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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등산 봉정사
소재지 : 경북 안동시 서후면 봉정사길 222 번지
천등산 봉정사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도 험하지도 않아 잠시 바쁜 도심을 떠나 한적한 여유를 가질 수 있어서 좋은 곳이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을 가진 이곳은 우리들 모두에게 자랑스러운 곳이기도 하고 누구나 봉정사에 오면 심신의 피로를 다 잊어버리고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시며 등반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한국산중 불교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어 좋은 수련의 장소이기도 하다. 봉정사는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스님이 창건한 사찰이다. 천등산은 원래 대망산이라 불렀는데 능인대사가 젊었을 때 대망산 바위굴에서 도를 닦고 있던 중 스님의 도력에 감복한 천상의 선녀가 하늘에서 등불을 내려 굴 안을 환하게 밝혀 주었으므로 '천등산'이라 이름하고 그 굴을 ‘천등굴’이라 하였다. 그 뒤 더욱 수행을 하던 능인스님이 도력으로 종이 봉황을 접어서 날리니 이곳에 와서 머물러 산문을 개산 하고, 봉황이 머물렀다 하여 봉황새 봉(鳳) 자에 머무를 정(停)자를 따서 봉정사라 명명하였다. 창건 후 6차례에 걸쳐 중수하였으며, 국보 제15호 극락전, 국보 제311호 대웅전, 보물 제1614호 후불벽화, 보물 제1620호 목조관세음보살좌상, 보물 제448호 화엄강당, 보물 제449호 고금당, 덕휘루, 무량해회, 삼성각 및 삼층석탑과 부속암자로 영산암과 지조암, 중암이 있다. 고려태조와 공민왕이 다녀가기도 한 아름다운 사찰이다.]
봉정사 극락전 -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
봉정사의 핵심은 극락전이다.
극락전(極樂殿). 아미타불을 모신 법당이다. 정면 3칸, 측면 4칸의 작은 건물이다. 지붕은 맞배지붕. 기둥 위에만 공포를 짜 올린 주심포 양식이다.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이 건물이 특별한 이유는 단 하나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이기 때문이다.
1972년 극락전 해체 수리 공사를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났을 때 종도리에서 묵서명(墨書銘)이 발견됐다. 거기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至正二十三年癸卯三月 日 改盖重修
지정(至正)은 원나라 혜종의 연호다. 지정 23년은 1363년(공민왕 12년)이다. 1363년에 지붕을 크게 수리했다는 기록이다.
전통 목조 건물은 신축 후 통상 100~150년이 지나야 지붕을 크게 수리한다. 1363년에 수리했다면 건립 시기는 적어도 1200년대 초반이 된다. 즉 이 건물은 800년이 넘었다는 것이다.
부석사 무량수전과 누가 더 오래됐는지 엎치락뒤치락한다. 봉정사 극락전이 1363년에 중수한 기록, 무량수전이 1376년에 중수한 기록. 극락전의 중수 기록이 13년 앞서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봉정사 극락전이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본다.
극락전의 건축 양식이 통일신라시대 건축 양식을 본받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고려 시대 건물이지만 통일신라 양식을 충실히 계승한 것이다. 그래서 극락전이 한국 건축사 연구에서 더욱 중요한 건물로 평가받는다.
극락전 원래 이름은 대장전(大藏殿) 이었다. 뒤에 극락전으로 이름을 바꿨다.
엘리자베드 2세 여왕과 봉정사
1999년 4월.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봉정사를 방문했다.
국빈 방한 중이던 여왕이 안동을 찾았고 그 코스에 봉정사가 포함됐다. 여왕은 극락전을 둘러보고 방명록에 글을 남겼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왕실의 여왕이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을 방문한 것이다. 이 만남이 화제가 되면서 봉정사는 더욱 유명해졌다.
2022년 9월 8일 엘리자베스 여왕이 서거하자 봉정사는 추모 영결식과 49재를 지냈다. 2023년에도 1주기 추모법회를 열었다. 여왕과 봉정사의 인연이 이렇게 이어졌다.
2019년 5월에는 여왕의 차남 앤드루 왕자가 방한해 봉정사를 찾았다. 방명록에 이렇게 썼다. 옛 모습을 간직한 산사에서 한국인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마음을 느끼고 갑니다.
대웅전 안에 엘리자베스 여왕 방한 당시의 사진과 방명록 글이 전시되어 있다.
