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0105 / 말씀대로 믿고 믿음대로 살자 (눅1:26-38)
2025년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매년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서로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나눕니다.
그렇다면 우린 그리스도인인 만큼 새해 인사로는 어떤 말을 주고받으면 좋을까요?
역시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가 가장 좋은 인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리 말씀드리면, 어차피 새해 인사로 복 많이 받으라고 할 거면 굳이 세상 사람들과 그리스도인을 구분할 필요가 뭐가 있느냐고 하실 분도 계실 겁니다. 그런데도 저는 의도적으로 구분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유가 있겠지요?
‘복 많이 받으라.’는 말만 놓고 보면 같다 할지라도 사람들이 말하는 복과 그리스도인이 말하는 복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일단 둘의 공통점은 누구에게나 ‘좋은 거’라는 겁니다. 그래서 누구라도 원하고 바라는 것들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건 뭘까요?
사람들이 말하는 복은 원한다고 다 받게 되는 건 아니지만, 그리스도인의 복은 원하면 받을 수 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사람들이 원하는 복은 내가 받고는 싶어 하지만 내 뜻대로나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기에 소위 말하는 운이 따라야 하고 재수가 좋아야 복이 있게 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복을 원하지만, 모든 사람이 복을 받는 건 아닙니다.
반면에 그리스도인에게의 복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체’가 복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전능하셔서 못 하시는 게 없고 안되고, 없는 게 없으시기에 그런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그때부터 내게는 원하는 게 안 될 게 없고, 하고자 해서 못 할 게 없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같은 말 같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할 때는 단순한 덕담이 아니라 ‘새해에도 하나님이 늘 함께 계시라!’는 축복의 선포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함께하는 것이 복이라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그 복을 받으려면 어찌해야 할까요?
당연히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린 어떻게 해야 하나님과 함께할 수 있을까요?
방법은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겁니다. 그래서 시편 73:28절 말씀에서도 보면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고 했던 겁니다.
그렇다면 또 알아야 할 것이,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가까이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방법은 ‘믿음’입니다. 그리고 이때의 믿음은 ‘하나님이 함께하심이 복’이니, ‘하나님이 하시는 일도 다 복이다.’라고 믿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올해 표어를 ‘말씀대로 믿고, 믿음대로 살자.’로 정했는데,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이 복일진대 그 하나님이 나를 통해 하시는 일들이 결국엔 다 나에게 복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올 한 해를 말씀대로 믿고 그 믿음대로 살아가자는 결단이자 권면을 담고 있습니다.
경험상 아시겠지만, 세상에서 복을 받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는 어쩌다 보니 복이 굴러떨어진다면 모를까 인간 편에서는 어떤 노력으로도 복을 받을 방법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는 것도 그리 쉽기만 한 건 아닙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기 위해서라면 내가 할 수 있는 ‘뭔가가 있다’는 점에서 그래도 희망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그리고 해야만 하는 그 뭔가가 뭘까요?
바로 말씀대로 믿고 믿음대로 살고자 하는 실행력입니다.
성경을 봐도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들은 다들 하나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고 그 믿음대로 살았기에 결국은 복을 받았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도 그런 사람들 중에 한 사람입니다.
본 장 45절을 보면 마리아를 일컬어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고자 할 때 하나님으로 오심이 아니라 인간으로 태어나셔야 했기에 세상에서 예수님을 낳고 기를 여인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천사를 마리아에게 보내 “네가 잉태하여 아들은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는 말을 전하게 합니다.
이때 마리아가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이를 잉태합니까?”라고 반문하자 천사가 말하기를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을 것이다.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고 합니다.
이에 마리아는 38절에 기록된 대로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이후 마리아는 예수님을 잉태하고 출산하여 30년을 키웠고 그때부터 예수님은 공생애를 거쳐 십자가를 지심으로 인류를 구원하는 구세주가 되십니다.
이런 내용들을 읽게 되면 그렇게 된 거구나 하고 넘어가면 이해 못 할 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린 천사와 마리아 사이에 오고 간 대화가 그리 간단한 게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마리아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란 걸 믿었지만, 사람들은요?
실상을 알 리 없던 당시 사람들은 정혼한 처녀가 임신을 했다면 아무리 마리아가 “이 아이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한들 믿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부정하다 해서 파혼당하고 율법에 의해 돌에 맞아 죽을 형편에 처할 게 뻔합니다.
