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주는 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김영석
181209 / 겨울이 오기 전에 (디모데후서 4:9-22)
흔히들 충청도 사람들은 말이 느리다고 합니다. 그래서 언덕 위에 있던 아들이 아버지를 향해 "아버지 돌 굴러 가유∼" 그러면 이미 아버지는 돌에 깔려 죽었다고 할 정도랍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충청도 사람들은 죽어서 천국 가는 것도 천천히 갈 것 같다고 했더니 그건 또 절대 아니라고 합니다. ‘가는 것’에 있어서는 충청도 사람이 제일 빠르답니다.
사람이 죽게 되면 경상도 사람은 "고마 돌아가셨다 아입니꺼?" 전라도 사람은 "아따 돌아가 버렸당께!" 라고 하는 데 비해 충청도 사람은 한마디로 끝내버립니다. "갔슈!"
네! 갑니다! 사람은 누구나 반드시 죽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한 일이요’ 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음과 관련해서, 오늘 본문에 나타난 사도 바울의 처지가 그랬습니다.
지금 바울은 두 번째로 로마 감옥에 투옥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나이 칠십을 넘어선 노인이기도 했지만, 당시 상황으로 보아 본인 스스로가 내년 봄의 어느 때쯤에는 순교하게 될 것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6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관제와 같이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그런 상황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를 씁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 겨울 전에 너는 어서 오라."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겨울'은 계절상의 겨울을 언급한 것입니다. 13절 하반 절에서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라."고 했던 것으로 보아 날씨가 추워지니까 겨울을 보다 따뜻하게 보내고 싶었을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본문을 잘 읽어보면 바울이 말하는 겨울은 계절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주 사람들은 인생을 계절에 비유하곤 합니다. 아이로 태어나서 자라나는 유아기는 인생의 봄입니다. 왕성하고 싱싱하게 피어나는 청년기는 인생의 여름입니다. 그 동안에 뿌린 것을 거두며 결실하는 장년기는 인생의 가을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바라보며 인생의 여정을 준비하는 노년기는 바로 우리 인생의 겨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겨울의 끝엔 죽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생 겨울의 목전에서 죽음을 앞둔 바울은 디모데에게 왜 겨울이 가기 전에 서둘러 오라는 부탁을 했을까요? ‘인생에서의 겨울’을 준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당시 지중해는 가을에 배가 떠나지 않으면 겨울을 지나 최소한 넉 달 후에야 항해가 가능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디모데에게 ‘겨울 전에’ 오라고 거듭 당부한 것은 바울에게는 ‘때’를 놓치기 전에 꼭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집니다. 우리 중 누구에게든지 인생의 겨울은 찾아옵니다. 그렇다면 그때,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우리도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어쩌면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할 것입니다. 어느 정도 지위나 명예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아니면 단 한 시간만이라도 건강하게 살았으면 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갖고 싶은 것도 많습니다. 보고 싶은 사람들도 많고 이루고 싶은 것들도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이토록 많은 것을 성취하고 싶지만 만족스럽지 못하게 인생의 겨울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후회하면서 인생의 겨울을 맞이하게 됩니다.
사실 우리가 70을 살고, 80을 살아도 정말 의미 있게 살 수 있는 세월은 그렇게 길지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우린 영원한 삶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내일부터는 새 사람이 되어 보겠다." 거나 “이번 한 번만, 다음부터는 안 할 거야.”라고 장담을 하곤 합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내일이 어떻게 될 진 모르지만 오늘 최선을 다해서 살아 보자."고 다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는 내일을 위해서는 그럴 듯한 결심을 하지만 오늘은 되는대로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평생 결심만 하다가 끝나는 인생이 되고 맙니다.
반대로 후자는 오늘에만 집중하다 보니 어느덧 성큼 다가와 있는 내일을 전혀 준비하지 못한 채 맞이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은 인생에서 후회와 아쉬움만 남긴 채 살게 됩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내일만’도 아니고 ‘오늘만’도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은 언제나 ‘내일을 준비하는 오늘’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내일은 내가 오늘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있어서의 내일은 예측이 가능합니다. 성도라면 본인의 내일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내일을 소망하는 것! 내일을 내가 소망한 대로 바뀌게 하는 것!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
그러므로 "겨울이 오기 전에 어서 속히 오라!"는 말은 겨울 전에 미리 준비할 것이 있었던 바울의 요청이자 오늘 우리에게는 우리의 인생에 겨울이 오기 전에 믿음의 준비를 미리미리 하라는 권면의 말인 것입니다.
금년 한해를 살아오면서 주님을 향한 열심이 좀 부족했다는 생각이 드신다면 지금부터라도 열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흔히들 저축이라 하면 물질의 저축만 생각하는 데 그게 다가 아닙니다. ‘신앙의 저축’도 있습니다.
