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 부산에서 가락 죽림으로 가는 대중교통으로 지하철3호선 대저역에서
강서2번 마을 버스편과 약간 다른 코스로 가는 마을 버스가 있었다.
강서2번은 약 2시간 간격으로 - 대사리에서 덕도 북정마을 덕계 상덕 논길
낙동강 오리알 죽림삼거리 ~~~차편 시간은 대체로 정확히왔다.
ㅇ 사상 터미널에서 김해행 죽림경유 버스를 탔을때 죽림까지 약25분 걸렸다.
이용객이 없다보니 하루 4번정도 운행되는데 시간변경을 시도때도 없이 하니
낭패 볼때도 있었고 시간 맞추기가 어렵다.
고향 앞산 구름사이로 높이 뜬 보름달
틈사이로 별하나가 빤짝이는데
여름날 쾌적을 그리며 떨어지던 별똥별
모기불 피우고 돗자리에 누워
바라보던 별들은 어디로 갔을까?
정든 사람 떠난 고향마을 그리운 시절아...
가로등 불빛 외로운 죽림삼거리
한 시절 여름밤 사람들로 넘쳐나고
노래소리 싸우는 소리 요란했다.
↓ 흰 창틀 집
수십년 동안 용케 버티고 있다.
김성대가 어른 모시고 살았던 양옥집
지금은 다른 사람이 살고 있는데
입택하고 얼마 안 지난 어느날 이 친구집에
들른 적이 있었다. 거실부터 방 화장실까지
쓸고 닦아 반들 반들 했다. 무슨 험악한 인연이였을까?
깊은 내막을 이야기 할 수는 없고 아까운 친구 먼저 저세상 갔다.
오봉산을 베개삼고 해뜨는 동편마을 죽림
대나무가 유독많은 작은 섬이라 죽도라고도 했고
지명은 죽림이다 . 내가 태어나 자랐던 고향마을
남이야 뭐라카던 나는 내고향이 좋다.
김해공항문제로 어지러운 지역의 중심에 있다.
높은 굴뚝은 과거 목욕탕인데 지금은 안한다.
목욕탕은 수십년전 가락에 땅부자 윤용?씨의
큰아들이 운영을 했다.
이 양반은 초등학교? 교장까지 한 걸로 알고있는데
목욕탕 수원(水源)은 수가리 산 중턱에서 끌어왔다.
산에서 끌어온 물이니 당연히 물은 매끌매끌 좋았다.
문제는 오래전 객지 사람한테 목욕탕을 팔면서 계약서에
수원(水源)에 대한 소유권을 명시를 안했다.
매입자는 당연히 수원도 따라 오는 것이라 생각했다가
나중에 큰 낭패를 본 일이 있었다 한다.
얄팍한 수단으로 남을 골병드린 교직자 지금은 저 세상갔다.
ㅇ 그리고 고향마을에서 부동산 중계사를 하며 외지 사람들
상대로 토지 중계매매를 했던 토박이 중계사가 있었다.
중계과정에서 현지인들 그러니 고향사람에게
야박한 짓을 다소 하였던 모양이다.
장례를 치는데 마을 사람들 문상을 안 가더란다.
가끔 고향에 들렀을때 나 한테는 너무 친절해 주시던
고향 형님인데 인심이 그렇다.
덕도쪽 저 농토들 앞으로 어떻게 변모 할련지 ~~
앞산 성황당 우리는 당집 할매라 한다
한여름 이 시기 더위 피하러 나온 사람들로
할매집옆은 왁짝찌껄했는데...
강에 까만 점 처럼 보이는 돌출물은 수중 암초이다.
저 돌출물이 신기한 이유는 강가에서 약 15미터떨어진 지점에 있었던
수중 암반인데 주변 수심은 대강 4~5미터되었고 강 안쪽으로
헤엄을 치고 가다가 저 암반에 서있기도 하고 잠시 쉬기도 하고
경험으로 어디 쯤 있더라 하고 찾아냈던 암초인데 그동안 한번도
정체를 드러 내지 않았던 수중 암초가 강물이 빠지면서 그 정체를 들어 내었다나.
친구 갑율이 !
밑으로 두살 적은 삼율이 또 두살적은 계옥이 삼형제를
홀로 키우던 갑율이 어머니 얼굴이 또렷하다.
다 어려웠던 시절 유독 어렵게 살다가 객지로 나간것으로 안다.
마산에서 함석으로 후드만드는 일을 한다는데
오랬만에 고향에 들러 술한잔 하고 갔다고 한다.
보는 바와 같이 한성고보다 나이가 더 들어 보인다.
그래도 고향에 친구들 몇몇이 살고 있으니
반겨주었을 것이며 덜 외로워을 것이다.
같이 컷던 저 친구 얼굴이 내 얼굴이다.
갑율이 그 친구 살던집은 허물어 지고 마을 옥자누나가 살았던 집인데
수십년전 집이 옛모습 그대로 있다. 잠시 술집도 했던 집이다.
덕도초등학교
덕도 산밑에 마을 들
첫댓글 죽림친구 고맙소~. 이런 귀한 동영상을 보여주다니.... 귀하고 귀한 내 친구
우리 교회 강동교회, 우리 학교 덕도국민학교, 우리동네 덕계부락......너무너무 고맙고 감사합니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