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서
함 민 복
임산부와 함께 앉게 되었네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아이와 동행하게 되었네 아이와의 인연으로 내 인생이 길어지자 나는 무상으로 어려지네 버스가 조금만 덜컹거려도 미안한 마음 일고 따갑게 창문 통과하는 햇살 밉다가 길가에 핀 환한 코스모스 고마워지네 아이가 나보다 선한 나를 내 맘에 낳아 주네 나는 염치도 없이 순산이라네
-〈시와 함께〉창간호 / 2019 -
쑥부쟁이
- 추석 지난 일 생각 좀 해보라고 덜컹덜컹 온몸 흔들어주누나 비포장도로, 흙먼지 날리며 고향에 갔었나니 아버지 묘보다 잔디 무성한 형의 묘에서 쑥부쟁이 뽑아낼 제 실핏줄 같은 가난의 뿌리 자꾸 끊어지더이다 왜가리 떼처럼 떠나고 싶어 떠난 것이 아닌 살붙이들 모여 버짐 피던 이야기, 검정 고무신 이야기로 술을 따라 마셨지요 여선생 호루라기 소리에 앞으로 나란히 피어난 코스모스 밤길, 밤엔 향기로운 아름다운 꽃들아, 너희들도 고향으로 돌아갈지니 바람 불 때마다 스스로의 가시에 찔리며 붉게 익은 대추, 나무에 아버지 얼굴로 걸린 달, 달그림자로 길게 다리 펴보았던 영혼아 그날 밤 내가 흘린 눈물에 흙 가슴 다 적셔주던 고향을 보았는감, 그날 밤 내가 눈물 추스를 때 굽은 등 품어주던 산 그림자 보았는감 쑥부쟁이야 쑥부쟁이야
- 시집〈우울씨의 일일〉문학동네 -
우울씨의 일일 - 예스24
문학동네포에지가 ‘선천성 그리움’의 시인, 함민복의 첫 시집 『우울씨의 일일』을 다시 펴낸다. 1988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해 한결같은 진솔함으로, 삶을 돌아보고 세상을 둘러보는 온
www.yes24.com
함민복 시집 〈우울씨의 일일〉 문학동네 /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