천국에 가면 하나님 앞에는 구원과 관련한 책들이 있는데, 그 중에 ‘행위 책’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그 행위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일에 예배 한 번 드리는 것을 사소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오다가다 만나는 사람에게 복음 한 마디 전하는 것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한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올린 기도, 여러분이 부른 찬송, 여러분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전부 하나님의 행위 책에 기록되게 됩니다.
책의 용도는 이렇습니다. 불신자들에 대해서는 심판 때의 증빙 자료로 사용 될 그들의 모든 죄가 낱낱이 기록된 ‘죄의 책’입니다. 때문에 요한복음 15:22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와서 저희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하나님께 이 행위 책 곧 죄의 책이 있는 한, 누구도 죄에 대해 핑계할 수 없으며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성도에게는 어떨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성도에게 있어서의 행위 책은 더 이상 죄의 책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22:12 말씀을 보세요.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여러분 각자의 행위 책은 장차 하나님이 갚아 주시기 위해 세세히 기록해 놓은 여러분 개개인의 ‘신앙의 저축 통장’과 같은 것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인생의 겨울에 만나게 되는 것들 중에는 궁극적인 죽음 말고도 다양한 형태의 겨울들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물질의 겨울’입니다. 사람이 물질을 벌려고 투자하고 애 쓰는 시기를 봄이라고 한다면, 물질을 벌고 쌓는 시기를 여름이라고 볼 수 있으며, 쌓아놓은 것들을 쓰자 누리자 하는 때를 가을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물질들이 사라질 때가 있습니다. 어떤 이유나 사연들로 인해서든 물질이 없어지게 됩니다.
이때가 바로 인생에서의 물질의 겨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노인이 탄식하는 말이 있습니다. ‘돈이 있을 때에는 깨닫지 못하여 못쓰고, 깨닫고 나니까 돈이 없어서 못쓰겠구나.’ 라고.
그러나 이사야 38장3절을 보면, 히스기야 왕은 물질의 여름에 하나님을 위한 많은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 그에게 인생에 겨울이 찾아왔습니다. 그때 그는 하나님께 나가 그의 살아온 인생을 결산합니다.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의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추억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게다가 15년 동안의 생명 연장도 있게 하셨습니다.
예전에 제자훈련 과정에서 배운 말씀을 기억하시나요?
‘내 신앙 통장에 적립된 믿음의 수고는 언제든 찾아 쓸 수 있다. 그 때 하나님은 통장에 적립 된 본전 축복에 더하여 하나님이 정하신 이자 축복까지 주신다.‘고 했던 것을...
하나님은 사람이 물질의 봄에 뿌리고 물질의 여름에 행한 것을 다 적립해 놓으셨다가 물질의 겨울에 찾아 쓰게 하십니다.
또 사람이 맞닥뜨리게 되는 인생의 겨울에는 ‘건강의 겨울’도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나 건강과 관련해서는 젊어도 건강의 겨울일 수 있고, 늙었어도 건강이 여름일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성도는 건강할 때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돈을 잃은 것은 조금 잃은 것이고, 명예를 잃은 것은 많이 잃은 것이며, 건강을 잃은 것은 전부를 잃은 것이다."
그렇습니다! 인생이 건강을 잃게 되면 그 때에는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렇기에 지금. 내가 걸을 수 있을 때에 복음을 전하고, 힘 쓸 수 있을 때에 봉사 하며, 기운이 있다 싶을 때, 신앙의 통장에 순종과 믿음의 행위들을 적립해 놔야 합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제가 나이가 드니 언제부턴가 안경 없이는 성경 읽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전에는 금식을 밥 먹듯이 했는데 요즘은 금식은커녕 한 시간 엎드려 기도하기에도 허리가 아픕니다.
그래서 종종 생각합니다. 나는 그동안 내 신앙의 통장에 적립한 것이 얼마나 될까하고....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이제부터라도 신앙의 저축을 위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 부지런히 신앙의 저축을 해나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권면합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우린 무엇부터 해야 하며,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1. 먼저 성경 말씀을 읽는 것부터 시작하세요.
본문 13절을 보세요. 바울은 디모데에게 올 때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가죽 종이란 헬라어 “비블리아” 곧 영어의 바이블이란 뜻으로 성경을 말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올 때 성경을 가져오라고 한 것입니다.
지금은 인쇄술이 발달하여 성경책을 갖고 다니기가 편하지만 그 당시의 성경은 가죽 두루마리로 만들어져서 너무 무거웠기 때문에 대개는 자주 찾는 믿음의 사람 집에 맡겨 놓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임종이 가까워짐을 느낀 바울은 그 성경책을 가져오라고 한 것입니다. 임종 전에 성경을 다시 한 번 더 보아야겠다는 겁니다.
