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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수의 맥박] “푸틴 핵 사용은 크림반도 전황에 달렸다”
By 박종수 | 2023년 7월 31일 | 국제, 미분류
러시아통이라고 할 수 있는 박종수 전 러시아 공사가, 러시아의 전술핵 사용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기고해 왔다. 포커 판의 블러핑(Bluffing, 허풍)이라고 할 수 있지만 푸틴, 메드베데프, 바이든 대통령 등 관련자들의 발언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현실적으로 이미 벨라루스에는 러시아의 전술핵이 배치 완료됐다. 참혹한 소모전이 계속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을 점치는 자료로 그의 글을 검토해 본다. [편집자 주]
✔ 골프장 여전히 문전성시, 대도시의 일상은 평온
✔ 장기화되면서 양쪽 모두 용병 전쟁 양상 심해질 듯
✔ ‘미국의 원폭은 정당하고 러시아는 왜 안되는가’ 명분 축적 양상
✔ 서방 지원으로 러시아 본토 공격력 갖춘 우크라이나
✔ 빠지지 않는 북한, 돈바스 복구 사업으로 돈 벌 궁리
푸틴 핵 사용은 크림반도 전황에 달렸다. (사진: 셔터스톡)
필자는 지난 6월 전쟁 중인 러시아를 다녀왔다. 러시아에서는 푸틴 대통령의 측근들을 만나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엘리트층의 진솔한 입장을 확인했다. 푸틴의 연고지인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민들이 갖고 있는 전쟁에 대한 인식과 그들의 일상생활에 대해서도 관찰했다.
이번 방문에서 특이사항은 러시아의 전술핵 사용 가능성 증대다.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라도 핵을 사용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견해를 여러 번 들었다. 미국의 일본 원폭과 자신들의 전술핵 사용을 비교해 타당성을 부여하려는 의중도 읽혔다.
대도시에서는 맡을 수 없는 전쟁 분위기
6월 중순 러시아 ‘북방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 풀코보 공항에 도착했다. 백야가 한창이었다. 한국인이라는 ‘비우호국’ 국민으로서 행여 트집이라도 잡힐까 가슴 졸이며 입국장과 세관을 통과했다. 세관원이 탐지견 두 마리를 데리고 수화물을 검색하는 것 이외에는 전쟁 이전과 다를 바 없었다. 예약해 두었던 얀덱스 택시(러시아식 카카오 택시)가 기다리고 있었다.
숙소 위치와 이동 경로 및 요금이 실시간으로 택시 모니터와 내 스마트폰에 동시에 뜬다. 기사는 타지키스탄 출신 청년. 여기서의 월급이 모국의 1년 치 급여에 해당한다면서 몇 년만 일하면 고국에서 집을 장만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 나중에 시내에서 만난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퀵서비스 배달원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예전에는 그렇다 쳐도 전쟁통 러시아 대도시의 3D 업종을 중앙아시아 출신들이 차지하는 건 시사하는 바가 있다. 러시아에 돈이 있다는 얘기다.
시내 중심부의 넵스키대로는 행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도처에서 거리의 악사들이 연주하고 시민들이 덩달아 춤추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대형백화점이나 동네 슈퍼도 전 세계 유명 브랜드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생필품으로 가득 찼다. 도시 외곽 골프장에는 젊은 여성들이 여유롭게 라운딩을 즐기고 있었다. “전쟁 중인데 골프 쳐도 괜찮아요?” 묻자 “전쟁은 국가가 알아서 할 일이고, 시민들은 일상생활에 충실한 것이 애국 아니에요?”라고 반문한다.
골프 치는 러시아인들 (사진: 박종수)
수입대체산업 육성으로 국내 생산 활성화
푸티노믹스의 대표적 학자인 이바노프 재정경제학 교수(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는 러시아 경제의 명목 GDP가 전쟁 이전보다 늘어났다고 했다. 서방의 제재로 국가 간 거래가 제한된 것은 불편하지만, 내수 진작에 도움이 되는 순기능도 있다는 것이다.
