가운 품위도 있어야 한다.
헤세의 <싯다르타>를 보자.
[그러고 나면 한 시간 가량, 자기가 이상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것을, 자기가 순전히 유희에 불과한 그런 일들을 하며 지내고 있다는 것을, 자기가 어쩌면 명랑한 기분인 것도 같고 이따금씩은 기쁨을 느끼기도 하지만 본래적인 진짜 삶은 자기 곁을 스쳐 지나가 버리고 자기와 아무 접촉도 없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는 것이었다.]
‘진짜 삶은 자기 곁을 스쳐 지나가 버린다?’ 하고 싶은 거 하고 살라는 말일 것이다.
오늘도 게송으로 마무리하자.
교양인이 된다는 것
클래식을 듣고
고전을 탐독하고
다방면의 핵심 지식을 습득하고
시대 흐름에 냉소적 비평을 쏟고
일상용어보다는 전문용어를 우아하게 발화하고
그러면서도 중요한 것은
막걸리보다는 와인을
삼결살보다는 스테이크를
시장보다는 샹들리에 거실을
잠바보다는 정장을
그러기 위해서는
중간 이상의 돈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교양인이 된다는 것
스스로의 삶을 가두는 것
삶은 야생이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