봉정사와 안동 — 유교와 불교가 공존하는 땅
안동은 한국 유교 문화의 수도다.
도산서원·병산서원·하회 마을. 퇴계 이황과 류성룡의 고향. 유교 문화가 가장 깊이 뿌리내린 땅이다.
그런데 바로 그 안동에 봉정사가 있다. 유교의 고장에 불교의 천년 고찰이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 억불 정책이 극심했던 이 땅에서도 봉정사는 살아남았다. 극락전이 불타지 않고, 무너지지 않고, 800년을 버텼다.
봉정사를 방문할 때 안동 하회 마을과 도산서원을 함께 엮어 보는 것이 좋다. 같은 땅에서 피어난 유교와 불교의 문화를 하루에 모두 만날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봉정사
2018년 봉정사는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사실 봉정사는 2018년 유네스코 등재 과정에서 처음에는 권고 목록에서 제외됐다. 역사적 중요성이 드러나지 않았고 다른 사찰에 비해 규모가 작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한국 정부와 문화재청의 노력으로 최종적으로 7개 사찰 전체가 등재됐다.
유네스코가 봉정사를 평가한 핵심 가치는 이것이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 극락전이 보여주는 건축사적 가치. 통일신라 건축 양식을 계승한 고려 건축의 탁월한 가치. 천등산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산지 사찰의 배치.
작은 절이지만 세계가 인정한 가치는 크다.
봉정사의 사계절
봄 — 벚꽃과 봄꽃이 경내를 장식한다. 영산암 마당에 꽃이 피면 그 아기자기한 풍경이 특별히 아름답다.
여름 — 천등산 숲이 울창하다. 방문객이 적은 편이라 조용하고 평화롭다. 극락전 마루에 앉아 산바람을 느끼는 여름 봉정사가 특히 좋다.
가을 — 단풍이 아름답다. 대웅전과 극락전을 배경으로 물드는 단풍이 고즈넉한 분위기를 만든다.
겨울 — 눈 쌓인 극락전. 800년 된 건물 위에 눈이 쌓이는 장면은 경이롭다. 사람이 적어 오히려 이 절의 진면목을 가장 잘 만날 수 있는 계절이다.
봉정사 영산암(鳳停寺 靈山庵)
지정종목 : 시도민속문화유산
지정(등록)일 : 2001년 11월 1일
소재지 : 경북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902번지
시대 : 19세기 말 추정
천등산 기슭에 있는 봉정사는 신문왕 2년(682) 의상대사가 지었다고 한다. 부석사를 세운 의상대사가 부석사에서 종이로 봉황새를 만들어 날려 보냈는데, 그 새가 내려앉은 자리에 절을 짓고 봉정사라 이름 지었다는 전설이 전하여 온다. 봉정사의 영산암은 지조암과 함께 봉정사의 부속암자로 응진전, 영화실, 송암당, 삼성각, 우화루·관심당 등 5동으로 이루어져 있고, 건물의 구체적인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봉정사영산암향로전창건기'와 봉정사영산전중수기'등의 사료로 볼 때 19세기 말로 추정된다. 건축적으로는 크게 주목할 만한 부분은 없으나 우화루와 송암당 등에서 폐쇄적인 공간을 개방적으로 처리한 것이나 삼성각 앞의 조경수법도 경직될 수 있는 공간을 부드럽게 유도한 것 등은 매우 뛰어난 공간처리 수법으로 볼 만 하다.
봉정사 영산암 -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의 촬영지
봉정사 산내 암자 영산암(靈山庵)은 독특한 이력이 있다.
1989년 배용균 감독의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의 촬영지가 바로 이 영산암이다. 선불교의 깨달음을 영상으로 풀어낸 이 영화는 로카르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표범상을 수상했다.
영산암의 고즈넉하고 신비로운 분위기가 영화 속 깨달음의 공간으로 완벽하게 어울렸다.
경내가 아기자기하고 아름답다. 마당에 작은 연못이 있고 꽃나무들이 담장과 어우러진다. 봉정사 본전 구역보다 조용하고 내밀한 분위기가 있다.
봉정사를 방문한다면 반드시 영산암까지 올라가 볼 것을 권한다. 영화의 한 장면 속으로 들어가는 경험이 된다.