인생의 겨울이 가까워졌을 때에 여러분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세상을 향한 말이나 행동을 줄이시고 오히려 눈과 귀를 열어 하나님의 음성을 보고 들어야 합니다.
성경책을 가까이 하세요. 거기에 인생 겨울을 이길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세요.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입니다. 그 말씀으로 천지가 창조되었고 그 말씀 앞에 귀신은 놀라 도망가며 그 말씀 안에서 새 역사가 일어납니다.
여러분의 삶에 말씀이 있을 때 여러분의 삶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계시게 됩니다. 그리고 그 능력이 여러분을 다시 여름의 인생으로 살게 하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부터라도 여러분의 신앙의 통장에 매일 매일 말씀 읽기를 적립하며 사십시오.
그렇다고 성경을 몇 시간 또는 어느 정도를 읽어야 할지를 놓고 고민하지는 마세요.
역시나 제자훈련 때 가르쳐 드렸잖아요. 성경읽기 분량이 하루에 어느 정도면 충분하다고 했었는지 기억나십니까?
‘하루에 한 절’만 읽으려고 하세요. 성경을 읽겠다고 들고 펼치기가 힘들지 일단 펼쳐서 읽기 시작했다면 한 절이면 어떻고 그 이상인들 못 읽겠습니까?
오늘부터 성경 말씀부터 읽자고 다짐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거기서 더 나간다면 가능하면 성경을 암송하려고 해 보세요. 말씀 암송이 중요합니다. 가정에서든, 일터에서든 심지어 고난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있다할지라도,
‘어? 성경책이 없네? 말씀을 못 읽겠네!’ 라고 하지 마시고 그럴 때 이미 여러분이 암송하고 있는 말씀이 여러분의 영적 무기가 되고, 여러분에게 은혜의 도구가 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 받으신 예수님을 떠올려 보세요. 시험이 있고 나서야 말씀을 찾지 않았습니다. 이미 구약의 모든 말씀을 알고 계셨기에 세 번에 걸친 마귀의 시험에 대해 세 번의 말씀만으로 간단하게 물리치셨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하신 일이라면 우리도 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성도 된 여러분에게는 말씀 읽기가 중요하고 말씀 암송이 필요합니다.
참고로 한 말씀 부언하자면, 말씀 읽기와 더불어 ‘찬송 부르기’에도 힘쓰시기 바랍니다.
대개의 경우 교인들이 기도는 잘들 하는데, 그에 비해 찬송 부르는 것이 부족합니다. 기껏해야 교회에서 예배 중에 부르는 찬송이 전부인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잘 알아두세요. 찬송은 ‘가락에 담긴 말씀’입니다. 찬송가를 잘 보시면 대부분 제목 밑에 관련 성경 구절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실 겁니다. 이는 해당 성경 말씀을 찬송가 가사와 의미에 담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찬송 부르기가 곧 말씀 읽기도 되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나만의 찬송!’을 찾아서 외워 부를 정도가 되게 하세요. 최소한 여러분에게 ‘인생 베스트 찬송 쓰리’ 정도는 지정해 놓고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찬송은 가락에 담긴 말씀입니다. 게다가 찬송은 '곡조 있는 기도'도 되는 것이기에 찬송 부르기 한 번으로 말씀도 선포하고 기도도 드리는 이중의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모쪼록 말씀 읽기와 찬송 부르기에 더하여 기도까지 모두를 여러분의 신앙 통장에 저축해 가며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신앙의 저축을 위해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들을 적립해 나가야 합니다.
본문 14절을 보세요. 바울이 말하기를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라고 했습니다.
당시 구리 세공업자란 구리로 우상을 만드는 사람들을 말하는데 이들 우상 장사꾼들이 사도 바울로 인하여 장사에 막대한 손해를 보았기 때문에 바울을 많이 괴롭혔습니다. 때문에 바울에게 있어서의 구리 세공업자란 그의 목회사역을 방해하던 가라지요, 원수와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바울은 자기를 괴롭히던 사람들을 거론하며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12:19을 보면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셨습니다.
자기가 쓴 서신서에 기록한 말씀이었기에 바울도 이 말씀을 모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미 알았고, 알았기에 믿었고, 믿었기에 말씀대로 바울은 모든 원수들을 하나님께 맡겨 버렸습니다.
이것이 순종입니다.
말씀의 내용을 글로만 알고, 말로만 하지 않고, 친히 행동으로 옮겨 실천했던 것입니다.
내가 더 이상 미워할 필요가 없단 것입니다. 주께서 심판하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바울은 말씀대로 믿었고 순종했으며 디모데에게도 가르치기를 “너도 그를 주의하라.”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 바울이 우리에게도 당부하고 있습니다.