일반 국민들은 1인당 1만 달러까지 세관 신고 없이 반출할 수 있어 해외여행에 지장이 없다고 한다. 오히려 고질적인 자원 의존형 경제 시스템이 수입 대체 산업 육성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푸틴에 대한 80% 이상의 높은 지지율은 국민들이 전쟁으로 인해 먹고사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고, 자녀들도 전쟁터에 끌려갈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까지는 그렇게 보였다.
이바노프 교수 부부 (사진: 박종수)
대학생이나 공공기관 종사자들은 징집 대상에서 제외되며, 모병에 의한 병력 충원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한 모병은, 월 급여는 한화로 300만 원 정도인 약 2,500달러, 연간 휴가 2회 및 외국인의 경우는 부모까지 러시아 국적을 취득하는 등 혜택이 적지 않아 지원병이 모자라지 않다고 자신한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푸틴 정부에 대한 신뢰와 함께 전쟁의 불가피성에 대해서도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접경지대는 녹록지 않다. 치열한 전투 상황이 매스컴을 통해 연일 보도되고 있다.
세계대전은 아니더라도 세계소전은 확실
이번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군사력이 동원된 소모전이다. 종전은커녕 휴전조차 기약이 없고 오히려 확전되는 분위기다. 러시아에게 승리를 안겨 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입장이다. 반면 “절대로 패배할 수 없다”는 것 또한 러시아의 입장이다.
크렘린 안보 회의의 고위 인사는 푸틴의 인기와 러시아 국민의 전쟁 지지를 역사에서 찾았다. 소련 해체의 악몽을 상기하면서 “결코 역사적 과오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건 러시아 국민의 자부심 같다. 세계 2위 패권국 소련을 너무 쉽게 포기했으며 지금부터라도 영광을 되찾고 싶다는 심리다.
이 전쟁의 양쪽에는 용병이 있다. 러시아 국방부 발표에 의하면, 개전 이후 현재(2023년 7월)까지 우크라이나 쪽에 참여한 용병은 전 세계 84개국에서 1만 1천 명 이상이다. 바그너 그룹을 포함한 러시아 측 해외 용병도 그 이상이다. 이번 전쟁은 세계대전은 아니라 해도 ‘세계소전’(The Little World War)으로 확대됐음을 의미한다.
러시아 국방부 발표에 의하면, 개전 이후 현재까지 우크라이나 쪽에 참여한 용병은 전 세계 84개국에서 1만 1천 명 이상이다. 바그너 그룹을 포함한 러시아 측 해외 용병도 그 이상이다. (사진: 셔터스톡)
서방측 무기 지원 확대에 러시아 핵 사용론 대두
문제는 사람보다 무기다. 서방측은 개전 초기에는 우크라이나에 공격용 무기 지원을 자제했다. 그렇지만 장기전으로 들어서면서 미국은 에이브럼스, 독일은 레오파트2 등 전차를 지원하고, 영국과 프랑스는 작전 반경 550km의 공대지 장거리 미사일 스톰쉐도우(프랑스에서는 스칼프라 호칭)를 제공했다.
이 미사일은 지난 5월부터 실전 배치돼 활약하고 있으며, 7월 초 러시아군 올렉 초코프 중장이 이 미사일 폭발로 사망했다. 미국도 적극적이어서 국제 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철비’로 불리는 집속탄을 결국 제공했다. 사거리 300km의 전술탄도미사일인 에이태킴스와 전투기 F-16 지원도 검토 중이다.
앞의 미사일들과 F-16은 여차하면 현재 전투가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땅을 벗어나 러시아 본토를 공격할 수 있다. 특히 ‘게임 체인저’로 꼽히는 F-16은 아직 조종 훈련에 국한하고 있지만 전세가 불리해지면 언제든 투입될 수도 있다. 키이우에서 모스크바는 직선거리로 800km, F-16의 항속거리가 3800km인 점을 감안하면, 머잖아 우크라이나 공군에 의한 모스크바 상공에서의 공중전도 이론상 가능해지는 것이다.