고려시대의 건축물로 대한민국의 국보 제15호인 안동 봉정사 극락전(安東 鳳停寺 極樂殿)과 조선 시대의 건축물로서 2009년 6월 30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311호로 지정된 안동 봉정사 대웅전(安東 鳳停寺 大雄殿) 등 봉정사의 국보와 보물
안동 봉정사 극락전(安東 鳳停寺 極樂殿)
안동 봉정사 극락전(安東 鳳停寺 極樂殿)은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봉정사에 있는 고려시대의 건축물로 대한민국의 국보 제15호이다. 극락전은 영주시의 부석사와 함께 한국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이다. 건립 시기는 주심포식인 점에서 고려 중기로 보는 견해와 고려 말기로 추측하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정면 3칸, 측면 4칸의 단층 맞배지붕, 주심포의 건물이다.
개요
천등산 기슭에 있는 봉정사는 통일신라 대 신문왕 능인대사가 지었다고 전한다. 부석사를 세운 능인대사가 부석사에서 종이로 봉황새를 만들어 날려 보냈는데, 그 새가 내려앉은 자리에 절을 짓고 봉정사라 이름지었다는 전설이 전하여 온다.
극락전은 원래 대장전이라고 불렀으나 뒤에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1972년 보수공사때 고려 공민왕 12년(1363)에 지붕을 크게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담긴 상량문을 발견하였는데, 우리 전통 목조건물은 신축후 지붕을 크게 수리하기까지 통상적으로 100~150년이 지나야 하므로 건립연대를 1200년대 초로 추정할 수 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보고 있다.
앞면 3칸·옆면 4칸 크기에,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기둥은 배흘림 형태이며, 처마 내밀기를 길게하기 위해 기둥위에 올린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건물 안쪽 가운데에는 불상을 모셔놓고 그 위로 불상을 더욱 엄숙하게 꾸미는 화려한 닫집을 만들었다. 또한 불상을 모신 불단의 옆면에는 고려 중기 도자기 무늬와 같은 덩굴무늬를 새겨 놓았다.
봉정사 극락전은 통일신라시대 건축양식을 본받고 있다.
안동 봉정사 대웅전(安東 鳳停寺 大雄殿)
안동 봉정사 대웅전(安東 鳳停寺 大雄殿)은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봉정사에 있는 조선 시대의 건축물이다. 2009년 6월 30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311호로 지정되었다.
개요
봉정사는 신라 신문왕 2년(682)에 능인대사가 세운 절이라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능인대사가 도력으로 만들어 부석사에서 날린 종이 봉황이 이곳에 내려 앉아 봉정사라 불렀다고 한다.
중심 법당인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상을 중심으로 문수보살, 보현보살을 좌우로 모시고 있다. 1962년 해체·수리 때 발견한 기록으로 미루어 조선 전기 건물로 추정한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인데, 밖으로 뻗친 재료의 꾸밈없는 모양이 고려말·조선초 건축양식을 잘 갖추고 있고 앞쪽에 툇마루를 설치한 것이 특이하다.
건물 안쪽에는 단청이 잘 남아 있어 이 시대 문양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건실하고 힘찬 짜임새를 잘 갖추고 있어 조선 전기 건축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국보 승격사유
보물 제55호 봉정사 대웅전은 그 동안 조선초기 건물로 추정되어 오다가 근래의 해체조사 시 발견된 묵서명에서 ‘1435년(조선 세종17년)에 이르러 법당을 중창하였다’는 기록이 나타나 그 연혁이 밝혀졌다. 이 건물의 공포는 힘있고 가식없는 수법을 가지고 있으며, 건물의 가구형식(架構形式)과 세부기법은 단조로우면서 견실한 공법(工法)으로 전형적인 초기 다포양식(多包樣式)의 특징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단청(丹靑) 또한 고려적(高麗的) 요소(要素)를 지니고 있어 창건(創建)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보존상태 또한 양호하여 건물과 함께 중요한 회화자료(繪畵資料)로 주목되고 있다. 이처럼 봉정사 대웅전은 건축양식과 단청 등에서도 조선초기 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어 국가지정문화재(국보)로서의 역사적·예술적·학술적 가치가 충분하다.
[안동 봉정사 화엄강당(安東 鳳停寺 華嚴講堂)은 경상북도 안동시 봉정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다. 1967년 6월 23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448호로 지정되었다.
