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언어는 변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변화의 흔적이 남아 옛 질서를 보인다는 것이지요.
500년 전 발음을 현재 우리말에서 발견하는 것이지요.
흔적은 원래의 것은 거의 사라졌다는 것을 말합니다만,
이와 관련된 맞춤법은 아주 예외적이고 복잡한 것들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보십시다.
수컷, 암컷, 수키와, 암키와, 수퇘지, 암퇘지, 수탉, 암탉
모두 올바른 표기입니다. 이들 표기에 든 ‘ㅎ’을 알 수 있나요?
수ㅎ + 강아지 => ㅎ+ㄱ → ㅋ => 수캉아지
암ㅎ + 병아리 => ㅎ+ㅂ → ㅍ => 암평아리
수ㅎ + 돌쩌귀 => ㅎ+ㄷ → ㅌ => 수톨쩌귀
‘수+강아지’ 가 ‘수캉아지’ 로 소리 나니 ‘ㅎ’이 들어간 것입니다.
이것이 옛 언어의 흔적입니다.
세종대왕 당시 언어에는 ‘수ㅎ’ 처럼 ‘ㅎ’ 을 가진 단어가 80여 개나 되었답니다.
오늘날 이 단어들은 더 이상 ‘ㅎ’ 을 갖지 않습니다만
언어의 변화가 그리 만만하지 않아서 단어 속에 ‘ㅎ’의 흔적이 남아 발음으로 살아 있는 것이지요.
안+밖 => ㅎ+ㅂ → ㅍ => 안팎
머리+가락 => ㅎ+ㄱ → ㅋ => 머리카락
살+고기 => ㅎ+ㄱ → ㅋ => 살코기
암+개 => ㅎ+ㄱ → ㅋ => 암캐
이 모든 것을 주재하는 것은 우리의 발음입니다.
‘암+개’를 발음해 보세요. 누구도 이 단어를 ‘암개(×)’로 발음하지 않습니다.
실제 발음대로 적으면 된다는 의미예요.
물론 우리는 ‘ㅎ’에 대한 규칙은 알지 못합니다. 어원을 잃었다는 말이지요.
맞춤법 원칙은 어원을 잃은 것은 소리 나는 대로 적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이런 예들을 적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문제는 발음으로 알 수 없는 예들이지요.
‘수’가 포함된 단어들을 더 보도록 할까요.
수개미, 수소, 수사슴, 수거미, 수거위, 수제비,
수송아지, 수늑대, 수벌, 수범, 수할미새
우리 발음으로 ‘ㅎ’이 있는지 없는지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ㅎ’이 사라졌으니 오히려 당연한 일이지요.
그래서 아래의 규정을 만든 것입니다.
수컷을 이르는 접두사는 ‘수-’로 통일하며, 접두사 ‘수-’ 다음에서 나는 거센소리를 인정한다.
이때의 ‘수-’는 접두사이므로 뒷말과 붙여 쓴다.
―표준어 규정 2장 1절 7항, 한글 맞춤법 1장 2항
발음상 흔적이 분명한 예들은 표기에 반영하고 나머지는 ‘수’만을 적는다는 규정입니다.
그러면 아래 예는 뭘까요?
숫양, 숫염소, 숫쥐
우리말의 규칙은 하나가 아닙니다.
이 예들은 다른 규칙인 사이시옷 규칙이 적용된 것을 인정한 표기입니다.
수 뒤에 ‘ㅅ’ 삽입을 인정한 것은 위 3개가 유일한 예거든요.
왜 이렇게 복잡할까요? 흔적에 대한 규칙은 복잡하고 예외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 언어의 질서가 사라지면서 남은 아주 예외적인 것들이니까요.
이 복잡성들이 언어의 변화 결과로 생기는 당연한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게 중요합니다.
이런 예외는 현재 언어에서는 본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외만큼의 가치로 생각해야 하는 겁니다.
고맙습니다.
-우리말123^*^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