러시아는 장기전 양상이 나타나면서 여러 차례 핵무기 사용을 시사하고 있다. 푸틴은 이미 2022년 여름 돈바스 점령지 합병을 선언하면서 “미국은 역사상 유일하게 핵무기를 사용한 나라”라고 꼬집었다. 메드베데프 안보 회의 부의장(전 대통령·총리)은 전쟁 발발 이후 최소한 세 차례 핵사용 가능성을 발언했다.
특히 7월 초에는 “1945년 미국이 일본 도시 두 곳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듯이 우리도 핵무기를 사용하면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주장하고 NATO의 군사적 지원이 제3차 세계대전을 앞당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라브로프 외무장관도 NATO의 F-16 전투기 지원을 러시아를 겨냥한 ‘핵 위협’으로 간주하겠다고 밝혔다. 퇴역 장군 사칼로프도 “이번 전쟁이 러시아의 존망을 결정하는 분수령이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는 핵 등 가용수단을 총동원할 수밖에 없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러시아는 이미 벨라루스에 전술핵을 실전 배치한 상태에서 언제든 핵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경고 신호를 지속적으로 발신하고 있다.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 (사진: 위키백과)
미국 핵사용 전례 강조는 러시아 핵 사용 명분 축적용?
메드베데프의 발언 배경을 따져보자. 그는 푸틴 통치 23년의 핵심 중 핵심 인물이다. 푸틴이 2000년부터 2008년까지 4년 임기 대통령을 역임하고 3선 제한에 걸려 형식상 대통령을 옹립할 때 2008년부터 2012년까지 4년간 대통령을 역임한 인물이다. 이후 푸틴이 대통령으로 복귀하자 다시 총리로 내려와 2020년까지 역임한 뒤 현재는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으로 있다.
내각제하에서 총리가 외무장관이 되고, 다시 총리가 되는 힘의 역전 사례는 왕왕 있지만 대통령제하에서 1인자와 대통령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다시 총리에 임명된 사람은 여태 들어보지 못했다. 그 메드베데프는 7월 5일, “일반적으로 모든 전쟁, 심지어 세계대전도, 평화조약이 체결되거나 1945년 미국인들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폭격했을 때와 같은 일을 한다면, 매우 빠르게 끝날 수 있다”고 했다.
이 발언은 푸틴 대통령이 ‘벨라루스에 첫 번째 전술 핵무기를 배치 완료했다’고 밝힌 20여 일 뒤의 일이다. 당시 푸틴은 “이번 전술 핵무기 이전은 ‘억제’ 조치였으며 전략적으로 러시아를 이기려고 하는 누구에게나 이 사실을 상기시키기 위함”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에 앞서 “역사상 유일하게 핵무기를 사용한 나라는 미국뿐”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푸틴과 메드베데프는 왜 미국을 끌고 들어가는가? 여기에는 러시아 통치 계층의 피해의식이 엿보인다. 러시아 지배층에는 ‘미국은 핵을 쓰고도 욕을 먹지 않았다, 러시아라고 왜 욕을 먹어야 하는가’라는 물귀신 심리가 있다. 그들은 트루먼 대통령이 1945년 수십만 명의 생명을 한순간에 앗아간 핵폭탄 투하 명령을 두 번이나 지시했고, 심지어 그 5년 뒤 한국전쟁에서 세 번째 핵사용을 검토한 사실을 강조한다.
