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하는 김예은
오늘 수업은 오늘 예배한 설교 말씀과도 연결되었다. 특히 마지막에 나눈 존재적 실존 양식을 가지기 위한 정체성 성립에 대한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또한, 내 삶의 목적이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영화롭게 하는 것임을 깨닫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돌아보면, 그동안 나에게 신앙은 소유였다. 교회에 다닌다는 것, 아침 묵상을 하고 기도를 하는 형식적인 일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만족하고 있었다. 내 마음을 다해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손에 꼽힐 뿐더러, 나는 신앙을 존재로 받아들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하나님을 아는 것과 믿는 것이 엄연히 다르듯이, 소유와 존재도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신앙을 소유하는 내가 아닌, 신앙 그 자체로 존재하는 내가 되고 싶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힘쓰고, 나에게 주어진 신앙생활들 가운데 진실한 마음으로 임하고 싶다.
불기둥 이윤규
이번 주는 <소유냐 존재냐>라는 책을 가지고 수업을 진행했다. 일본에 여행을 간 관계로 책을 읽지를 못했다. 그래서 수업에 참여하지 못하고 그냥 듣기만 해서 재미가 없었다. 그래도 수업 시간에 유일하게 한 게 있는데 새로운 사회의 기능은 성격 구조의 특성을 가진 새로운 인간의 출현을 촉진시키는 일이라며 나는 어떤 인간인가를 알려주는 문장을 선택해서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완전히 존재하기 위해서 모든 형태의 소유를 기꺼이 포기할 마음가짐과 축재와 타인을 착취하는 데에서 오는 기쁨이 아니라, 베풀고 나누어 가지는 데에서 우러나는 기쁨” 나를 설명하기 아주 분명한 문장들이었다. 감상문은 잘 모르겠고 다음주는... 책을 1/3이라도 읽어와야 겠다라는 다짐을 적고 가야겠다.
연구하는 정재훈
이번 주 책은 제목에서부터 철학이 느껴지는 '소유냐 존재냐'라는 책이다. 나는 책을 다 읽지 못해서 수업 때 들어야 했다. 내가 읽은 부분은 서문인데, 이곳에서 심오한 부분을 찾았다. 우리는 자연을 도구로만 생각해 세계 속에 또 다른 세계를 만든다고 나온다. 그러면 그 세계 속에서는 우리를 신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세계 속의 세계가 계속 반복될 것이다. 하지만 가장 밖의 세계가 무너지면 그 속의 세계들이 차례로 무너질 것이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한 답을 수업에서 찾을 수 있었다. 우리 세계 속 세계를 만드려는 것은 세계를 갖고 싶어 하는 인간의 소유 욕구였다. 그리고 우리는 이 세계를 존재 그 자체로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기로운 민시은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를 읽었다. 솔직히 말해 처음에 제목만 봤을 때 책에서 무슨 내용을 말하고자 하는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소유와 존재의 연관성도 찾을 수 없었고 내가 소유하는 것과 존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게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의 첫장부터 읽기 시작하면서 저자의 놀라운 통찰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명이 시작되면서 시작된 ‘소유’의 개념은 산업혁명으로 인해 그 정점을 찍는다. 인간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신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자연을 훼손하고 남을 소유하려 한다. 그러나 그 실제는 그렇지 않다. 인간은 신이 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 모든 소유를 내려놓는 것이 진정 ‘존재’하는 삶을 살기 위한 첫걸음이라는 것을 느꼈다. 사실 아직 책을 다 읽지 못했기에 책에 대한 이해가 미숙한 부분이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하나 곱씹으며 다시 도전해보고 싶을 정도로 책은 내 지적 호기심을 자극했다. 수동적이고 소유하는 삶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존재하는 삶을 살기 위해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하는 ‘소유냐? 존재냐?’를 꼭 한 번 더 시도하고 싶다.
기뻐하는 김담희
이 책의 제목은 ‘소유냐 존재냐’이지만 ‘소유’와 ‘존재’를 비교하며 소유가 아닌 ‘존재가 옳다‘라고도 말하는 것 같았다. 테니슨의 시와 바쇼, 괴테의 시를 비교하며 소유지향형과 존재 지향형을 비교하는 이야기 안에서도 볼 수 있었는데 꽃이 아름다워 틈새에서 뿌리째 뽑았다는 테니슨의 꽃은 결국 시들어 버릴 것을 예보하고 있고, 그저 존재로서 눈여겨 살펴보려는 바쇼의 꽃은 울타리 곁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통해서도 우리는 소유지향형과 존재지향형의 차이를 알 수 있다. 같은 것을 보고서 두 지향성의 차이가 나타내는 차이가 인상적이었다.
이것 말고도 실존 양식을 갖추기 위한 새로운 인간의 자질 중 ‘나 자신 이외에는 그 누구도, 그 어떤 사물도 나의 살에 의미를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이같이 투철한 독립과 무의 상태로의 귀의는 베풀고 나누어 가지는 데에 헌신하는 완전한 사회참여의 전제가 될 수 있음’이라는 자질이 실존 양식의 기본으로 느껴졌다.
철학은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때 더 이해가 되고 생각을 넓힐 수 있는 것 같다. 책을 끝까지 다 이해하며 읽은 것이 아니기에 모든 것을 알지는 않았지만 이야기를 하며 더 소유와 존재에 대해 더 이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