“전에 나를 괴롭히던 사람들이 있으니 너도 그들을 주의하라. 그러나 주께서 말씀하신대로 그들이 행한 대로 갚아 주실 것이니 너는 말씀에 순종하라. 순종함으로 모든 것을 주께 맡겨 버려라.”
더 이상 사람 때문에 속앓이 하지 마세요. 남 탓하지 마세요. 교회나 나라나 사회나 가정이나 환경을 탓하지도 마세요, 그것들은 모두 겨울이 오기 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들일 뿐입니다.
고난과 괴롬, 가난과 실패 등이, 신앙적으로는 감사해야 할 것들임에는 분명하지만 여러분에게 감사하시라고까지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원수와 대적들을 사랑해야 하겠지만 그렇게 해야 한다고까지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다만 이 한 가지만은 꼭 하려고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 맡기세요!’ 그리고 여러분은 ‘다른 일!’을 하세요.
교회 섬기는 일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드신다면 지금부터라도 주의 몸 된 교회를 더 뜨겁게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내 가족을 좀 더 깊이 사랑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드신다면 지금부터라도 하나 뿐인 내 가족을 뜨겁게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원수를 사랑하지 못했고 미워했던 이웃이 있었다고 한다면, 이제 미움을 그치고 용서하려는 믿음을 가지려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도 계절은 바뀌듯이 인생의 봄, 여름, 가을이 영원하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든지 인생의 겨울은 찾아옵니다.
물론 그 겨울의 형편이 사람마다 다 다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겨울에는 누구에게든지 ‘공통적인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그 겨울에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인생에 겨울이 오게 되면 그 다음 남은 것은 죽음과 하나님의 심판인 것을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9:27 말씀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누구든지 이 두 가지 곧 '죽음과 심판'은 피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준비된 사람에게는 장차의 ‘심판’이 ‘상급’으로 바뀐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심판대’와 ‘시상대’ 이 둘의 차이를 잘 아실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라면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주님을 위하여 최선을 다해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라도 여러분 각자의 믿음을 점검해 보세요. 기도를, 말씀 묵상을, 사랑을, 용서를, 봉사와 전도, 충성과 헌신을, 그리고 순종을.....
인생의 겨울 전에 그것들을 준비하세요. 보충하세요. 노력하세요. 신앙의 저축을 쌓아 나가세요.
그렇게 여러분의 믿음이 잘 준비된 상태에서 여러분의 인생의 겨울을 맞이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좀 생뚱맞지만 여러분은 혹시 악마의 동생이 누군지 아십니까? 넌센스 퀴즈입니다. 악마의 동생이 누굴까요?
악마’의 동생은 ‘설마’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말씀하신대로 반드시 이루어지며, 누구에게든지 인생의 겨울은 반드시 닥쳐 올 텐데 마귀가 속삭이는 ‘설마’에 속아 아무런 신앙의 대책도 없이 ‘설마 설마’하며 살다가는 구원도 복도 은혜 받을 기회도 놓치게 됩니다.
역시 넌센스 퀴즈입니다. 우리 몸에는 몸을 헤치는 해충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몸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있으면서 우리 마음을 해치는 해충은 무엇일까요?
마음속의 해충은 ‘대충’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설마 설마 하면서, 대충 믿고, 대충 기도하고, 대충 순종하며, 대충 대충 교회 생활을 하다가는 결국엔 탈이 나게 됩니다.
꼭 기억하세요! 우리 인생은 일방통행입니다. 지나고 나면 다시 돌아오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일방통행의 끝에는 인생의 겨울이 있습니다.
인생의 겨울이 영광스러운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잘 산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아직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인 바로 오늘.
하나님을 진지하게 믿으세요. 인생을 성실하게 사세요. 믿음으로 하는 헌신도 봉사도 전도도 수고도 건강할 때 하세요. 사랑으로 하는 헌금도 구제도 있을 때 하세요.
이 모든 것이 신앙을 저축하는 일입니다.
겨울은 생산이나 결실의 때 아니라 ‘결산의 때’입니다. 하나님을 만나 심판을 받을 것인지 상급을 받게 될 것인지가 그때 결정됩니다.
인생 겨울의 목전에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본문 22절을 보세요.
“나는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이 고백이 인생의 겨울을 준비하는 여러분의 고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있는 여러분 명의로 된 행위 책이 심판을 위한 ‘죄의 책’이 되지 않고 구원과 상급을 위한 ‘신앙의 저축 통장’이 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주께서 여러분의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축원합니다. ‘은혜가 여러분과 우리 모두에게’ 있을 줄로 믿습니다.