유대인들의 율법엔 이런 판결들이 명시되어 있는데,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을 거란걸 마리아인들 몰랐을까요?
당연히 알았습니다. 알았기에 마리아로서도 한 번쯤은 하나님께 반문하거나 말씀을 거부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나님. 나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믿고 남들 받는 정도의 보통의 복을 받으며 살고 싶어요.’라고.
마리아 수태고지를 보면 당시 마리아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말씀이라는 점에서 구약에서 아들을 죽여 번제로 바치라는 말씀 앞에 섰던 아브라함이 생각나게 합니다.
아브라함 역시 한 번쯤은 ‘하나님. 남들 같지 않게 백 세나 돼서 어렵게 얻은 아들인데 이제 또 그 아들을 상대로 남들에겐 하지 않으시는 일들을 왜 내게만 하라고 하시나요?’라고 물을 수도 있지 않았겠는지요?
그리 본다면 오늘을 사는 우리도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나도 남들 만큼의 믿음으로는 살아가는데 하나님의 응답은 왜 남들처럼 안 이루어질까?’라고.
이처럼 구약의 아브라함에게, 신약의 마리아에게, 그리고 오늘의 나에게는 어찌 보면 ‘평범하게 믿어서 보통의 복을 받고 사는 게 왜 나에게만 이리 힘이 드는 걸까?’라는 동일한 의아함이 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하면 우린 다른 사람이 아닌 아브라함이나 마리아 본인에게서 그 답을 찾으려 해야 합니다.
아들을 번제로 바치려고 모리아 산을 오르면서 아브라함이 뭐라 했던가요?
창세기 22:8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이런 아브라함의 믿음대로 산을 내려올 때는 아들 이삭과 함께 하나님이 미리 준비해 놓으셨던 여호와이레의 복을 받아 내려오게 됩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오늘 본문 38절에서 보듯이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니 납득되지 않는 ‘그것까지 믿는 것!’
이게 바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 복’이기에, 나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복’이라고 믿는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린 하나님이 나에게서 하시는 일에 대해 의문이나 의아한 생각을 가지는 대신 평범하지 않은 믿음을 보시고자 하시니 평범하지 않은 복을 주시려나 보다. 또는 보통의 믿음으론 안 된다 하시니 보통의 복으론 끝내지 않으시려나 보다라는 믿음을 가지려 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셉이 그랬잖습니까? 노예로 팔릴 때도, 종살이를 하거나 누명을 쓰고 옥에 갇혔을 때도 요셉은 믿은 겁니다. 평범치 않은 복을 주시려나 보다, 보통의 복으론 끝내지 않으시려나 보다라고.
결국 요셉은 변방 이스라엘의 일개 목동이었음에도 당대에 세계를 지배하던 애굽의 총리가 되는 결코 평범하지 않고 보통을 뛰어넘는 복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올 한 해를 말씀대로 믿고, 믿음 대로 살자고 결단하고 실행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을 때 내게도 복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본문에서 마리아는 주의 어떤 말씀이 이루어질 것을 믿은 것일까요?
37절을 보면 수태고지를 했던 천사는 마리아에게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38절에서 마리아가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즉 ‘능치 못함이 없으신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한 겁니다.
그런데 이때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45절입니다.
마리아와 천사 사이에서 있었던 상황을 알 리가 없던 엘리사벳이 느닷없이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엘리사벳은 직접 보거나 듣지도 않았고 누가 알려 주지도 않았는데 마리아가 그런 말을 했다는 걸 어떻게 안 걸까요?
41절 마지막 문장을 보세요.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45절의 말씀은 엘리사벳이 한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엘리사벳의 입을 빌어 마리아에게 친히 하신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을 재해석해 보면 하나님이 마리아에게 말씀하시기를 ‘마리아야. 네가 내 말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었으니 너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이 말씀을 믿으세요. 그리고 이 말씀에서 마리아 대신 여러분의 이름을 넣고 말씀을 다시 읽어 보세요.