천등산 기슭에 있는 봉정사는 신문왕 2년(682) 의상대사가 지었다고 한다. 부석사를 세운 의상대사가 부석사에서 종이로 봉황새를 만들어 날려 보냈는데, 그 새가 내려앉은 자리에 절을 짓고 봉정사라 이름지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화엄강당은 스님들이 불교의 기초 교학을 배우는 곳이다.『양법당중수기』등의 기록에 따르면 같은 경내에 있는 극락전과 대웅전을 17세기에 고쳐 지었을 때 화엄강당도 함께 고쳤을 것으로 추정한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과 비슷한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이 부재들이 다른 기법과 섞여 절충형식을 보이고 있는 점이 특징인데 대웅전보다 간결한 형태의 장식성을 사용하였다. 또한 강당으로 사용되는 건물이기 때문에 기둥은 낮지만 공포를 크게 잡아 겉모습의 균형을 살리고 있다. 2칸은 방이고 1칸은 부엌으로 되어 있으며 부엌과 방 사이에는 벽장을 설치하였다.
차분하고 안정감 있게 지은 건물로 우리나라 전통 건축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는 문화재이다.]
[안동 봉정사 고금당(安東 鳳停寺 古金堂)은 경상북도 안동시, 봉정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다. 1967년 6월 23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449호로 지정되었다.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원래 선방이었으나, 지금은 요사채로 사용하고 있다. 1969년 해체 복원 당시 발견된 상량문에 의하면 1616년에 고쳐 지은 사실이 있으나 처음 건립한 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당초 남쪽에는 우화루가 있어서 남쪽 지붕이 이 건물과 연결되고 그 아래쪽을 부엌으로 사용하였는데, 1969년 고금당과 화엄강당을 해체하면서 철거하였다.
개요
천등산 기슭에 있는 봉정사는 신문왕 2년(682) 의상대사가 지었다고 한다. 부석사를 세운 의상대사가 부석사에서 종이로 만든 봉황새를 날려 보냈는데, 그 새가 내려앉은 자리에 절을 짓고 봉정사라 이름지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이 건물은 극락전 앞에 동향(東向)으로 서 있으며 원래 불상을 모시는 부속 건물이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지금은 승려가 기거하는 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1969년 해체·복원공사 당시 발견한 기록에 광해군 8년(1616)에 고쳐 지은 것을 알 수 있을 뿐 확실하게 언제 세웠는지 알 수 없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복원 전에는 북쪽 지붕 모양도 달랐고 방 앞쪽에 쪽마루가 있었으며 칸마다 외짝문이 달려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앞면 3칸에 2짝 여닫이문을 달았고 옆면과 뒷면은 벽으로 막아 놓았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비록 건물은 작지만 다양한 건축기법을 사용하여 구조가 꼼꼼히 짜인 건축물로 주목 받고 있는 문화재이다.]
[안동 봉정사 영산회상벽화(安東 鳳停寺 靈山會上壁畵)는 경상북도 안동시 봉정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영산회상도이다. 2009년 4월 22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614호로 지정되었다.
이 벽화는 1997년 1월 16일에 발견되었으며 현재는 보존처리 한 후 사찰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화면은 중방부분이 휘어지면서 부분적으로 균열이 생기고, 자연적 또는 인위적으로 훼손된 부분이 많아 제 모습을 상당히 잃었으나 구도 및 색채 그리고 일부의 문양 등은 판별이 가능하다. 내용은 설법인(說法印)을 짓고 있는 중앙의 본존불을 중심으로 여러 권속들이 에워싸고 있는 도상으로, 남아 있는 화기를 통해 석가모니불이 영축산에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설하실 때의 장면을 도해한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이다.
전반에 걸친 무거운 적·녹색 위주의 채색을 사용하여 다소 묵직한 느낌이 강하지만, 본존불의 선홍색 법의와 호분이 많이 가미된 연하늘색과 연분홍색 등이 잘 조화를 이루며 장중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고 뛰어난 필치와 밀도 높은 구성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 벽화는 현재 정확한 제작시기를 단정할 수 없지만 대웅전 해체수리 때 종보 하단에 덧댄 통보아지 상면에서 발견된 1435년의 「대웅전중창기」, 1436년의 정면 어칸 기둥 묵서명 등을 통해서 볼 때 1435년을 전후한 시기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따라서 봉정사 대웅전벽화는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영산회상도>로서 1476년 <강진무위사아미타후불벽화>와 함께 조선 초기 불화의 쌍벽을 이루는 벽화이며 이후 전개될 군도형식의 영산회상도는 물론 여타 불회도(佛會圖)의 조형(祖型)이 된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안동 봉정사 목조관음보살좌상(安東 鳳停寺 木造觀音菩薩坐像)은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봉정사에 있는 고려시대의 보살상이다.