핵폭탄만큼은 강국인 러시아
‘나폴레옹은 수백만 명을 죽이고도 영웅 칭호를 받는데, 전당포의 노파 한 명쯤 살해하는 것이 무슨 죄인가’라는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니코프의 주장과 오버랩된다. 우연히도 도스토옙스키 소설의 무대는 푸틴의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다. 러시아 방문 중 만난 푸틴의 죽마고우 세르게이(가명) 회장도 그런 인식이었다. 그들은 서방 언론의 지나친 푸틴 악마화에 매우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아울러 핵에 관한 한 러시아가 세계 최강국임도 강조했다. 푸틴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핵탄두(5890개)를 보유한 나라의 군 통수권자이며, 전술핵(2000개)은 미국(200개)보다 10배나 많다는 점을 빼놓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며칠 전 7월 27일 자신들의 말로 전승절에 러시아의 쇼이구 국방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대대적인 신형무기 퍼레이드를 실시한 것은 북-러 관계가 핵과 운반체의 교류를 논의하고 있지 않은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6일 조국해방전쟁승리 70주년(전승절) 행사 참석차 방북한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을 단장으로 하는 러시아 군사대표단을 접견했다. (사진: 연합뉴스)
북–러 전쟁 공조와 경제 협력 강화 시나리오
7월 중순 마크 밀리 미국 합참의장은 김정은을 ‘예측 불가능한 지도자’라면서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위협이 매우 현실적”이라며 “한반도는 상황에 따라 며칠 안에 전쟁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있는 지역”임을 경고했다. ‘2022년 미국 군사력 지수’ 보고서에서 중국·러시아와 함께 ‘높은 위협’을 가하는 적성국으로 분류된 북한은 2021년 말부터 러시아와 찰떡 공조하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특수 군사 작전’에 동참했다. 돈바스 공화국들과 재빠르게 수교하고 러시아의 4개 주 병합을 즉각 인정했다. 2022년 1월부터 현재까지 다양한 종류의 미사일을,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폭죽놀이 하듯 쏘아 대는 것도 이의 연장선상이다.
러·북 양국은 ‘자동 군사 개입’을 명시한 소련 당시의 동맹조약을 2000년 2월 갱신했다. 신조약에서는 ‘즉각 접촉’으로 수준을 낮췄지만 군사 동맹의 성격은 바뀌지 않았다. 그해 7월 푸틴 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양국이 미사일 협력을 통해 “미국놈들을 죽탕쳐 놓을 수 있다”는 대화가 군 간부들 사이에 오갔다. 2014년 두 나라는 상선 보호를 목적으로 러시아 군함의 나진항 입항에 합의했다. 2019년 4월 말 크렘린 대변인은 블라디보스토크 정상회담 후 논평을 통해 동맹 관계를 재확인했다. 지난해 8월에는 러시아가 핵사용 4개 조건을 제시하자, 2주 뒤 북한도 핵사용 5개 조건을 법제화했다.
북한의 러시아 ‘동부전선’ 시나리오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대북 제재와 코로나19 팬데믹의 ‘출구 전략’ 및 경제·핵미사일 병행의 ‘입구 전략’을 동시에 추구하는 전쟁 특수를 누려왔다. 대내적으로 국민들에게 핵 없는 우크라이나의 현실을 직시하라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자력갱생 기조를 강화하고 항미 결속을 도모한다. 또한 코로나19 팬데믹과 장기간 경제 제재로 인한 국민들의 만성적 불만을 외부로 분출시키는 출구로 삼는다. 대외적으로는 서방의 제재를 묵살하는 호기로 이용하고 있다. 러·북 양국은 또 지난해 말부터 돈바스 지역 복구에 북한 노동자가 진출할 수 있다는 점을 흘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그 수가 10만 명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1만 명이든 10만 명이든 이 노동력은 언제든 병력으로 둔갑할 수 있다.
북한제 미사일은 가장 경쟁력 있는 수출품이다. 무기 체계가 같아 러시아 병사들이 쉽게 운용할 수 있고 생산 단가도 저렴하다. 국경을 맞대고 있어 운반도 쉽다. 용병 월급 2500달러의 외화벌이뿐만 아니라 신형 무기를 시험하고 장병들의 실전 경험도 쌓을 수 있다. 또한 돈바스산 중공업 설비 부품, 밀과 코크스를 수입하고 북한산 마그네사이트를 수출하는 상호보완적 경협 구조다.
더 나아가 북한은 냉전 당시에도 없었던 ‘좌중 우러’의 사회주의 맹방을 옆에 끼고 전쟁의 반사이익을 극대화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쌀’, 러시아에서는 ‘총’의 양다리 외교 전략을 펼치고 있다. 김여정이 지난 3월 7일 ‘공해나 공역 등 주변국에 안보 위협이 없는 지역에서의 전략무기 실험’을 천명하고 ‘이를 반대하는 것을 선전포고로 간주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북한은 지난 7월 12일 화성-18형 ICBM 시험 발사에 두 번째로 성공했다. 이제 북한은 ICBM을 미국 본토 인근 태평양 공해상으로 언제든지 날려서 미국을 위협하는 ‘동부전선’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다.