하나님께서 마리아에게 그리 말씀하셨다면 나에게도 그리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런 이유에서 올해는 하나님의 어떤 말씀이든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그 말씀대로 이루어질 줄로 믿으며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나에게 ‘믿는 자에겐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면 아무리 어렵고 안 풀리는 형편들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능치 못할 일이 없을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또 성경에서 나에게서 되어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질 줄로 믿으시면 그런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복이 있도다.’라고 하시며 이제까지의 괴롬과 아쉬움들이 모두 원하고 바라던 복이 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올해 표어의 주제 성구를 누가복음 1;45절 말씀인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로 택한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45절에 대해서는 이전 버전인 개역 성경에는 “믿은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주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리다.”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찬찬히 살펴보면 두 번역 모두 전하고자 하는 내용에선 같지만, 의미상의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먼저 개역 개정을 보면 마리아가 믿은 건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는 것이었는데 반해 개역 성경에서 보면 마리아가 믿은 건 ‘말씀하신 주님’이었고 이후에 주님께서 그런 마리아의 믿음대로 반드시 이루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린 우선순위의 문제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개역 개정의 번역에서도 실상은 ‘주께서 하신 말씀’이라 할 때 핵심은 ‘주님의 말씀’보다는 ‘말씀하시는 주님’이 우선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마리아는 주님을 믿었기에 주님이 하신 말씀도 믿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혹 말씀대로 믿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주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기에 믿음대로 살지도 못하게 되는 겁니다.
이런 점에서 “믿은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가 앞서 나오는 것이 우리가 신앙적인 결단을 하기에는 더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도 ‘믿은 여자가’라고 할 때 ‘무엇을 믿은 여자인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마리아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믿은 여자였을까요?
앞서 복과 관련해서 우리에게 있어야 할 믿음은 나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다 복이다.’여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렇듯 지금 내게서 되어지고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좋고 나쁨을 떠나, 행 불행을 떠나서 그 모든 일들이 ‘하나님이 나에게서 하시는 일’이라 믿기에 ‘그 결과까지 믿는 것!’
이게 믿음대로 살자 할 때 우리에게 있어야 할 믿음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어떤 형편이나 상황에서든 ‘지금 하나님이 나에게서 하시는 일이 복이다.’라는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도 믿음대로 되게 역사하실 때면 ‘내가 너에게서 하는 일이 복이라고 믿은 너에게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시며 약속하신 대로의 복이 내게도 있게 해 주시는 겁니다. 그러니 새해를 하나님이 나에게 하시는 일들이 다 복이라는 믿음으로 시작해서 한 해 동안 내내 그렇게 믿으며 사는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는 복이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결과적으로 볼 때 마리아가 ‘하나님을 믿은’ 여자였기에 다행이었지만 솔직히 당시 마리아에게서 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획만 놓고 보면 인간적인 생각만으로는 하나님 때문에 시험에 들 수도 있고 하나님으로 인해 큰 고민과 낙심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때에라도 우린 모든 상황들을 또 다른 관점에서 볼 줄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왜 그러셨을까?’입니다.
100세나 되어 늦둥이로 얻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왜 그러셨을까요?
며칠 후면 축복받는 결혼도 하고 그러면 임신하고 아이도 낳고 할 마리아에게 하나님은 왜 그러셨을까요?
그리고 하나님은 지금 복 받고 응답받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나에게는 왜 그러실까요?
여러분이시라면 이젠 믿음이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고만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왜 그러셨겠느냐고요?
하나님도 저나 여러분을 대하실 때면 믿음으로 대하신다는 것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순종할 것을 믿으셨기에 그에게 그리하신 겁니다.
하나님은 마리아가 말씀대로 되리라고 할 것을 믿으셨기에 그녀에게 그러신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오늘 저나 여러분에게도 ‘그래도 믿을 것을!’ ‘그래도 기도할 것을!’ ‘그래도 응답받을 때까지 참고 기다릴 것을!’ 믿으시기에 나에게도 그리하시는 겁니다. 그러니 언제든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도 나를 믿으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신앙의 새로운 표어와 함께 새해를 시작했습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이 ‘너라면!’이라고 나를 믿어 주시듯이 우리도 ‘하나님이시라면!’이라는 믿음으로 하나님만 믿어서 결국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주셔서 기쁘시고, 우린 하나님께로부터 복 받아 기뻐하며 사는, 그렇게 2025년을 말씀대로 믿고, 믿음대로 살아, 약속대로의 복을 받으며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