2004년 10월 14일 경상북도의 유형문화재 제351호 봉정사 목조관세음보살좌상(鳳停寺 木造觀世音菩薩坐像)으로 지정되었다가, 2009년 10월 20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620호로 승격되었다.
안동 봉정사 목조관세음보살좌상은 여러 개의 나무들을 접합한 접목조기법(接木造技法)으로 이루어졌으며 눈은 수정을 감입하였다. 사찰에 전하는 대웅전관음개금현판(大雄殿觀音槪金懸板)과 1753년의 중수원문(重修願文)을 통하여 1199년에 처음 조성되어 1363년에서 1364년 사이와 1751년에서 1753년 사이에 중수된 상임을 알 수 있다.
양식적으로도 이 관음보살상은 아직 고려적으로 변모하지 않은 이국적인 풍모, 마치 배흘림기둥을 연상시키듯 맵시있게 땋아 올린 보계(寶髻), 어깨 위에서 중첩된 고리모양을 이루며 늘어진 보발(寶髮)의 표현, 긴장감 넘치는 옷 주름, 세련된 조각기법과 균형미 넘치는 비례 등에서 중국 남송대의 불상이나 12세기 말에서 13세기 전반으로 추정되는 《안동 보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이나 《서산 개심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등과 비교된다. 따라서 이 상은 <대웅전관음중수현판기>에 기록된 대로 승안(承安) 4년, 즉 1199년(高麗 神宗 2) 무렵에는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관음보살상은 고려후기 새롭게 대두하는 신고전주의(新古典主義) 양식 불상의 시원적 형태를 간직한 상으로 이러한 불상 양식의 성립과 전개과정을 살펴보는데 매우 중요한 상으로 평가 된다.]
[안동 봉정사 영산회괘불도(安東 鳳停寺 靈山會掛佛圖)는 경상북도 안동시 봉정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탱화이다. 2010년 10월 24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642호로 지정되었다.
이 그림의 화면구성은 기본적으로 경상도 지역 영산회괘불화 도상과 유사하나 좌우 8구의 협시보살을 비교적 크게 배치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중앙에 커다랗게 표현된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8보살과 10대 제자가 둘러싸고 있는 간단한 구도를 취하고 화면에 도상들을 부각시켜 꽉차게 묘사하였다.
입상의 본존을 중심으로 좌우에 보살과 권속들이 둘러싼 이와 같은 형식은 18세기 경상북도에서 유행하던 것인데, 다른 작품에 비하여 보살이 본존의 어깨부분까지 올라오는 등 크게 묘사된 것이 특징이다. 불보살상의 상호는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양감있게 표현하였으며, 육신선과 옷의 처리는 비교적 굵은 선묘로 힘있고 유연하게 처리한 것이 돋보인다.
색채는 주색과 녹색을 주로 사용하였는데, 천공에는 백색 화문을 흩뜨리고, 황색과 분홍색, 녹색 채운을 활용하여 화사함을 더하고 있다. 아울러 보살상의 하반신 수식 장식에는 금박으로 처리하여 포인트를 주고 있다. 이 작품은 18세기 괘불탱 중에서 이른 시기에 조성되었을 뿐만 아니라 화풍도 뛰어난 작품이다.]
[안동 봉정사 아미타설법도(安東 鳳停寺 阿彌陀說法圖)는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봉정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불화이다. 2010년 2월 24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643호로 지정되었다.
이 그림은 조선조 후기 아미타설법도상의 규범이 되며 또한 17세기와 다른 18세기 초반의 화풍 경향을 잘 보여주고 있어 불교회화사의 중요한 자료이다.
1713년 도익(道益) 등이 조성한 아미타불화로서, 본존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10보살과 범천, 제석천, 10대제자, 벽지불, 사천왕, 팔금강 등을 배치하였다. 다른 불화에 비해 본존의 비중을 작게 함으로서 다수의 권속들을 표현함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이면서도 답답하지 않은 화면을 구성하였다. 원만한 상호묘사와 균형 잡힌 신체묘사, 유려한 필치, 금니의 화문 등 동일한 화승이 제작한 1731년 수다사 영산회상도 및 삼장보살도와 유사한 특징을 보여준다. 18세기 전반 경상북도 지역 불화의 특징이 잘 표현된 작품이다.
안동 봉정사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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