북한이 지난 12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신형 고체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의 시험발사를 감행했다고 조선중앙TV가 13일 보도했다. (사진: 연합뉴스)
다가오는 선거, 쫓기는 각국 지도자들
내년은 전쟁 당사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그리고 미국이 대통령 선거를 치르는 해이다. 일시 확전이든, 휴전이든 어떤 식으로든 전쟁을 유리하게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유혹이 강하다. 무작정적인 인력과 무기의 탕진 게임 시기와는 좀 다르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발언 수위를 “푸틴이 핵무기를 사용하리라고 전망하지 않는다”에서 “러시아의 핵 사용은 심각한 실수가 될 것”을 거쳐 지난달에는 “푸틴의 전술핵 위협은 진짜”라고 변경해 왔다. 핵에 관한 위험 인식이 상향되는 조짐이다.
그런가 하면 서방 언론은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최근 CNN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는 이미 패배했다”고 주장한 것처럼, 러시아의 사실상 패배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러시아가 외관상 국내적으로 평온함을 유지하는 것이 허구에 기반한 현실이라고 한다면, 그 반대로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물 듯이 역설적으로 푸틴이 패배했거나 전혀 이길 가능성이 없는 전쟁을 이기려면 핵무기라는 최후 수단에 의지할 가능성도 있다.
크렘린 안보 자문역인 안드레이(가명) 박사는 향후 러시아 측의 로드맵이 전적으로 서방에 달렸다고 전제했다. 그는 “만약 서방의 공격 무기 지원으로 러시아 본토가 공격받으면 그 이상의 보복 조치가 있을 것”이며 “크림반도와 동남부 4개 주를 다시 빼앗기는 불행은 없을 것이다. 그런 상황이 도래하면 핵무기 사용은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핵 사용 시 포세이돈(핵무기탑재가 가능한 수중 드론)의 흑해 공해상 실험이나 1~2kt급 저위력 소형핵에서 전술핵 수준으로 단계별로 수위를 높여나갈 수 있다”고 부언했다.
크림반도와 동남부 4개 주는 러시아가 점령 후 위성국가들로 선언한 곳이다. 그의 말에서는 이 지역들을 자국 영토로 인식한다는 점, 이 지역들에 대한 대대적 공격을 러시아 본토 공격으로 간주한다는 뜻이 느껴진다. 러-우전은 현대전답게 심리전, 홍보전, 현실적 무력 대결이 다차원으로 공존하는 양상인데 일단 러시아 측의 핵사용 발언 수위가 높아지고, 관련 국가의 인식 또한 그러하다. 벨라루스 실전배치 등 현실적인 요소들도 개전 초기와는 다르게 가시거리 안으로 들어오는 듯하다. 치킨게임 속의 한 장면이라기에는 많이 다가왔다.
북–중–러 연대 강화 속 한국의 대처 방안은?
동아시아는 최근 중국과 러시아가 북태평양상에서 합동군사훈련을 정례화함으로써 주변국 간 역내 헤게모니 쟁탈전이 가열될 조짐이다. 일본의 재무장화도 러·일 간 북방 4도 반환 문제 등과 맞물려 점점 구체화되고 있다. 일본은 동아시아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힘 있는 대리인’을 추구하고 있다. 한반도로 돌아오면 한·미·일 대 북·중·러의 강 대 강 구도가 고착화되고 있다.
한반도 문제는 민족의 내부 및 주변국 간 외교의 문제라는 전제하에 남북한 관계와 주변국 관계가 선순환 병행 구조를 이루어야 한다. 북-중-러의 연대를 부추기는 외교적 행보는 바람직하거나 이익이 아니다. 아울러 러-우 전쟁으로 인한 유럽 내 갈등이 한반도로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강구해야 할 것이다.
글쓴이 박종수는
서강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런던대를 거쳐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러시아 공사를 지냈고,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장을 역임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신북방정책을 총괄했다. 공직 생활 이외에도 서강대 겸임교수를 지내는 등 외교 일선과 학계를 넘나들며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대표적인 러시아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